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원래 선(善)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이었다.
요즘 우리 세대가 자기중심(自己中心)의
윤리적 에고이즘에
빠져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하겠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가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곤 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만큼 벌레의 수명은
늘어났다.
콩을 심을 때엔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으로,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으로, 마지막
하나는 사람의 몫으로 생각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 놓고,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고수레"
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의 식문화에도 그대로
배어났다. 여인들은 3 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세 명의 몫을 더해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으로 여겼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미국의 여류소설가 "펄 벅" 여사는 장편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로 표현했다. 그녀의 극찬은
한국에서 겪었던 특별한 체험 때문이었다.
1960년 펄벅 여사가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여사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여사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사가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짐을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서 머리에 인 짐을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선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좋은 글이라 옮겨왔습니다.
앞으로 세계를 선도할 민족으로써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ㅎ
오늘은 꼽꼽하게 비가 오고 있습니다.
집에서 맛난 것 많이 해 잡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녕 ~~
카페 게시글
잘 지내냐 친구야
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였다.
이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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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6
24.06.08 10:39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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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마나 남아있는지...
박 회장, 설사는 멎었는지요?
여름 설사 조심해야 합니다.ㅎ
건강하시길^^
아! 옛날이여 향수에젖네..
정치하는 아저씨들 한테도 좀 보내주소...
그 선한 마음씨가 친구가 불러주어서 생각나니 나도 이미 속물이였네.
없는 이웃끼리 더 정겹게 살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