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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큰언니>
설금호 여사는 나의 큰언니이자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50년 가
까이 살고 있는 재미교포 1세이다. 초
창기엔 사느라 정신없던 언니가 오카
리나를 불면서부터 두, 세 해에 한 번씩
한국을 다녀갔다. 그런데 코로나에 발
이 묶여 꼼짝 못 하더니 7년 만에 비행
기표를 끊었다.
“날짜 알려줄게. 빨리 달력에 표시해.”
서두르는 언니의 목소리에 설렘이 묻
어났다.
교민들에게 오카리나를 가르치고 있
는 언니는 수강생들과 양로원이나 교
회 등으로 봉사활동을 다닌다. 하지만
처음부터 오카리나를 분 것은 아니었
다. 플롯으로 시작하여 지역사회 오케
스트라에서 열심히 활동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악기를 바꿔야겠다고 했다.
“나이가 드니 악기가 무거워서.”
그러던 언니가 얼마 후 솔직하게 고백
했다.
“내 실력과 경력이면 수석 플로리스트
가 돼야 해. 그런데 미국인에게 돌아갔
어.”
언니의 분개가 이어졌다.
“이건 차별이야.”
그렇다. 남의 나라에서 살다 보면 이
런 일이 한, 두 번이겠는가? 한국 국적
이 미국으로 바뀐다고 동양인이 서양
인으로 바뀌는 건 아니니까.
얼마간 고민하던 언니가 자존심을 살
리기로 했는지 오케스트라 단원을 포
기했다. 가볍고 예쁜 소리가 난다며 오
카리나를 불더니 지도자로 나섰다. 수
강생이 늘자 합주를 위해 알토, 소프라
노 등 다른 파트도 필요해졌다. 그때부
터 언니의 방문 목적은 오로지 오카리
나였다. 국내 머무는 동안 소리 좋은 악
기와 악보를 찾고 전문 오카리나 연주
자도 만나기에 바빴다. 그것은 발전하
는 한국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엔 오롯이 한국을 돌아보고 싶다
는 여든둘의 설금호 여사!
“언니, 뭐가 제일 보고 싶어?”
“봄빛!”
대한민국 3월엔 진달래, 개나리와 벚
꽃이 있다.
“어딜 제일 가고 싶어?”
“바다!”
미국은 하나의 주가 우리나라보다 넓
은 곳이 많다. 바다에 가려면 우리가 동
남아로 여행 가듯 별러야 한다. 차라리
다른 나라부터 가보자는 생각이 앞섰
겠지.
‘젊었을 땐 멀리로, 나이 들면 가까이
로’
그 후 우리는 매일 통화했다. 여행 이
야기는 하고 또 해도 좋다. 수십 번 여
행지를 바꿔가며 수다를 떨어도 즐겁다.
어제는 부산으로 오늘은 진도로 가
도 끝은 언제나 비슷했다.
“어디가 더 좋을까?”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이다. KTX는
서울역에서 두 시간 반 정도면 동해, 남
해, 서해를 막론하고 어디든 닿을 수 있
다. 우리는 직장인들의 당일치기 출장
이 가능한 나라, 아침에 내려가 부산 자
갈치 시장에서 회 먹고 시내 관광을 마
친 후 저녁 기차로 올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맘만 먹으면 어딘들 못 가
랴. 걱정말고 오시라!
언니는 2025년 3월18일 오후 5시, 인
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다.
“Well come to 큰언니!”
우리는 다음 날부터 진지하게 여행계
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언니는 몇 번을
물어도 무조건 바다였다.
‘바다는 동해안!’
나에게 이 공식이 자리 잡은 건 고딩
수학여행을 설악산과 경포대로 갔기
때문일 것이다. 첫 기억은 강렬하고 추
억은 아름다우니까. 더구나 평창동계
올림픽 이후로 교통까지 편해졌으니
일석이조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두 시간이야. 경
포대에서 점심 먹고 놀다 와도 충분해.”
언니는 놀라서 되물었다.
“정말?”
“앞으로 놀라 자빠질 일이 스무 가지
도 넘을걸?”
나의 장담에 긴가민가하던 언니의 깜
놀은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전날 밤 10
시에 주문한 먹거리가 다음 날 새벽 현
관문 앞에 도착한 것이다. 솔직히 우리
나라의 새벽 배송은 내가 생각해도 놀
랍다.
가고 싶은 곳이 많은 언니가 결정이
어려웠는지 모든 계획을 나에게 맡겼
다. 마침 2025년 1월 1일 동해선이 개통
되었다.
