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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많은 LG 팬들이 잠실구장을 찾을 때 라디오를 챙긴다. 관중석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FM 100.5㎒ 맞추면 LG 이병훈 해설위원(37)의 대단히 편파적인(?) 해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현역 시절 뛰어난 유머감각과 재치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선수. 듣는 상대팀은 열받지만 홈팬들을 배꼽 빠지게 하는 장내 방송에 LG 팬들은 열광한다. 가려운 곳을 속 시원히 긁어주는 이 위원의 해설을 듣기 위해 잠실구장을 찾는다는 팬들도 있을 정도다.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잠실구장에서 라디오로만 들을 수 있던 중계가 올해는 인터넷으로도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팬의 차원을 넘어 ‘신도’의 절대적인 믿음을 받고 있는 이 위원을 만나 ‘재미의, 재미를 위한, 재미에 의한 야구철학’을 들어봤다.
-장내 중계의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난 독설가다. 앞뒤 가리지 않고 할 말은 하는 해설이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 같다. 잦은 투수 교체로 경기가 늘어질 때 느릿느릿 걸어나가는 투수코치가 있다고 하자. 나는 ‘요새 코치들 운동량이 부족해요. 새벽에 술 마시고 택시 잡을 때만 뛰지 말고 마운드 올라갈 때도 뛰면 운동도 되고 좋겠죠?’라고 말한다. 듣는 코치들은 기분 나쁠 수 있지만 팬들은 통쾌해한다. 일부 팬들은 집에서 TV 중계를 보면서도 TV 소리는 끄고 내 중계를 듣는다. 은퇴하고 팬이 더 늘어난 것 같다.
-직설적인 화법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LG를 띄워주는 방송이기 때문에 상대팀 팬들한테 듣지 말라고 대놓고 얘기한다. 근데 꼭 듣고서 욕하더라. 나한테 월급을 주는 건 LG니까 어쩔 수 없다. 무조건 비난만 한다면 항의를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난 잘못된 것만 지적한다. 중계하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선수 가족들이 메모했다가 선수들에게 전해준다. 지적을 들은 선수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보람을 느낀다.
-얼마 전까지 메이저리그 해설을 했던 LG 차명석 코치의 어록이 인터넷에서 인기였는데 요새는 이 위원의 어록이 유행이다.
얘기만 들었다. 그런데 차 코치의 어록 중 몇 개는 내가 예전에 말한 것이다. ‘야구선수 부인들이 예쁘다는 전통을 내가 깼다’는 말도 내 작품이다. 물론 내 와이프는 대단한 미인이다(웃음).
-선수 시절에도 톡톡 튀는 인터뷰로 눈길을 모았는데.
선수 시절 불패신화를 이어가던 해태 선동열(현 삼성코치)로부터 결승타를 때린 적이 있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선동열 선수 공은 제정신으로는 못 치거든요.(약을 먹었다고 의심할 것 같으니) 소변검사 받으러 갑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다들 뒤집어지더라. 요새 선수들의 인터뷰는 다 똑같아서 아쉽다. 대타로 나가 끝내기 안타를 치고도 ‘믿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려요’라는 뻔한 말을 한다. 마땅한 선수가 없어서 내보낸 것뿐인데 뭐가 고맙나?
-유머감각이 뛰어나다. 현역 시절부터 방송 출연을 많이 했는데 어려서부터 끼가 있었나.
현역 시절 방송출연을 한 건 출연료가 짭짤해서였다(웃음). 프로야구 선수라면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경기 외적으로도 팬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시즌이 끝나고 운동에 지장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방송활동을 즐겼다.
-은퇴 후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도 많았을 것 같다.
방송인이라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 내게 원한 것은 철저히 망가지는 캐릭터였다. 힙합옷을 입고 나와 이유없이 자빠지라고 주문했다. 어떤 쇼 프로그램에서 동물원 우리에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 연예인의 꿈을 접었다. 요새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등 지적인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개그맨 외의 분야에서 제의를 받은 적은 없나.
에로 비디오를 찍어보자는 얘기가 있었다. 대본을 읽어보니 할일 없이 장작을 패다 안방마님과 눈이 맞는 힘 좋은 머슴 역이었다. 내가 체격도 좀 있고 가슴에 털도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의상을 입는 장면도 거의 없고 결국 능지처참당한다는 줄거리였다. 잠깐 출연 여부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쪽 방면으로 경험이 많은 탤런트 조형기가 ‘이미지 버린다’며 말려서 단념했다(웃음).
-중계가 없는 날엔 심심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바쁘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신문과 잡지 등에 칼럼도 연재한다. 모교인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찾아 후배들을 지도하기도 한다. 자화자찬 같아 쑥스럽지만 타격에 대해서는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한다. 친분이 있는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종종 도움을 청한다. 야구선수인 아들 청하(13)와 용하(9)를 봐주는 일도 중요하다.
-청하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아버지께서 직접 손자 이름을 지으셨다. 가장도 됐으니 술을 자제하라는 뜻으로 손자에게 술 이름을 붙이셨다. 딸을 낳았으면 ‘국향’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웃음).
-언제까지 중계를 할 생각인가.
지금의 자유로운 중계가 무척 즐겁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라운드에 복귀할 생각이다. 프로선수라면 누구나 지도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잘할 자신이 있다. 그때까지는 중계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승패에 관계없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하겠다. 나를 믿고 더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이원채기자 menthol@
◇이병훈 어록
●이종열과 김진우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눈 작은 선수들이죠.(LG 이종열이 기아 김진우를 상대로 타석에 들어서자)
●심재학 선수가 투수할 때 강판될까봐 타자들이 더 걱정했죠.(타자들이 초보 투수 심재학의 공을 치고 싶어 안달이었다며)
●남편 연봉이 얼마인지만 궁금하지….(선수 시절 부인이 야구장에 온 적이 거의 없다며)
●부라보콘도 있잖아요.(해태 시절 연봉협상에서 구단이 선동열에게 연봉을 주려면 맛동산을 몇 봉지나 팔아야 하는지 아느냐고 묻자)
●통산 도루가 6개예요. 이종범 선수는 한 경기에 6개한 거 아시죠?(현역 시절 발이 느린 것으로 유명했다며)
●요즘 인터넷 언어 중에 '~했어염' 같은 말이 유행이죠? 가득염 선수 점수 좀 가득 주세염.(롯데에서 구원투수로 가득염을 등판시키자) |
첫댓글 어찌나 잼있는 분이신지..^^
부라보콘..ㅋㅋㅋ
얼마전에 제가 올렸던 기사인 걸로 알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