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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으며
최진석 교수는 1959.1.13. 전남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났으나 함평에서 자랐다고 한다. 서강대에서 철학과 석·박사로 1996년에는 북경대 대학원에 유학한 뒤, 현재는 서강대 명예철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저것을 버리고 이것을』『인간이 그리는 무늬』『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나는 누구인가』등이 있고,『중국사상의 명강의』『장자철학』『노장신론』『노자의소』등 번역서가 있다.
EBS에서 몇 번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은 있으나, 저서를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 화명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은 2017년4월 제7판으로 출간된 것이지만, 작년 2018년8월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개정판 서평에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볼 수 있고, 보는 만큼 행동하며, 행동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철학은 개인에게는 꿈을, 국가에는 미래를 담보한다. 최진석 교수는 시선의 높이가 곧‘삶의 높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좀 더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준다.”고 했다.
사유와 사색은 무엇이 다른지? 사유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질문을 안고 이 책을 읽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와 닿을 수 있을지, 이해가 될지 짐작도 잘 안 되는 마음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 그냥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만 난다.
좀 더 쉽게 쓴 출판사(21세기 북스)리뷰를 보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조금 짐작이 가까워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을 뺀 이론으로서의 창백한 철학만을 수입해왔고 직접철학을 생산해본 경험도, 생산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잘 못 수입한 철학으로 개인의 가치관, 국가의 산업뿐 아니라 삶 전체를 종속당했음에도 그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한탄하며 저자는 유일한 해결방법으로 ‘생각하는 철학’을 제안한다. 주도적인 생각으로 주체적 삶을 사는 개인이 많아질 때 정치와 경제적 위치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되기 때문이다. 이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과 국가의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야 하는 ‘철학의 실천법은 익숙한 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 내가 원했던 나를 찾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철학의 출발과 끝에는 궁극적으로 내가 있다.”고 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지금은 2019년 정초다. 이 시점에 지나온 인류역사 특히, 과학사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딘 지 50년, 우리나라 원자력의 역사 60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증명한지 100년, 국제천문연맹이 결성된 지 또한 100년, 원소주기율이 발명된 지 150년,질량·전류·온도·양(量)4개 단위에 대한‘국제단위재정원년’이기도 한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과학과 철학. 동떨어진 대상일지라도 인류의 생존과 자아를 찾는 가치 실현차원에서 보면 반드시 짚고 가야할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전세계 인류의 역사가 더 아름답고 훌륭하게 만들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람 해 본다.
최 교수는 말한다. “지금부터라도 철학은 이론적인 내용의 습득보다는 사유의 활동 혹은 사유의 높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철학을 하는 목적은 철학적인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 아니라, 직접 철학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을 수입하며 살았습니다. 결국 능동적이거나 주체적이라기보다 종속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쌓은 경제적인 부(富)도 큰 틀에서 보면 종속적인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자기 비하가 될까요? 자기 비하라는 부정적인 느낌이 들더라도 사태를 정확히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부정적인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는 당당한 삶을 꾸릴 수 있게 되니까요. 종속적인 시선이란 다름 아닌 따라하는 시선이나 훈고(訓詁)*하는 시선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훈고 : 고문(古文)의 자구(字句)를 해석하는 일. 경서(經書)의 고증, 해석, 주해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이렇게 말하면 따라하거나 훈고한다는 것을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 하기를 해야 결국에는 따라 잡을 수 있고, 두터운 훈고가 있어야 비로소 창의도 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따라 하기와 훈고에 더 집중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라도 그것들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앞서려고 덤비거나 창의를 발휘하려는 의지 자체가 줄어들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선도(先導)나 창의에 대한 절실함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창의를 발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머리로는 알면서 그것에 익숙해 있지 않으므로 그것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일상의 범위를 벗어난 생소한 활동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로(岐路)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껏 가지고 살았던 시선의 높이로는 이룰 수 있는 최상의 단계에 이미 도달했으니, 이제 후퇴냐 아니면 한 단계 더 높은 발전을 향한 도전이냐 하는 기로 말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시선으로 새롭게 무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쌓은 부와 명성을 한 단계 상승시키기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치적인 문제까지도 모두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그 시선이 인문적 시선이고 철학적 시선이고 문화적 시선이며 예술적 시선입니다. 