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야_홍수

[천심]

홍수

한 설 야

1

함경도 동해안을 육박하는 험준한 산맥과 그 뒤에 펼쳐진 이십팔방 리의 넓고 넓은 H 평야가 연접하는 곳 거기에는 산세 (山勢)가 다하는 종곡(絡曲)인 동시에 평야가 열리는 서곡(序曲)인 듯 산도 아니요, 평전도 아닌 크고 작은 구릉이 대지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 수많은 구릉 사이에는 넓고 좁은 움푹한 평전이 갇히어 있고 그 언덕 비탈에는 찌그러져 가는 뙤낮은 농막들이 겸손히 쪼그리고 있다. 구릉 꼭대기와 이맛전에는 담방솔(倭松)들이, 혹은 상투같이 모닥모닥 모여서 있고 혹은 망건같이 둘러쳐있다.

대체로 문명에서 뒤떨어진 미개한 풍경이다.

다만 여기서 근대적인 것을 찾는다면 동서로 언덕 비탈을 자어가는 함경선 철도와 H 간이역이 있을 뿐이다.

그 B역 동쪽 철도 남편에 한 이삼십 호 되는 S동리가 있고 그 앞에는 이 골짜기에서는 제일 넓은 평전이 있으며 그 평전에는 크고 작은 농장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맨 오래고 이름난 농장은 김갑산의 동(坰)이다. 벌써 십여 년 전에 개간된 십만 평이 넘는 큰 농장이다.

S동리는 거진 이 농장 때문에 생긴 것이니만치 그 동리에 사는 농민은 거의 전부가 이 농장의 소작인이다. 그외의 동들은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두세 집의 농막에서 소작하는 조그마한 동이니 들어 말할 것이 없다.

세 벌 김을 마친 농군들은 지금 바로 처서(處暑) 절기를 앞에 두고

“이 고비만 넘구면!”

하고 하늘만 쳐다본다. 젊은이가 상대방의 얼굴을 읽는 것보다도 더 유심히 그들은 하늘의 표정을 바라본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후―― 어째 이리 찌물쿤대여?”

날씨가 무더운 것은 습기가 있기 때문이요, 습기가 있으면 비가 오기 쉬운 것이다.

“저 달에 왜 물이 졌어?”

달에 물이 서면 비 올 징조라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구름 한 송이, 바람 한 점이라도 무심히 보아넘길 수 없는 것이 요사이의 그들의 심경이다. 하늘 모양이 조금만 찌뿌드드해도 벌레가 진다고 걱정하고 서풍이 약간만 선들거려도 벼잎사귀가 마른다고 안달을 친다. 때마침 벼이삭이 나올 무렵이다.

아낙이 해산하는 것은 나무에서 실과가 떨어지는 것 같이 예사로 보는 그들이지만 이삭이 팰 때의 볏대는 그렇게 훌훌히 보아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개판이 푹푹 끓어 번져야 벼가 잘 익지.”

“정녕, 변통 없는 풍년이지.”

하고 마음의 손으로 파아란 벼판을 쓰다듬으며 둥그런 긴 동 위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닌다. 사실 올해는 대풍작을 예상할 만치 벼가 잘 되었다. 논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벼판이 무성하다.

“금년은 볏금이 어떨 모양이래여?”

기술이가 C읍에 갔다가 돌아와서 동으로 나가니 수문(水門) 귀틀가에 모여 섰던 사람들 중에서 범 영감이라는 수염이 빳빳한 늙은이가 허리틈에서 곰방대를 뽑으며 이렇게 묻는다.

기술은 이 S동리에서는 단 하나인 보통학교 졸업생이니만치 자기들보다 눈도 밝고 귀도 빠른 터이매 오늘 S읍에 가서 무슨 귀 뜨이는 소리라도 들어 왔으리라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글쎄 그거야 얄 수 있소..”

기술은 아무 소식도 들은 것이 없다.

“읍에 가서 그런 말 못 들었나?”

“못 들었소다.”

“전쟁이 난다는 소문도 없던가?”

