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건!”
파란박스를 지켜보던 도치씨가 탄성을 질렀다.
5번 낚시꾼이 엄지를 세웠다.
“고려청자군요. 와, 찬연하다!”
“요거는 고려청자하고 게임이 안 되는 것입니더.”
“나는 고려청자가 제일 좋은 도자기인줄 알았는데.”
파란박스에서 5번 낚시꾼이 꺼낸 것은 도자기로 된 물고기형의 항아리였다.
“요거이 뭔 고긴줄 알겄지예?”
“잉어로군요.”
“워쩌면 세상에 단 한 개뿐인지도 모릅니더. 나가 집하장 하니께 요런 걸 접수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은 꿈도 못 꿀 귀물이라요.”
도치씨가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보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거 비싸지요?”
5번 낚시꾼이 눈을 크게 떴다. 휜 창이 들어났다.
사방을 둘러보며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귀물은 값을 매기면 부정탑니더.”
“그렇군요.”
“요거이 마음에 들지라? 요런 걸 집안에 두면 없던 복도 발생한단 말입더.”
도치씨가 고개를 꺼덕였다. 그러나 구매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도자기 하나에 수천만 원씩 투자하는 사람은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도치씨에겐 눈앞의 귀물을 감상하는 것으로도 족했다.
5번 낚시꾼이 마치 아기처럼 항아리를 공중 태우기 했다.
“도자기는 말이어라 요로코롬 무게가 가벼워야 진품이당께. 무거운 건 하품이여.”
공중으로 치솟는 도자기를 보고 질겁한 도치씨가 두 손을 받치며 만류했다.
“아이고! 그러다 실수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헤헤헤, 나가 집하장 아닙니꺼. 금덩어리도 던져보고 감별한당께요. 근디.”
“?”
“요거 마음에 참말로 들지라?”
“저는 그런 귀물은 구매할 처지가 안 됩니다. 잘 못 오셨네요.”
“오메? 나가 언제 사랍뎌?”
“그럼 안파실거였어요?”
“오메! 오메! 나가 직업이 집하장인디? 나가 갤러리 아녀라.”
도치씨는 또 한 번 고민에 빠졌다. 물건도 안팔 거면서 예고 없이 찾아 온 이유가 궁금했다. 마치 보험회사설계사나 화장품코디 같은 행동이 의아스럽기만 했다.
문득, 페이스피싱에 능통한 사기꾼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거의 짐작이 맞을 것 같았다.
안면만 생기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야바위에게 걸려들지 않으려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엉뚱한 질문을 했다.
“고향이 어딥니까?”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5번 낚시꾼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5번 낚시꾼의 표정을 읽은 도치씨는 자신의 직감을 확신했다. 당장 돌려보내거나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는 것 또한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5번 낚시꾼이 되물었다.
“나으 고향말이어라?”
“네. 집하장님 고향이 궁금합니다.”
“나으 고향을 말하기가 거시기한디.”
“옛날엔 오지에 사는 것이 흉이었지만, 지금은 산골에 사는 것이 현대인의 로망 아닙니까? 나는 자연인이다 보시면 알잖아요?”
“으미, 그러긴혀도.참거시기헌디. 근디 나으 고향은 와 묻는데예?”
5번 낚시꾼이 자신의 유도에 잘 따라 넘어와 준 것이 다행이다 싶어 슬며시 웃었다. 이제 적당히 마무리 해야겠다 생각했다.
“전라도말 경상도말 섞어 쓰니까 참 독특해서요. 양아치집하장님은 한번 만나면 절대 안 잊어버릴 겁니다. 언어기네스북에 올려도 손색 없겠구요.”
도치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5번 낚시꾼이 눈을 번쩍 떴다.
“흐으미. 고거였소?”
들고 있던 도자기를 벤치에 던지듯 내려놓고 도치씨 손을 잡으며 5번 낚시꾼이 설명했다.
“나가 양쪽 말 왔다갔다 헝께 박쥐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심니더.”
“그럴리가요?”
“말하자면 긴디요. 딱 부러지게 말할라요. 그 머씨냐? 나가 생산된 곳은 쬐매 독특하지라. 앞마당은 경상도고 뒷마당은 전라동께요. 그렁께 한마디로 말해 사타구니 사이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끼고 살았다 이 말이지라.”
도치씨는 5번 낚시꾼의 설명을 금세 이해했다.
“아하! 구례구나! 구례 중대리! 중대리가 고향 맞죠?”
5번 낚시꾼이 맞잡은 손을 이불 털듯 흔들었다.
