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管鮑之交)
淡白明志 寧淸致遠(담백명지 영청치원-담백하게 뜻을 밝히고, 평안하고 맑은 마음으로 원대한 이상을 이룬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던 諸葛孔明(제갈공명)의 롤 모델은 제나라 환공을 춘추오패 첫 주자로 올려 세운 명재상 관중이었다고 합니다. 管鮑之交(관포지교)로 유명한 바로 그 관중 말입니다.
관중 왈,
내가 일찍이 가난하였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하였는데, 나는 그를 속여 항상 나의 몫을 많이 챙겼으나 포숙은 나를 탓하지 아니 하였으니, 그는 나의 가난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포숙의 명성을 위하여 도모한 일이 오히려 그를 궁지에 몰리게 하였으나 그는 나를 어리석은 놈이라고 하지 않았다. 時運(시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을 알고 있었기 대믄이다.
또 나는 몇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으나 그 때마다 쫓겨났다. 그러나 그는 나를 無能者(무능자)라 하지 않았다. 나의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싸움터에 나갔을 때마다 도망쳤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늙은 어머니가 계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환공과 동생 규 사이에 후계자 다툼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규 편에 서서 환공을 죽이려고 환공에게 활을 쏘았으나 빗나가고 결국 사로잡혀 욕된 몸이 되었는데 포숙은 나를 파렴치한 놈이라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환공을 설득하여 나를 천거하였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생아자부모 지아자포자야-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나,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을 천거한 뒤 그 자신은 관중보다 아래 자리에 들어가 관중에게 경의를 표하였습니다. 포숙의 자손은 대대로 제나라에서 녹을 받고 십 여대에 걸처 이름 있는 대부 집안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 사람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포숙의 밝은 눈을 더욱 칭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