“글쎄 그련 소문이야 밤낮으루 있는 거지만 청국·수심가처럼 넘어만 간다지 어디 올 줄을 알어아지요”

전쟁이 나기는 날걸세. 비걸에도 박혀 있는 거구 그리구 이따 저 사내섬 끝이 만세교에 와닿은 것만 보게그려. 이번에는 대국이 한 번 큰소리치구 말지. 요놈의 잔사리 새끼들이 너무 극성스리 꾀어치드니 이번은 학춤을 추고야 마느니. 하늘이 그리 무심하겠나?”

그러자 그들은 전쟁이 나면 승부가 어떻게 될 기라느니 볏금은 다짜고짜로 올라만 갈 기라느니 하고 성수가 나서 주거니받거니 한다.

“글쎄 지금보다 떨어지지나 말었으면 좋겠소다만.”

히는 기술은 사실 추수 후면 또 쌀금이 떨어지리라 생각하고 있다.

금년은 봄부터 쌀 시세가 줄창 올려붙여서 지금은 거진 작년의 갑절이 되었지만, 그래도 햇살이 나는 때면 시세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풍년일수록 지주라 빗쟁이라 하는 것들의 빗수새가 한층 더 거성스러워져서 농군들은 시세 떨어지는 그때에 나락을 팔지 않으면 인되는 것도 농촌의 통례가 되어 있다. 말하자면 그들의 벼우리와 쌀독이 비이져서 인제부리 되레 사먹지 않으면 안될 그때쯤부터 ˙나락금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듬해 봄에는 썩 잘사는 집이라야 소미〔滿漫栗〕와 감자나 이어 내고 여남은 집들은 봄부터 풀뿌리, 나무껍질, 초석 등속으로 근근이 연명해 간다.

그러니 시세 올라간다는 것은 요컨대 고마울 것이 없는 것이건만 그래도 그들은 올라기기를 바라고 있다. 말하자면 풍년이 결국은 고마운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하건만 그래도 늘 풍년을 바라는 것같이!

“가부간하고 땅에 파물어 두는 지경이라도 팔지 않고 세밑만 쇠면 시새는 꼭 올라갈 건테! 그러니 안 팥아 내는 장수가 있어야지!”

하고 기술이가 말하자 뒤에서 누가

“난 가을이 올까 봐 머리가 썩썩 긁히내.”

하고 퉁먕스럽게 한마디 집어넣는다. 제가 지은 농사를 반나마 갈라 주는 것도 아수하려니와 빗이니 장리니 뭐니 이모저모로 곶감 뽑아먹듯 죄다 털어놓고야 말 것을 생긱하니 벌써부터 몸서리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세월이나 좋았으면 천행이겠네. 지금 같아서는 큰일은 없을 것 같네만!”

“아무렴 그렇지요. 좌우간 농사 잘되구 볼 일이지요.”

이러니저러니해도 결론은 농사 잘되라는 소원으로 돌아가고 만다.

범 영감은 뽕니무 잎사귀를 말려서 비빈 가루에다 담뱃가루를 양념만치 섞은 것으 손바닥에 놓고 침 한 방울을 떨구어 송토리만치 다져 가지고 고불통대에 담아 피며 맛나는 듯이 연기를 씹어먹고 있다. 댓진 타는 소리가 뿌지직뿌지직 나며, 김 누렇게 전 썰대[煙竹)가 꾸루룩꾸루룩 운다.

“옜소다. 오늘 읍에 가서 사왔소다.”

하고 기술은 오늘 가마쓰(꼬치고기)를 판 돈으로 사온 장수연을 한 줌 범 영감의 손에 쥐여 준다.

“아, 이거…… 한 창(닷새)은 먹겠네.”

사실 뽕잎 가루에 섞으면 이무리 세괃게 피우는 그라도 닷새는 피울 만하다.

“아 기술아, 난 좀 안 주니?”

하고 기술의 동무 종신이가 그의 뒤에서 소리치며 빙글빙글 웃는다. 그는 담배를 빌리려는 것보다 기술이를 놀려대고 싶은 상이다. 기술이가 범 영감의 외딸 금순이를 은근히 사모하고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느때엔가 기술이가 뽕나무 밭 머리에서 금순이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고, 또 어느때에는 금순이가 C 읍으로 가는 기술에게 무슨 잠깐 부탁을 하며 돈을 맡기려는 것을 기술이가 안 받고 도망가듯 가버리는 것을 종신이는 본 일이 있다.

