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가 곤란한 표정으로 다급히 제임스의 비서에게 무언가를 속삭인다. 곧 비서가 제임스에게 인터폰으로
"루비아가씨 학교로 보호자 방문을 부탁하십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듯 싶은데요."
하자마자 제임스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오른팔인 짐에게 나머지 일처리를 맡긴 후 처음으로 루비의 학교를 직접
방문할 준비를 했다. 전학온지 채 한달이 되기전에 벌써 열번째. 대리인으로 오가는 에디가 더이상 곤란하게 할 수 없다.
"Hello. I am looking for Luby Kil."(안녕하십니까. 루비 길을 찾아왔습니다.)
큰 키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교무실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그 루비라는애 조폭집안 출신이라더니
과연 그 소문이 진짜였네' 하며 서로 비밀스러운 시선을 교환했다. 호기심에 찬 시선들에 등이 다 따가운 제임스.
루비의 먼 친척이라던 에디도 만만치 않게 위압적인 외모였는데, 그녀의 친삼촌이라는 저 남자는 압도적이다.
곧 교장이 재단에 많은 돈을 기부해준 그녀의 삼촌과 면담을 시작했다. 카톨릭 학교에서 왔다길래 얌전한 아이인줄 알고
사립학교에 받아들였지만 아이들의 작은 장난이나 놀림, 수군거림에 민감히 반응하며 벌써 열번째 폭력사건을 일으킨 루비.
특히 이번에는 그 깡마른 몸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치어리더부 여자아이의 비아냥에 분노해서 세면대가 부서지도록
화장실에서 그녀의 머리를 내리찍은 덕분에 그 여자아이의 이마에 커다란 혹이 생겼고 그 아이의 부모가 분노해서 학교에
거칠게 항의해왔다.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루비를 내보낼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피해자의 학부모들.
사정이 이렇게 급박하게 되었으니 명문 사립인 이곳이 아닌, 근처에 있는 같은재단의 공립학교로 옮기는것이
어떻겟냐며 제임스의 눈치를 보는 교장의 말에 그는 푹 한숨을 쉬며 그러면 최대한 빨리 옮겨달라 부탁했다.
아이들의 놀림은 매우 심플한 이유였다. 펑키한 그녀의 외모와 자기들보다 부자이긴 하지만 폭력조직으로 성공한
'낮은' 레벨의 집안 출신이라는것. 초등학교서부터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쭈욱 같은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중간에
들어온 그녀를 친구로 받아들이기는 커녕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했다. 그리고 그런 놀림과 조롱을 용서치 않는,
자존심이 센 루비였다. 전의 학교에서도 함부로 덤비는 상대에게는 철저한 응징으로 맞서온 그녀는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복수를 했다. 깡마른 몸에서 무슨 힘이 나올까 싶어 함부로 대하던 아이들은 악바리에 의외로
힘이 센 그녀에게 얻어맞고 교무실로 달려가 일러바치기 일쑤였다. 그덕에 지금껏 그녀의 보호인역활을 하는 에디만
아홉번을 교무실로 방문해 피해학생들의 치료비를 물어주고 갔었다.
"이번엔 또 무슨이유였니."
"......"
"대답 안할거면 내려. Stop the car, Pedro."(차 세워, 페드로.)
처음보는 삼촌의 냉랭한 모습에 루비의 눈이 충격으로 커지더니 젓어들기 시작했다.
"대답해."
"걔가... 먼저 날 모욕했어."
"자세히 말해봐."
"교무실 서류에 기재된거 보곤 우리 부모님 없는걸 알아내선, 넌 엄마란이 비어있던걸 보니 아빠가 창녀랑 붙어먹어서
낳은 자식이라고...니네 엄마는 Prostitude(창부)였을거라구... 니네집안 여자들은 다 그럴거라고 애들앞에서 그랫는걸.
그래서 내가 마시던 커피를 뿌려버렸어, 화장실 가서 닦길래 따라들어가서 한대 때렸는데 바닥이 미끄러워서 자빠지면서
세면대에 부딛치더니 기절한거구. 내가 다 잘못한거 아냐. 걔 정말 나쁜애란말야."
중간서부터 아예 울기 시작하더니 펑펑 눈물을 쏟아낸다. 까맣게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줄기들에 제임스는 티슈박스를
내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겉보기에는 피한방울 안나오게 날카롭게 하고있지만 속은 이렇게 여린 조카이다.
남들 앞에선 눈물한방울 안흘리고 비웃음으로 일관하지만 믿고 기대는 자신의 앞에서는 잘 웃고 잘 우는 어린아이.
눈물을 벅벅 닦아내고 푸른 구슬같은 눈동자를 자신에게로 향한다. 눈은 분명 형과 판박이인데, 얼굴형이며 가늘은
목선을 볼때면 기억 저편에 묻어두려던 아픈 상처가 후벼파듯 아파온다. 아진, 왜 그녀를 루비에게서 보는것일까.
"또 그런일이 생긴대도 난 똑같이 행동할거야. 나에게 수치심을 주는사람은 용서않겟어."
처음만났을 당시 자신에게 텃세를 부리던 학교의 실세인 에밀리를 때려눕혔던 아진의 모습이 고스란히 겹쳐진다.
도대체 이 아이의 엄마는 어떤여자였을까. 이리도 아진을 닮은 루비를 볼때면 제임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의문.
강아진을 닮은 미인형 여자였겟지. 한국계? 중국계? 서양인의 피부색과 눈동자를 가진 루비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어머니가 동양계였을것같은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서구적 생김새의 동양인이었을것 같다, 강아진처럼.
