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빗점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남부군"이다. 한 시대의 획을 그을만한 빨치산의 행적이
가장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곳이 바로 빗점골이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했던 곳이기에
이곳 빗점골이 갖는 한국 현대사의 의미는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52년 초여름 즈음 빨치산들은
빗점골에서 남로당 간부(전남도당 위원장 박영발, 전북도당 위원장 방준표등이 참가)와 각 지구 유격대
사령관들이 회의를 열고, 이른바 5. 25결정(각도당을 해산하고 지구당으로 개편할 것에 관한 결정)을
토의한 곳이며, 53년 9월 6일에는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의 주재하에 지구당을 해체할 것을
결정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 회의에서 이현상은 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나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다. 빗점골은 그 자신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 곳이기도 한데, 그가 토벌대에 의해
사살된 곳은 빗점골의 너덜지대로 알려지고 있다. 이 너덜지대는 "합수내 흐른바위"라고도 하는데
지리산의 가장 깊은 골짜기인 빗점골이 다시 절터골과 산태골을 빚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태의 남부군을 읽은후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마친 빗점골에 꼭 가보고 싶었다.
내가 다니는 산악회에 제안하여 회원 17명과 함께 2009.5.23 (토) 05시 30분에 천안을 출발하여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의신리에 자리잡은 삼정마을까지 25인승버스를 타고 가서 10시 10분경 산행을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이현상아지트를 보고 명선남릉 타고 올라가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 작전도로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는데 이현상아지트를 찾지 못하고 왼골까지 가게 되었다. 첫번째 나타난 절골계곡을
먼저 건너고 길을 찾는데 선두회원이 건너다 물에 빠지고 여성회원들이 건너기엔 수량이 너무 많고 바위가
미끄러워 한분씩 건네 드렸지만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다는걸 예감하였다.
한참을 가도 이현상아지트가 안나오고 길은 계곡따라 희미하게 이어져서
산악 회장님이 선두에서 길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명선남릉길을 놓쳤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계곡길은 정말 경치가 좋았다
커다란 폭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1일 총무를 하신
여성회원이 상추 쑥갓, 돼지고기와 삼겹살, 불판2개를 준비해와 맛있고 푸짐한 점심을 먹을수 있었다.
남회원도 유산균막걸리를 5통이나 가져오셨는데 아무도 없는 깊은 계곡에서 먹는 막걸리는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던중 라디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긴급뉴스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대나무밭을 헤치고 능선을 따라 올라오니 하늘이 보이고
토끼봉정상(1,543m)에 다다랐다.
삼정마을을 떠난지 4시간이었다. 토끼봉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원래 목적지인 명선봉쪽으로
가다보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지리산 태극종주를 나선 토요산악회 총산행대장님이다.
약속도 없이 이런 산중에서 조우를 하는걸보니 천안토요산악회에서 맺은 인연은 정말 소중한 인연이다.
토끼봉에서 2시간을 걸어 명선봉(1,583m)에 다다르니 연분홍 철쭉이 피었고 우리가 올라온
빗점골 계곡이 보이고 장대한 지리산 주능선이 일망무제로 시야에 들어왔다.
하산은 명선봉에서 명선남릉을 타고 이현상아지트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명선남릉길은 길찾기는 쉬웠지만 가파르고 조망은 별로였다. 이길로 올라왔더라면 힘들었을거라고
회원들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 사실 명선남릉을 타고 벽소령 작전도로로 내려오면 별 구경거리는
없었을 것이다. 최초에 명선남릉길을 놓치고 왼골로 올라간게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2시간 30정도 하산하니 이현상아지트가 보였다. 시간이 없어 기념사진 몇장 찍고 말았지만
쉽게 지나치기엔 역사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곳이다.
그는 남과북 모두에게 버림받고 퇴로를 차단당한채 이깊은 산골에서 토벌대의 총탄세례를 맞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지만 일제치하 독립운동으로 12년이나 옥고를 치루고 해방후엔 지리산에서 빨치산을 지휘하며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적 풍모를 잃지 않고 부하들에게 존경받았다고 한다
당시 토벌대장이던 차일혁총경은 비록 적장이지만 예를 갖추어 섬진강변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한다
이현상아지트를 내려오자 마자 아침에 건넜던 절골계곡을 만났다. 목적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놓쳤던 셈이지만 그덕에 구경한번 잘했다. 산을 내려오니 18시 40분이고 총 8시간 반의 산행을 하였다.