“야, 이 새끼 넌 맨입만 가지구 댕기니? 담배 좀 사보구 죽으려무나.”

“싫건 그만뒤라. 하지만 이놈! 알지? 히히히…… 가부간하고 먹자는 귀신은 멕여야 한다. 어데 두고 보자. 이담메 아즈방이 사람 살리우 하지는 마라. 잉 흐흐흐…….”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내사 이마에 부작[呪符]을 써붙이고 댕겨야겠다. 흥 이거 돈이 물이라도 안되겠다.”

기술이는 담배를 손톱만치 손끝에 발라서 종선의 손에 쥐여 주며 우정 이렇게 핀잔을 주듯 말은 하나, 사실인즉 가슴이 뜨금해났다. 순간 금순의 모양이 어둔 밤 달같이, 새벽녘 별같이 머리에 떠온다.

2

팔월 그믐께다.

백로(白露)절도 무서운 때지만 함경도는 처서에 큰물이 나는 수가 많다.

산머리에 약대 허리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만 어느새 구름에 쌓인 온 하늘이 금시 무너질 듯 낮아 간다.

천둥 소리도 난다. 굵은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벌레를 떨구느라구 이러는가!”

“소낙비니까 이내 거두겠지.”

“고기가 잡히려는가? ”

농군들은 이렇게 좋도록 말은 해보나 비는 좀처럼 멎지 않는다.

소낙비는 쉬염쉬엄 오는 것인 줄로만 여기었고 또 기껏해야 세 차례만 몰아불이고 마는 것인 줄로만 알았으나, 이번은 그렇게 맘씨 고운 비가 아니다. 주루룩주루룩 내려붓듯이 연해 쏟아진다.

빗줄이 떨어지는 땅 위에는 물방울이 서고, 산머리에는 비안개가 자욱히 드솟고 있다. 먼 숲 사이에서는 풀개구리가 짝짝 울고, 높은 하늘에서는 물새가 호이호이 운다. 모든 것이 장마 징조다.

이때부터 그들의 가슴은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원 하늘도 밑구멍이 뚫어졌나!”

기술은 문을 열어젖히며 하늘을 쳐다본다. 비 오기 시작하던 첨에는 먹장 같은 구름과 흰구름이 어루승어루승 무어 논 것 같더니 이제는 그것도 검뽀얗게 골고루 펴져 버렸다. 건넛마을이 안개와 비에 막혀 보일락말락하고 벼판과 동이 빗살에 맞아 허리가 내려앉는 것 같다.

“어이구 저 많은 구름이 죄다 비가 되여?”

기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바로 정주 가마 위 지붕에서 비가 새어 떨어진다. 꾀낮은 지봉의 수수짚이 소죽가마, 밥가마에서 떠오르는 김에 썩어서 다른 곳보다 노상 허수해졌으니까 비가 샐 밖에…… 천장에 츠렁츠렁 내리드린 먼지 낀 거미줄이 빗방울에 맞아서 가마 위에 푸시시 떨어친다.

바로 열다섯 해 전이다.

그때까지 기술의 집은 철도 둑 북쪽 늙은 버드나무 가지 흐늘어진 그곳에 있었다. 그러다가 저기서부터 대략 사방 십 리나 되는 넓은 지역이 군용지로 편입되면서부터 그 동리 집들은 다른 데로 옮기게 되어 그중 기술이 내외의 네댓 집은 지금 사는 S 동리로 이사오게 되었다.

그때 마침 김갑산 동이 개간되는 무렵이었으므로 기술이네가 부침을 얻어 가지고 여기에 터를 잡은 것이 발하자면 S동리의 시초다.

그는 쓰고 살던 집을 헐어다가 그 재목 그대로 세웠다. 수수짚으로 외를 엮고 마을 앞 물구덩이의 갈매흙을 파다가 진흙과 버무러서 벽을 붙였다. 지붕에는 수수짚을 깔고 납작납작한 돌을 주워다가 기와삼아 펴놓았다.

집 내부는 부엌을 복판으로 하고 한편은 사람 붙는 방으로 마련하고 한편은 소 먹일 외양간으로 꾸며 놓았다.

아침 저녁이면 사람과 소가 얼굴을 마주 향하고 밥과 죽을 먹는다.