“강릉에서 포항까지 바다 보며 가자.”
언니는 ‘바다’ 소리에 흥분했고 ‘기차
안에서’ 소리에 즐거워했다. 교통이 좋
아지니 1박 2일도 충분하다. 그런데 막
상 현지 교통을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포항에선 어떻게 다니지?”
가고 싶은 호미곶, 보경사, 죽도시장
등을 검색하니 포항역에서 호미곶, 호
미곶에서 보경사까지도 아주 멀다. 대
중교통은 어렵겠다. 택시로 다닌다 치
면 다음 목적지까지 원하는 시간에 차
를 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
능할 것 같았다. 우리가 운전하여 다니
는 것 역시 엄청난 부담이다.
생각다 못해 포항시청 홈피에서 여행
안내를 살폈지만 기대했던 정보는 없
다. 어느 지역이든 관공서 홈피는 행정
이 중심이니까. 다시 여기저기를 뒤지
고 있는데 갑자기 ‘퐝퐝여행’ 사이트가
떴다.
“심봤다!”
포항이나 국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면 퐝퐝여행에 접속해 보시라. 나는 펼
쳐지는 첫장에서 맞춤형 교통편 ‘관광
택시’를 찾았다. 관광택시를 클릭하니
이용 안내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요금
은 기본 3시간에 8만 원, 5시간은 12만
5천 원이다. 초과시간 발생 시 시간당 2
만 5천 원, 10분당 4천 원이 추가된다.
퐝퐝여행에 1코스부터 3코스까지의
여행 노선도 나와 있지만 우리만의 코
스를 안내받고자 054 270 2373으로 전
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자 곧 연결
되었다. 그분께 우리의 여행 취지를 설
명하고 여러 가지를 문의했다. 어찌나
친절하게 답을 주시던지, 낯설었던 포
항이 갑자기 정겨운 고향으로 다가왔
다. 코스는 당일 기사분과 더 의논하기
로 하고 예약을 마쳤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속을 벗어나 보
자!”
1.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
2025년 4월 8일 새벽같이 눈을 떴다.
언니는 벌써 일어나 화장하고 옷까지
입고 있었다. 여행은 어린 시절 소풍처
럼 몽글몽글 설레임으로 시작된다. 일
행은 넷이다. 계획으론 큰언니와 올케
언니 그리고 나, 여자 셋뿐이었는데 오
빠가 ‘포항’ 소리에 따라나섰다. 건축과
출신 나의 오빠는 포항을 사랑한다. 그
곳에 오빠가 지은 건물들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택시는 넷까지 탈 수 있으니
잘 됐다.
일산 킨텍스역에서 GTX를 탔다. 서울
역까지 17분, 자리에 앉아 어영부영하
다 보면 내려야 한다.
“서울역 맞아?”
너무 빠른 도착에 놀란 언니가 보전
중인 옛날 서울역 건물을 보더니 뒤로
자빠지려고 했다. 대한민국 대중교통
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오전 7시 59분 서울역에서 출발한 강
릉행 KTX는 양평, 횡성, 평창, 진부를거쳐
오전 10시 4분 정시에 도착했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관광안내소
로 갔다. 초당두부에 대해 물으니 모르
겠단다. 식당 전화번호라도 알려달라
니까 더욱 황당하게 답했다.
“우리가 어떻게 식당 전화번호까지 알
아요?”
나는 더 황당해서 그곳을 나와 간판을
다시 봤다. 관광안내소가 맞다. 그런데
자기 고장의 그 유명한 초당마을 전화
번호를 모른다니! 결국 네이버 지도로
찾아 전화를 걸었다. 우려와는 달리 오
전 8시부터 문을 열었다기에 안심하고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10분 후에 우리
를 초당마을 ‘할머니 두부’ 앞에 내려주
셨다.
초당마을은 전체가 두부 관련 식당이
다. 그런데 관광안내소에서 몰라? 아무
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식문화는
여행에서 중요한 일정 중 하나이다. 더
구나 ‘강릉’하면 ‘초당두부’ 아닌가.
‘유명 관광지가 많아서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섬세한 부분에 소
홀한 것 같아 아쉬웠다. 아니, 포항과
대비되어 더 마음이 상했다. 관광안내
소는 외지인들에겐 관문과 같다. 그들
의 대응에 따라 지역의 인상이 달라진
다는 것을 아시는가?
