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헤치며
-사명
밤새 어둠의 진통을 겪고 동녘에 빛이 솟았다. 그 빛은 세상에 골고루 나누어주고 황혼으로 기울어간다. 백 세를 넘긴 철학자 김형석 박사는 아침의 일출보다 저녁의 노을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서 칠십을 넘긴 삶이 더 알차고 보람된 삶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 하나도 그저 생겨난 것은 없다고 한다. 제각기 제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사명은 반드시 주어진 것이리라. 보잘것없는 씨앗이 움트고 자라 열매를 맺는데 말이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각자의 소명이 있기에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각자의 삶을 산다.
소설 ‘차쿠의 아침’을 읽었다. 차쿠의 아침은 1845년 7월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 서품 전 차쿠(백가점)에서 두 부제의 만남을 시작으로 1849년 12월 최양업 신부님의 조선 입국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두 신부님은 조국을 떠나 함께한 세월이 9년이었다. 인간적 면모와 신앙, 그리고 시공을 초월한 영적 동행을 그리고 있는 종교적 소설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8월 말에 오송항에서 해로를 통해 페레올 신부와 함께 입국하였다. 그들이 탄 라파엘호는 한 달이 걸려 태풍에 몰리면서 육지에 닿았지만, 목적지 한강이 아니라 제주도였다. 그 뒤 최양업 신부의 입국을 위해 서해 해로 탐방을 하면서 붙잡혀 해주 감영에서 한양으로 이송되어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로 ’피의 순교‘를 하셨다.
김대건 신부님은 마지막 문초 중에도 최양업을 생각하며 “벗아 유종의 미를 거두련다. 첫 단추는 내가 꿰니 뒤를 부탁한다. 네가 훨씬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우리의 영혼은 이웃을 위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때, 마치 흙 속의 쇳가루가 자석(磁石)을 대면 드러나는 것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김대건 신부님은 마지막 회자수(劊子手)에게 남긴 말은 “사람이 한 번 나서 한 번 죽는 것은 피치 못할 바라서 오늘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은 오히려 제가 원하는 바이다.”라고 했다. 죽음 앞에서 어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두 분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너의 나’로 서로 사랑이라는 끈에 묶여 있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9년 4월 15일 장가루 성당에서 강남 교구장 마레스카 주교로부터 서품을 받았다. 서품 성구는 ‘주님의 뜻대로’ 였다. 최양업 신부는 지구라는 제단에 살면서 제2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지상의 임무라고 했다. 신부님은 차쿠 성당의 보좌 신부로 발령을 받고 갔다. 그곳을 택한 것은 조선과 가깝기도 하지만 육로로 입국하기 위해서이다. 그해 12월 길잡이 범 요한의 은밀한 도움으로 만주 단동을 통해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13년 만에 사제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왔다.
최양업 신부님은 스승 리부아 신부님께 18번째 보내는 편지(최양업 신부님의 편지 모음집 : 정진석 옮김)에서 전국 오도 129개의 공소를 매년 7,000리를 다닌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면서 12년 동안 사명의 과로로 길 위에서 쓰러져 꽃다운 불혹의 나이에 땀의 순교를 하셨다. 완전히 자기의 삶을 죽이고 남을 위해 살다 가셨다. 서품 성구 ‘주님의 뜻대로’를 온전히 실천하신 분이시다.
길 위를 걷는 게 인생이다. 나는 2016년 교구에서 마련한 병인박해(1866) 150주년 맞이 행사에 참여했다. 왜관 가실성당에서 한티 순교 성지까지 45.5km를 걷는 일명 ‘한티아고의 길’이었다. 그 길은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든 교우들이 신앙촌을 이루면서 그 먼 길에 주일 미사를 지키며 오갔던 길이었다. 밤새도록 산길의 힘든 고통의 길을 걸으면서 신앙 선조들의 삶을 되새기며 나를 돌아보는 피정의 길이었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지천명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수동의 삶으로 궤도를 바꾸었다.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 흘렀다.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죽음의 암초에 걸려 자빠지기도 했지만, 믿음의 은총으로 굳건히 일어섰다. 하느님의 후광을 입었다고 생각하니 무엇이든 두렵지 않고 못 할 것이 무엇이라 싶다. 더군다나 두 신부님의 길을 만나니 용기와 힘이 솟는다. 나도 하느님의 도구로써 살겠다고 말이다.
우리의 의미 있는 삶과 사명은 순교 정신에 있다. 오늘날 순교는 우리의 삶에서 가난과 정결, 순명하는 것도 순교 정신이다. 이웃에게 자기를 낮추면서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인사하기, 화해와 용서로 서로 함께하는 마음이 사랑의 순교 정신이다. 우리의 삶이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고 하는 것은 마음의 욕심을 비워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의미’의 희망으로 산다. 그 의미는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인류가 보편적 가치로 살아가는 데 있다. 종교가 없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 사회는 운전자가 전혀 낯선 길을 내비게이션 없이 두려움 속에 가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는 종교를 벗어나며 현대 문명의 이기에 오히려 고통받고 있다. 사회와 교회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아버지가 상속 유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가엾이 여기듯이 말이다.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와 제각기 주어진 일에 성실함이 사명이고 보람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