그들이 S 동리에 터를 잠은 후 이곳저곳에서 작인들이 모여들었다. 범 영감네는 백오십 리나 되는 Y군에서 이사왔다. 그때 마침 Y군 일대에는 전무후무한 대창이 나서 집과 곡식과 전토가 혹은 흘러가고 혹은 패어 나가고 흑은 파묻히어 버려서 그 지방 주민은 마침내 그 땅에서 살 수 없어서 삼수갑산으로 이유를 갔는데 범 영감네만은 조그만 인연을 더듬어서 S동리로 오게 되었다. Y군 어느 면사무소와 그 이웃 주재소 문패가 거기서 사백 리 되는 원산항 포구로 떠다니는 것을 어느 어선이 주웠다고 하는 것이 그 당시 신문에까지 보도되었으니 여남은 농가들이야 부지깽이 하나인들 건져 낼 수 있었우랴!

개중에도 범 영감은 그 물난리 통에 범장다리 같은 천금 맞잡이 아들을 잃어버리고 늙은 아낙과 어린 딸 금순이를 데리고 발간 맨몸으로 이사왔다.

이렇게 흘러온 사람들은 기술이네와도 달라서 엉덩이를 들여놓을 단칸 마가리(오막살이)를 주저리는 데에도 적지 않은 고생을 하였다. 예서 한 가지, 제서 한 토막, 전장(前市日〕에 한줌, 이창에 한 아름씩 그야말로 까치같이 물어다가 제비같이 주저리었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이고 벽을 붙이고 나니 마지막 난처한 것이 문을 다는 일이었다. 이것만은 그렇게 쉽사리 물어 올 수도 없고 또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구경, 수미포대나 쌀가마니를 뜯어 모아서 문 대신으로 쳐놓는 수밖에 없었다. 비눈물이 새지 말라고 지봉을 물매(傾斜)싸재 했으니만치 백은 곱사등이(꼽추)키만치밖에 안되는데다가 문까지 그런 것을 처놓아서 방안은 움같이 어두컴컴하다. 그래도 방은 낮아야 불이 밝고 훈훈하다고 하여 그들은 그들이 꾸려 논 집을 불나무와 기름(燈油)이 경제되는 이상적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집이 드높아서 춥겠군.”

발돋움하면 용마루에 머리기 대이는 기술의 집을 범 영감은 이렇게 평한 일이 있다.

이렇듯 가까스로 꾸며 논 말똥궤 같은 그들의 집들이 지금 댓줄기 같은 사정없는 빗발 아래에 떠는 듯 애꿎이 쪼그리고 있다.

그려나 그들에게는 집보다 논이 더 걱정이 된다.

3

산비탈ㄹㅗ 흙물이 내려꼰진다. 철도 다리는 마치 걸창같이 물소리가 요란하다. 콸콸 넘처서 곤두박질을 치며 도랑을 꾸지르고 밭머리를 갈라먹으며 물은 흐른다.

비는 연 이틀째 멈출 줄을 모른다. 토박한 비탈밭의 성긴 종이와 수수기 비바람에 나자빠져서 겉으로 들어난 하이얀 가는 뿌리들이 성낸 자연의 위압 아래에 떠는 듯하다.

이 골 물 저 골 물이 합수쳐 흐르는 낮은 평전의 김갑산 동은 각일각 흙물에 삼키위 긴다. 벌써 물은 동허리까지 불어올랐다.

“그사이 벌써 한 지나 불었구나. 이거 큰일났다!”

동허리에 내려앉아서 풀대와 나뭇가지 같은 것을 물머리에 꽂아놓고 중수되는 것을 재고 있던 기술은 각각으로 불어오르는 물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오늘 밤으로 그쳐야 할 톈데.”

“산비가 되어 날이 들어도 원 모르지˛”

기술의 결에 앉은 젊은 축들도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 물에 붉은 진흙이 섞이면 산비인 줄을 알 수 있는 것이요, 산비면 하대에 비가 개어도 계속해 오는 수가 있고 또 산에서 미처 흐르지 못했던 빗물이 뒤미처 흘러내려서 흔히 비 갠 뒤에도 중수되는 일이 있다. 따라서 비가 개었다고 마음을 놓을 때쯤 해서 중수가 되고 동이 터지는 일도 종종 있다.

