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그야말로 ‘정체 사회’다. 물가 수준도, 노동자의 급여 수준도 2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625개 대기업의 올해 연말 상여금을 집계했더니, 20년 전과 거의 비슷한 1인당 평균 71만8986엔이었다고 한다. 그런 일본에서 보면, 연간 6%나 성장하며 잘나간다는 한국 경제엔 뭔가 대단한 것이 있어 보인다.
일본 재계는 한국의 낮은 법인세를 칭찬한다.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24.2%로 40.69%인 일본의 거의 절반이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 법인세를 인하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또 크게 내렸다. 그 결과 홍콩, 싱가포르, 아일랜드를 빼고는 세계 최저 수준이 됐다. 그로 인해 기업 투자가 크게 늘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이윤이 크게 늘어난 건 사실이다. 반면 정부 재정여력은 크게 위축됐고, 복지재정은 쪼그라들고 있다.
일본 총리도 결단을 했다. 내년에 법인세 실효세율을 40%에서 35%로 낮추기로 했다. 세수 감소액은 1조 5,000억엔가량이다. 재정 부족 때문에 어린이수당(월 2만6000엔) 전액 지급을 포기한 판에, 재정적자는 더 커지게 됐다. 감세를 한다고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린다는 보장은 물론 없다. 정부 안에서는
“기업들한테 각서라도 받아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본 재계는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수출시장의 경쟁 조건에서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고도 칭찬한다.
총리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를 논의할 뜻을 밝혔다. 한국 및 유럽연합과 경제협력협정(EPA) 협상도 제안했다. 관세 철폐를 통한 수출 증대는 경쟁력이 낮은 자국 산업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이를 아예 무시했고, 일본은 지나치게 의식했다. 간 총리가 ‘제3의 개국’을 선언한 데 대해, 각료들도 마냥 손뼉을 치지만은 않는다. 그 부작용은 여전히 고민거리다.
사실 일본의 재계는 요즘 한국 경제가 잘나가는 이유가 ‘원화 약세, 엔 강세’ 덕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이는 제쳐두고 한국을 열심히 칭찬하는 것은, 법인세를 낮추고 자유무역협정에 나서도록 일본 정부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다.
보통의 일본인은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볼까? 지난 8월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마련한 양국 젊은이들의 토론회에서 한국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고, 빈곤인구가 늘고 있으며,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지적이 나왔다.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법인세 인하나 시장 개방은 경쟁력 향상을 위한 묘수가 아니다.
그저 앞당겨 쓰는 빚 같은 것이다. 한국은 그 뒷감당을 하지 않는다.
한 일본인 저널리스트는 일본 기업에 비해 훨씬 낮은 삼성 직원의 평균연령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은 속도 하나는 빠르다’고 말했다.
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어를 생각나게 한다.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여전히 ‘경제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친다. 큰 위기를 겪을 때마다 더욱 그런 목소리가 커졌다.
그때마다 대기업의 이익은 계단식으로 폭증하곤 했다. 2000년 30조원에 조금 못미치던 우리나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이 매년 늘어만 간다.
그림자는 길고 짙다. 30년 정체를 겪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