경포해수욕장은 날이 흐렸거나 말거
나, 우리 기분이 상했거나 말거나 변함
없이 우리를 반겼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모래밭 한쪽에는
흰 서프보드가 6층 철제보관소에 층층
이 엎드려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보드는 언제 사람들을 태우고 푸른
바다 위, 하얀 파도 등에 올라서려나?
언니는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모래밭
을 다니며 즐거워했다. 걷기도 하고 달
리기도 하며 파도와 술래잡기를 하더
니 모래를 집어 바람에 흩뿌리기도 했
다. 나는 그런 언니를 고스란히 사진에
담으려고 숨차게 따라다녔다. 바람이
많이 불어 생각보다 추웠지만 마음만
은 펄펄 끓고 있었다.
그 마음 그대로 경포호로 넘어가니 만
개한 벚꽃들이 우리를 맞았다. ‘어서
와. 여기가 강원 8경 중 하나인 석호 경
포호야.’ 하며 손까지 흔들었다.
“유튜브에서 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벚꽃 나라 중에 한국도 있더라.”
언니 말에 나도 동의했다.
“DNA 분석 결과 왕벚꽃 원산지가 제
주도라는 것이 밝혀졌어.”
우리는 흐드러진 벚꽃 아래서 포즈를
취했고 오빠는 우리를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벚꽃은 집단의 힘이 강한 꽃이
다.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을 순식간에
풀어주는 힘도 가졌다. 한꺼번에 화르
르 피어나 한꺼번에 하르르 꽃잎을 떨
구지만 떨어진 그 자리도 아름답다. 나
는 그 모습을 동시에 담아낸 적이 있다.
왕벚나무야
설용수
넌 정말 예뻐.
가지마다 송이송이 분홍꽃 피우면
너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벚꽃놀이가 생겼지.
꽃잎 질 때도 예뻐.
바람 불면 흩날리는 꽃잎이
수백 마리 나비 떼가 되어
하르르 하르르 날아다니지.
꽃잎 떨어진 자리도 예뻐.
분홍 이파리 쌓여 분홍카펫 이루니
왕자님, 공주님 바람 소리에 맞춰
살폿 살폿 춤추고 싶을 거야.
그렇게 예쁜 왕벚나무야,
네 고향은 어디니?
-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섬
제주도지.
2. 강릉에서 포항으로
당일 오후 5시 11분 강릉역을 출발하
여 오후 8시 26분 포항역에 도착하는
동해선을 탔다. 차편이 하루에 편도 8
회뿐이다. 편 수가 적은 건지 이용객이
많은 건지 며칠 전에 예약했건만 우리
넷의 좌석은 제각각이었다.
기차는 줄곧 해안가를 달리는 줄 알았
는데 정동진역 근처에서 잠깐, 또 어딘
가에서 잠깐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우
리에겐 바다보다 식당 칸이 더 필요했
다. 간식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따로 앉
아있어 그것도 곤란했다. 배고픔? 여행
의 필수조건이라 생각하며 참아야 했
다.
포항역에 도착하니 밖이 캄캄하다. 불
빛은 한참 멀리 보인다.
“아, 포항역은 나홀로 서있구나.”
저녁은 어디서 먹나? 한쪽에 마련된 구
내식당으로 가니 메뉴가 돈가스, 떡볶이
등 노인들이 먹기엔 불편한 것들 뿐
이다. 갑자기 고향 같던 포항이 멀고 먼
타향같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도 포항시에 묻고 싶다. 방
문객들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황량한
대접을 할 것인가? 먼 길 달려간 노인들
이 편의점에서 달걀 몇 개와 우유 몇 개
를 사 들고 숙소를 향해 택시 타는 것이
괜찮다 생각되시는지? 대한민국의 대
포항역 구내에 따뜻한 밥집을 유치하
는 것이 정녕 어려운 일인지?
어디나 사정은 있다. 오죽하면 ‘처녀
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
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
은 서울이 고향인 나 같은 사람에게 제
2의 고향이 되어 줄 수는 없을지!
다음 날 오전 8시, 기사님이 숙소 앞에
도착하셨다. 우리는 목적지를 말씀드
리고 시간이 남으면 오가는 사이에 어
디든 데려가 주십사 부탁드렸다. 오빠
는 차가 시내를 지날 때 한국은행 포항
본부 앞에서 잠시만 세워달라고 특별
주문을 했다. 택시는 시내를 벗어나 봄
꽃들이 피어있는 들판을 달렸다.