이 차원의 시선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와야만 ‘따라하기’가 선도하기로 바뀌고, 훈고의 습관이 창의의 기풍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철학은 살아 있는 활동이고 사유다’중에서 -
“우리가 국력이 모자라 임진왜란을 당한 것도 치욕이지만 그보다 더 큰 치욕은 그것을 되갚아 줄 어떠한 구체적인 시도를 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나는 봅니다. 사실상 복수전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에게 묻는 더 큰 치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있은 300여년 후 우리는 임진왜란보다 더한 치욕을 당합니다. 일본으로부터 36년 동안이나 국권을 침탈당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것입니다.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에게 이보다도 더 큰 치욕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해방이후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정력을 일본을 증오하는 일에 더 바쳤습니까? 아니면 일본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더 바쳤습니까? 저는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일본에게 왜 당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다시는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인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새로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봅니다. 감정적으로 일본을 증오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제대로 된 자세일 것입니다.
일본을 증오하는 대신 일본인들보다 더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일본인들보다 더 신용을 지켜야 합니다. 일본인들보다 더 친절해야 하고 예의와 공공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일본인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깊은 탐구정신을 가져야합니다. 일본인들보다 더 전략적이어야 합니다. 일본인들보다 더 청렴해야 합니다. 일본을 증오하는데 쓰는 힘보다 훨씬 더 큰 힘으로 일본을 배우고 극복하는 데 써야 합니다. 일본을 무시하고 증오하기만 하다가는 다시 치욕을 당할 가능성이 커질 뿐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일본인들보다 더 정직해야 합니다. 일본인들보다 운동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본인들보다도 더 잘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일본을 증오하고 분노하고 그것을 표출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이것이 일본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이제부터는 일본을 이기려는 길로 가지 않고 다시 패배하는 길로 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렇게 해서 두 나라의 힘이 같아지거나 우위에 선다면 일본의 침략야욕을 잠재우고 진정한 선린관계가 이루어 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당당한 길입니다.”
언제나 생각하고 또 갈망하고 원망도 해 보았지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극일(克日)에 대해서 말한 것을 나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공감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던 중국은 어땠을까?
“중국은 아편전쟁을 통해서 서양으로부터 완전히 패배당한 다음에 신중하지만 강렬하고 일관되게 복수를 준비합니다. 물론 복수라는 말을 대놓고 쓰지는 않지만 사실은 복수지요. 그 복수의 과정이 일관되게 펼쳐지게 되는데 매우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중국의 이것을 깊이 배워 내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비단 중국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도 외세의 압력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복수라는 말이 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고 선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복수의 정신을 발휘해 가해자들에게 되갚아 줄 요량으로 똘똘 뭉쳐 역량을 결집시킨 민족은 번영하고, 그렇지 못한 민족은 항상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평화와 용서, 화해도 극복과 복수의 정신 위에서 행해져야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정신도 없이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 평화를 구걸하는 것입니다.”
1839년 1차에 이어, 1860년 2차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영국에 활양(割讓) 하는 등 쓰디쓴 패배를 맛본 중국은 서양을 배우기 위해 양무운동(洋務運動)*을 펼쳐 30년 동안 철 생산을 높이는 등 서양학습(西洋學習), 즉 서양배우기에 온힘을 기울인다. 양무운동을 통해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면서 과학기술 문명을 서양처럼 발전시킨다면 서양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양무운동을 전개하면서 중국인들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양무운동:1861년부터 1894년까지 중국 청나라에서 일어난 근대화 운동, 서양문물을 수용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하는 자강운동.
