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골에서 살다가 20여 년 전에 이 도시로 곳으로 온 가족이 있다.
처음엔 여기 사는 누이에게 자기 어린 딸을 맡겼다가 나중엔 이 도시로 온 가족이 이사해서 우리 실로암과 연결된 가족이다.
가족의 이력을 들어보니 그 양반 어머니가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도시에 온 후에 아이들이 실로암 학교에 입학하고 그 할머니와 아이들이 우리 실로암 ㄱ회를 다니자
그 아들 부부가 우리 실로암 ㄱ회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지금은 그 자녀들이 우리 실로암의 핵심 멤버가 되어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치매였는지 그 할머니가 어느 날 연락이 두절되고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몇 년간 헤매다가
끝내 어머니를 찾지 못한 아들은 2012년에 죽어버렸는데 남은 것은 과부와 2남 1녀, 그리고 가난.
그 아빠가 죽고 남겨진 아이들은 6, 9학년 두 아들, 그리고 고3 딸,
한창 공부하고 있는데 아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중단될 위기다.
애들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며 하루에 몇 집을 돌아도 살아갈 대책은 없는 터,
학비는 고사하고 당면한 것은 월세와 먹고사는 문제.
다행이 세 아이들이 아빠를 닮아 모두 성품이 좋고 또 공부를 잘해서 이 아이들이 항시 눈에 밟혔는데 드디어 도울 기회가 왔다.
그 동기는 이 애들의 아빠가 참 성실하고 좋은 성품이고 또 죽기 직전까지 나에게 참 좋은 인상을 남긴 친구 같은 사람이라서 남겨진 애들에게 잠시 아빠의 역할을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 작게나마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당시 진행하던 기아대책 CDP 프로그램으로 그 아이들 학비를 해결하고 방과후 교실에서는 두 아들에게 원하는 만큼 우유를 먹였다.
또 정부 대학으로 진학한 딸은 학비가 년 5만원 정도, 3년간 개인적으로도 부담 없이 도울 수 있는 금액이다.
그리고 방과 후에 CDP 스텝으로 일하게 해서 작지만 월급도 챙겨주었다.
큰아들이 실로암 8학년을 마치고 다른 상급 학교에 진학했는데 그 학교는 이 아이를 알아보고는 2년간 학비 장학금을 주었고
이 아이가 상급 학교로 진학한 11, 12학년일 때 다시 CDP 장학금으로 학비를 해결했는데...
뒤돌아 보니 이 가정은 갑자기 어려움을 만났지만 때마다 주변의 도움이 항시 따랐던 가정이다.
이 큰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이 도시에서 괜찮은 의대에 진학했는데 합격 통지를 받고는 몇일 후에 합격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여기에 있는 기부금 입학제도 때문,
입학생 일정 한도 내에는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입학생을 선별 가능하기에 성적이 좀 모자라지만 기부금이란 명목으로 뭉칫돈을 내미는 학생에게 자리를 주려고 그 의대는 합격 통보를 하고서도 아이를 내친 것이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날 상황인데 여기서는 힘도, 돈도, 배경도 없고 낮은 계급이라 그 결정을 바꿀 수도 없다.
항의도 못하고 여론을 움직이려도 방법이 없는 상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보다 약간 급이 낮은 의대에 들어갔다.
여기는 학교들이 낮고 가난한 계급을 위한 쿼터 제도가 있어 그 대상인 아이들은 학비도 많이 경감된 상태,
그래서 그 의대 1년 학비가 100만원 정도, 그것도 두 번은 CDP 자금으로 해결하고 한 번은 개인적으로 도와주었는데
4학년 마지막 한 해는 코로나 기간이라 여기 오지도 못한 상태라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그 한 해는 누이와 엄마의 도움으로 졸업을 했는데 그것도 의대 수석 졸업이다.
모든 시험에 합격하고 드디어 의사가 되었는데 그간 도움 받은데 대한 감사의 편지를 한 번 써 보라니까 여러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이런 고백을 한다,
‘당신의 도움이 한 사람의 생애를 바꾼 것이 아니라 한 세대를 바꾸었다’ 고...
그 글을 읽는 순간 감동이 되고 눈물이 나왔다.
도울만한 아이를 제대로 도왔다는 생각이 들고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서이다.
지금 이 도시 아주 큰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데 몇일 전에 전문의 공부까지 마쳤는데 내게 귀띔을 한다.
전문의 수료 과정 350명 중에 6등 했다고...
우리 딸들이 여기 있을 때 몇 년간 아이들 대상으로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한 10명 중에서 이 아이만 끝까지 따라와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지금 실로암 ㄱ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이 주변에서 피아노를 치는 유일한 아이다, 아니 의사 선생님이다.
4부로 치는 것은 아니고 코드로 치지만 교인들은 아무도 그걸 모른다.
낮고 가난하고 배경 없고 힘 없고... 밖으로부터 외면당할 조건이 충분하고 안으로도 포기하고 낙담할 여건도 충분하다.
그러나 외모나 여건을 보지 않고 가까이 했더니, 물질적 도움만 아니라 기도를 하며 신앙을 주입했더니 이 아이가 이렇게 따라왔고 성장했다.
아빠도, 가진 것도 없고 미래에 보이는 것도 없고... 하루 몇 집을 돌며 작은 돈을 버는 엄마,
그리고 동생과 누이의 결혼 걱정과 집안의 짐을 모두 안고 있는 장남, 좌절하고 쉽게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끝내는 그 어려움을 모두 이겨낸 아들이다.
물질적인 도움만으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개천에서 용난 사건이지만 실은 신앙과 기도의 힘이었고 위로부터 오는 은혜의 산물이다.
이 땅에서, 그리고 남은 생애에서 이런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를 이 땅으로 보낸 것은 많은 일을 하지 못하지만 이런 아이를 찾아 변화시키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