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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환의 명시감상
목련
조영심
목련 한 그루
올해도 한 상 걸게 차려 놓고 있다
땅기운 채 풀리기도 전에
크고 작은 하얀 접시들을 챙기더니
남쪽 끝에서 올라온 냉이
살짝 데쳐 된장에 버무려 놓고
새콤하게 묻힌 고들빼기
참취, 곰취, 개미취 어린잎도 데쳐 무치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두릅 옆에 초고추장
생으로 무치고, 데친 미나리나물
쌉쏘름한 달래 버무림
돌나물을 넣어 시원한 물김치
머루 잎자루를 삶아, 볶음, 조림, 짱아찌며
그릇마다 쌀밥 소복하게 담아놓고
맑은 된장국 쑥향이 가득하다
풀은 아무 것이나 뜯어 먹어도
약이 된다는 이른 봄날
남녘에서 올라온 햇살이며 바람이며
데치고 버무려,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있다
----조영심, [목련]({애지}, 2007년 겨울호) 전문
시의 세계는 진정성의 세계이고, 진정성의 세계는 발가벗음의 세계이며, 진실이 진실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무기교의 기교의 세계이며, 그 삶의 진정성에 의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감동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들의 인생을 재주나 기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듯이, 시는 삶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 자신에세 가장 정직해야 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가장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가장 아프고 쓰라린 것 등을 한 줌의 숨김도 없이 사실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잃은 것은 삶의 진실이요, 얻은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다’의 세계가 시적 기교의 세계라면, ‘얻은 것은 삶의 진실이요, 아낌없이 버린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다’의 세계는 무기교의 기교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무기교의 기교의 세계는 진정성의 세계이며, 모든 기교를 터득하고, 그 기교의 한계를 뛰어넘은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알몸과 치부마저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기 자신을 해방시킨 자유인이며, 이 세상을 더욱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예술적 인간이다.
그대는 삶의 풍요의 상태에서 시를 쓰는가? 아니, 이와는 정반대방향에서 삶의 빈곤의 상태에서 시를 쓰는가? 전자의 시인은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마저도 더욱 더 아름답게 미화시키며 그 고통과 슬픔의 공간마저도 더욱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자유인이며, 그렇지 못한 시인은 고통과 슬픔 속에 갇혀서 이 세상의 삶을 더욱 더 고통스럽고 슬프게 살아가는 수형인受刑人에 지나지 않는다.
조영심 시인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했고, 전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도에, 계간시전문지 {애지}를 통해서 등단했고, 현재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의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그는 언어를 자유 자재롭게 구사하는 능력과 그 언어로써 시적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상상력이 새로우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되고, 상상력이 새롭지 못하면 진부한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그의 [목련]은 아름답고 멋진 상상력의 세계이며, 그 상상력이 새로운 봄을 창조해놓고 있는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언어에 구속되어 있지 않고 그 언어의 자유를 살고 있다. 봄은 희극의 계절이고, 가을은 비극의 계절이다. 여름은 로만스의 계절이고, 겨울은 아이러니와 풍자의 계절이다. 희극의 세계는 조화의 세계이며, 따라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그 희극의 성격에 더 어울리는 무대라고 할 수가 있다. 비극의 세계는 부조화의 세계이며, 따라서 고귀하고 위대한 인간의 죽음을 뜻하는 가을이 그 비극의 성격에 더 어울리는 무대라고 할 수가 있다. 로만스의 세계는 이상의 세계이며, 따라서 푸르디 푸른 여름이 그 로만스의 성격에 더 어울리는 무대라고 할 수가 있다. 아이러니와 풍자는 기괴하고 음산한 세계이며, 모든 만물들의 죽음을 뜻하는 겨울이 그 아이러니와 풍자의 성격에 더 어울리는 무대라고 할 수가 있다. ‘봄은 희극의 계절이고, 가을은 비극의 계절이다. 여름은 로만스의 계절이고, 겨울은 아이러니와 풍자의 계절이다’라는 노드롭 프라이의 말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봄은 희극의 계절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나의 입을 맞추어 본다. 