그것은 서양의 힘이 과학기술 문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중국인들은 과학기술 문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큰 힘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배후의 힘이란 바로 정치제도였던 것이다. 서양의 강점이 단순히 과학기술 문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과학기술 문명을 가능하도록 한 배후의 힘이 정치제도에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과학기술을 넘어 서양의 제도를 배우려는 노력을 집중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변법자강운동(變法自疆運動). 변법이란 제도개혁을 의미하는 것으로 1898년 당시 민족지도자 캉유웨이(康有爲)등 개혁파들이 주도했다.
그러나 당시 청나라는 어린 광서제(光緖帝)를 대신해 서태후(西太后)가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개혁은 순탄치 못했다. 조선말 대원군처럼, 개혁추진세력을 전면에 등장시키고 수구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 이들의 노력은 권력투쟁으로 변질되었고, 자신과 측근의 세력이 위축되는 것에 대한 서태후의 반격이 본격화되자 개혁파들은 일본으로 망명하기에 이르고 변법운동을 통해 서양처럼 제도를 일신해 서양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개혁파들의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변법자강운동의 좌절을 통해 정치와 제도 너머에 있는 근원적인 힘을 찾게 되는데 그 힘이란 바로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로서 중국인들은 신문화,신사상,신철학운동을 일으키게 되고 이 운동을 통해서라야 건강한 정치제도가 가능하고, 건강한 정치제도가 가능해야만 과학기술 문명이 발전하게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부국강병을 이루려면 근저(根底)에 문화와 사상,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중국인들은 가장 높은 곳에 문화가 있고 사상이 있고 철학이 있다는 것을 역사적인 경험과 외세극복 과정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이런 것들에 대해 몰랐다거나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서양으로부터 당한 치욕을 극복하고 새로운 부강의 시대를 향한 개혁과정에 이들이 가장 근본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1912년 중국은 2000년간 지속되었던 황제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자유주의분위기로 가득 한 중화민국체제를 성립한다. ‘중화민국은 중화 인민이 조직한다. 중화민국의 주권은 국민전체에게 있다’고 한 임시약법(臨時約法)도 선포되었다. 하지만 그해 3월 위안스카이(袁世凱)가 대총통(大總統)직을 쑨원(孫文)으로부터 빼앗고는 국민당과 국회를 해산시키고, 위안스카이는 과거의 황제를 복원하여 스스로 황제가 된다. 이로써 중국은 일순간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중국은 이런 개혁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근본적 시점을 다시 설정하게 되고 마침내 1917년 신문화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여, 1921년 마오저둥(毛澤東)이 상하이에서 비밀리에 공산당을 설립하여, 대장정 등을 통한 각고의 노력 끝에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성립시킨다. 혁명을 통해 세운 새로운 나라를‘신중국’이라 불렀다. 신중국은 역대 중국의 중심철학이었던 유교에서 서양철학인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이동한 것이었다. 동아시아의 중심적 지위를 누려왔던 중국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으로 자신들에게 이미 있던 것을 개량하는 대신에 서양의 그것으로 일순간에 바꿔버린 것이다. 이처럼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서양에게 당한 굴욕을 회복하거나 보복하거나 극복하고자 철저하게 민족적 상황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는 도전들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 개혁방법의 최종적인 선택은 문화이고 사상이고 철학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것을 여기에 모두 옮겨 적는 것은 책을 그대로 베끼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겠다는 부분도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에 대해서도 우리가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우리 역사에서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정약용에 대해서도 그렇다. 작년 『다산의 후반생』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나도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에 대해 비판한 글을 일찍이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은 정약용의 오류를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그 부분을 보자.
“저는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큰 철학자 한 분을 꼽으라고 하면 다산 정약용을 들겠습니다. 다산은 학술적인 업적의 방대함은 말할 것도 없고, 관념적이고 훈고적인 조선의 사상을 실재적이고 독립적인 사상으로 전환 시키려고 매우 큰 노력을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학자도 일본에 대한 판단에서는 실수를 합니다. 다산은 당시 세계정세나 일본의 발전에 대해서 잘 알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일본이 우리보다 학문수준이 높아진 것을 보고 심한 자책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 있는 「일본론」이라는 글의 일부를 보겠습니다.
