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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94회>
씬 길
멀리서 파달이 보낸 전령마가 황도를 떠나 돌아가고 있다. 계속해 굽이진 길을 달려가는 그 모습에서... 스쳐 사라지면...
씬 금산사 외경
씬 동 주지의 방 밖 마당
많은 승려들이 경보를 보려고 난리들이다. 몇몇 승려들이 이를 막고 있다. 파달의 부장 하나가 보며 흘깃 지나간다.
승려1 큰스님께서 오셨다는데 친견 좀 하게 해주시오.
승려2 법문을 뫼시고 싶소이다. 한번 뵙게 해주시오, 스님.
승려 왜들 이러는가...? 큰스님께서는 오랫동안 칩거하시다가 하산하시었네. 법문을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야. 물러들 가게.
승려1 고승께서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라 하시옵니까? 뵙게 해주시오소서. 뵙게 해주시오소서.
승려 물러들 가라니까 그러는구먼.
씬 동 주지의 방안
주지와 경보가 마주해 있다. 그 주변으로 시자가 앉았고 많은 승려들이 모여있다.
주지 큰스님, 아직 깨치지 못한 많은 학승들이 큰스님을 뵙고 법문을 듣고자 청하고 있사옵니다.
경보 법문이라.....? 다 부질없는 일일세. 내가 무얼 안다고 법문을 한다는 말일세...?
주지 하오나 한 말씀 주시오소서. 모두들 저렇게 목말라 하고 있사옵니다.
경보 허허, 사람하고는... 말하지 않았는가..? 그것 다 부질없는 것이야.
주지 아둔한 소승도 여쭙고 싶사옵니다, 큰스님. 무엇을 일러 지옥이라 하고 무엇을 일러 극락이라 하옵니까?
경보 (한참 보다가 웃는다) 왜 하필 이 자리에서 지옥과 극락을 운운하는가?
주지 저쪽 암자를 보시오소서. 한때는 온 천하를 지배하였던 황제께서 와 계시옵니다. 지금은 죄인처럼 갇혀 계시지 않사옵니까?
경보 하하하.... 그럴 듯한 말일세.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 지옥도 극락도 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자신을 알면 지옥도 갈 수 있고 극락도 갈 수 있는 것이야. 아니 그런가...? 사람 사는 이치가 이처럼 아주 단순한 것이거든... 허허허..... 헌데 황도에 갔다던 파발은 왜 아직 아니 돌아오는고...?
경보는 그렇게 조용히 웃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씬 견훤의 거소 밖
파달이 부장의 보고를 듣고 있다.
파달 허허, 경보라는 중이 그토록 고승이라는 말이냐?
부장 예, 장군. 같은 승려들끼리도 법문을 한 말씀 해달라고 난리들을 치고 있사옵니다.
파달 하긴 뭐, 황제폐하의 스승이라 하지 않더냐? 그나저나 황도에 간 파발은 왜 아직 아니 돌아온다는 말이냐?
그때, 저 멀리서 황도로 갔던 파발이 돌아오고 있다. 모두들 그쪽을 본다. 파발을 갔던 군사는 다가와 말에서 내려 예를 올린다.
파달 왜 이리 늦었단 말이냐?
군사 송구하옵니다. 태자마마께오서 신료분들과 회의를 하시고 비답을 주신다기에 기다렸다 받아오는 길이옵니다.
파달 오호, 그랬느냐?
군사 여기... (답서를 준다)
파달 (읽는다, 그리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견훤의 처소 쪽을 본다) 허, 이런... 왕사를 만나게 해드리라고...? 이 서찰 하나는 그러니까 왕사께 드리라 그런 말이 아니냐...?
군사 그러하옵니다, 장군.
파달 허허, 이런... 허면 주지승이 있는 곳으로 가자.
부장들 예, 장군.
그들 주지 방 쪽으로 간다. 디졸브되면...
씬 다시 주지의 방
파달과 주지승과 경보와 시자가 함께 해 있다. 경보가 파달이 건네준 서찰을 다 읽고 끄덕이며 접는다.
파달 태자마마의 간곡한 부탁이시오. 대사께서 힘을 좀 써주셔야겠소이다.
경보 혁명인지 반란인지는 모르겠으나....
파달 뭐요..? 반란...?
경보 허허허, 그렇다는 이야기올시다. 황제가 허락하지 않은 군사행동이 있었으니 혁명이라 하기는 그렇지 않소이까? 더군다나
사람도 죽어나갔습니다. 파달 닥치시오.
