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살아있는 천사의 이름, 바로 ‘엄마’라고 하던데, 그 엄마를 모욕하는 여성입니다. 세상에 이런 엄마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기야 모질게 학대하다가 죽이는 엄마도 있기는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말 그대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지요. 그런데 세상은 과연 요지경이라 별난 사람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임에도 전혀 아낄 줄 모르는 부모가 있습니다. 아끼는 것은 고사하고 단순한 책임감도 없습니다. 도대체 왜 낳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기야 낳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소위 원치 않는 임신이었고 어쩌다 출산까지 당했습니다. 어쩔 도리 없이 끌어안기는 했는데 이게 그만 짐이 된 것이지요. 소위 처리 곤란한 짐입니다.
젊은 중년의 남자가 빌라 2층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별로 외출도 하지 않고 단지 음식을 사려고 편의점에 다녀오는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컴퓨터나 끼고 노는 것인지 사는 것인지, 하고 지냅니다. 연신 담배나 피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듯싶습니다. 아마도 하던 사업을 접고 가족도 떨어지고 홀로 사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웃, 바로 앞집이 특히 밤에 자는 동안 좀 시끄로운 경우가 있습니다. 신경 써집니다. 가끔 앞집 사람과 맞닥뜨리는데 젊은 여자입니다. 혼자 사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밖에서 담배를 피며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그 집 조그만 화장실 창문으로 아이 얼굴이 보였습니다.
놀랐습니다. 혼자 사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있어? 저 아이는 도대체 누구지? 왜 저 집에 있지? 한번도 바깥에서 본 적은 없습니다. 분명히 그 집입니다. 집 밖에 나올 때마다 궁금해서 올려다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가보다 하고 지냅니다. 어느 날 그 여자가 짐을 싸가지고 외출을 합니다. 그런가보다. 그런데 며칠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습니다. 생각해봅니다. 혹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 무엇을 먹고 지내지? 한번은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다가 그 창문으로 던져 넣어줍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렇게 무심히 지내는데 한 할머니가 찾아옵니다. 손녀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요? 여자가 한 보름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할머니가 기겁을 합니다. 야단입니다. 급히 올라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야단입니다. 할 수 없이 도구를 가져다가 할머니를 도와 출입문 손잡이를 부숩니다. 그리고 들어가니 아이가 탁자 밑에 쪼그린 채로 죽은 듯 누워있습니다. 붙들고 울부짖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택시를 불러 태우고는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입원시키고 할머니가 옆을 지키며 간병합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경찰이 병실로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할머니를 붙잡아 갑니다. 물론 앞집 남자 ‘정민’이도 불려옵니다. ‘주거침입’으로 그 여자가 신고한 것입니다. 경찰은 전후사정은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주거침입’이라는 범죄입니다. 기가막힐 일이지만 나타난 현실은 그것뿐입니다. 할머니는 주거침입에 기물파손이라는 죄명으로 유치장에서 며칠을 지냅니다. 나중에 남편 할아버지가 소식을 들었는지 시골에서 올라와 해결합니다. 할머니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옵니다. 정민이는 할머니를 도왔다는 정도로 끝난 모양입니다. 그래도 기가막힐 일이지요. 도와주려다 코 다친 격입니다. 정말 뭐 이런 여자가 있나 싶지 않겠습니까. 여자의 남편은 감옥생활 중입니다. 물론 이혼했습니다. 대신 양육비는 시댁에서 책임지고 있는 듯합니다. 여자는 그렇게 돈을 받아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자기 생활만 즐기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할머니가 찾아옵니다. 전 며느리에게 거액을 집어줍니다. 그리고 회포라도 푸는 듯 둘이서 술을 진탕 마십니다. 사전에 할머니는 정민을 따로 만나 간청을 합니다. 물론 봉투를 마련하여 건네줍니다. 정민으로서는 필요하고 요긴한 목돈일 것입니다. 더구나 이 못된 여자 한번 혼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할머니를 돕기로 합니다. 할머니는 여자에게 술을 진탕 마시우고는 함께 간신히 택시로 집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준비한 대로 정민이와 합력하여 할머니 준비해온 약을 여자의 입에 강제로 붓습니다. 술이 너무 취했으니 반항에 힘이 없습니다. 그렇게 기절시키고는 커다란 가방에 넣어 정민이 차에 실어서 할머니와의 약속 장소를 찾아갑니다.
할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미리 시골 집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외진 곳에서 정민이를 만나 여자를 인계 받습니다. 정민이는 돌아옵니다. 할머니는 온 힘을 다하여 여자를 깊은 산속으로 옮깁니다. 부부만 아는 깊은 산속 동굴로 끌고 들어갑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문제를 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할머니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이 모든 과정을 살펴보는 제도는 없는 것일까? 어쩌면 법보다는 사건을 다루는 사람의 자세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 가정사를 살펴보고 아이의 형편을 보다 깊이 따져보는 제도는 없는 것일까? 어쩌면 사적 보복이기도 합니다. 시원하면서도 불편합니다. 영화 ‘울지 않는 아이’(A Child of Silent)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