‘대개 일본이라는 나라는 원래 백제에서 책을 얻어다 보았는데 처음에는 매우 몽매했다. 그 후 중국의 절강지방과 직접교역을 트면서 좋은 책을 모조리 구입해갔다. 책도 책이려니와 과거를 통해 관리를 뽑는 누습이 없어 지금 와서는 그 학문이 우리나라를 능가하게 되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다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판단은 매우 피상적입니다. 즉 “지금의 일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일본이 학문적으로 발전해 도덕적 성품이 높아졌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등의 나쁜 습관이 사라질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렇게 방대한 저술을 남기고 폭넓은 사유를 하였으며 게다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지향했던 대철학자가 어떻게 이렇게 안이한 판단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복잡한 세계의 사조를 단순한 근거로 재단한 순진한 낙관론입니다.
다산이 이런 피상적인 인식을 남기고 죽은 지 겨우 70년 만에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합병합니다. 매우 죄송하지만 다산은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데는 미숙한 점이 있었던 듯합니다. 아무리 실학자적 사유를 펼쳤다고 하지만 그는 유학적 도덕주의로 세계를 해석해 버리는 피상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나의 관점으로만 세계를 해석해 버리는 단순함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시각으로는 조선을 비판하는 일이나 조선의 앞길에 대한 선견지명을 발휘하는 일은 충분했지만, 넓은 틀 속에서 당시 세계의 전략적 움직임까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몸씨 안타깝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낳게 하는 것 같다. 또 아베 일본 총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일본총리 아베신조(安倍晋三)의 국가관이나 그의 정치적 행위는 우리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야말로 지나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사에 대한 그의 입장이나 태도로 보면 도덕적 인식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정신없는 사람’이라는 평가까지 받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말 정신없는 사람이기만 할까요? 실제로 동아시아 정세의 향배가 그 정신없고 비도덕적인 사람에 의해 좌우기기가 쉬울까요? 아니면 정신없음을 비난하는 우리에 의해서 좌우되기가 더 쉬울까요?
주도권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보다는 일본이 그것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지금 우리의 대응은 전략적인 높이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아베의 움직임에 도덕적이거나 역사적인 가치 판단만 하고 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물론 이런 대응이 완전히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대응은 그저 피상적이거나 대증적이거나 전술적인 대응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의 이 현실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것 같다. 최 교수의 지적에 그저 감탄만 하고 있어야 할까?
“공을 이루었으면 그것을 차고 앉아 거기에 머물려 하지 마라”(功成而 不居)는 말이 있다. 자기가 이룬 공을 으스대며 차고앉아서 거기에만 머물려고 하거나 그 공을 이룰 때 사용했던 방법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노자(老子)의 말이다. 그것은 찌질이 들이나 하는 짓이다. 역사를 이끌고, 밀고 나아가야 하는 영웅들은 공을 이룬 다음에 바로 다음 공을 향해 나아가지 자신의 공에 머물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지금 우리는 시대를 건너가려는 꿈을 꾸기보다는 각자의 틀로만 무장하여 싸우느라 앞을 보는 눈과 진정한 용기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스런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어쩌면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후손들인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혹은 자식들과 손자들에게‘꿈을 가져라, 큰 꿈을 펼쳐라’고 말하면서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 꿈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 일의 가능성이나 불가능성을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그 일을 분석할 때 사용되는 논리나 근거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 잣대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지금은 없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것들이다. 그런데 이미 있는 논리로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따지거나 분석하면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봐야한다. 현재의 틀로 미래를 재단하면 미래가 제대로 열릴까? 아니다. 꿈을 꾸고자 하는 사람이 현재의 문법에 갇혀있으면 꿈은 항상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안전을 추구하기만 하고, 낙오되지 않으려고만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꿈은 불가능의 냄새가 더 강하게 나야 진정한 꿈일 가능성이 커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꿈인 것이다. 가능해 보이는 것은 꿈이 아니라 괜찮은 계획에 지나지 않는다. 꿈을 꾸거나 꿈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우선 무모해야하고 무모함을 감당할 배짱이 있어야 한다. 이는 용기다.