“이 사람들 거겔 자꾸 빎지 말게˚”

범 영감이 동 위에서 소리치자

“이리들 올라오제. ㅋ˛죤는 못 해토 젯싱·(祭床)은 치지 말제. 등허리를 그렇게 밟아 놓으면 터지기 쉽지 않은가.”

하고 누가 또 꾸중 비슷이 외친다.

사실 이곳 지질은 마르면 돌멩이같이 딴딴하게 굳어지고 틈이 벌어지지만 물에만 잠기면 길매흙같이 참참해져서 아주 견딜성 없이 우시시 헤어져 내려앉는다.

기술이들은 동 위로 올라왔다.

그가 꽂아 놓은 풀대는 벌써 반나마 물에 잠겨 버렸다. 그는 버쩍 속이 달아서 손을 허공에 내들고 물에 잠키고 남은 방축을 ‘한 뼘 두 뼘’ 하고 어림 재어 본다. 대강 눈 짐작으로 한 여남은 뼘밖에 남지 않은 듯하다.

“이거 야단났소다. 이대루 둬서는 아니되겠는테……”

그는 그 아래 종걸의 동을 내러다보며' 좀 성난 목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여려 사람들은 하늘이 주는 일이니 할수없다는 듯이 안타까운 침묵에 잠겨 있을 뿐이다.

“저놈의 동 때문에 똑 이 지경이여! 무진년 장마에도 아무 일 없었는데 저 동이 생기더니 대뜸 이 지경이 아니우? 물길을 막아놓아서!”

하고 그가 다시 외칠 때

“하기아 그렇지만 벙어리 냉가슴 앓기지 속은 먼― 해가지구도 하는 수 있나? 칠백 리 동정호를 제 나귀 제 타고 가는데 누가 감히 말리겠나?”

하고 허리 굽은 늙은이가 쓴입을 쩍쩍쩍 다신다.

“하늘이 낸 물길은 나라도 못 막는다는데 그래 그런 맵이 있단 말이오?”

사실 종걸이 동이 생긴 지 일 년 만인 금년 여름부터 웬만한 대수롭지 않은 비에도 물 걱정을 하게 되던턴 것이다.

종걸이란 C보통학교 훈도요 기술의 옛 선생이다. 하나 나라도 못 막는 이 물길을 막은 선생을 그는 옳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데 실상인즉 그 동은 종걸의 것이 아니요 그 학교 교장 사사끼가 경영하는 것이다.

사사끼 교장은 애초에 김갑산의 동을 사려 하였다.

김갑산의 동이 팔천 원에 T 회시 원산 지점에 저당되어 있는 것과 김갑산이 근년에 금광에 신이 올라서 거진 파산상태에 이르러 벌써 몇 해 전부터 연부방환금(年賦償還金)을 물지 못하어 불원간 경매에 붙게 될 것을 아는 그는 종걸이를 내세워가지고 그 저당금 팔천 원에 어간 털이나 돋힌 값으로 사려고 들었다. 그러나 김갑산은 제 딴에는 금광쟁이 배짱을 보이듯이 일만오친 원 안에는 피천 한푼 들어서도 안 판다고 버티었다. 사실 그 안에 들어서는 제게 떨어질 것이라고는 별로 없으므로 팔았댔자 무슨 소득이 있으랴, 차라리 경매당하는 때까지 버티는 게 낫지 않으랴 하는 생각으로 처음 호가(呼價)를 끝까지 번뒤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인즉 저편은 벌써부터 동향인인 도× × 부장의 소개로 T회사 지점장을 만나서 자기 학교 졸업생 중에서 모범 청년을 뽑아 가지고 농촌진흥과 사상 선도를 위해서 모범경작을 하겠다는 것과 벌써 자기 고향에서 모범 농민을 이주시켜서 이미 시험경작을 시켜 본 결과 일단보 삼백 평에서 나락 여덟 섬 (이 지방 농민은 보통 극상 잘해야 일단보에서 석 섬, 그렇지 않으면 두 섬도 거두기 어렵다)을 추수하게 되었다는 것과 금후 졸업생을 잘 지도하면 그 정도의 토리(土利)를 낼 수 있다는 것과 그러기 때문에 T회사 땅이나 혹은 경매처분에 붙일 만한 땅이 있으면 속히 처결하여 자기에게 대부해 달란 것을 교섭한 일이 있다. 회사에서는 졸지에 최후처분을 하기는 곤란하나 깁갑산 동 같은 것은 이자도 치르지 못하는 터이니 저당금에서 조금 벗어지면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일깨워 주어서 매매 교섭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교섭은 결렬되고 말았다.

