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배씨 중시조인 흥안부원군 배인경의 재사인 성주읍내 흥안재와
등암 배상룡과 괴재 배상호를 기리는 대가면 도남리 도천서원을 찾는다.
흥안재(興安齋) 숭모문(崇慕門) ~ 성주읍내 재실 정문
성주(=성산)배씨는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토속 성씨이다.
비조는 신라 6부촌 중 금산가리촌의 촌장 지타(池陀) 이며,
시조는 고려 시대 삼중대광 벽상공신에 오른 배위준(裵位俊)이다.
흥안재(興安齋)
중시조인 배위준의 5세손 배인경(裵仁敬)은 고려 충선왕 때 추밀원사를
역임하고, 충숙왕 때 흥안(興安)부원군에 봉해졌는데, 이러한 연유로
흥안의 고려 때 지명인 성산(星山=성주)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사당 출입협문
11세손 배극렴(裵克廉)은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어 성산백(星山伯=성주)에
봉해졌으며, 성주배씨와 성산배씨는 같은 뿌리로 인구는 150,000여명이다.
숭덕사(崇德祠)
성주=성산배씨 중시조 배인경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사당이다
흥안부원군 배공인경 신도비(興安府院君 裵公仁慶 神道碑)
서강(西岡) 배설(裵楔)장군 신도비(神道碑) ~ 도남마을 입구 (2025.7.24 촬영)
임진왜란 당시 무장인 배설(1551~1599)의 자는 중한(仲閑), 호는 서강(西岡),
본향은 성산(星山)이다. 아버지는 영덕군수, 고부군수를 역임하고 의병장으로
활약한 배덕문(裵德文)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야성송씨(冶城宋氏)로
장인은 좌의정 송렴의 6대손인 충순위 송원이다.
배설장군 묘소(2025.10. 20)
1583년(선조16) 별시 무과에 합격하여 전생서주부(전생서:궁중의 제항,
빈례 등 의식에 필요한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았던 관서)를 지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 조경(趙儆)의 군관으로,
향병을 규합하고 왜적에 대항하여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경상우수사가 되어 웅천 전투에 참여하였다.
칠천량(漆川梁) 해전 때 함대의 퇴각과 한산도에서 군사 시설 및 양곡,
군용 자재를 불태우고 백성들을 피신시켰으나, 칠천량 패전의 책임과
반역 모의라는 죄목으로 1599년 3월 처형당했다.
그러나 후일 그의 공적이 인정되어 1610년 (광해군 2)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
1873년(고종 10)에는 유림의 소청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 훈련원사로 추가로 증직되었다.
배설장군 묘비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지의금부사 행 절충장군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배공지묘
(贈 嘉善大夫 兵曹參判 兼 知義禁府事 行 折衝將軍 慶尙右道 水軍節度使 裵公之墓)
정부인 야로송씨 합폄 숭정 병자(1636년) 이월
(貞夫人 冶爐宋氏) (合窆 崇禎 丙子 二月)
배설장군 묘소입구 석비와 세장지 표석
성산배씨 세장지 주회 이십리(星山裵氏 世藏地 周回 二十里)
도천서원 홍살문인 창의문(倡義門)
성주 대가면 도남리에 위치한 도천서원은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1574~1655)과 괴재(愧齋) 배상호(1594-1632)
형제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25년(영조 원년)에 건립한 서원으로, 원래 가천
사뢰촌(思瀨村) 동쪽 기슭에 세웠다가 1786년(정조 10) 이곳 후포로 이건 하였다.
도천서원 입구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영당만 보존되고 있다가
1900년(고종 37) 도남재를 건립하였고, 1975년 서원을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본당건물과 솟을대문, 관리사가 있으며, 본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반의 팔작지붕으로 중당협실형 구조이며, 서원 북편에는 성균진사
배보(裵報)의 사단비가 있고, 그 옆에는 등암 영각이 자리하고 있다.
도천서원 솟을대문
배상룡(1574-1655)선생의 본관은 성산(星山=성주의 옛 이름), 자는
자장(子章), 호는 등암(藤庵), 아버지는 영남수군절도사 배설(裵楔)장군이다.
정구(鄭逑)와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나, 아버지인 배설(裵楔)이 비명으로 죽자
과거에 응하지 않았으며, 1637년 천거로 선교랑의 벼슬이 내렸으나 받지 않고
임종 때도 벼슬을 쓰지 말고 숭정처사(崇禎處士)라고만 쓰라 하였다 한다.
도천서원 본당(도천서원, 도남재, 도남서당 편액)
1774년(영조 50)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되고,
1785년(정조 9) 성주 도천사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등암집(藤庵集)이 있다.
솟을대문 안쪽에서
배상호(1594-1632)의 자는 계장(季章), 호는 괴재(愧齋), 배상룡의 아우로
형과 함께 정구와 장현광의 문인으로, 1624년(인조 2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의 강청(講廳)에서 임금의 후의를 받았다.
배보(裵普)선생 사단비와 도천서원
배상호는 학문과 덕망이 뛰어나 성균관에서 장의(掌議)를 지내는 등
유소(儒所)의 여러 임직(任職)을 역임하였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 兼 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성균 진사 성산배공 보 사단비(成均 進士 星山裵公 報 祀壇碑)
등암 배상룡 영각(影閣)
영각 입구
영각입구 좌우 두 그루의 배롱나무는 보호수로 지정(2005.9.21)되어
있으며, 수령은 300여년, 높이는 12m, 둘레는 1m이다.
영각(影閣)
보호수 배롱나무 밑둥(좌.우)
영각앞 배롱나무꽃
관리사뒤로 전망대가 있는 능선
도천서원과 관리사
서원앞의 그네
마상과 구유
멧돌, 가마솥 등 골동품들
도천서원 전경
도천서원 홍살문 밖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