꿈이라는 것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는 것이다. 앞에 있는 것은 기존의 익숙한 문법으로는 명확히 해석되지 않는다. 꿈이 도달하고 이루어지는 그때 새로 형설 될 문법에 의해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있는 문법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문법을 만드는 일이다. 인류를 번영시키고 인류에게 큰 영감을 준 창의적 성취를 이룬 영웅들이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서 시소를 탄 적이 있던가? 가능과 불가능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며 우왕좌왕한 적이 있던가? 그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으로 자기 인생을 채운 사람들이지 기존에 있는 문법이나 논리로 그것을 해석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직 아무도 건너지 않은 곳으로 그냥 무모하게 건너갈 뿐이다.
꿈을 꾸는 삶이란 바로‘나’로 사는 삶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자신의 내면적 욕망이 일치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절대 타인의 꿈을 대신 꾸어주거나 대신 이루어 줄 수 없다. 꿈은 나만의 고유한 동력에서 생겨나는데 공유하는 논리나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에게만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근원적으로 발동해서 생산되는 것이다. 그래서‘나’는 꿈을 꿀 때 비로소 진정한‘나’로 존재한다. 이 때의 나는 차돌처럼 단단해져야 하며, 스스로 참여자여야 하고, 행위자여야 한다.절대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생각한 결과를 숙지하는 것으로만 자기 삶을 채우면 항상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파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대신해주는 삶밖에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종속적인 삶입니다. 종속적인 삶을 살아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가 바로 중진국 정도일 것입니다. 이미 중진국 수준에 도달한 우리는 이제 스스로 시대의식을 가지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문을 열어야 합니다. 사유의 수용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시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단계에 철학을 공부하는 진정한 이유라고 하겠습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25년 1월, 단제 신채호(丹齋 申采浩)선생은《동아일보》에 「낭객의 신년만필」이라는 글을 통해 당시 우리 자신이 자신 생각을 꾸짖고 있다. 그것을 보자.
「이해(利害)문제를 위해 석가도 나고, 공자도 나고, 예수도 나고, 마르크스도 나고, 크로포트킨*도 났다. 시대와 경우가 같지 않으므로 그들의 감정의 충돌도 같지 않아 그 이해 표준의 대소 광협은 있을망정 이해는 이해이다. 그의 제자들도 본사(本師)의 정의(精義-자세하고 정확한 의의)를 잘 이해하여 자가의 리(利)를 구하므로 중국의 석가가 인도와 다르며 일본의 공자가 중국과는 다르며, 마르크스도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와 레닌의 마르크스와 중국이나 일본의 마르크스가 다름이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주의와 도덕은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哭)하려 한다.」
*Peter Kropotkin(1842.12.21.∼1921.2.8.) 러시아,지리학,동물학,사회학,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세속적인 출세의 길을 버리고 혁명가의 삶을 택하고 자신의 높은 윤리기준과 사상과 행동을 결합하여 보여준 인물
‘세계의 그 어떤 것도 현실이 아닌 것은 없다’는 말은 철학이라는 관념으로 포착한 차원의 사유도 현실을 포착한 것이지, 관념 자체의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철학을 한다면서 추상적인 이론에만 빠져 있는 것을 철학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비철학적인 것으로 철학을 한다는 것은 더 높은 수준에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의 대상들이 지금 이 시대고 현실이니까 우리가 철학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높은 차원에서 현실로서의 지금의 세계를 읽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유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유하는 것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이미 남이 읽어낸 세계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을 키운다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물컵이 하나 있다고 치자. 누군가가 “이 물컵을 보세요”하고 말하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물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물컵을 끝까지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컵을 본다는 것은 오로지 자신에게 있는 보는 능력을 발휘하는 일인데 대개의 사람들은 물컵을 보지 않고도 이미 그냥‘저것은 물컵이다’라고 판다해 버린다는 것이다. 시선이 물컵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판단해 버리고 시선을 거두어들인다는 말이다. 시선을 중간에서 거두어들이면 우리는 그것을‘본다’혹은‘봤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은 물컵에 접촉한 시선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기도 하는데 이 단계를 우리는 ‘관찰’이라고 한다. 학문이나 삶 속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관찰할 수 있고 관찰할 수 없게 만드는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 궁금증과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큰 사람은 관찰할 것이고, 호기심이 작은 사람은 그냥 보기만 하고 관찰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관찰로까지 유지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집요함’이고 ‘몰입’이다. 인생에 있어서 승패는 바로 자신을 몰입의 단계까지 집요하게 끌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휘해 진실하게 보고 거기서 나아가 집요한 관찰을 통해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몰입한다면 인간으로서 아주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함민복 시인의 「섬」이라는 시를 보자.