이ᅟᅥᆫㄹ 곡절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년에는 T 회사 지점으로부터 최후수속을 한다는 통지가 발송되어 왔었다. 하나 작년은 수해가 없었으므로 간신히 밀린 이자나 얼마간 물어주고 겨우 경매막이만은 해놓았었다.

그러자 이에 분개한 것이었던지는 몰라도 저편은 작년에 김갑산 동 아래편 땅을 사가지고 신동을 일구게 되었다. 워낙 그다지 넓지 못한 평전임에 그리 넓은 면적을 사낼 수는 없었지만 방축을 김갑산 동보다 훨씬 높게 친 것과 또는 바로 그것이 불길을 가로막는다는 것이 김갑산 편으로 보면 몹시 꺼룸한 일이었다.

김갑산 동에서 산모퉁이 하나만 돌아서 한 십리 길만 가면 광포라는 바다가 있어서 그전까지는 그리로 배수가 잘 되었는데 새 동이 아래에 생기면서부터 김갑산 동은 전연 불리한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

저편에서는 작년 가을부터 모래차까지 놓고 인부를 사용하여 신동을 치기 시작하였다. 금년 봄까지에 방축은 완성되었으나 내부의 개간이 미처 되지 못해서 금년은 본래부터 갈아먹던 일부에 겨우 파종하였을 뿐으로 따라서 작인도 불과 몇 사람밖에 되지 않았다. 또 아직은 소위 모범경작인들이나 이주농민도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동은 대개 종걸이가 앞장을 서서 일을 보는 관계로 근방에서는 모두 ‘종걸이 동, 종걸이 동’ 하고 부른다.

종걸이는 이 동리로부터 한 십여 마장 떨어져 있는 자기 마을 앞에 있는 사사끼 뽕밭과 그 양잠소 일까지 감독하는 터이고 또 농민들로 보아서는 놀랄 만한 월급을 받는 사람이므로 이 지방에서는 그를 큰 지주만치나 생각하고 부러워하는 터이다.

“선생님!”

하고 농군들은 달마같이 내민 그의 배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깨어진 양금같이 가늘고 비린 그의 목소리조차 무슨 복을 누리는 타고난 특징인 것같이 농군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그를 부러워했더니만치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만이라도 존경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 아랫동을 치는 때부터 그를 꺼림히 생각하던 윗동 소작인들은 인제 와서는 첫째 그를 원망하게끔 되었다.

“똑 저 동 때문일세.”

“옛날 같으면 될 말인가? 글쎄 잘 흘러가는 물을 막다니! 산 눈 빼먹을 세상이여.”

지나 놓고 보니 옛날은 대명천지 밝은 낮같이만 생각되는 늙은 축들은 바뀐 세상의 재미를 통 알 수 없다. 김갑산 동이 처음 개간될 때 그 근방 몽리(蒙利) 백성들이 인수와 배수 문제로 한참 말썽을 일으키던 것은 거진 잊어버린 듯이 까먹고 지금 그들이 당면한 위험만이 가냘프게 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저 동을 터놔야지 별수없어.”

“빌어먹을, 밤까지 비만 멎지 않어 봐라…… 괭이 하나면 알아본다.”

“글쎄 오늘 밤에는 무슨 변통이라도 해야겠네.”

기술이네 젊은 패들은 이렇게 공론들이다. 밤까지 비가 멎지 않고 물이 불으면 하는 수 없이 물길을 터놔야 하리라고 마음과 입으로 우선 벼르고 있다.

인제 한두 자만 중수되면 딴은 터지고 마는 동이다!

4

조마조마한 맘으로 가래질하듯 깔깔한 저녁밥을 퍼놓고 나니 벌써 밤은 어둡기 시작한다.

