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손 / 고두현
빗방울 떨어지자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 황급히 집으로 간다. 한 아이가 돌아와 커다란 플라스틱 휴지통을 뒤집어놓고 들어간다. “빗물 고이면 청소 아줌마 힘들까 봐……” 등에 묻은 빗방울 털며 환하게 웃는 손. 어린 날 마당 귀퉁이 사금파리 놀이하다 추녀에 비 들칠 때 댓돌 위에 비 맞고 누운 고무신 젖을까 봐 얼른 뒤집어놓고 손 지붕으로 가려주던 기억 철들고 마냥 설레던 날 젖은 나뭇잎에 써 보낸 편지 뒷장 같은 그것 아침 햇살에 선잠 깰까 여린 이마 부챗살로 가려주던 그것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모른다며 세상일 하나씩 덮어두는 법도 배우라던 어머니 마지막 눈 감겨드리고 오래도록 거두지 못한 그 손.
―시집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여우난골, 2024.03) ---------------------
* 고두현 시인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대 국문과 졸업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시선집 『남해, 바다를 걷다』 등.
*********************************************************************************
[ 감 상 ]
거룩함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이 시에서 사물은 그냥 사물이 아니다. 사물과 마음이 관계할 때 플라스틱 휴지통은 도구의 역할을 벗고 ‘등에 묻은 빗방울 털며 환하게 웃는 손’의 숭고한 감각을 불러온다. 일상의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유년의 잃어버린 기억과 성장기의 설레는 추억이 살아나고 고무신과 나뭇잎 같은 소소한 사물들마저 화자의 안팎을 성화한다. 이 과정은 세상일에 매여 사는 에고를 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한낱 휴지통으로 출발한 명상이 육친과의 이별이라는 적멸의 공간까지 이어진다. “어머니 마지막 눈 감겨드리고/ 오래도록 거두지 못한 그 손”의 죽음 의식을 회복할 때 시 쓰기는 일종의 제의와 같다. 모든 제의가 회귀를 통한 변화의 성스런 기획이듯이 제의로서의 시 쓰기를 통해 시인은 자아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모두가 비를 피하기 위해 돌아간 텅 빈 공원에 혼자 돌아와서 청소 노동자의 불편을 염려하며 휴지통을 뒤집어놓고 가는 아이의 초상이 시인과 겹치는 이유일 것이다.
― 손택수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