하지만, 그러나, 이때의 희극은 거짓 화해나 가짜 화해의 세계에 맞닿아 있지 않은 데, 왜냐하면 나는 그 희극의 통속적인 천박성을 뛰어넘어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봄의 여성은 계절이고,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다. 봄은 꽃의 계절이며,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사나운 눈보라와 사나운 추위가 한풀 꺾이고 보면, 잎보다 먼저 피는 개나리와 진달래와 매화와 목련이 그 봄소식을 알리게 된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목련 중에서 목련이 가장 아름답고 눈 부시며, 나는 이곳 대전의 연구단지에서 그 목련꽃길을 해마다 걸어보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 목련은 이상기온 현상 때문인지 삼월 이십일 경이면 그 하얀꽃을 피우고, 10m 내외의 그 목련나무들은 마치, 백의의 천사들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봄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목련의 꽃잎은 6~9개이며 긴 타원형이고, 기부는 연한 홍색이며 진한 향기가 있다. 3개의 꽃받침 조각은 선형으로 꽃잎보다 짧으며 일찍 떨어지게 된다. 조영심 시인은 그 목련꽃을 보고, “목련 한 그루/ 올해도 한 상 걸게 차려 놓고 있다”라고 노래하고, “땅기운 채 풀리기도 전에/ 크고 작은 하얀 접시들을 챙기더니”라고 노래한다. 목련꽃은 하얀 접시가 되고, 목련나무는 진수성찬의 밥상이 된다. 왜냐하면 긴 타원형의 목련꽃은 접시와도 유사하고, 한 그루의 목련나무는 진수성찬의 밥상과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왜, 목련 한 그루는 온갖 봄나물들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있는 것이며, 그 목련나무는 어느 누구를 초대해놓고 있는 것일까? 그 진수성찬의 세목들은 무엇이며, 그 밥상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목련은 모든 병을 치유해주는 백의의 천사이며, 우리 인간들을 멋진 신세계로 인도해주는 봄의 전령사이다. 사나운 눈보라와 사나운 추위 속의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며, 그 죽음의 계절을 빠져나온 우리 인간들은 모두들 지치고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목련 한 그루는 “땅기운 채 풀리기도 전에/ 크고 작은 하얀 접시들을” 챙겨서, “올해도 한 상 걸게 차려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땅 기운 채 풀리기도 전에”라는 시구는 가장 이른 봄을 뜻하고, “올해도 한 상 걸게 차려 놓고 있다”라는 시구는 온갖 봄나물들의 진수성찬을 의미한다. 그 진수성찬은 죽음의 계절을 빠져나온 모든 인간들을 위한 밥상인데, 왜냐하면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조화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은 삶의 계절이며, 모든 만물들의 삶에의 의지를 북돋아주고, 그 구체적인 ‘의지의 꽃’을 터뜨리는 계절이다. 봄은 새들이 노래하고, 모든 만물들이 꽃을 피우고, 벌과 나비들이 춤을 추고, 기나 긴 동면기에 접어들었던 인간들이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희극의 계절이다. 목련은 백의의 천사이며, 봄의 전령사이다. 그 목련은 나약하고 병든 인간들을 위하여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그 인간들의 삶에의 의지를 북돋아주며, 그 인간들을 새롭고 멋진 신세계로 인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진수성찬의 세목들은,
땅기운 채 풀리기도 전에
크고 작은 하얀 접시들을 챙기더니
남쪽 끝에서 올라온 냉이
살짝 데쳐 된장에 버무려 놓고
새콤하게 묻힌 고들빼기
참취, 곰취, 개미취 어린잎도 데쳐 무치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두릅 옆에 초고추장
생으로 무치고, 데친 미나리나물
쌉쏘름한 달래 버무림
돌나물을 넣어 시원한 물김치
머루 잎자루를 삶아, 볶음, 조림, 짱아찌며
그릇마다 쌀밥 소복하게 담아놓고
맑은 된장국 쑥 향이 가득하다
라는 시구에 나타나 있으며, 그 밥상의 궁극적인 의미는 그 구성원들의 동체성 보존 이외에도 삶에의 의지의 구체적인 발현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식욕이 먼저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면 성욕이 먼저이란 말인가? 자기 자신의 동체성의 보존이라는 점에서는 식욕이 먼저이고, 종의 보존이라는 점에서는 성욕이 먼저이다. 하지만, 그러나, 식욕과 성욕은 둘이 아닌 하나이며, 그 식욕 속에는 성욕도 들어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동체성의 보존이 곧바로 종의 보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욕과 성욕은 다같이 구체적인 삶에의 의지이며, 그 욕망(본능)들로 인하여 우리 인간들의 종의 보존과 그 역사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욕은 성욕이고, 성욕은 식욕이다. 음식물은 단순히 우리 인간들에게 영양분만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사색과 사유를 하게 하며, 또, 그리고, 인간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에너지이기도 한 것이다. 