1) 보경사와 12폭포
첫 목적지인 보경사는 신라의 지명법
사가 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
와 창건하였다.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 속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
당을 건립한 뒤 ‘보경사’라고 했다.
우리는 보경사와 12폭포를 두 시간에
돌기로 하고 경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찰 주위의 울창한 송림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역사 깊은 절에는
저절로 압도되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
다. 오랜 세월 누적된 시간이 감싸는 신
비롭고 두툼한 공기의 흐름이랄까? 보
경사에서도 그 소중함을 안고 경내로
들어섰다. 그런데 유난히 조용하고 엄
숙한 공기가 우리를 눌렀다. 뭐지?
대웅전에서 삼 배를 마친 후 보살님께
폭포 가는 길을 물었다. 경북에서 발생
한 대형산불로 인해 도내 모든 산의 입
산이 통제되었다는 슬픈 소식이다. 산
불이 보경사 턱 앞까지 번졌었다는 말
에 걱정 반 안도 반의 한숨이 나왔다.
범접할 수 없던 분위기가 바로 그것 때
문이었구나.
12폭포를 못 보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 이유가 안타까워 자꾸 뒤
를 돌아보았다. 산들은 청정한 얼굴로
우리를 배웅했지만 불타고 있는 옆 동
네를 보고 있던 그 맘이 오죽했으랴. 우
리는 괜찮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길 또한 언제든 나설 수 있으니 늘 건재
하시라!
2) 이가리 닻 전망대
이가리 닻 전망대는 탁 트인 바다와
전망대 건축물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
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잔잔한 바다의
수평선은 언제봐도 평화롭다. 가슴을
열고 들숨 날숨을 크게 쉬자 폐 안에 쌓
였던 공해가 옅어지는 느낌이다. 계단
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서니 비릿한 내
음이 코를 찔렀다. 어디선가 그 갯내가
건강에 좋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크고 작은 바위를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데 낚시하던 두 분이 우리에게 낚
싯대를 건네주셨다. 펄떡이는 생선 한
마리가 바늘에 달려 낚싯줄로 그네를
탔다. 낚싯대를 쥔 손으로 한 생명체의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키 큰
조사님이 신기해하는 우리 모습을 친
절하게 카메라에 담아주셨다.
3) 사방공사기념관
다음 목적지는 사방공사기념관이다.
주차장에 내리니 멀리 산 허리에서 사
방공사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물론 조
각상이다. 굳이 사방공사를 기념할 일
이 뭐가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기념관
으로 들어섰다. 안내하시는 분의 설명
은 다음과 같다.
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했
던 우리나라의 산은 조선시대의 온돌
문화 정착과 일제강점기의 산림 수탈,
6.25 전쟁 등에 의해 빠르게 황폐되었
다. 병충해, 간벌, 도벌, 크고 작은 산불
까지 산의 사막화를 가속시켰다.
전국의 민둥산에 본격적으로 나무 심
기를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 1977년
까지 ‘제1차 치산녹화 계획’에 의해서
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단 포항의
영일지구가 치산에 실패한 이유를 분
석하니 토양이 뻘흙(이암)이기 때문이
었다. 흙을 바꾸어야 나무 심기가 가능
했다.
당시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로 연간
313만 명에서 330만 명까지 동원되어
330만t에서 360만t까지의 흙을 지게로
지어 날랐다. 산에 둑을 쌓고, 흙을 붓
고, 나무를 심었으니 지금은 단어조차
생소한 ‘사방공사’가 영일 지구의 치산
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이다. 지금
도 개발도상국에서 우리의 산림녹화를
배우려고 찾아온다. 뿐만이 아니다. 우
리나라의 봄철 모래바람의 시작점은
몽골의 고비사막이다. 20여 년 전 대한
민국은 모래바람 가득한 몽골의 황량
한 사막을 숲으로 바꿀 결심을 했고 그
결과는 위대했다.
산림청이 한‧몽 그린벨트 조림 사
업으로 심은 423,663그루의 나무가
3,046ha의 면적을 거친 사막에서 푸른
숲으로 바꿔놓았다. 유한킴벌리, 대한
항공 등의 기업과 수원시, 인천시 등의
지자체가 심은 나무까지 계산한다면
훨씬 넓은 면적이 울울창창 숲으로 살
아나고 있다. 쉬웠을까? 천만의 말씀!