경보 아무튼 그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녹여달라고 청하는 것이니 나라와 백성을 위해 권해 보리다.
파달 허허허... 고맙소이다. 스님께서 이 나라의 왕사시라면 당연히 그리 하셔야지요.
경보 허나 사람의 마음이올시다. 폐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을 내가 어찌한다고 장담은 못합니다.
파달 그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허면 황도의 영이 떨어졌으니 가서 만나 보시겠소이까?
경보 그렇게 하십시다.
주지 허면 가시지요, 큰스님...
그들 그렇게 일어나 나간다. 시자가 급히 앞서서 문을 연다.
씬 동 금산사 경내 마당
주지와 시자가 앞을 서고 경보가 걸어나온다. 파달과 군사들이 함께 간다. 승려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법문을 달라한다.
승려1 큰스님... 한 말씀 주시오소서.
승려2 큰스님... 도선 대사님에 이어 경보 큰스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라 하시옵니다. 한 말씀 주시오소서.
파달 물러서라... 물러서... 왜들 이 소란이요...? 부장들은 무얼 하는가? 어서 모셔가라.
부장들 물러서라... 물러서.....
파달 허허, 이런... 나는 미련하고 무식해서 부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야말로 부처님이 살아온 것 같지 않은가? 허허...
경보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법문을 청하는 승려들에게 끄덕이며 간다. 모두들 ‘큰스님, 큰스님’을 계속 불러댄다. 가히 경보의 명망을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지나가면...
씬 견훤의 처소 외경
씬 동 견훤의 처소 안
견훤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최상궁이 대답한다.
견훤 무엇이라..? 경보 왕사가 이리로 오고 있다..?
최상궁 예, 폐하. 많은 스님들이 에워싼 가운데 파달과 그 군사들이 이리로 함께 오고 있사옵니다.
고비 그게 정말이냐? 신검 태자가 만나는 것을 허락했다는 말이냐?
최상궁 예, 마마. 특별한 서찰까지 가지고 왔다 들었사옵니다.
견훤 경보 왕사가 온다...? 경보 왕사가....?
그때,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들린다. 파달의 소리도 들린다
파달 (소리) 어서 아뢰시오.
씬 동 거소 밖 마당
문을 열고 경보 일행이 들어와 처소 앞에 섰다. 따라오던 승려들은 제지를 당하여 오지 않았고 주지와 경보, 시자 그리고 파달들이다.
파달 어서 아뢰라고 하지 않소?
주지 예.... 폐하, 백계산 옥룡사에서 경보대사님께서 오셨사옵니다. 폐하, 경보 큰스님께서 오셨사옵니다.
그러자 급히 문이 열린다. 견훤이 그들을 본다. 파달과 군사들 그리고 모두가 깊숙이 예를 올린다.
경보 폐하, 경보이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문후를 여쭈옵니다.
견훤 ............ (경련 한다) 오... 대사...?
경보 각중에 큰 일을 당하시어 얼마나 고통이 크시옵니까?
파달 ............ (노려보고)
경보 들어가 예를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견훤 들어오시구려. 왕사가 오셨는데 당연히 들어오셔야지.
그러자 경보는 주변에게 머리를 끄덕여 보이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시자와 주지가 따라 들어간다. 파달이 또 소리친다.
파달 더 이상 일체의 잡인을 금하여라. 경계를 더욱 엄히 하라.
부장들 예, 장군.
씬 동 거소 안
경보와 견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경보 빈도가 뒤늦게 소식을 알았사옵니다. 얼마나 참담하시옵니까?
견훤 부끄럽소이다, 대사. (눈물) 부끄럽소이다...
경보 허허... 폐하께오서는 삼한을 호령하시던 대 황제시옵니다. 눈물을 다 보이시옵니까?
견훤 억울해서 그러오. 내 말년의 모습이 너무도 처참해서 그러오.
경보 이미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저간의 사정을 다 듣고 알았사옵니다. 하오나 이 또한 폐하께서 갖고 계시는 업 중의 하나이옵니다. 그 누구도 업장의 인연을 피할 수는 없사옵니다.
견훤 그런가보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이까? 아들놈이 내가 세운 백제국을 훔쳐갔소이다.
경보가 끄덕인다. 그리고 주지와 시자들에게 눈짓을 보내면 그들이 합장을 하고 나간다.
씬 동 마당
두 승려가 나온다. 파달의 군사들이 곳곳을 지나쳐 간다.
씬 다시 동 처소 안
경보 환후는 좀 어떠하시옵니까? 등창이 아주 심하다 들었사옵니다.