"에디 바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에디에게 전화를 걸은 제임스는 그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창녀촌 출신일지라도 입국서류 한장을 못찾는다는게 말이 돼? 신분을 바꿧던 어쨋던 아는사람을 총 동원해
뒤지라고. 형과 그리스로 가려다가 형이 자객의 습격으로 사망한것까진 알거아냐. 그때 병원에 실려갔다면 기본적인
인폼은 니들이 가지고 있을거 아냐. 사망진단 당시 증거자료라도 챙겨오라고, 이런걸 내가 나서서 해야겟어?!"
-그, 그게 워낙 오래 전 일이고 Don께서 묻어두려 하신 일인지라...
"내일까지 못찾으면 내가 뒤져서 알아낼테니 그런 줄 알아. 난 니놈이 뭔가 숨기는것 같아서 찝찝해."
뜨끔, 엄청난 비밀을 숨기는 중인 에디는 흠칫 놀라며 인사 후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제임스는 친구가 경영하는 화랑의 증축 완공행사장으로 향했다. 그도 좋아하며 수집하고 있는 세계 최정상의
네임벨류를 자랑하는 작년에 타계한 사진작가 '빅토르 웨버'전을 준비했다고 해서 한개정도 구입해줄 예정이었다.
고인이 소장하던 작품들도 출품된다던 이야기에 서둘러 갤러리로 향하는 제임스.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하려면 늦으면
안된다. 곧 갤러리 앞으로 길게 선 취재진이 그가 VIP라인으로 먼저 입장하자 부러운듯 시선을 던진다.
"James! You are early my friend. Take a look."(제임스! 일찍왔네, 친구. 둘러봐.)
제임스는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며 세피아와 흑백사진, 역광사진으로 유명한 빅토르 웨버의 멋진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이건..."
그리고 한 작품 앞에서 돌이된듯이 굳어버린 그. 아진이... 강아진이 그의 형 제롬과 사진속에서 웃고있다. 사진의 제목과
찍은 날짜를 보고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듯한 충격에 움직이지조차 못하는 그.
"Oh, The lovers! You can see their love through this picture... I love this one too but if you want, I can concede this."
(아 '연인'! 너도 보이지 사진너머까지 전해지는 저 사랑이? 나 이 작품 정말 맘에들지만 니가 원한담 양보할께.)
이 사진이 남의손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제임스는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자신이 군대에 있는동안 형과 아진이 파리에 가서 이런사진을 찍히다니. 그리고 그 사진을 17년 뒤에 자신이 보고있다니.
그렇다는 말은 곧 루비의 엄마는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히... 강아진이란 소리다.
서른 아홉이 되도록 여자와 일회성 이상은 관계를 맺지 못할정도로 그에게 큰 상처를 주고 떠난 악녀.
라스베가스에서 쇼걸을 하던중 부자를 만나 어딘가에서 살다가 약물중독으로 죽은것으로 알고있었는데...
헛소문이었던걸까. 그러면 아진은 루비를 낳고 죽은....
떨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이며 제임스는 사진을 자신의 집으로 보내달라 부탁한 뒤 서둘러 갤러리를 떠났다.
더이상 사진속 그들을 바라보다간 돌아버릴것만 같았다.
곧 자신의 단골 멤버쉽바로 들어선 그는 깊이 담배연기를 들이마시며 더블샷을 한번에 들이켯다.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살아있는 증거가 그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 곁을 지키고있다.
루비.
아름답고 표독스러운, 강아진을 닮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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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는 요즘이라서.
이해해주세요.
ㅠㅠ
감금도 곧 올리겟습니다.
열매 2방 감금도 사랑해주세요.
첫댓글 제임스도 이제 알았군요 게다가 사진까지.... 제임스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되네요
일단은 밝히지 못하겟죠?
드뎌 루비를 알아봤군요,,큰일이당,,루비도 악녀일까염?????
루비는 아진이만큼 힘든일을 겪지 않아서... 악녀는 아닙니다.
제임스 어떻게 반응할까 너무 궁금해요
반응 나옵니다 기대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마워요!!
정말 작가님 글 솜씨 짱~!!
오왕 칭찬이다 부끄부끄
역시 루비도 만만치 않네요 근데 제임스가 어찌 나올지 무지 궁금합니다
제임스... 가 어찌나올런지요?
제임스가 다 알고있는줄 알았네용...ㅋㅋ
밍크님 정말 바쁘시네여...홧팅!!!!! 호랑이기운 받으세욧!!!!!!
몰랏어요 ^^ 제임스... 호랭이기운 좋아요 고마워요!
우와 너무 재미있어요~
고마워요 헤헤
허걱제임스가이제....알게되엇꾼녀............
두둥~
제임스가 알게 되었네요... 세상에 점점 나오게되는 루비 걱정입니다...
네 그래두 제임스랑 에디가 감싸주겟죠 ^^;;
너무 재밌어용~~~
감금도 오늘 업할거여요 ^^
번외도 너무 너무 재밋어요 ㅜㅜ
ㅠㅠ 너무너무 고마워용
작가님ㅠ죄송한데요 북팔에 예정됏던 책은 출간된건가요?
아 죄송해요 북팔에 지금 제 책 '끝을부르는 내이름, 말희' 와 '집착과 금단의 끝' 이 나누어져서 올라와있어요. 'Mink' 검색하시거나 책 제목 검색하시면 뜹니다. '악녀열전' 시리즈와 번외들을 포함해서 앞으로 모든 책들은 북팔에서 올라올거구요, 종이책은 아직 예정에 없어요. 문의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