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미국 시인 휘트먼을 공부했고, 풀잎이라는 시를 썼다고 하였습니다.
그 풀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휘트먼의 ‘풀잎’
한 아이가 두 손에 잔뜩 풀을 들고서 ‘풀은 무엇인가요?’하고 내게 묻는다.
내가 어찌 그 물음에 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아이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나는 그것이 필연코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내 천성의 깃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은 주님의 손수건이나, 하느님이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로운 기념
품일 터이고,
소유자의 이름이 어느 구석에 적혀 있어, 우리가 보고서 “누구의 것”이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추측하노니 – 풀을 그 자체가 어린아이, 식물에서 나온 어린아이
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모양이 한결 같은 상형문자일테고,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나 좁은
지역에서도 싹트고,
흑인과 백인, 캐나다인, 버지니아인, 국회의원, 검둥이,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주고
또한 믿는다.
또한 그것은 무덤에 돋아 있는 꺾지 않는 아름다운 머리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너 부드러운 풀이여, 나 너를 고이 다루나니 너는 젊은이의 가슴에서 싹트는지도
모를 일이요.
어쩌면 너는 노인들이나, 생후에 곧 어민의 무릎에서 떼낸 갓난아이에게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것.
자, 그리고 여기에 그 어머니의 무릎이 있다.
저 풀은 늙은 어머니들의 흰 머리로부터 나온 것 치고는 너무 검으니,
노인의 빛 바랜 수염보다도 검고, 연분홍 입천장에서 나온 것으로 치더라도 너무 검다.
아, 나는 결국 그 숱한 발언들을 이해하나니,
그 발언들이 아무런 뜻 없이 입천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젊어서 죽은 남녀에 간한 암시를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ㅡ, 그것
뿐만 아니라.
노인들과 어머니와 그리고 그들의 무릎에서 떼어낸 갓난 아이들에 관한 암시도 풀어냈으면
싶다.
그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떻게 되었다 생각하며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어딘가에 살아 잘 지낼 터이고.
아무리 작은 싹이라도 그것은 진정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표시해 주고 있는 것일지니
만일에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삶을 추진하는 것이지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삶은 붙잡는
것은 아니다.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전진할 뿐 죽는 것은 없고, 죽음은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행복한
것이다.
*휘트먼은 36세에 개성적인 12편의 시를 수록한 작은 시집 ‘풀잎’ 초판을 찍었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일 뿐아니라 미국의 대표작이고, 전 세계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풀잎’은 형식이나 내용에서 당시로서는 너무 독창적이며, 혁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서평에 ‘여기 인간이 탄생했다.’라는 말 이외에는 부도덕한 평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시집이 인기를 얻자, 판을 거듭했고, 판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시를 추가하였다. 마지막에는 400편이 넘는 방대한 시집이 되었다.
음운과 각운을 무시했고,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양식을 가져왔다.
종교적인 도덕 의식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담하고 소박한 인간관을 보여준다.
자신을 보통 인간으로 알았고, 민주주의적 평등과 사회의 제약에 대한 반발, 남성 예찬,
등등이 그의 시의 주요 특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