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깊이가 갖는 위력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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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5박6일에 걸쳐 진행하는 집단상담에서는 어느 중년인 아버지가 청소년인 아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였다. 아들이 지적 장애인인데, 그와 잘 지내다 어느 순간 버럭 화를 내곤 한단다. 그러면 그동안 공들인 거는 다 사라지고 관계는 껄끄러워지고 만다니…. 머리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아는데도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하는 자신이 야속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그 남자와 그의 아내는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를 바라보며 그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로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고(苦)를 감내하느라 애쓴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자녀란 잘나거나 못나거나 자신의 몫인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을 들이는 거 외에 달리 아무런 방도가 없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에게 그런 아들이 있어 딱하다거나 하는 감정 없이, 무엇이 걸림돌이 되어 아들에게 수시로 화를 내게 되는지 살폈다. 다시 말해, 아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장애인이라서 화를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윽고 발견한 점은 그가 매사에 잘하려고 지나치게 애쓴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이든지 완급을 조절해야 무리가 없는데, 과도하게 애쓴다면 스트레스가 쌓일 게 뻔했다. 그러면 이런 게 부지불식간에 취약한 아들에게 터트려지는 것이지 싶었다.
그렇게 추론한 다음, 그가 왜 그토록 잘하려고 애쓰게 되었는지 다시 그 이유를 탐색해 보았다. 거기에는 잘나면서도 엄격한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를 어려워하는 동시에 총애를 받고자 그렇게 길든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이미 중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아버지에게 잘난 아들이 되고자 하는 욕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고 모든 게 원만하게 돌아갈 거 같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말에 그는 자기나 아내가 모두 사회활동을 하는 연유로 부모님이 한 집에 거주하며 자녀들을 돌봐주고 계신단다. 그런데 장애인인 아들이 성질을 내기 시작하면 좀처럼 중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가 엄청나게 고생하신단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어떻게 아버지 비위를 맞추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즉, 죄송스러운 마음에서 아버지가 뭐라고 해도 자기는 참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대꾸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장애인 아들은 그의 아들이기만 한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는 다름 아닌 손자인데, 그러한 이유로 아버지에게 절절맨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나는 남이 아니라 손자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는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이런 식의 견해 차이로 그와 설왕설래하다가 나는 집단상담에서 공동 지도자로 함께 작업하는 철쭉 님에게 그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중년이 되었으면 이제 아버지에게 맞추는 태도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며, 그런 태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걸 일러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그러자 철쭉 님은 그를 향해 당연히 가장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가정에서 중심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는 게 아버지를 거스르거나 서운하게 해드리는 게 아니라, 도리어 아버지를 안심시켜 드리는 거라고 하였다. 장성한 아들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 아버지로서는 내심 든든하고 반가워하실 거고, 그러면 자연히 지금과는 달리 뒤로 물러나게 마련이란다.
철쭉 님이 이렇게 말하자,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환해졌다. 아버지와 대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가 안심하고 좋아할 거라는 말에 안도감을 느끼는 듯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 하고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와 갈등을 겪더라도 이제는 그가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 부딪치거나 마찰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주저주저했다. 하지만 철쭉 님이 그가 마땅히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러면 아버지가 오히려 안심하며 기뻐할 거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바로 알아들으며 힘을 받는 듯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이렇게 다르게 표현하는 걸 보며, 안목의 차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았다. ‘그렇지, 다름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데, 아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면 아버지로서는 흐뭇하게 마련이지!’ 하는 생각을 절로 하며, 같은 사안을 그렇게 맵시 있게 표현하고 타결하는 것을 잘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첫댓글 "아버지와 대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가 안심하고 좋아할 거라는 말에 안도감을'''"
참 좋은 충고 , 격려네요..
"맵시 있게 표현하고 타결"
촣아요..
부자간의 좋은 관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