견훤 허허... 의원이 경고를 했소이다. 더 이상 무리를 한다면 등창이 안으로 터질 것이라고...
경보 허, 저런...
견훤 밖으로 터지고 안으로 터지고 결국은 오장육부가 다 썩고 멈출 것이라 했소이다.
고비 ......... 폐하..?
경보 수십 년 삼한을 호령하시던 폐하시옵니다. 참으로 빈도는 마음이 아프옵니다.
견훤 대사의 말처럼 업장이라면 어찌하겠소이까?
경보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옵니다마는.... 황도의 신검 태자마마께서 빈도에게 서찰을 보내오셨사옵니다.
견훤 신검이 놈이 말이오.....? 무슨 서찰....?
경보 어차피 부자지간이시옵니다. 또한 폐하께오서 세우신 제국이 아니옵니까? 두 분이 화합하시오소서.
견훤 (벌컥) 대사....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오? 저 백정 같은 놈들을 용서하라는 말씀이시오..? 대사께서
그 이야기를 하러 오신 게요? 경보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빈도는 다만 백제국의 장래와 나아가 삼한의 장래를 걱정하며 이곳에 왔사옵니다.
견훤 바로 그것이오. 어차피 누군가는 삼한을 통일해야 하오. 우리 백제가 되었든 고려가 되었든 말이오. 신검이 저 놈은 그 그릇이 아니었소이다. 그래서 옥좌를 주지 못했던 것이오. 그러자 저 놈은 형제를 죽이고 나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찬탈했소이다.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작은 종지 그릇이 큰 옹기 항아리가 될 수는 없는 법이오. 아시겠소이까, 대사...? 지금도 내가 억울한 것은 그것이오. 저놈은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제국의 꿈을 다 망쳐놓을 것이라는 것이올시다. 아시겠소이까?
경보 (눈을 감으며) 예, 폐하. 그 말씀의 뜻을 아옵니다. 그러나 본래 인간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옵니다. 너무 큰 집착을 마시오소서.
견훤 (더 벌컥하며) 집착....? 집착을 말라구요..? 그러면 어쩌란 말이오? 내가 평생을 걸려 세운 제국이오. 저 화적떼 같은 아들놈이 망치고 있소이다. 옥좌에 눈이 멀어 다 망치고 있어요. 다...
고비 폐하, 진정하시오소서.
견훤 집착이 아니올시다. 허망해서 그런 것이올시다. 어떻게 세운 제국인데... 이 나라가 어떻게 선 나라인데.... 이 백제국이 어떤 나라인데.....
하다가 견훤은 제풀에 지친다. 그리고 헐떡거린다. 경보가 나즉이 보며 나무관세음을 왼다.
경보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병이 있사옵니다. 지금 폐하께오서는 등창도 심하시지마는 마음의 병이 더 크시옵니다. 덜어내시오소서. 모든 마음의 짐을 벗어 던져버리시오소서.
견훤 덜어내라...? 벗어버려라..? 어떻게 말이오..?
경보 다 마음이옵니다. 한순간 돌이켜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그 뒤에 있사옵니다. 그 한을 벗으시오소서.
고비 그것이 되겠사옵니까? 대사님께선 그것이 되리라 보시옵니까? 제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사옵니다. 그것이 되겠사옵니까? 제 자식의 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사옵니다, 대사님.
경보 거듭 말씀드리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옵니다. (한숨) 어찌 하루 아침에 원한이 씻어질 수 있겠사옵니까마는... 하나씩 또 하나씩 그 매듭을 풀어가야 하옵니다.
견훤 하기 좋은 말씀이오. 쉽지 않은 일이올시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올시다, 그것은...... 잊으려고 하면 잊을 수록 더 증오의 불길이 타오르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오...?
경보 한동안 빈도가 이 절에 머물겠사옵니다. 어차피 황도에서 허락을 받았으니 폐하를 뫼시고 그 아픔을 같이 해볼까 하옵니다.
견훤 (한숨) 그나마 고맙구려.
경보 먼저 금강 태자마마와 아끼던 충신인 파진찬 그 사람의 천도제를 올려드릴까 하옵니다.
견훤 천도제....?
경보 억울한 영혼들을 바로 이끌어주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고비 고마운 말씀이시옵니다. 천도제라니 정말로 고맙사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밤처럼 우리 금강이가 꿈에 보이옵니다.
고비는 그렇게 운다. 모두들 말이 없다.