물이 부족한 몽골 사막에서 가축들의
먹이가 되던 나무들을 지키기 위해 특
수 수종 개발, 울타리 치기, 주민들의
숲에 대한 교육까지도 병행했다. 미국
나사에서는 우리의 나무 심기 덕택에
황사량이 매년 1.5% 줄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25년 4월 10일 제221차 유네스코 집
행이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산림녹화기
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산림을 위해 수고하신 관계자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사방공사 기념관에
는 4대 사방인 해안, 산지, 야계, 조경 사
방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정원도 있다.
포항을 여행하는 분들께 강추!
4) 스페이스워크와 죽도시장
스페이스워크는 트랙 길이 333미터,
계단 수 717개의 철로 만들어진 우아한
곡선의 조형물이다. 아찔한 높이의 계
단을 걷다 보면 360도로 펼쳐진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포항의 아름다운 풍
경과 제철소의 찬란한 야경 그리고 영
일만의 일출, 일몰까지도 감상할 수 있
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단 19개’
로도 선정된 바 있는 스페이스워크는
관객의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참여형
작품이다. 아랫배가 짜릿짜릿한 스릴
을 맛보고 싶다면, 잠시나마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힘차게 걸
어보시라. 바람이 불면 전체가 흔들리
는 미세한 느낌까지도 사랑하게 될 것
이다.
점심은 포항의 명물 물회를 먹기로 했
다. 기사님이 우리를 식당 앞에서 내려
주셨다. 함께 드시자고 했지만 식사가
끝나면 전화하라는 말씀만 남기고 떠
나셨다. 포항 물회는 빨간 국물에 달콤
새콤이 아니라 맛난 된장에 비빔이었
다. 사근사근한 배가 많이 들어있어 회,
배, 집된장과의 맛이 잘 어우러졌다.
죽도시장은 넓고 풍요롭다. 인심도 좋
다. 언니는 맛있는 먹거리를 보며 꽤나
신기해했다. 어렸을 때 먹던 호떡에 수
수전병, 떡볶이에 어묵, 각종 튀김에 오
란다까지 그 맛이 여전하다며 보이는
것마다 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대중교
통을 이용하는 우리에겐 언감생심! 그
저 죽도시장 근처에서 살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5) 한국은행 포항본부와 오어사
죽도시장에서 오어사로 가는 길에 한
국은행 포항본부 앞에서 잠깐 내렸다.
30여 년 전에 비해 주변이 많이 변해서
잘 모르겠다던 오빠가 은행 건물은 확
실하게 알아봤다. 5호 광장 사거리의
한쪽 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그 건물
은 지금 지었다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현대미를 갖추고 있었다.
기사님이 은행을 뚫으려면 어디가 가
장 취약하냐며 농담을 하셨다. 오빠는
어느 갱단이 와도 절대 뚫을 수 없을 만
큼 견고하다고 했다. 시간상 은행 내부
를 못 본 것이 아쉬웠다.
한국은행포항본부 운제산의 오어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창건된 사찰로 당시에는 ‘항사사’라
불렀다.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
에서 수도할 때 법력으로 개천의 고기
를 생환토록 시합했는데 한 마리는 죽
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
쳤다. 그 고기가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
라 하여 나 ‘오’에 고기 ‘어’를 써서 ‘오
어사(吾魚寺)’라고 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나한전, 설선당, 산
령각 등이 있는데 대표 유물로는 경북
문화재 제88호인 대웅전, 국가 보물 제
1280호인 범종, 원효대사 삿갓 등이 있
다. 저수지를 따라 걷는 길도 좋고 오어
사 앞 다리를 건너 산책길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 또한 미련을 버리고 발길
을 돌렸다.
6) 유채밭과 호미곶
우리는 당일 오후 4시 21분 포항발 서
울행 기차를 타야 한다. 늦어도 오후 4
시 10분까지는 역에 도착해야 한다. 기
사님은 기차 시간을 확인하더니 호미
곶에서 긴 시간 머물 수 없다고 하셨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일을 모두 해
내기란 일상에서도 쉽지 않다. 더구나
여행 중에는 보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많아 자꾸 주춤거리게 된다. 결국
맨 뒤의 계획이 짧아지는 수밖에!
기사님이 호미곶 근처 유채밭 앞에서
차를 세우셨다. 봄날 유채밭은 더 이상
귀하지 않다. 벚꽃만큼이나 흔하고 영
산홍만큼이나 많이 심은 작물이니까.