“물이오, 물!”

몸서리치는 불길한 소리가 비와 어둠에 잠긴 S마을을 흔든다. 목청 좋은 박 영감의 의치는 소리다.

“방천(방축)으로 나오너라. 방천으로…….”

목대 센 긴 소리가 마을 위로부터 아래로 내리달린다. 박 영감은 워낙 몸이 꽈장꽈장해서 ‘세미꼬장떡 ’이라는 젊었을 때에 듣던 별명을 여태 보지하고 있는 세괃은 늙은이요 또 목청 좋은 늙은이다. 화예도듬[挽歌]을 잘 불려서 옛날에는 인근 상가로 단목으로 불려다니었으나 지금은 그런 풍속이 없어져서 그것을 하지 못하는 대신 동리에 혹시 수재라든가 화재라든가 하는 불길한 일이 생기면 누가 해라 말아라 할 것 없이 그는 제김에 뛰어나와 소리소리 외치고 다닌다.

“방천으로 나오너라.”

하고 기술이가 맨 앞에 선 아낙에게 말할 때에 불은 꺼진다. 아낙들 함지의 흙은 연해 그곳에 내리붓긴다. 젖은 흙이 떨어지는 철썩철썩 하는 소리, 그것을 발과 곤장으로 밟고 다지는 끙끙거리는 소리…….

“자아 인제 됐소다.”

기술이가 그만하고 턱석을 방축에 거넘겨 덮으려고 방축으로 올라오려 할 때에 흙 한 함지가 바로 그의 낯짝에 철썩 하고 떨어진다. 놀란 흙덩이가 그 아래 물을 갈기며 흙물 방울이 기술의 눈과 입을 때린다.

“에 ―― 튀.”

기술이가 침을 튀튀 뱉으며 눈을 썩썩 비빌 떼에

“어디가 어딘지 보여야지……”

하는 미안한 웃음을 머금은 듯한 여자의 부드러운 소리가 언뜻 들린다.

“불이나 좀 있었으면…….”

두 번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릴 때 그는 그것이 금순인 것을 분명 알아채며 댓바람에 가슴이 뜨끔해졌다.

“비두 무슨 놈의 빈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며 금순이가 부린 흙을 다시 한 번 알심 있게 흙을 밟을 때에 누가 또 성냥을 툭 켠다.

“하하하…… 쥐 밟아 논 것 같구나.”

하고 성냥 켠 사람이 껄껄 웃어대다가 저도 금순의 흙을 한번 맞아 보고 싶다는 듯이

“아 내가 거게서 일하겠다.”

하고 성냥 한 개비를 또 켠다.

금순은 함지를 잡은 팔로 얼굴을 가리며 슬쩍 돌아서 버린다.

“금순이 한 함지 더 붓소나.”

하며 그 사내가 훌쩍 뛰어 기술이가 선 곳으로 내려갈 때에 불은 그만 꺼지고 만다.

“야 담배나 있으면 한 대 보내라.”

별안간 구미가 동한 듯 이렇게 말하는 기술이가 어둠 속에서 금순이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 시내는 발길로 기술을 툭 차준다.

“이눔아 어느 하가에 담배를 먹구 있겠니? 이왕이면 입에 들어간 흙물이나 다셔라. 꿀 같을 거다. 히히히……”

금순이가 가버린 것을 안 때에 기술은 말목을 메고 다른 데로 옮겨 간다.

이어 말뚝 박는 소리가 떵떵 울려온다.

긴 방축 이곳저곳에서 일하는 사람물의 말소리, 힘주는 소리, 메치는 소리가 혹은 높게 혹은 낮게 들려온다.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며 따라서 빗소리도 그만치 얕아진다. 그러나 흐르는 물소리가 더욱 처참히 들려 온다.

삼십 호 소작인들은 보탬이 될 만한 것은 하나 빼지 않고 죄다 방축에 덮고 처박고 하였다.

비가 좀 짐짓해지자 고불통대가 반딧불같이 반짝반짝하기 시작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번 물은 기미년이나 임신년이나 무진년 창파보다 더 크면 컸지 못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이제는 서쪽 하늘이 좀 변해지는 걸 보니 비가 멈출 것 같다는 것도 말한다. 그러자 맘들이 좀 누그러지는지 누가 기미년 대창 뒤에 박 영감이 중의 일하던 이야기까지 꺼낸다.

