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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2
만리장성이 나중에는 국경이 되고 백성들의 강재노역으로 감옥화 된 진 왕조는 결국 통일 후 단명하여 거대한 ‘왕권과 영생’, 오직 이 두 가지만을 추구하던 시황 정의 독재도 3대에 걸쳐서 15년(BC 221-207)만에 망했단다.
나중에 호해(秦二皇)는 모살당하고 부소의 아들 자영이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46일 만에 항우 에게 잡혀 죽었다.
‘호(오랑케)’라는 말을 곁들인 것으로 호주머니, 호콩, 호궁, 호밀, 호마유(胡麻油; 참기름), 또한 호로(胡虜)자식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몽고로 끌려갔던 여자가 낳은 아들’ 이란 뜻으로 남자를 최고로 비하한 말이고 여자라면 환향녀(還鄕女; 몽고에서 돌아온 여자)를 화냥년으로 여자에게 적용시킨다.
기원전 210년 그가 마지막 순행에 올랐을 때 승상 이사, 황제의 문서 관리자 조고, 막내아들 호해가 수행했는데 그가 쓰러져 병이 위중해지자 그레도 믿을 건 장남이어 그들로 하여금
“장남 부소에게 옥새를 주고 장례준비를 하라”
는 유서를 쓰게 했는데 결재를 맡으러 갔을 적에는 그가 이미 죽어, 가짜유서를 만드는데, 조고는 그의 정적, 몽렴과 장남 부소에게 “유서를 보는 즉시 자살하라” 하라는 내용이니 그들은 사실로 믿고 자살을 하게 된다.
조고는 시황의 죽음을 발설하지 않고 비밀에 붙인 체 시신을 수레에 싣고 살아 있는 것처럼 매일 수레 밖에서 수라를 올리며 함양으로 달리는데 무더운 날씨 탓에 시신이 썩어 냄새가나니 소금에 절인 생선을 많이 사서 냄새를 커버한 후 도착즉시 죽음을 공포하고 호해를 황재로 옹립 했단다.
지금도 발굴만 하면 세계 8대의 불가 사이에 속한다는 몇 백 미터 크기의 여산능을 축조하는 바람에 정적도 많았음이 틀림없는데 관광 자원이란 것이 한번 구경하면 끝이니 다음 세대로 미루어 돈을 벌겠다는 속셈인 것 같다.
요즈음은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라 하여 모두들 가을을 찬양하는 말로 대변 되지만(실은 겨울하늘이 습기가 없어 더 뽀드득 소리날정도로 청명하고 더 푸름)이 말의 원뜻은 생계위협에 관계되는 중국에서 온중요한 말인데 북쪽에 웅거하는 유목민의 오랑캐 마적(馬賊; 말을 탄 도적)들이 가을추수만 하면 변방에 쳐들어와 약탈을 해가기 때문에 ‘가을이 공포의 계절’ 이라는 뜻이며 수세기동안 그들은 중국대륙을 무대로 무력으로 장악 했단다.
아방궁이 나중에 초패왕에게 망하여 불탈 때에는 3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 세계 최대의 토목공사에는 총 3백만 명이 동원됐다고 전해 오며 국민이 반기를 못 들게 개인이 무기를 가지지 못하게 했다.
일본어에 봉건영주를 대명(大名; 다이묘)이라하는데 만석이상을 소유한 무가(武家)를 말하며(히데요시 620만석 소유)권세를 장악하기 위해서 누구든지 칼을 소유하면 한 고을을 모조리 멸(滅)하게끔 율법으로 정해져 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바에 의하면 진시황이 거동을 할 때는 똑같은 10대의 수레를 이용했다는데 한번은 ‘장량(張良; 장자방)’이 산에서 내려와 철퇴로 수레를 내려쳐 ‘타살’을 시도 했으나 버금수레를 맞추는 바람에 장량은 도망하여 은신하다가 나중에 유방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는데 아마도 칼이 없었기에 철퇴를 사용 했으리라.
지금도 사람을 죽이면 자살(刺殺; 찔러 죽임), 타살(打殺; 때려죽임)이라는 적절한 단어가 있는데도 신문엔 그냥 ‘타살(他殺; 남이 죽였다)’로 표기 하니 장자방 시절부터 시작된 타살이란 말이 가감(加減)없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은 아닐까?
시황은 진나라의 역사, 의약, 점술, 식수(植樹)에 대한 글 외에 그를 비판하는 모든 책들을 없애는데 독재 전횡(專橫)을 비방하며 찬탈을 꽤하는 노생과 후생을 잡아드리려 했으나 도망하는 바람에 분풀이로 그들에게 연루된 유생 460명을 생매장하고 책들을 모아 불살라 버리는 분서갱유(焚書坑儒)도 단행했는데 이 모든 것이 임금 한사람을 위한 것이다.
