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히든싱어를 즐겨 시청하고 있다.
이걸 시청하다보면 어째서 남의 노래에 빠져 저리 열심히들 연습을 할까? 싶다.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들이 나름 어떤 특정 스타일의 매력을 중심으로 자신을 가꾸는 방편일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동시에 그 순수한 열정이 아름답고 감동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종교라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로서 아름다울 수 있겠다 싶고,
바로 그런 것이 참다운 종교의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름답고 진실된 한 삶을 닮으려 하는 이들. 그런 것들의 수행의 의미는 아닐까 싶다.
그것은 세력화된 주종의 의미는 아니다.
히든싱어들 모두 자신의 삶의 개선을 위한 한 방편으로 누군가의 노래를 연습할 뿐,
자신이 그 누군가로 오해하지는 않는다.
그저 순수하게 끌리는 사랑이라고 할까? 머 그런 채색되지 않는 끌림이 있다.
외려 그들은 닮아 유익한 한 모델링을 설정하고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런 삶들에 우상을 논하기는 어렵다.
요즘 나는 프로 테니스 선수들을 모델로 그 동작들을 연구하고 닮으려 연습하고 있다.
연습이 지나쳐 외상과염이 심해 급기야 운동을 그만두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예는 '왜 일관되게 왜 꾸준히 못할까?' 의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하챦아서 하품하시는 분들은 머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그래도 후회없이 한 때를 온전히 불살랐다면 되었지 싶다.
해서 오늘은 서예에서 비롯된 임서라는 방편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옛명필의 자취를 끊임없이 흉내냄으로 일가를 이루는 일은
교만과 오만을 덜어내는 일로서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려니와
한 모델을 우상으로 섬기는 오류를 덜어냄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즉 그는 그고 나는 나지만 그를 본받아 오늘의 나로서 산다는 의미있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나다.
** 히든싱어들은 그들이 본으로 삼는 가수가 최고다 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본으로 삼아 노래하는 그 모습들과 그들에 감사하는 가수들과의 공감으로 오늘이 풍요할 뿐이다.
첫댓글 꾸준히 호흡하는 것처럼...
숨이 다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