경보 이 경내에 불단을 만들고 당장 시작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마마. 그러면서 천천히 그 노여움들을 싹 불살라 버리시오소서. 한동안은 빈도가 도와드리겠사옵니다.
고비 고맙사옵니다. 정말 고맙사옵니다, 대사님.
끄덕이는 경보와 한숨 짓는 견훤들의 모습에서... 그 위로 낭랑한 염불소리들이 들려온다. 디졸브되면서...
씬 동 경내 어느 전각
작은 불단이 만들어졌다. 제수 과일들이 올라와 있고 경보가 염불을 하고 있다. 시자가 함께 하고 고비와 상궁 시녀들 그리고 견훤이 참석해 있다. 천도제가 올려지고 있는 것이다. 극락왕생을 비는 장엄경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고비는 눈물을 흘리고 견훤은 치미는 분노를 참느라 떨고 있다. 금강과 최승우의 표정들이 지나쳐 간다. 그리고 그들이 죽는 모습들이 비켜간다. 그네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금강 (에코) 아바마마... 살려주시오소서. 살려주시오소서, 아바마마..
최승우 (에코) 폐하... 폐하...... 폐하............ 폐하...............
견훤은 주먹을 쥐며 그 아픔을 참고 있다. 장엄경, 염불은 계속 낭랑하게 커지고 있다.
씬 동 거소 밖
파달이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영 개운치 않은 것이다.
파달 이거야 원... 절간에서 예불을 올린다는데 막을 수도 없는 일이고... 허허, 며칠이나 한다고 하더냐?
부장 아무래도 한동안 걸릴 것이라 하옵니다.
파달 한동안 걸려...? 허허, 이것 참... 왠지 썩 내키지 않는 일인 것 같다. 황도에 보고는 하였느냐?
부장 예, 장군. 천도제를 시작하겠다고 할 때 이미 보고를 띄웠사옵니다.
파달 허허, 거 참...
씬 백제 황도 외경
씬 동 대전
신검과 능환, 능애, 신덕이 함께 해 있다. 신검이 뒷짐을 지고 서성이다가 내뱉는다.
신검 천도제라고....?
신덕 예, 태자마마. 지금 경보 왕사가 주재하여 기도 중이라 하옵니다.
능환 이건 뜻밖이올습니다. 천도제라니...? 죽은 금강 태자의 천도제를 지낸다는 것이 아니옵니까?
신덕 그러하옵니다, 이찬 어른.
능애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왕사에게 폐하와 태자마마 사이를 부탁드렸소이다. 폐하의 마음을 달래드리자면 여러 가지 나름대로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신검 그럴 수도 있지요. 대범하게 생각하십시다.
능환 하지만 우리가 역적이라 하여 금강태자이옵니다. 그 역적들의 천도제를 지내준다는 말이옵니까? 역적들을 말이옵니다.
신검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아버님의 응어리만 풀어드리면 되는 일이에요.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지 마십시다. 누가 압니까? 저렇게 해서 행여 풀리실 지 말입니다. 기다려 보십시다.. 신장군...?
신덕 예, 태자마마.
신검 파달 장군에게 일러 그냥 놓아 두라 하세요. 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심한 경계나 간섭을 말라고 하세요. 더 이상 아버님을 자극해서는 아니 됩니다.
신덕 예, 태자마마.
능환 허 이런 것이 아닌데.... 이런 것이 아닌데....
능환은 고개를 젖고 신검은 기대가 많다. 그 표정에서...
씬 황후전
박씨가 동경을 보며 얼굴 화장을 한다. 한숨을 쉬더니 그대로 화장대를 박살낸다. 이상궁이 보다가 놀라며 묻는다.
이상궁 황후마마, 왜 그러시옵니까?
박씨 내 인생이 한심해서 그러느니라. 한심해서... 이게 무슨 꼴이냐? 머리는 온통 서리가 앉았는데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은 것도 없고... 고비 그것이 지금쯤 깨가 쏟아지겠구나.
이상궁 마마...
박씨 나이 환갑이 넘었는데도...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신검 태자는 저렇게 우유부단하고... 폐하는 저 모양이시고... 도대체 이 황실이 어찌 되려는고...? 이 나라는 어찌 되고 그리고 이 늙은 여인은 또 앞으로 어찌 될꼬...?
이상궁 황후마마. 이제 곧 태자마마께서 황제의 위에 오르실 것이옵니다. 하오면 마마께오서는 황태후가 되시옵니다. 무엇을 걱정하시옵니까?
박씨 황태후라고...? 여인네로서 그 낭군인 폐하를 잃어버렸다. 황태후 자리가 다 무엇이냐?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일러 서방을 쫓아낸 못된 년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겠느냐?