글자를 만든다는 것이 식은 죽 먹기 정도로 맘대로 주물 수 있는 실력자이지만 죽임을 당할 확률도 도한 많아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하니, ‘정치’ 라는 단어는 그의 아명(兒名)인 정(政)에서 따온 “정이 다스리다(政治)” 에서 유래된 것 같은데(내 생각), 어쩌면 우연일까? 연구대상이다.
하기야 토후국들을 없애고 중원을 통일했으며 문자도 하나만 남기고 다 없애 버렸으니 글과 말이 그 이후부터는 같아져 서로 간에 이질감이 없어진 한 개의 나라로 탈바꿈을 했으며 진의 시황 ‘정’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유럽처럼 되었을 것이고 중국이 없었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1950년에 중국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고 쿤룬산맥(崑崙山脈)이 있는 티베트를 침공하여 중국 본토의 ¼에 해당하는 땅을 얻어냈으며 지금도 티베트에서는 독립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당시는 수도로부터 거리도 멀고 해발 4㎞의 토질이 조악하여 가치가 없는 고원은 언어의 차이와 산악지방이어서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관계로 시황도 여기는 장악을 못했단다.
시황도 전국을 6번이나 답사했으며 수레바퀴와 바퀴사이의 간격을 달리하여 다른 나라 전차는 바퀴가 빠져서 간선도로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지금도 만약 만주철도가 오픈 된다하더라도 철도간격을 통일 하기 전까지는 열차가 부산에서 핀란드의 헬싱키까지 직행을 못하는 것은 철도의 넓이가 다르기 때문이며(전기제품이 어떤 나라는 50 hertz이어 사용불능)아시아 대륙을 통일한 징기스칸(成吉思汗)도 수레바퀴에 얹혀진 이동식 집을 타고 다니며 생활 했다니 왕이란 직책이 편하기로는 촌장만 못 했을 것이다.
항우는 젊은 시절에 '문자는 제 이름을 쓸 줄 알면 충분하고 검술이란 한사람을 상대할 뿐인 하찮은 것’
이라고 말 했는데 진시황의 거대한 행렬을 보고는
‘내가 저 녀석을 대신해 줄 테다!’
했으며 나중에 초나라의 패왕이 됐다.
내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로는 항우는 잔꾀가 없었다고 전해지며 바위에 이(虱; 설)한 마리를 올려놓고는 주먹으로 내려 쳤는데 이는 죽지 않고 주먹만 아팠다고 하며, 유방과 참외 먹기 내기를 했는데 한 발채를 다 먹어 치우는 바람에 내기에는 이겼지만 결국엔 유방(漢高祖)에게 망했단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의 뜻은 초패왕(그냥 다스리면 王, 빼앗으면 覇를 쓴다)이 마지막으로 포위되었을 때에 주위에 있든 한나라(유방)의 군사들로 하여금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게 한 유방의 작전에 말려던 고립된 상태를 말하며 마지막에는 자살을 했는데 항우는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아 누가 알아줄 것인가…?."
라고 한 그의 말은 유명하며 이 시절에 고사성어가 가장 많이 나왔단다.
기억하는 고등학교시절 한문시간에 나온 소소설[古小說]에 보면
‘무면도 강동(無面渡 江東)하여 자문이사(自刎而死)’
를 했다는 말이 있는데
‘고향인 강동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는 뜻이다.
지금도 장기를 둘 때에 초나라와 한나라가 황하를 사이에 두고 벌리는 각축전을 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漢)은 색깔이 붉어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잡고 초(楚)는 색깔이 청색 이어서 젊은 사람이 잡게 되는데 진나라가 망한 후 한과 초가 양립됐다가 BC 206년에 한(漢)으로 대륙이 다시통일 된다.
이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면을 보여주는데 항우는 배고픈 사람은 먹여주고 추운사람은 도와주지만 공을 세운사람을 시기하고 꺼리지만 유방은 공을 세운 사람을 치하 하는 것은 그가 비록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건달생활을 하는 동안 배워둔 선배를 존경하고 후배를 사랑하는 처세술을 적용하여 참모에 장자방 같은 인재들을 등용 한 것 같다.
유방은 농사일이 싫어서 도망하여 여산능을 지을 때 죄수를 호송하는 직책을 맡았으나 도망자가 많아 남은 사람들을 풀어주고 벌이 두려워 도망하여 군도의 수령이 됐다가 나중에 3천명의 부하를 거느리게 된다.
한반도의 침략 또한 중국 본토의 한(漢)족이 아닌 만주북방의 거친 산악지방에 근거를 두고 있던 원, 여진, 거란, 청인데 나중에는 공산당이 중국을 접수하니 우리 동네의 중국인 진연우씨 아버지는 대만으로 탈출한 후 이곳으로 왔는데 제3국이 되는 셈이다.
