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와 신덕왕후의 전설이 서린 청곡사
최근에 발견된 청곡사 청동은입사향로에 새겨진 글 내용으로 인해 이성계의 계비였던 신덕왕후의 고향이 청곡사 아래 마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만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말 1380년 이성계가 전라도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있는 동안 왜구들이 서해와 남해에 침입하여 백성들에 많은 폐해를 끼쳤다. 왜구들의 장수중에는 아지발도라는 18세 밖에 되지 않은 장수가 있었는데 몸 전체가 비늘로 감싸고 있어 창칼로는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성계가 무학 대사를 초빙하여 아지발도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는데 무학대사는 먼저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입이 벌어지도록 한 후 이때 입안으로 화살을 쏘아죽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성계가 활로 아지발도를 쏘아 죽이고 남은 왜구들을 소탕하기 위해 하루 종일을 싸웠으나 해가 저물어 달밤에까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왜구들을 완전히 섬멸할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안 이성계는 넘어가는 달을 붙잡아 달라고 무학 대사에게 청하였다. 이 때 무학대사가 달을 끌어올려 주어 이성계는 왜구의 잔당을 모두 섬멸하고 전쟁을 승리하였는데 이 때 넘어가는 달을 끌어올렸던 곳을 끌 인(引), 달 월(月)자로 인월(引月)이라 하여 지금의 실상사가 있는 지리산 자락의 지명이 되었다.
왜구들을 정벌한 이성계와 무학 대사는 스승인 도선 국사께서 창건하신 청곡사를 참배하기 위해 함양, 산청을 거쳐 월아산 청곡사 아래 마을에 다다랐다. 이때 이성계가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던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니 바가지의 물 위에 버들잎 하나를 넣어 주는게 아닌가. 이성계는 화를 버럭 내면서 그 물을 확 버리고 다시 달라고 하자 여인은 또 다시 나뭇잎을 넣어 이성계에게 건네주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이성계가 생각하고 묻기를 “왜 물에 나무 잎을 띄우는가” 라고 묻자 여인은 “먼 길을 급하게 오신지라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할까하여 나뭇잎을 불어가며 천천히 마시라고 그리하였습니다.” 라고 답하자 이성계는 참으로 지혜와 미모를 겸비한 이 여인에게 반하여 훗날 왕비로 삼으니 바로 계비 신덕왕후이다.
똑똑하였지만 욕심으로 인해 두 아들을 죽게 만들고 자신마저 죽어서까지 방원에게 처참한 복수를 당했던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조선왕조 개국 이후 고향의 청곡사에 은입사 향로를 만들어 바치고 국태민안과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보위를 잇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신덕왕후의 전설이 청곡사에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되 풍수가의 눈으로 살펴 본 청곡사의 방학교와 학영지, 그리고 환학루에 붙여진 명칭들은 신덕왕후와는 무관하게 보인다.
대웅전 앞에 서서 바라보면 청룡자락이 완연(蜿蜒)한 모습으로 혈처를 감싸고 있다. 생동하는 청룡완연의 모습이다.
우측의 백호자락은 청룡에 비해 혈처를 지키는 다소곳한 모습이다. 백호준거(白虎蹲踞)이다.
안산은 둥그런 노적가리봉의 금체형이어서 청곡사의 풍요를 보장하고 있다.
안개 속으로 멀리 보이는 조산의 형상은 수성산으로 주작이 상무(祥舞)하는 형상이다.
청곡사의 현무(玄武)는 국사봉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월봉이다. 모양은 장군봉까지 길게 늘어지는 후덕한 토성산이다.
현무봉인 월봉은 좌우로 용호(龍虎)를 내려보내 혈을 호위하게 하고 가운데로 내룡을 출맥하여 완전한 금학포란형의 길지를 만들어내었다. 그 중심에 자리한 청곡사는 도선국사의 뜻대로 명당지기를 발복하여 천년고찰로 지금도 장엄한 종소리와 함께 이 땅에 평화를 내려 보내고 있다.
청곡사에는 보물이 많다. 우선 국보 제302호인 영산회상괘불탱화가 있다. 높이 10.4m의 거대한 화면에 삼존불입상을 그린 이 탱화는 1722년 경종 2년에 금어 의겸스님이 그린 작품이다.
죽은 사람의 생전에 대한 업보를 재판하는 업경전의 좌우에 놓인 목조금강 역사상 2구 또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된 보물이다. 금강역사상은 업경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조선후기에 나무를 조각하여 만들었는데 왼쪽에 흰색의 얼굴을 한 것이 백면금강으로 밀적금강이라고도 한다.
오른쪽에 붉은 얼굴을 한 것은 적면금강이며 나라연금강이라고도 한다.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음금강역사라고도 하며 적면금강은 입을 벌리고 ‘아’하고 소리치는 형상이라 하여 아금강역사라고 한다. ‘아’와 ‘음’은 범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데 이러한 두 금강역사의 입은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의미가 된다. 금강역사의 머리부분에는 언제나 둥근 빛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금강역사가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혜 또한 뛰어나다는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신덕왕후가 청곡사 보광전에 상총스님을 시켜 주조한 보물 청동은입사향로는 1397년 조선 태조 6년에 만들었다. 나팔모양의 받침 위에 입의 가장자리가 벌어진 형태로 몸체 6곳 동심원 안에 범어 한 자씩을 넣고 그 여백에는 당초문으로 화려하게 은입사 하였다. 일제시대에 왜놈들이 강탈해 간 것을 찾아와서 지금은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곡사를 둘러보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환학루에 걸린 퇴계선생의 시구를 떠올린다. 1533년에 형 이해와 함께 퇴계가 청곡사를 방문했을 때 남긴 시조이다.
李退溪 이퇴계
琴山道上晩逢雨 / 금산도상만봉우 / 금산으로 오는 길에 밤비를 만났더니
靑谷寺前寒瀉泉 / 청곡사전한사천 / 청곡사 앞에 솟는 샘물 차기도 하네
謂是雪泥鴻瓜處 / 위시설니홍과처 / 이곳이 무상한 흔적의 곳이던가
存亡離合一潸然 / 존망리합일산연 / 존망과 이합이 모두 산연하구나
첫댓글 관세음보살~수정원님~~^^*()조선후기의 귀한 불화를 접하게 해 주시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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