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세계.그것은 ‘지금여기’라는 구체적 생활 공간에서 실용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를 통합적으로 추구하는 가운데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북학의(北學議)’는 박제가(朴齊家)가 중국(청)을 여행하고 돌아와 저술한 실학파의 대표적 저술중 하나다.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의 한사람인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조선의 뒤떨어진 경제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이끌어내고자 했는바 선진 기술문명 도입,해외통상 추진,생산과 유통의 효율적 운영과 활성화 등을 역설했다.
○실리와 아름다움을 함께
특히 그 배후의 추동력으로서 당시 중국인들의 철저한 이용후생(利用厚生)정신을 배울 것을 주장했다.그들은 쓸모없는 기와조각이나 조약돌,혹은 동물의 배설물 등을 우리나라 사람처럼 하찮게 내다버리는 게 아니라,오히려 그것들을 적절히 활용,실리를 취하는 한편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어낼 줄 아는 심미적 안목을 지녔다고 했다.
더럽거나 쓸모없을 듯 보이는 것까지도 지혜롭게 활용해 실생활의 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용후생의 정신이야말로 중국의 번영을 가져온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의 실정은 어떠했는가.무너질 염려가 있는 다리를 튼튼하게 고칠 근본대책을 세우기는커녕 백성들에게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교각을 붙들고 서있게 한다는 대목은 차라리 희화적이기까지 하다.‘북학의’는 당시 조선사회의 낙후된 기술력과 빈곤의 문제,그리고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사대부들의 무능함을 곳곳에서 비판하고 있다.
○소비통한 생산촉진 주장
그런데 ‘북학의’에서 중국을 배우자고 힘주어 주장한 핵심은 빈곤에 시달리는 조선 후기사회를 구제하려는데 있었다.“지금 나라의 큰 병폐는 가난”이라고 진단하면서 “오늘날의 습속을 고치지 않으면 하루라도 살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특히 상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돋보인다.중국은 사치때문에 망했지만 우리나라는 검소한데도 쇠퇴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재화를 이용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이용할 줄 모르니 생산할 줄도 모르고,생산할 줄 모르니 백성은 나날이 궁핍해진다” 조선사회의 빈곤은 생산물이 있음에도 다 이용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하면서,그 극복방안의 하나로 상업 육성과 소비 장려를 들었다.
소비는 수요를 유발하고 생산을 촉진하기 때문에 더이상 억제나 절감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농본주의적 경제체제에서 수요 억제와 근검절약만을 능사로 여겼던 당시까지의 통념을 바꿔놓았다.유통과 소비를 중시하는 이같은 생각은 재화를 우물에 비유하는 데서 극명히 나타난다.
“재화는 우물과 같아서 사용하면 할수록 가득 차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고갈될 수밖에 없다”고 한 주장이 한 예다.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 ‘북학의’에서는 상인의 수를 전체 인구의 10분의3으로 하고,높다란 갓에 넓은 소매 달린 옷을 입고 어슬렁거리며 큰소리만 치는 양반들을 ‘나라의 큰 좀’이라 하면서 양반도 상업에 종사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가 밑천을 빌려주고 가게를 설치해줘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국내 상업및 외국과의 무역 장려,물가의 평준화,은의 해외유출 금지,전국적인 시장의 확대,상업의 국가적 지원 등을 지적했다.특히 기술자를 파견하거나 선교사 등을 초빙,선박 제조기술을 습득함으로써 중국 및 서양과의 통상무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경제안정과 문화적 풍요
‘북학의’는 뒤떨어진 당시 조선사회의 낙후된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와 문명의 세계를 추구했다.
“벌레도 꽃에서 사는 것은 날개와 수염에서 향기가 나지만,더러운 곳에서 사는 것은 추하기 짝이 없다.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꽃속에서 자란 벌레의 수염과 날개처럼 향기롭지 못할까 염려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세계,그것은 아마도 ‘북학의’에서 말한 ‘꽃속에서 자란 벌레의 수염과 날개의 향기로움’일 것이다.그 향기는 지금 우리들에게 다시금 피어나야 할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