이상궁 황후마마...?
박씨 살얼음이 내린다. 하루하루가 살얼음이 내려. 사는 것 같지가 않아. 차라리 신검 태자라도 빨리 황제에 올라야 마음이 정리가 될 터인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휴... 그래, 허울 좋게 비단 옷이나 걸친 이름뿐인 황후보다야 촌부의 아낙이 얼마나 더 행복하겠느냐? 내가 어쩌다가 황후가 되어서 오늘날 이 고통을 당한다는 말인고...? 폐하가 원망스럽다. 원망스러워.
씬 금산사 견훤의 불당 그 마당 (밤)
씬 동 불당 안
천도제는 계속되고 있다. 모두들 합장을 하며 수없이 절을 하고 있다. 경보는 계속 염불을 왼다. 견훤은 생각이 많다. 그 견훤의 얼굴 위로...
경보 (소리) 인생무상, 제행무상이라 하였사옵니다. 모든 것이 덧없는 것이옵니다. 지금 아무리 천하를 논한다 하여도 훗날에는 오늘의 일이 하나의 아득한 전설로 전할뿐이옵니다. 그리고 그 전설 또한 세월과 바람에 날려 결국은 낡고 사라지는 것이옵니다. 역사가 무엇이옵니까? 욕심 많은 중생들이 목숨을 걸고 도박하고 다투어 살아낸 기록일 뿐이옵니다. 폐하께서는 그것을 아셔야 하옵니다. 오늘의 일은 내일의 그저 그런 이야기 거리에 불과할 뿐이옵니다. 무엇에 집착하고 미련을 가질 것이옵니까? 다 무상한 것이옵니다.
견훤은 계속 생각이 많다. 염불소리가 높아진다.
씬 고려 황궁 외경 (낮)
씬 동 편전
왕건을 비롯하여 모든 문무신료들이 다 참석해 있다. 김행선, 유금필, 박술희, 배현경, 홍유, 복지겸, 왕식렴, 염상, 박수문, 수경 형제, 윤신달, 왕충, 왕규, 추언규, 최지몽들이다.
왕건 경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인원과 시간을 투입하여 백제의 상황을 파악해 왔소이다. 백제의 정변은 사실로 확인되었고 또한 저들이 재빨리 군대를 정비하여 우리와의 전쟁을 대비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되었소이다. 이제 우리도 거국적으로 그에 관한 준비를 해야겠기에 오늘 조회를 소집하라 하였소이다.
김행선 신 시중 김행선 아뢰옵니다. 이미 백제의 일로 하여 여러 부처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했사옵니다. 지금 우리 고려국은 신라를 이미 우리 보호아래 두었으며 위로는 평양을 경계로 하여 발해를 대신한 거란과 대치하고 있사옵니다. 하나도 둘도 군대를 정비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이옵니다.
배현경 신 병부령 배현경 아뢰옵니다. 시중 어른의 말씀이 지극히 당연하옵니다. 이미 백제의 상황을 접하면서 전 군에 대대적인 소집령과 훈련을 명하여 군대를 증강시켜 오고 있사옵니다. 이미 십 만에 가까운 군대가 증원되어 폐하의 영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하시라도 영을 주시오소서.
모두들 오... 십 만이라...?
왕식렴 폐하, 북방의 일도 전혀 염려치 마시오소서. 이미 거란과 우리 고려 사이에 있는 여러 오랑캐 족들을 규합시키고 성을 축성하여 그 경계를 단단히 해놓았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오로지 백제를 도모하시는데 힘을 쏟으시오소서.
박수문 폐하, 백제의 내분이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사옵니다. 또한 폐하께오서 한편으로 유화책을 쓰고 계신 줄도 아옵니다. 하오나 필연적으로 한번은 대 접전이 불가피하옵니다. 하오면 먼저 전선을 정하시고 공격해 들어감이 어떠하오리까?
윤신달 신 윤신달 박수문 장군의 말이 극히 타당하다고 사료되옵니다. 상대가 약할 때 그 약한 곳을 파고들어 승리로 이끄는 것은 병법의 기초이옵니다. 윤허하시오소서. 군대를 일으키게 명하시오소서.
염상 신 염상도 박수문 장군과 윤신달 장군의 주청에 동의하옵니다. 언제까지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고 보옵니다. 이미 백제에 관한 모든 정보가 파악되었고 우리는 군사적 준비가 완료되었사옵니다. 공격을 명하시오소서.