조영심 시인의 밥상은 시골밥상이며, 자연의 밥상이고, 그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군침이 도는 밥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쪽 끝에서 올라온 냉이”는 흔히들 ‘나생이’, ‘나숭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 어린 순과 잎은 그 뿌리와 함께, 이른 봄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봄나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냉이국은 그 어린 순과 잎과, 또, 그리고 그 뿌리도 함께 넣어야 제맛이 나고, 비타민 B1과 C가 풍부하다고 한다. 한의학에서 냉이는 모든 부분을 약재----제채薺菜라고 한다----로 쓰이기도 하며, 이뇨, 지혈, 해독 등에 그 효능이 있다고 한다. “새콤하게 묻힌 고들빼기”는 무엇이며, “참취, 곰취, 개미취”는 무엇인가? 고들빼기는 국화과의 두해살이풀이며, “참취, 곰취, 개미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산나물이다. 고들빼기의 어린 잎과 뿌리는 김치를 담그거나 나물로 먹으며, 취나물은 단백질, 칼슘, 인, 철분, 비타민 B1, B2, 니아신 등이 함유되어 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그 맛과 향이 뛰어난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두릅은 무엇이며, 미나리나물은 무엇이고, 달래는 무엇인가? 두릅은 ‘목말채’, ‘모두채’라고 하며 독특한 맛과 향이 있는 산나물이며, 미나리는 독특한 풍미가 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습지에서 자라고 논에서 재배하는 나물이고, 달래는 ‘소산小蒜’, ‘야산野蒜’, ‘산산山蒜’ 등이라고 하며, 알리신이 들어 있어 약간 매운 맛이 난다. 돌나물은 무엇이고, 머루 잎자루는 무엇이며, 쑥은 무엇인가? 돌나물은 장미목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이며, 잎은 육질이고, 봄철에 물김치를 담거나 겉절이를 해먹는 나물이고, 머루 잎자루는 포도과의 덩굴식물이며, 아마도 전라도 지방에서는 “볶음, 조림, 짱아찌”를 해먹는 나물인 모양이고, 쑥은 국화과의 다년초로서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가장 흔한 봄나물 중의 하나이다. 냉이, 고들빼기, 취, 두릅, 미나리, 달래, 돌나물, 머루 잎자루, 쑥향 등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봄나물들이며, 그 이름들만으로도 우리 한국인들의 입맛을 돋구게 된다. 그 봄나물들에다가 된장과 초고추장이 어우러지고, 또한 물김치와 하얀 쌀밥만이 있으면 우리 한국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금강산의 풍광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금강산의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만, 목련 한 그루, 혹은 조영심 시인이 차려놓은 자연의 밥상은 그 자체가 보약이 되고, 삶에의 의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진수성찬의 자연의 밥상은 삶에의 의지의 구체적인 발현이며, 우리 인간들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에너지이기도 한 것이다. 목련 한 그루의 밥상은 가장 아름답고 멋진 밥상이며, 너와 내가 아름답고 정겨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연의 밥상이기도 한 것이다. 거기에는 남쪽 끝에서 올라온 냉이도 있고, 새콤하게 묻힌 고들빼기도 있고, 참취, 곰취, 개미취도 있다. 또한 살짝 데친 두릅과 미나리나물도 있고, 쌉쏘름한 달래버무림과 돌나물도 있다. 또, 그리고 머루 잎자루를 삶은 볶음과 조림과 짱아찌도 있고, 맑은 된장국의 쑥향도 있고, 우리 한국인들의 주식主食인 쌀밥도 있다. 자연의 밥상은 진정성의 밥상이며, 민인 평등의 밥상이다. 자연의 밥상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고, 자연의 밥상 앞에서는 모든 인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너와 내가 손에 손을 맞잡고, 아름답고 멋진 지상낙원을 살아가게 된다. 봄은 희극의 계절이며, 조화의 계절이다. 조화는 만물의 아버지이며, 우리 인간들은 그 조화를 통해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풀은 아무 것이나 뜯어 먹어도
약이 된다는 이른 봄날
남녘에서 올라온 햇살이며 바람이며
데치고 버무려,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있다
조영심 시인의 [목련]은 그의 인문주의가 피워낸 꽃이며, 그의 진정성이 피워낸 꽃(시)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목련]은 바슐라르의 말대로, ‘세계의 열림이며 세계의 초대’인 것이다.
목련꽃에서 크고 작은 하얀 접시들을 상상해내고, 봄나물들의 진수성찬을 차려놓은 조영심 시인에게는 늘, 항상, 시신詩神의 은총이 깃들게 될 것이다.
자연의 밥상은 그 자체가 보약이며, 우리 인간들의 종의 보존과 그 건강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문명과 문화는 이 자연의 밥상에 의해서 꽃 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아, 새로운 상상력이여, 아름답고 멋진 신세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