“오메! 중대리를 우찌 압니꺼?”
“중대리수로에서 낚시한 적이 있었거든요.”
“흐미. 흐미. 고기가 고기 바글바글한덴디.”
5번 낚시꾼이 팔뚝을 걷어 올렸다. 민망할 정도로 꺼덕꺼덕 흔들며 말했다.
“요런 놈이 팍팍 물어버렸재? 밤에는 요런 잉어도 나오는덴디. 반갑소야.”
5번 낚시꾼이 자신의 허벅지를 두 손으로 감싸며 잉어크기를 가늠해 보이자 도치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여름에 은어 낚시 갔거든요.”
“오메! 은어 좋지라. 고 수로에서 나오는 은어는 무등산수박향이 파앙터지는디. 한번 먹으면 귀신이 되어서도 못잊는다카데예.”
도치씨는 대답대신 시계를 봤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야바위한테 불리해질 것이 자명했으므로 적당히 자리를 뜨려는 속셈이었다.
덩달아 5번 낚시꾼도 손목시계를 봤다.
오후 3시15분.
“오메! 약속이 있는가부요?”
“네.”
5번 낚시꾼이 벤치의 도자기를 번쩍 들어 도치씨 가슴을 향해 내밀었다.
“바쁜디, 나가 시간을 허벌나게 잡아뿌렀소.”
“왜 이러십니까? 전 도자기 살 형편이 안 됩니다. 귀물인건 알지만.”
도치씨가 두 손으로 5번 낚시꾼 앞으로 도자기를 밀었다.
5번 낚시꾼이 도치씨의 가슴을 향해 더 힘껏 밀며 말했다.
“하이고. 요건 파는 거이 아니라예. 나가 그날 낚시함시로 해수무당님한테 배운거이 참 많았지라. 그래서 그날 시상 못한 상품을 이틀밤 고민하고 가아 온깁니더. 아무 부담말고 받으랑께요.”
도치씨는 당황했다.
김영란법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건이나 이유 없이 귀물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아닙니다. 전 이런 거 못 받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이유도 없구요.”
5번 낚시꾼이 사정하듯 도자기를 밀었다. 떠넘기는 수준이었다.
“흐메! 조건도 없어야. 그냥 좋아서 드리는 성의를 무시하는 거이 아니여라. 얼른 모셔가이소.”
“안됩니다. 전 못 받습니다.”
“팔려는 거이 아니랑께요. 친구되고 싶어 드리는 겁니더. 자요.”
“안됩니다. 못 받습니다.”
강제로 떠안기는 도자기를 5번 낚시꾼에게 조심스럽지만 강하게 밀었다.
그 순간이었다.
“쨍그렁!”
도자기가 블록위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버렸다.
정확하지 않지만 도자기 깨지는 소리보다 5번 낚시꾼의 비명이 훨씬 빨랐던 것 같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따지면 도치씨가 도자기를 5번 낚시꾼 쪽으로 밀었을 때, 도자기가 깨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낸 비명 같았다.
“워메! 나 죽었소!”
황당하고 겁에 질린 도치씨도 외마디 소리쳤다.
“아이고! 이건 내 잘못 아닙니다!”
어쨌거나 도자기가 깨졌으니 그에 합당한 가치를 현금으로 물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도치씨는 파랗게 질렸다.
300만원은 넘겠지.
1,000만원일까?
5,000만원?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했다. 숨이 탁 막혔다. 피가 완전히 얼어 붙었는지 손가락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도치씨는 제풀에 주저앉고 말았다.
부들부들 떨며 부서진 도자기 파편들을 하나하나 끌어 모았다.
도자기 파편들을 하나하나 맞춰보는 도치씨를 5번 낚시꾼은 가자미눈으로 훔쳐보고 있었다.
입가에 알 듯 모를 듯 생기가 돌고 있었다.
꼭 봄날 물오르는 버들가지처럼 입술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첫댓글 별일이 다있군요
고려청자를 선물로 준다하니 얼마나 좋은 우정일까 생각해 봅니다.
잘보았슴니다.
이제 완전 겨울로 들어 섰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운 가득하세요
도치가 궁금해 하는 파란 상자의
정채는 밝혀젓지만
그안에 도자기가 두리 사이에
무슨 결과를 갖어올지 ?
10원짜리도 안되는 가짜 도자기
일부러 께트릴려고 ㅎㅎ
갑자기 날이 차가워졌습니다
겨울 견강 챙기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도치와 5번 낚시 두사람 좋은 관계로 이어 젔으면 합니다.
잘보았슴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운 가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