유금필 폐하, 여기 장수들의 청이 매우 일리 있사옵니다. 하오나 폐하게오서는 덕으로써 신라를 우리편으로 만들었사옵니다. 그리고 복종시켰사옵니다. 백제는 지금 혼란과 정변에 힘들어하옵니다. 아직은 기다리셔야 할 때인 줄로 아옵니다.
박술희 소장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셨사옵니다. 좀 더 백제의 정황을 살펴보도록 하시오소서.
왕건 복장군...?
복지겸 예, 폐하.
왕건 복장군은 국내외의 모든 정보를 관장하는 부처를 책임지고 있소이다. 지금 백제국의 동향은 어떻소이까?
복지겸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옵니다. 저들 또한 한편으로는 정변을 일으키면서도 군대를 계속 증강시켜 십 만이 넘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사옵니다. 그 총사는 신덕이라는 장수와 능애라는 견훤왕의 아우가 맡고 있으며 국내외의 모든 전략은 죽은 파진찬 최승우라는 사람을 대신하여 능환이라는 자가 맡고 있다 하옵니다.
홍유 헌데 이상하오이다. 어째서 정변을 일으켜 그 왕을 쫓아냈으면서도 신검이라는 태자가 옥좌에 오르지 않는지 말이오?
복지겸 그 점에 관해서 계속 세작들을 통해 알아보고 있소이다. 아무래도 여러 지방 호족들과 군대를 거느린 군벌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소이다. 한편으로는 쫓겨난 견훤왕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 같고 말이올시다.
추언규 언제가 되었든 우리 고려와 백제는 반드시 큰 전쟁을 치름으로써 그 우열을 가려야 하옵니다. 만반의 준비는 게을리 하지 않으면 아니 되옵니다.
왕규 그러하옵니다. 늘 깨어서 언제든 군대가 출병할 수 있도록 체재를 갖추어 놓아야 하옵니다.
배현경 그 일은 이미 병부에서 끝이 났다고 하였소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우리 고려국의 군사력은 어느 적군이 온다해도 다 막아낼 준비가 완벽하오이다.
왕건 내의성령은 그 동안 여러 번에 걸쳐서 천문과 역학을 통해 국가의 길흉을 점쳐왔다. 백제의 운이 어찌된다고 보는가?
최지몽 삼한 통일의 대업은 폐하께오서 이루실 것이라고 이미 운명하신 최응 공께서 예언하셨사옵니다. 신 또한 분명히 말씀 드리옵니다. 머지 않아 폐하께오서는 백제 땅의 황도에 들어가시어 백성들을 위로하시게 되실 것이옵니다.
왕건 하하하... 짐이 백제의 황도로 들어갈 것이다...?
최지몽 반드시 그리될 것이옵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사옵니다. 좀 더 지켜보시오소서. 하늘이 여러 가지 길을 알려올 것이옵니다.
왕건 하늘이 알려준다...? 하늘이...? 듣기 나쁜 말은 아니로다. 경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백제국이 지금 엄청난 변화의 기류에 말려있는 것 같소이다. 정변이 일어났고 견훤왕의 아들이 새 주인이 된 것이 분명해졌소이다. 또한 군대를 계속 증강시켜 십 만이 넘는다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또한 꾸준히 대군을 확보하였어요. 필경은 양쪽이 부딪히게 되어 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 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승리하자는 것이올시다. 아시겠소이까?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짐이 곧 직접 군의 훈련을 하나하나 챙기고 참관할 것이오. 병부는 추호의 빈틈도 없이 군을 준비해 주기 바라오.
배현경 예, 폐하.
씬 황후전
오씨와 유씨, 상궁들이 함께 해 있다.
오씨 무슨 일로 조회를 열고 계시는고...?
유씨 백제에 관한 일을 논의한다 하시옵니다.
오씨 (끄덕이며) 하긴 불원간에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가? 마땅히 대책을 논의하시겠지.
유씨 아마도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시어 견훤왕을 접촉하고 또 한쪽으로는 군사를 준비하시려는 것 같사옵니다.
오씨 그러시겠지. 강온 양면으로 백제에 접근하시는 모양이실세. 분명 뭔가가 오기는 오네 그려. 잘하면 우리 생전에 통일을 보기는 볼 것 같네 그려.
유씨 그러게 말이옵니다. 황후마마...
오씨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생전에 통일만 볼 수 있다면 말일세. 헌데 그 모든 것들이 손에 잡힐 듯이 보여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 눈에 보여오고 있어...