물 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시인은 기존의 관념으로 섬을 바라본 것이 아니다. 섬을 제대로, 남과 다르게 본 것이다. 또한 섬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발동시켜 자신의 시선을 거기에 갖다 붙인 다음에 거기에 머물도록 하고 완전히 새로운 섬을 생산해 낸 것이다. 다시 읽어 봐도 공감이 가는 시다.
다시 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합리성에 집착하기보다는 꿈을 꾸십시오. 꿈은 언제나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있는 관점으로 명료하게 해석되어 합리적으로 보이거나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라 착실한 계획일 뿐입니다. 꿈은 생리적으로 거칠고 비합리적이며 돌출적입니다.
지금 우리는 객기와 용기의 구분에 집착하는 것보다 객기보다는 용기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갖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지성적 훈련이 계속되면 객기와 용기는 나의 내면에서 충분히 분별될 수 있습니다.”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생각을 해야 하며, 남을 추종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말하기 싫지만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껏 남의 것을 열심히 추종해서 모방하는 것으로 삶의 대부분을 채워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이데올로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이데올로기, 건국 이후로는 미국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전적으로 다 그렇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주된 흐름은 대부분 그랬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따라하다 보니 생각의 결과들도 대부분 따라서 한 것들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산업도 전반적으로 ‘따라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하기’를 잘 해서 이른바 재빠른 추격자가 된 것입니다.
‘추격자’의 역할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역할을 잘해서 집약적인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문제는 ‘따라하기’로 큰 발전을 이루고 난 다음인 지금입니다. 지금부터가 문제라는 뜻이죠. 이제는 ‘따라하기’로는 효율성을 더 이상 높일 수 없고, 그만큼 이익 창출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하는 일과 가고자 하는 길을 한 단계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진국 수준까지 끌고 온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선도적이고 선진적인 단계로 상승하지 않으면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와 정치발전을 단 단계 상승시키기 위해서 이제는 사회를 창의적 기풍이 작동하도록 추동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생각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의적 기풍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의 삶이 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도적일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구절을 이 책의 독후감 결론으로 삼아도 좋겠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 혹은 이 독후감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한 가정의 일원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 나는 내 가정의 일원으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칠까 한다.