그런데 그곳 유채꽃들이 유난히 노랗
게 보인 것은 날이 적당히 흐려서일까,
푸른 바다가 배경이기 때문일까, 나의
마음이 아쉬움으로 둥둥 떠 있었기 때
문일까. 눈부시도록 노란 유채밭으로
들어갔더니 손도 얼굴도 마음까지도
노랑노랑 물들었다. 사진도 노랑노랑
물든 채 나올 것 같았다.
마지막 여행지 호미곶! 호미곶은 우리
나라 최동단에 있다. 지형상 호랑이 꼬
리가 된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
들면서 이곳이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
임을 확인하기 위해 무려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고 한다.
넓은 광장에 솟아있는 거대한 조형물
은 ‘상생의 손’이다. 근육이 울근불근한
팔뚝에 손금까지 선명한 왼쪽 손은 바
다를 보고 있다. 해변으로 가면 바닷물
속에서 우뚝 솟아있는 또 하나의 손이
육지를 보고 있다. 오른쪽 손이다. 왼손
엔 육지의 잔잔한 바람이, 오른손엔 바
다의 잔잔한 파도가 이들을 감싸고 있
었다. 상생의 손에는 새천년을 맞아 국
민 모두가 서로를 돕고 살자는 뜻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서둘러 포항역으로 가야 한다.
시내가 얼마나 막힐까에 따라 도착시
간이 달라지겠지만 이럴 때 관광택시
의 위력이 발휘된다. 기사님은 가능하
면 덜 막히는 길과 차선으로 달려 기차
출발 20분 전에 역 앞에 내려주셨다. 포
항시에서 능력을 인정한 기사님들이니
언제, 어느 분을 만나도 편안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 좋은 시스템이
다.
포항역에서 서울역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언니는 기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보며 그동안 수없이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한국 사람들 정말 행복한 줄 알아야
해.”
어디든 설치되어있는 장애인 시설을
봤을 때도, 깨끗하고 조용한 대중교통
들을 이용했을 때도 그 말을 했다. 지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의점들, 정자들,
깨끗한 집들, 그 앞에 세워진 자동차들
을 보고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나라의
복지시스템에 대해 알았을 때는 진심
으로 감탄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노력에 감사할 뿐
이지!”
현재 7080세대들은 육이오 이후 그 거
친 삶을 어떻게 벗어났는지 안다. 한강
의 기적이 무슨 말인지도 알고 있다. 한
세대가 태어나 사라지기 전에 ‘전쟁의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경이로
운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다면 나와보
시라. 우린 그렇게 자랑스런 대한민국
에서 살고 있다. 세계 어디든 가슴 펴고
다니자.
나의 큰언니는 2025년 4월17일 오전
10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대
한항공 편으로 떠났다. ‘일주일만 더 있
으면 영산홍이 활짝 핀 거리를 볼 수 있
으련만, 이주일만 더 있으면 고양꽃박
람회를 볼 수 있을 텐데’ 하며 미련을
떨치지 못했지만 비행기가 만석이라
표를 바꿀 수 없었다.
교민들 사이에서 이중국적을 취득하
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사는 것이 유
행이란다. 나라가 가난할 때 떠나 온갖
고생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걱정하시던
분들이다. 지금이라도 오셔서 훌쩍 큰
조국의 품에서 편히 사시라 권하고 싶
다.
Well come to Korea!
설용수 극작가와 김재순 시조명인

첫댓글
아니! 김 씨 언니가 설 씨라니 뭔 일인가 싶어 처음은 잘 읽다 눈이 아프기 시작한다. 글의 내용으로 봐서 아라 공주 글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하여튼 왜! 짧은 20자로 적은 여인의 긴 넋두리 형 형식을 취했나?
이 경우는 대충 적당히 두 줄씩 내려 읽어도 내용은 파악된다. 결국 극작가의 언니 글 이었다. 사진을 보니 언니 사진이 공주보다 젊어서 미련한 늠이
알아차렸네. 한국 많이 변했지! 한국에 사는 사람은 우리나라 좋은지 모르고 미국 사는 사람이 치료비 없으면 슬쩍 와서 고치고 가는 좋은 나라지!
작가의 글이라
보이고, 들리고,
냄새도 나는데요...
저랑
갑장인 극작가를 며칠 전에 처음 만났어요.
단톡으로나 안부를 주고 받던 사이였는데 함안여행기를 쓰기 위해 함안으로 오면서 저랑 이틀을 동행하게 되었답니다ㅡㅡ
그러면서 지난 발표작을 저에게 보낸 것을 올렸지요.
제 언니는 아니니까 설씨랍니다ㅡ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