씬 금산사 대법당 주변
여러 스님들이 법당 안에서 예불을 올리고 있고 몇몇 신도들이 경내를 지나쳐 간다. 저만큼 주지의 방이 보인다.
씬 동 주지의 방
주지가 날카로운 눈으로 사내를 보고 있다. 그 앞에 한통의 서찰이 놓여있다.
주지 고려에서 왔다고 하였소이까?
사내 예, 스님. 소생은 장사꾼이온데 은밀히 고려땅에 갔다가 이것을 스님께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가져왔사옵니다.
주지 이것이 무슨 서찰이오?
사내 잘은 모르오나 아자개라는 노인이 그 아드님에게 보내는 서찰이라 들었사옵니다.
주지 (크게 놀라며) 아자개 노인...? 그 아들에게...?
사내 그러하옵니다. 소생은 그 이상도 이하도 모르옵니다. 허면...
주지 잠깐만... 아직도 아자개 어른이 살아 계신다는 말씀이오?
사내 예, 잘은 모르오나 그렇다 하옵니다. 안녕히 계시오소서.
말릴 사이도 없이 사내가 나가 버린다. 주지는 놀라고 떨리는 손으로 서찰을 본다.
주지 이런... 아자개 노인이라면 폐하의 아버님이 아니신가? 그 아들이라면 폐하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고려 땅에서... 이 서찰이 왔다...? 허, 이를 어이할꼬...? 허나 아니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 아들과 아버지의 서신이 아닌가? 허허, 이런...
갈등하는 주지의 표정 위로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가 들려온다. 한번... 두번... 점차 크게 가까워지면서
씬 동 금산사 경내
어둠이 내리고 범종을 치는 승려가 보인다. 그리고 몇 번 드디어 법고 소리가 들려온다. 장삼자락을 휘날리며 승려 하나가 능숙한 솜씨로 법고를 쳐댄다. 점차 호흡이 빨라지는 그 법고 소리와 그 모습에서...
씬 동 견훤의 거소 밖 (밤)
여기에서도 법고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마당에는 여전히 군사들이 번을 서고 있다. 목탁과 염불소리들이 서서히 법고 소리를 지우며 안에서 들려나오고 있다.
씬 동 견훤의 처소 불당
경보와 시자가 계속해 불경을 외고 있다. 시자가 가끔씩 징을 쳐대며 천도제의 흥을 돋구고 있다. 견훤과 고비들이 그렇게 앉아 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견훤의 표정 위로...
경보 (소리) 폐하, 이 천도제를 어찌 보시옵니까? 폐하께서는 아셔야 하옵니다. 먼저 여쭙겠사옵니다. 폐하가 누구시옵니까? 혹여라도 스스로를 돌아보신 적이 있사옵니까? 폐하는 과연 영웅이라 생각하시옵니까? 폐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어 갔사옵니까? 그리고 지금도 고통의 짐을 지고 허덕이고 있사옵니까? 금강태자가 그리도 소중하시옵니까? 허면 이름 없는 군사 하나가 그 부모에게는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자식이었겠사옵니까? 그런 그들이 수천, 수만이 죽어 나갔사옵니다. 폐하의 명령 하나로 그렇게 죽어나갔사옵니다. 아직도 억울하시옵니까? (사이) 이 천도제는 그들 모두를 위해 드리고 있는 것이옵니다. 금강 태자 한 분과 파진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덧없이 죽어간 그 많은 영혼들에게 드리는 천도제이옵니다. 폐하께서 살아오시면서 행하신 잘못을 비는 천도제이옵니다.
견훤은 눈물이 글썽인다. 염불소리는 점점 더 높아간다. 그예 그의 눈물이 두 줄기로 흘러내린다. 그 염불소리에서...
견훤 (소리) 용서해다오, 금강아... 용서하라, 파진찬... 영혼들이여 용서하라. 다 나의 욕심이었다. 다 나의 잘못이었다.
염불소리는 계속 높아진다. 경보의 모습은 더더욱 경건하다. 시자는 열심히 목탁을 치며 열심히 염불을 외우고 있고... 견훤의 내면의 소리는 처절하게 높아진다.
견훤 (소리) 용서하라... 다 용서하라... 다 용서하라.....
그 모습에서 클로즈업 되면서 디졸브...
씬 동 경내 마당
오늘의 예불을 마치고 견훤이 부축되어 불당을 나서고 있다. 경보와 시자가 함께 간다. 견훤이 밤하늘을 본다.
경보 계속해 며칠 째 제를 올리고 있사옵니다. 어떠하시옵니까? 조금 후련하시옵니까?
