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스크바 방문 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화상 혹은 전화 접촉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총리급 인사 가운데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리나 베레슈추크는 21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두 정상간의 접촉이 이뤄질 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직 모르지만, 우리는 컨펌(확인)을 기다리고 있다"며 "두 정상은 서로에게 할 말이 있다"고 답변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도 이날 "시 주석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만약 이뤄진다면, 중국은 모스크바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군) 춘계 대반격 작전 이후, 그 결과에 따라 시작할 수 있는 위기 해결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중국이나 중국의 자체 평화안(우크라이나 위기를 보는 중국의 입장문)을 비판하지 않는 것에 서방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고 썼다.
푸틴 대통령:중국의 평화안은 우크라이나 평화 정착의 발판이 될 수 있다/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베이징을 투자자, 무역 파트너 및 잠재적 (평화) 중개자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며 "그는 러시아와 너무 가까워진 헝가리나 독일 등을 기꺼이 비난하면서도 모스크바의 제 1동맹국인 시 주석과는 긴 외교 게임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갖고 있는 평화 중재자와 미래 투자자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중국의 중재자 역할을 인정할 경우, 중국으로부터 전후 복구 사업에 조건없는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전쟁 기간에 거의 100%가 된 서방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진단이다. 그 시기는 봄과 여름 사이에 이뤄질 대대적인 반격 작전의 결과가 나온 뒤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G7 정상들과 화상 회담하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우크라이나가 중국의 자체 평화안을 대놓고 내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는 시 주석의 대러 무기 수출 허가 가능성이 꼽힌다. 스트라나.ua는 독일의 일간지 빌트를 인용, 시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 이후 "러시아가 중국에 소련제 포탄과 지뢰 등을 요청할 수 있다"며 "러시아는 소련제 무기에 필요한 구경 122㎜, 152㎜ 포탄이 부족하고, 155㎜ 포병으로 전환중인 중국은 앞으로 쓸모가 줄어든 152㎜ 포탄의 재고가 많다"고 전했다. 빌트가 예상한 러시아의 대중 무기 요청 가능 품목은 122㎜, 152㎜ 포탄 외에도 러시아의 다중발사미사일 시스템(MLRS)인 '그라드' 미사일과 박격포, 지뢰, 대전차 무기, 열화상 카메라가 장착된 민간 드론 등이다.
물론, 중국이 대놓고 러시아에 이같은 무기 공급 의향을 밝히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중국의 중재 의지를 무시한다면, 중국의 대러 무기 지원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고 본 것이다. 민간 드론의 경우, 중국은 이미 러시아에 제공한 것으로 미국 측은 보고 있다.
중-우크라 정상의 접촉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제기한 곳은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다. WSJ의 첫 보도에 대해 미하일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아직 너무 이른 이야기"라고 제동을 걸었으나,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16일 친강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함으로써 '살아 움직이는 주제'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쿨레바 장관은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회동 요청에도 시 주석은 직접 만나는 것은 원치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상 회담, 혹은 전화통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앞서 스트라나.ua는 17일 "쿨레바 장관이 친강 부장관의 전화 접촉에서 영토 보전 원칙의 중요성을 논의했다"며 "그가 우크라이나의 평화 회복을 위해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 공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전화 접촉후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대화와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으며, 아무리 어렵더라도 중국은 계속 위기 종식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중국은 위기의 장기화로 통제 불능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도 20일 "시 주석이 모스크바 방문 후 스스로 잠재적인 평화주의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조롱 섞인 반응? 서방의 대우크라 추가 군사지원안
시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을 앞두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은 20일 약속이나 한 듯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군사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EU가 12개월에 걸쳐 155㎜ 탄약(포탄) 100만 발을 추가 지원하기로 한 데 대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힌 뒤 “탄약의 신속한 전달, 지속적인 지원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서방 무기의 하역 장면/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이날 EU가 합의한 ‘포탄 100만 발’은 지난해 2월 개전 이후 현재까지 EU 회원국들이 지원한 누적 탄약 규모(약 35만 발)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소요 재원 20억 유로(약 2조8000억 원)는 EU의 별도 기금인 유럽평화기금(EPF)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10억 유로(약 1조4000억 원)는 기존의 탄약 재고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회원국에 지급하고, 나머지 10억 유로는 공동 구매에 참여하는 회원국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진통속에 가까스로 합의에 '포탄 100만발' 제공에 대한 서방 측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언론 매체의 반응이 재미있다.