그러나 새벽이 당겨 오면서부터 비는 다시 채찍같이 퍼붓기 시작한다. 비가 멈췄던 사이에도 물은 적잖게 중수되었다. 방축은 인제 두세 뼘밖에 남지 않았다. 낮은 방축은 앉아서 세수할 만치 물이 남실남실 넘어오는 곳도 있다.

“아매도 저 동을 데야 되겠다.”

경각에 달린 위기를 구하는 마지막 한 가지 희망은 물길을 막는 그 동을 테버리는 데에 있을 뿐!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늙은 축의 망설이던 생각도 이 위기 앞에서 난짝 죽어 버리고, 삶을 찾는 새 결심이 살아왔다.

“법 ? 흥……”

“우선 살구 보자!”

“우리도 먹어야지……”

그러나 젊은 패가 괭이, 부삽, 호미를 메고 아랫동으로 꼬리 빠지게 내리달린 지 한참 이윽한 그날 새벽에 김갑산의 동은 기어코 터지고야 말았다.

탕― 우루루 탕 우루루.

방축이 끊어지며 물살이 곤두박질쳐 쏴 들어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히 처참히 들려온다. 지향없이 뛰어다니는 소작인들의 머리는 그만 귀박(鬼搏) 맞은 소같이 땡해졌다.

미친 바람이 이리 날리고 저리 뛰는 비 갠 새벽, 밀물이 갈라먹은 스물여섯 군데의 터지기를 심술궂은 구름은 비웃듯이 내려다보며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랫동은 터지지 않았다. 넓은 김갑산 동으로 많은 물이 퍼져 들어오며 아랫동 방축은 물이 줄기 시작하였다.

우중중 높은 방축이 보아라는 듯이 얕은 어둠 속에 거만히 도사리고 있는 것 같고 비 먹은 파아란 벼잎이 바람에 선들선들 웃음 웃듯 나부끼고 있다.

김갑산 동의 소작인들이 곰의 쓸개를 깨문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맥없는 손으로 방축에 덮고 처박은 턱석, 소미포대, 섬짝, 삿갓, 구시, 발목…… 이 같은 것을 주워 모으는 그날 석앙까지도 벼판은 흙물 속에 잠긴 채 잎사귀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이틀 만에야 갈매에 싸인 벼잎이 물 위에 내밀었으나 때마침 이삭이 팰 즈음, 물에 잠겨서 이삭은 잎 속에서 시든 채 패지 못하고 말았다. 조금씩 내밀었던 이삭은 뿌옇게 말라 갔다. 벼가 염병이나 하고 난 것같이 이골이 들었다.

그 볏짚으로는 가마쓰는 물론 변변한 새끼 한 오리도, 출한 짚신 한 켤레도 만들어 낼 수 엾다. 이엉짚(지붕 이는 짚)으로도 쓰기 어렵고 흙이 묻어서 소죽도 끓일 수 없다. 이끈해야 불이나 때겠으나 그도 흙물에 절어서 불땀이 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무얼 먹고 사나 하는 것이 맨 큰 걱정이었다. 드지는 어찌하며 빚은 어찌할까? 거름 값은 누가 물며 이자는 누가 치르나? 삼동설한은 어떻게 지내머 다음해 춘경은 어떻게 해태나? 아니 저 방축 터지기는 누구의 손으로 꾸어맬 것 일까?

홍수는 산더미 같은 설움과 걱정을 가뜩이나 지친 그들의 등에 처옆어 놓은 것이다.

봄까지 방축 역부는 계속되었다.

그때 B정거장 앞에는 불에 그을은 판장으로 지은 검은 집 다섯 채가 새로 섰다.

사끼가 고향에서 데려다가 몇 해째 시험농작을 시켜 보던 모범농민들이 이 봄부터 그 농장에서 경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학교 졸업생 중에서 선발된 밀짚모자 쓴 짊은 모범경작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이 검은 집에 모여들어서 백비탕을 마시고는 농장에 나가서 일들을 한다. 밀구루마를 놓고 규모 있게 부지런히들 일을 해댄다. 금년 봄으로 말끔 기경하자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