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벌써 30년 가까운 날이 흘렀다.
하루는 동산의료원에서 수간호사로 근무하시던, 고모님같이 따르던 교회 집사님께서 나를 불러 생각지도 않던 말씀을 하셨다.
‘한 선생, ㅇㅇ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그분이 그런 말씀을 하실지 전혀 생각도 못 했고 ㅇㅇ는 이미 내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하고 나를 떠난, 그래서 내가 떠나보낸 내 사랑이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도 몰랐고 또 나를 매정하게 떠난 그였기에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내왔다고 대답한 것 같다.
그리고 세월은 무심하게도 흘러갔고 몇 년 후 ㅇㅇ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들은 얘기로 집사님께서 ㅇㅇ를 알고 지내던 분의 자녀에게 소개시키는 과정에서 ㅇㅇ가 내 얘기를 한 것 같았다. 떠나보낸 나를 잊지 못해서 머뭇거리던 ㅇㅇ를 보며 내 생각을 물어온 것이고 내 아픔을 숨기려고 한 말들을 ㅇㅇ에게 전하며 내가 이미 ㅇㅇ를 잊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ㅇㅇ는 집사님이 소개해준 사람에게로 간 것이다.
그 일이 있기 몇 년 전에 ㅇㅇ가 내게 한 말이 기억난다.
“오빠 아직도 나 미워해? 오빠만큼 나를 사랑해준 사람도 없었는데...”
아마 집사님께서 자신이 나선 중매가 성사되도록 ㅇㅇ가 나를 단념하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 ㅇㅇ가 여전히 나를 잊지 못하고 기다린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가 다시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천국으로 돌아간 권사님에게 다시 물어볼 수도 없고 그저 무심한 세월만 또다시 흘러 먼 길을 돌아 우린 여기에까지 와 있고 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소중한 아내를 만나 아름다운 부부로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문득문득 그녀를 생각한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했기에 그리운 것이 아니겠는지 말이다.
우리가 바람이 되어 그저 이름 모를 산기슭을 스쳐 지나갔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