저녁은 화개읍 삼신리 늘봄식당에서 재첩백반과 참게백반, 은어회 은어튀김으로 먹었고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천안 집에 돌아오니 새벽1시가 다되었다.
지리산 - 정용주
추신> 남성방에 산행사진 추가해서 올렸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보시기 바랍니다 ^^!
첫댓글 지리산은 대한민국 현근대사에서도 의미가 크지만,
예전 가야와 백제 신라를 가르거나 이어주던 산으로서도 그 숨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겁니다.
그 산을 제대로 한번 올라보질 못했네요.
지리산과 설악산 산행기는 늘 부러운 마음으로 읽게됩니다.
간접경험이라도 시켜주셔서 고맙습니다. ㅎ
마음자리님 감사합니다
토요일오후 아내를 퇴근시키고 장보고와서
이제 컴앞에 앉았습니다
지리산은 말씀대로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민족사를 관통하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지리산 주능선은 많이 종주해봤지만
숨은 계곡들을 탐방하고 파서 가봤습니다 ^^
태백산맥..
얼마전에 다시한번 오디오 북으로 들엇어요..
마음 저리도록 아파하면서..
그산님은 지리산 빗점골의 이현상을 생각하셨나 봅니다.
저는 보성.벌교 서민들의 애환에 가슴이 멍먹하여
오랫동안 마음안에 남아 있엇어요..
그산님.. 닉 만큼이나 산을 사랑하시나 봅니다..
저도 산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둘레길 위주로 다니고 있답니다.^^
바래봉. 피맛골. 뱀사골.정령치.
저도 이곳은 다녀왔어요.. 젊은날에.. ㅎ
고운밤 되세요~~..
가영님 반갑습니다
말씀대로 이념에 관계없이 아무죄없이
수많은 백성들이 영문도 모르고 희생당했을 겁니다
그분들은 모두 가고 안계셔도 지리산은
언제나 그자리에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행복한 주말보내시기 바랍니다
남부군의 이현상, 소설 태백산맥 속의 염상진, 하대치..
빨치산을 미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격변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양쪽으로부터 다 버려져서 희생된 사람들임은 분명합니다.
그산님의 산행기를 읽노라면 마음이 맑아지고 눈이 트이는 느낌입니다.
늘 감사히 읽고 있어요. ^^
달항아리님 반갑습니다
일제식민지시대를 지나고 해방이 되었으나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고 공산이념을 택한사람들~아마 그들이 살아서
북으로 갔다면 박헌영이 그랬듯이 모두들 처형당했을겁니다
그와중에 선량한 백성들만 희생당한것 같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저는 그자취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리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
화개에서 화엄사 지나 좌로 가면 칠불사,직진하면 의신 마을인데
그 마을 위가 이현상 사살 지점이라더군요.
자주도 갔죠. 뭐 아스팔트 길이 좋으니 자가용으로..ㅋㅋㅋ
저는 조정례의 태백산맥보다 이태의 남부군, 이병주의 지리산을 더 아리게 읽었죠.
..아...그 허망에의 열정이라니....
반갑습니다
말씀대로 차량은 의신마을까지만 들어오고
나머지는 길이 없어 수풀을 헤치고 갔습니다
저도 이병주 지리산과 조정래 태백산맥 그리고 이태의
남부군까지 모두 읽어봤습니다. 그허망한 열정 그들을
아주 잘 표현하셨습니다. 이현상은 북의 혁명열사릉에
가묘가 만들어져있지만 북으로 갔으면 박헌영과 같은 운명을
맞았을겁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남성방에 많은 사진
올려놨으니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
빗점골. 이현상 루트....
나는 지리산을 몇 번 갔지만 전혀 그런 것 생각도 못하고 다녔어요.
덕분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다시 떠 올려봅니다.
반갑습니다
빗점골은 비탐방구간으로 등산로도 없고
위험구간도 많고 수풀이 우거져 길찾기도 힘이 듭니다
그래도 현대사에 관심많은 분들은 몰래
가보는 것같고 사고가 나면 본인 책임입니다.
지리산 종주는 꿈도 못 꾸었지만,
유명해진 골짜기는 산악회나 길동무를 통해 가 보았지요.