견훤 ........... 글쎄올시다.
경보 세상 만물의 이치가 다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옵니다. 그 모든 업장과 인연이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원한 것이옵니다. 그것을 던지는 것도 내 자신이 아니겠사옵니까?
견훤 글쎄올시다. 들어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처소 쪽으로 들어간다. 상궁과 나인들, 내관 둘이 밖에 그렇게 섰고...
씬 동 처소 안
경보가 차를 마시며 미소짓고 있다. 고비가 옆에서 보고 있다.
경보 제를 드리면서 여러 말씀을 올렸사옵니다. 딱히 법문이라기 보다는 세상사는 모습을 전해드린 것이옵니다.
견훤 알고 있소이다. 그래요. 다 덧없는 것이지요.
경보 천도제라는 것이 외롭게 떠도는 영혼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함이옵니다.
조금 편안하시옵니까? 견훤 모를 일이올시다. 편안이라...? 어찌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겠소이까?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이까?
경보 어차피 모든 것이 지나가 버렸사옵니다. 갈 사람은 갔고 폐하는 아직도 남아 계시옵니다.
견훤 이 사람의 목숨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소이다. 어쩌면 결국은 여기서 분함을 삼키다가 눈을 감겠지요.
경보 허면 삼한 통일은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견훤 (번쩍) 삼한 통일...?
경보 누군가는 결국 삼한을 하나로 만들 것이옵니다. 사실은 그 때문에 수십 년을 싸우며 수많은 목숨들을 희생시켰사옵니다. 폐하께서는 백제의 장래를 어찌 보시옵니까?
견훤 결국은 왕건 아우에게 가져다 바치겠지요. 내가 낳은 자식들입니다. 나는 자식놈들을 잘 압니다. 그리 될 것이에요.
경보 정말 그렇게 보시옵니까?
견훤 그렇지 않다면 내 몇 번씩 말을 하지만 왜 금강이를 세우려 하였겠소이까? 저놈들은 아니 됩니다. 저놈들은...
경보 그것이 진심이시라면 고려가 천하를 통일하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그렇게 되겠지요.
경보 허면 고려의 누가 통일을 할 것 같사옵니까?
견훤 누구라니요...? 왕건 아우 말고는 누가 있겠소이까?
경보 허면 고려의 주인인 왕건 황제와 백제의 주인이신 폐하께서 함께 삼한의 문을 여시면 어떠하겠사옵니까?
견훤 ... (충격) ...?
고비 .......?
경보 함께 문을 여시면 말이옵니다.
견훤 함께...? 지금 뭐라 하시었소, 대사...? 함께라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소이까? 어떻게...?
경보 지금까지의 싸움을 접고 두 땅의 주인이 손을 잡는다면 삼한은 보다 빨리 하나가 될 것이옵니다.
견훤 나를 보고... 허면 왕건 아우에게... 머리를 숙이라는 것이오?
경보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잡는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견훤 왕건 아우와...?
경보 이미 옥좌를 잃으셨사옵니다. 폐하께서 스스로 이루시려던 통일대업의 꿈은 깨어졌사옵니다. 하오나 길은 있사옵니다. 고려국의 황제와 손을 잡으시면 다 끝나는 일이옵니다.
견훤 대사...? 나를... 나를... 설득하러 오신 게요...? 고려국에서... 왕건 아우가 보내신 게요...?
경보 누가 보내서 오고 갈 소승이 아니옵니다. 이미 수십 년 전 소승은 오늘이 올 줄 알았사옵니다.
견훤 그건 무슨 소리요...?
경보 일찍이 폐하의 운명과 업을 보았사옵니다. 그리고 오늘 같은 일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열어놓은 제국이시나 오래갈 것 같지가 않사옵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닫으셔야하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대사...?
경보 도선 대사님께오서 소승의 스승이시옵니다. 일찍이 천문과 지리를 가르쳐 주시었고 삼한의 풍수를 일러주셨사옵니다. 더불어 부처님의 혜안을 빌려 인간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법을 깨우쳤사옵니다. 그래서 폐하를 볼 수 있었사옵니다. 이제 폐하께오서 뿌리신 씨앗을 거두실 때이옵니다.
견훤은 충격적인 모습으로 경보를 본다.
견훤 대사...?
경보 그나마 폐하께오서 거두실 수 있으니 다행이옵니다. 삼한 통일의 대업도 페하께오서 마무리지으실 수 있사옵니다.
해보시겠사옵니까, 폐하...? 견훤 대사........ ?
<194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