스플리트에서의 둘째 날은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로기르 섬과 스플리트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흐바르 섬으로 정했습니다.
오기 전부터 치밀하게 정한 일정이 아니라 스플리트에 도착해서 '그게 좋겠네'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준비 없이도 용하게도 이게 잘 먹혔습니다.
오늘은 모두 버스와 배 편을 이용하는 거라 운전에서 해방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늦잠에 늑장을 부리다 10시가 넘어서 나왔습니다.
트로기르 행 버스 타는 곳까지는 숙소에서 2km가 넘는 거리라 그늘로 그늘로 해서 왔지만 땀이 비 오듯합니다.
여행을 와서 드뎌 2층 버스를 탔습니다.
그게 뭐 별 거라고 하겠지만 첨이라 기분이 좋습니다.
설명으로는 오랜 역사 기간 만큼이나 여러 세력들의 지배를 받아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들이 섞여 있다는데 문외한인 저로서는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도 다른 곳들처럼 골목골목에 자리잡은 기념품점들과 음식점들이 즐비합니다.
바다 초입 쪽으로 전초에 해당하는 조그마한 성이 있는데 하이네켄 맥주 회사에서 후원하는 듯한 축제 준비로 한창입니다.
거리를 두고 보기만 하는 우리의 문화재와는 달리 여기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데 문화재를 대하는 모습이 많이 다릅니다.
이 조그만 성을 짓는데 사용된 석재에 얼마나 많은 석회 성분이 섞였는지 성벽에 흘러내린 석회나, 성 안쪽 곳곳에 석회동굴에서나 볼 수 있는 종유석이 자라고 있습니다.
점심 시간이 돼서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펼쳐진 야외 레스토랑에서 맥주와 요리를 시켰습니다.
울강생이들도 물과 탄산 음료수 대신 오랜만에 맥주를 즐기는 것 같아 좋습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바람도, 맥주도 시원합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함께하는 이 순간이 좋았습니다.
모처럼 관광 대신 휴양을 하는 기분입니다.
흐바르 섬에 들어가는 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때나 들어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준비 안 된 여행자에게 찾아오는 필연이랄까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전을 훤한 대낮에 제대로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얼마나 큰지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저녁에는 보지 못했던 성벽 외관과 성 주변의 동상들을 보았습니다.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을 통해 들락거리기도 하고 성의 윗 부분으로 가는 통로를 찾아 폐허가 된 그대로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한국인 모녀가 얘기하는 걸 들었다며 울각시가 알려 준 로마식 스핑크스와 아담과 이브 상도 볼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지난 밤에 돌아오던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숙소에 가까운 공원을 통하는 길인데, 시내 전경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뷰포인트를 만났습니다.
아는 사람들만 오는지, 찌는 듯한 햇볕 아래 발품을 팔기 힘든지는 몰라도 이렇게 좋은 곳이 한가하기 그지없습니다.
푸른 항구를 품에 안은 스플리트 시내가 한폭의 그림입니다.
흐바르 섬 대신에 궁전을 다시 둘러보고, 멋진 뷰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만났습니다.
여행이 길어지니 의견 차이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스플리트에 오는 길목에 산 현지인이 직접 농사 지은 포도주로 만든 와인 한 병을 땄습니다.
남은 여행을 위해 건배했습니다. ~^.^~
♥공부해서 남주나♥
며칠 전, 종로에 나가느라 전철을 탔습니다.
요즘 전철 풍경은 딱 하나더군요.
애 어른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사람 구경하는 게 좋아서 쭈욱 둘러보곤 하는데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예전의 모습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 투성이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가 서 있는 바로 앞에 어르신 한 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안경을 끼시고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계시더군요.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하여 무슨 책일까 살짝 봤더니, 이름 없는 시인의 시집을 읽고 계시더군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직 시집을 읽는 연세 있으신 어르신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요, 그것도 전철에서... 멋져 보이더군요.
어느 시인의 한탄 섞인 말씀이 생각납니다.
"시집 내면 뭐합니까? 읽는 사람이 없는데요."
공감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