모택동이 이끄는 팔로군(八路軍; 3대 규율과 8개項目主義 의 군대)은 군복을 기워가며 입고 조밥에 멀건 두부국을 먹는 처지였지만 전술은 적진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자살특공조와 포위조를 만들어 전선(戰線)을 통과 돌진하니 항공기 장갑차를 가진 장개석의 국부군은 전열이 흩어져 패주(1948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전리품을 사용 했단다.
우리 동네의 돌로 쌓은 입구를 조경하는 비용[가구당 년 $270]을 거두고 동네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중국인이 맡고 있으며 그는 자녀를 일주일에 2번 중국말 학교에 보내는 것은 전통을 지니려 함이고, 동네 입구에 ‘동네사람 서로가 도둑을 감시하여 준다’(1년에 35불을 공동부담)라는 팻말을 세운 것 은 나의 건의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기는 하지만 불사약(不死藥)에 얽힌 이야기로서 초나라 때 어떤 사람이 내시에게 불사약을 주면서 왕에게 전해달라고 했단다.
내시가 궁궐 앞을 지날 무렵 수비병이 그에게
“먹을 수 있는 것이냐?”
라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그것을 빼앗아 먹어 버렸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왕은 진노하여 수비병을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그는 변명하기를
“제가 먼저 먹어 본 이유는 불사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시험해 보기 위하여 먹어 보았을 뿐이고 만일 저를 죽이시면 그 약은 가짜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불사약을 준 그자가 폐하를 속인 셈이 되고 저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여 왕은 결국 그를 풀어 주었다고 한다.
만약 불사약이 있다면 인류 존속에 역행이 되어 지구는 진작부터 인구폭발이 일었을 것이고 강제노역이나 전쟁으로 인한 사망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살기가 힘들었을 것인데 헐벗는 것은 둘째로 치고 당장 배고픔으로 직결되는 식량과 물 부족 사태가 더 빨리 왔으리라........
지금도 뤼오그란데라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흐르는 강은 취수탑을 만들어 수돗물을 공급하니 농업용수가 모자라 가끔 말라버리니 먼지가 일고 타들어가는 밭을 좌시할 수 없는 농부들 간에 분쟁이 인단다.
이왕에 말이 났으니 한 가지를 덧 부친다면 내가 어릴 때부터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로 옛날에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일인데 중국 사람이 강 건너에서 하늘을 가리키며
"천신(天神)을 아는가?"
하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니 우리나라 사람은 대답은 해야 되겠고 엉겁결에 반대로 땅을 가리키니 저쪽에서는
‘지신(地神)도 알고 있다.’
는 뜻으로 받아 드려졌다.
다음에는 또 두 손을 잡고 머리 위로 둥그렇게 올려서
"신농씨를 아느냐?"
하고 물어 오니 이 농사꾼의 생각에 수박을 먹어본 일이 있느냐로 착각하고 ‘그런 것쯤이야 벌써 다 먹어 봤다.’
뜻으로 배를 가리키니 저쪽 편에서는
‘복희(伏羲)씨도 알고 있다’
로 알아듣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높은 교육 수준을 알아차리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진의 시황 시절에는 글자의 역사가 중단되었으며 갑골문자(甲骨文字)라 하여 도장에 실을 매어 목에 걸고 다녔으며 거북이 등에 글자를 세긴 것이었는데 진시황이 폐기해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전해져 내려오지 않으며 전설에 의하면 신농(神農)씨는 농사법을 가르쳤고 헌와씨는 배와 수레(車)를 발명했으며 복희(伏羲)씨는 그물을 만들어서 고기잡이를 가르쳤던 최초의 임금으로써 150년 동안이나 재위기간을 가졌든 왕으로 중국에서는 최고로 받드는 전설속의 인물들이다.
진의 시황은 죽지 않기 위하여 불사약[不死藥]과 늙지않기 위해서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고 선남선여 50명을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이 있는 바다 건너 제주도에까지 보내었다고 하니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내 생각이고 50살에 죽는데 제주도의 서귀포(西歸浦)항구도 진나라의 서시라는 사람이 이곳에 왔다가 바위에다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고 새긴데서 나온 이름이라나?
*** 장끼전에 나오는 까투리가 장끼에게
“사람의 흔적이 있고 비로 싹싹 쓴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붉은 콩알을 먹지마소”라고 만류하는 구절인용, 결국은 고집불통의 남편을 잃는다.
이하 까투리의 말
고서(古書)를 볼량이면 고집불통 과하다가 패가망신 몇몇인고, 천고 진시황의 몹슬 고집, 부소의 말 듣지 않고 민심소동 사십 년에 이세 때에 실국(失國)하고, 초패왕의 어린 고집 범증의 말 듣지 않다가 팔천 제자 다 죽이고, 무면도강동(無面渡江東)하야 자문이사(自刎而死)하야 있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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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슴은 내가그를 해코지않는다는것을 감지하고 유추를 하고있다. 자가용 골프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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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뱀방의 괸심
청공선배님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