스트라나.ua는 20일 "12개월간 제공될 포탄 100만개는 한달 평균 8만3,333개 꼴"이라며 "(이게) 많습니까, 적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나토(NATO)측 추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하루 5,000개의 포탄을 사용한다. 한 달에 15만개를 쓴다는 이야기다. 반면, 서방 언론의 추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155㎜ 포탄을 한 달에 9만개 이상을 사용한다. 현재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EU가 제공할 월 8만3천여개의 포탄은 우크라이나군이 쓰는 양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는 게 스트라나.ua의 계산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군은 전장에서 러시아군에 비해 포탄을 너무 적게 사용한다고 불평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서방 측의 포탄 생산 능력이다. 빨리 해결돨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나토 측은 아예 우크라이나군에게 더 정확하게 사격해 탄약을 절약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권고해 왔다.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스트라나.ua는 또 미국의 새 군사 원조안에 대해 "이번에는 단 3억5천만 달러(약 4천500억원)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미사일과 155㎜ 포탄, 대레이더 미사일 '함'(HARM), 81㎜및 60㎜ 박격포및 포탄 등 전제적으로 공격용으로 구성됐지만, 이전에 비하면 그 규모가 보잘 것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다 보니, 향후 서방측의 무기 지원 전망에 대해서도 우울한 뉴스들을 중점적으로 전했다. "키예프가 반격할 수 있는 기회는 한번 뿐"(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우크라이나가 독립(방어)을 지키지 못한다면, 다음은 우리(폴란드) 차례"(얀 에머릭 로스티셰프스키 주불 폴란드 대사) 라는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모두 '자칫하면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는 게 스트라나.ua의 해석이다. '우크라이나 승리, 러시아 패배'를 축으로 일관했던 이전 발언들과는 다른 맥락이다.
◇ 오늘(20, 21일)의 주요 뉴스 요약
- 러시아가 이달부터 시작한 석유 감산(하루 50만 배럴) 정책을 오는 6월 말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가 21일 말했다. 그는 "감산 결정은 시장 상황에 따른 것"이라며 "수일 내 감산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에너지 제재와 원유 및 석유제품 가격 상한제로 인해 세계 석유 시장은 유례 없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 러시아가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권단체 '메모리알'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메모리알은 21일 경찰이 메모리알을 지지하는 인권 운동가와 역사학자, 다수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전했다. 압수수색은 이달 초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중대범죄를 수사하는 조직)가 메모리알에 대해 나치즘 복권, 군대 평판 훼손 등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파악된 수사 대상은 얀 라친스키 메모리알 이사회 의장, 올레그 오를로프 이사회 멤버 등이다. 1989년 창설된 메모리알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권단체 중 하나로,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옛 소련권 국가들과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등 서방 진영에서도 네트워크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 러시아 국방부는 20일 발트해 상공에서 미국 전략폭격기의 영공 침범을 저지하기 위해 수호이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켰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발트해 상공을 관할하는 서부 공군의 방공 레이더 장치로 러시아 국경을 향해 날아오는 공중 표적(항공기) 2대를 포착했다”며 "이들이 미 공군 전투폭격기 B-52H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영공 침범을 막기 위해 러시아 수호이(SU)-35 전투기 1대를 긴급 출격시켰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4일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는 미 정찰 무인기(드론) MQ-9 리퍼와 충돌, 혹은 추락하도록 유도한 바 있다.
- 러시아 대통령행정실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국내 정치 분야 부서 직원들에게 아이폰 사용 금지 지침을 내렸다. 러시아 경제기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대통령행정실은 이달 초 모스크바 외곽 지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국내 정책, 공공 프로젝트, 정보통신기술 및 통신 인프라 개발 부서 소속 직원들에게 이런 방침을 전달했다. 일부 부서는 2024년 대통령 선거 준비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당시 세미나 참가자들은 아이폰 사용 금지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세르게이 키리옌코 대통령 행정실 제1 부실장이 오는 4월 1일까지 기기 교체를 완료하라고 지시했다고 코메르산트는 전했다. 한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3월 말까지 사용 중인 아이폰을 버리거나 자녀들에게 주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중대범죄를 수사하는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푸틴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과 관련,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와 검사를 상대로 형사 소송에 착수했다. 수사위원회는 20일 성명을 통해 "ICC 검사 카림 아흐마드 칸, ICC 판사 토모코 아카네, 로사리오 살바토레 아이탈라, 세르히오 우갈데 고디네즈에 대한 형사소송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ICC 체포영장이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중국 외교부는 "(ICC는) 법에 따라 신중하게 권한을 행사해야 하며 정치화와 이중 잣대를 피해야 한다"고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20일 "ICC의 권위는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이 저지른 범죄 조사를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완전히 훼손된 상태"라며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로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ICC 본부를 타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그는 "ICC에 참여하지 않는 핵강국(러시아)의 대통령을 재판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으로부터 그만큼 강력한 지시가 들어왔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와 미국은 모두 ICC 참여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