“가족이라는 틀이 식구들의 개성을 크게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식구들 각자의 욕망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지해야만 더욱 튼튼하고 발전하는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 특별한 하나의 이념이나 목표에 갇히면 구성원들의 개성이 제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반드시 의사가 되라고 요구하는 일 같은 것입니다. 자식의 꿈을 부모가 정해놓고 거기에 자식이 따르도록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가족과의 조화보다는 나의 욕망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펼치기도 전에 왜 가족이나 사회와의 조화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가족보다 자신의 꿈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가족과의 조화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일을 시작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지성의 높이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떤 논의의 완결성을 추구한다든지 합리성을 추구한다든지 또는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지나친 고려가 시작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울퉁불퉁한 삶, 새로운 삶,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자기를 발휘하고 표출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을 너무 자주, 너무 깊게 고려하는 것은 매우 점잖아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별로 필요 없는 일일 것입니다. 큰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 2019.1.20. -
*꿈
꿈을 인간의 영적(靈的)인 활동의 산물이라고 믿었던 고대인들은 꿈이 미래에 전개될 어떤 사건의 전조라고 믿으며, 그 꿈을 해석하여 미래의 일을 알아내고 길흉을 점치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꿈을 해석하는 것을 ‘해몽’이라고 하고, 꿈을 근거로 미래사를 점치는 것을 ‘몽점’이라고 한다. 해몽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 권2 원성대왕 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성왕이 아직 각간으로 차재(次宰)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복두(幞頭)를 벗고 흰 갓을 쓰고는 12현금을 들고 천관사(天官寺)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사람을 시켜 점을 쳐복 하니, 복두를 벗은 것은 실직할 징조요, 현금을 든 것은 형벌을 받을 조짐이요,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라 하였다.
원성왕이 듣고 매우 근심하여 두문불출하였는데, 그때 아찬(阿飡) 여삼(餘三)이 면회를 청하였으나 왕이 병을 핑계하고 만나주지 아니하였다. 아찬이 다시 청하여 꼭 한번 만나보기를 원한다 하므로 마침내 허락하였다. 아찬이 “공이 근심하는 일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왕은 꿈을 점쳤던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아찬은 일어나서 절하고 말하되 “이것은 좋은 꿈입니다. 공이 만일 대위(大位)에 올라서 저를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공을 위하여 해몽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좌우의 모든 사람들을 물리치고 해몽을 청하자, 말하기를 “복두를 벗은 것은 위에 앉을 사람이 없음이요, 흰 갓을 쓴 것은 왕관을 쓸 징조이며, 12줄 가야금을 든 것은 12대 자손이 대를 이을 징조이고, 천관정(天官井)에 들어간 것은 대궐로 들어갈 길조입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삼국시대에 이미 해몽을 통하여 앞일을 점치는 사례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몽자에 따라 같은 꿈이 흉몽으로도 풀이되고 길몽으로도 해석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유(思惟)
(1)(기본의미) 생각하고 궁리함.
(2)[철학] 개념,구성,판단 등을 하는 인간의 지적 작용.
(3)[불교] 대상(對象)을 분별하는 일
- 2012년11월26일, 국제신문 -
「사고에서 사(思)는 밭이 아니라 뇌(腦)를 뜻하는 田과 마음(心)이다. 즉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고(考) 역시 늙은이를 보고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니 생각한다는 뜻이다. 사고와 비슷한 단어로 사색이 있고 사유도 있다. 사색에서 색(索)은 얽힌 실타래에서 더듬어 찾는다는 뜻이다. 사유에서 유(惟)란 마음에 묻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한자로 그 의미와 각각의 차이를 따질 수 있다. 머리(田)가 들어 있는 사고는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생각, 늙음(耂)이 들어 있는 사색은 명상적인 생각, 마음(忄)이 들어 있는 사유는 감성적인 생각에 가깝다. 그러니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 계속 생각하는 것은 사고(thought), 호젓한 명상 길에서 홀로 생각하는 것은 사색(meditation, contemplation), 우리 삶의 공동체 관계에 대해 두루 깊게 생각하는 것이 사유(consideration)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주로 논리적,이성적,합리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다. 그런 사고를 코기토(Cogito)사고라고 한다. 그러나 생각은 사고,사색,사유 모두를 전방위로 포함한다. 생각이란 한자가 있을 것 같지만 한자가 없는 순 우리말이다. 그러나 한자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는 있다. 생각은 生覺이 아닐까? 生覺이란 머릿속에서 가슴 속은 물론 내 몸 전체에서 생겨난(生) 깨달음(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