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62]명창 배일동의 “독공獨功”이라는 책
하루새 10명이 온열질환으로 죽어갔다는 이 폭염 속에, 나는 ‘독서 삼매경三昧境’에 빠져 마냥 행복했다. 꼬박 5시간에 걸쳐 정독, 완독한 책은 ‘폭포 목청’으로 불리는 명창 배일동의 “독공獨功 ”(366쪽, 세종서적 2016년 5월 펴냄, 20000원). 지난주, 국보급 전각예술인 친구가 그의 또다른 저서 “득음得音”(552쪽, 2020년 2월 시대의창 펴냄, 3000원)과 함께 선물한 책이다. 두 권의 책이 긴급히 필요하다는 나의 강제요청에 응한 친구가 고마웠다.
이번주 8월 5일(토) 오후, 명창이 임실의 우거寓居를 방문하는 겸에 오수獒樹 의견비 앞에서 버스킹(busking. 거리공연)을 하기로 했다. 사전에 그의 ‘탁월한 저서’를 읽고, 졸문의 독후감이라도 쓰는 게 ‘인간의 탈’을 쓰고 최소한의 예의일 것같아서였다.
500쪽이 넘는 “득음”의 서문과 목차를 보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소리예술의 학술서’인 것같았다. 허나 “독공”은 그가 30대초 지리산 달궁계곡과 조계산에서 7년동안 ‘독공(홀로 공부)’한 애환의 기록일 것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쥐었다. 웬걸, 책은 1부 ‘스스로 음을 찾다’부터 9부 ‘마침내 소리꾼의 최고 경지에 오르다’까지 시종일관 진지하고, 참으로 말할 수 없이 도저到底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읽어가는데, 그의 소리 공력 못지 않게 필력筆力의 내공도 만만찮았다. 글을 아주 잘 쓰는, 글이라는 게 무엇인지 아는 이였다. 원고지 1000장에 이르는 분량을 80일 동안 스마트폰 메모애플리케이션에 썼다는 것이다. 오 마이 갓! 머리말의 제목처럼 ‘숭고한 예술혼의 뿌리를 밝히기’에는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인문교양서였다. 그해 ‘문광부 우수도서’에 뽑히지 않은 것이 유감스러웠다.
‘7년 독공’이야 본인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겠지만, 우리로서는 그럴 수 있었겠다며 넘어가는 주제였으나 ‘소리예술’‘소리공부’라는 어려운 주제를 천착하는데도, 글들이 눈이 줄줄줄 미끄러지게 쉽게 썼기 때문에 그 많은 챕터가 금세 읽어졌다. 어떻게 이런 독특한 글재주까지 겸비했을까? 어느 언론인 못지 않게 편편이 ‘명칼럼’으로 손색이 없었다. 어느 글들은 잘 조합하면 몇 편의 짱짱한 논문도 될 법했다. 몰랐던 것을 어느 글을 통하여 알아가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 책이 바로 그랬다. 판소리 문외한인 나의 눈이 탁 트이는 것같았다. 아, 이런 게 소리구나, 득음의 경지는 멀고도 험하구나, 소리꾼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된 것이다. 그가 후반부에 짚어낸 예술교육의 실상과 현황 등을 읽으며 “맞아. 맞아”소리가 절로 나왔다.
비교적 늦게 뛰어든 소리꾼의 길, 그가 20여년 동안 온몸으로 겪은 수많은 일화逸話들은 뭣 모르는 독자들에게 깨우침을 주기에 충분했다. 진정한 사제師弟란 무엇인지? 담수지교淡水之交, 귀명창이 어떻게 좋은 소리꾼을 낳는지? 왜 ‘1고수 2명창’이라고 하는지? 곤궁이통困窮而通, 곤궁함을 스승으로 삼아 예술을 완성한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전통의 법제 속에서 새로운 보옥寶玉을 찾는 법고창신法古昌新의 길은 무엇인지? ‘국악國樂의 품격’을 높이고 알리는 일이 왜 중요한지 등, 온통 생각할 것투성이였다. 과문의 소치이겠지만, 이런 류의 소리예술에 대한 이론과 경험서는 처음으로 접했다. 원래가 감동이나 감탄을 잘 하는 편이지만, 읽을 때마다 연필로 밑줄을 그어놓고 싶은 것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말하자면 ‘배일동 어록語錄’의 모음집이라고도 하겠다. 재덕겸비才德兼備와 미쳐야 미친다(불광불급不狂不及)는 역시 진리이다. 무엇보다 석학 도올 선생님과 달리 잘난 체하지 않아 좋았다고나 할까? 흐흐. 동양고전에 대한 조예가 무척 깊었다. 언제 이렇게 고전과 한문공부를 했을까?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수많은 고전의 대목들이 실감을 더 했다. 북채로 바위를 때려 바위조각이 깨지는 피나는 노력을 하는 사이에 언제 그렇게 많은 책들을 틈틈이 읽었을까? 어떻게 하루 두세 시간 눈을 붙이고 내내 소리를 질러댔을까? 아무리 소리에 미쳤다한들 그게 가능한 일일까?
85쪽에서 96쪽까지 펼쳐진 인간 세상의 오만 정情이 서려 있다’의 글은 손색없는 한 편의 서정수필이어서, 책을 덮고 다시 찬찬히 읽어봤다. 60년대 순천 판교라는 산골마을에서 자란 그의 눈에 비친 고향풍경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정겨운 풍경화이자 수채화였다. 전재全載를 하고 싶지만, 강추하는 선에서 그친다.
아무튼, 놀라운 책이자 기특한 기록의 글이다. ‘홀로 닦아 궁극에 이르다’는 부제副題를 보라. 결코 상찬賞讚이 아니다. ‘참 예인藝人’의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지 가늠하겠다. 많은 것을 교양과 상식차원에서 알게 됐다. 돌아서면 또 금세 까먹게 되겠지만, 그러한들 지금의 이 흐뭇함과 만족감은 제법 오래갈 것이다. 마지막 366쪽의 구절을 적어놓는 까닭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세월을 가락삼아 천지 허공에 무상한 성음聲音만 뿌릴 수 있다면 그것이 살아 있는 복이지, 더 바랄 게 또 뭐 있겠는가. 어쩌면 득음이란 것도 호사일지 모른다. 가슴에 품은 뜻을 소리에 실어 풀어놓을 수만 있다면 족할 것을 득음까지 꿈꿀 일이 뭐 있겠는가.(중략) 득음의 길은 오묘하고 멀고 아득하지만, 다만 오늘 한 걸음을 착실히 내디딜 뿐이다. 소리의 길이 사람의 길이라니, 사람의 길로 자연의 길로 그저 쉼 없이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다.”
마치 거인巨人의 일성一聲같지 않은가.
후기: “득음”이라는 책은 <소리의 이치> <소리의 바탕> <소리의 기술> <소리의 정신> 등 ‘소리’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전문학술서이자 소리예술의 이론서로서, 요해了解하기가 쉽지 않을 것같아 읽기가 두렵다. 언제나 도전해볼는지 알 수 없지만, 이번 토요일 저자의 사인이나 착실히 받아둘 생각이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