그산님을 통하여
빗점골, 남부 사령관 이현상이 마지막 생을
마친 곳도 처음 알게 되네요.
이념이 뭐길래, 자신의 생을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마무리 해야 했는지?
지리산 명성봉에서 빗점골을 바라 본 사진은
새 순이 난 가지 뒤로 연분홍꽃, 산철쭉인 듯...
새봄을 알려주는 지리산이 아름답게만 보이네요.
지리산 노래가 나오는 동영상,
사계의 모습을 담은 경치에 고운 맘도 생기고요.^^
글, 감사합니다.
방장님 반갑습니다
아래 어느분의 글에 섬진강 은어 얘기가 나와서
빗점골 산행후 은어회를 먹었던 기억이 나서 옛글을 올려봤습니다
저당시만 해도 산에 대한 열정이 강해서 비탐방구간이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가곤 했지요. 지리산 주능선에 오르면 빗점골 뿐아니라 뱀사골, 백무동 등 수많은
계곡을 볼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잘못된 이념으로 죽어간 빨치산들과 그들과 맞서
싸웠던 우리군경의 발자취가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명선봉 능선에 피어난 연분홍 철쭉이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듯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
소설 태백산맥에서 만 접했던 빨치산들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고 계신듯 하여 존경심이 듭니다.
역사적 현장을 산행에서 찾아 헤매신 모습도 즐기기위한 산행을 하는 제게 부끄러움을 안겨 주십니다.
지리산 세번 가 봤습니다.
멋 모르고 종주에 따라 나섰다가 중도포기.
이듬해
무박36시간 종주.
홀로 천황봉 올라보고.
못 가본 곳이 무수히 많겠구나..글을 읽으며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커쇼님 반갑습니다
젊은 시절 지리산관련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그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었습니다
주로 비탐방구간이 많아 산악회 회원들을 모집해서 가보았었지요
그분들의 발자취는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골짜기에서 숨져간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해봤습니다. 지리산 무박 36시간 종주 대단하십니다. 지리산 종주를 몇번 해봤지만
정년퇴직을 앞두고 홀로 무박 45km 화대종주를 한적이 있습니다
빗점골자체는 그렇게 힘든 구간은 아니지만 비탐방구간이라 길이 없고 수풀이 우거져
경험자와 함께 아니면 가기 힘든곳입니다. 남성방에 빗점골사진 많이 올려놨으니
즐감하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
남부군 이라는 영화를 보고 안타까웠던 적이 있습니다
피아골 이라는 영화도 보았습니다
사상이 무언지?
그 사상은 정말 올바른 사상 이었는지?
전향 안하고 죽어가던 지리산 빨찌산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반갑습니다
그곳에서 죽어간 빨치산들은 대부분 20대초반의 젊은이들이었을겁니다
아마 공산주의가 뭔지도 잘 모르고 이상주의나 젊은 혈기에 아까운 생을
마감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분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형제들인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댓글 감사드리고 저도 충성 외칩니다 !!!
빗점골 계곡 사진에서
앞쪽에 피어난
저 예쁜 푸른 잎새가
모든것을 곱게 덮어 주는듯 합니다,
노고단 까지는
여러번 갔었는데
구례에서 오르고
남원에서 오르고
산악회에서 오르고
친정 순천에서 구례에서
행사 끝나고 또 오르고
그산님 글 읽으며
옆자리 남편에게 지리산
갈까? 하니까 웃고 맙니다.
반갑습니다
능선에 연분홍 철쭉과 푸른 잎새들은 이쁘기만 한데
그골짜기에서 숨져간 젊은 영혼들 안타깝습니다
친정이 순천이시군요. 등산과 개인용무로 여러번 갔었는데
참 아름다운 곳이라 느꼈습니다
이제 지리산 종주는 어렵고 남편분과 노고단에서 살방살방 가보시는건
할만합니다. 댓글 감사드리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
잘읽고 갑니다.
이데올로기가 참 무섭기도 합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일제에서 해방되고 강대국에 의해
분단된 당시 젊은 청년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이 속한 곳의 이념에 따랐을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드리고 행복한 주말보내시기 바랍니다 !
비극의 현장이었던 빗점골 계곡이
안개에 가려진듯 고즈넉하기만 합니다.
지리산은 말이없다..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저도 태백산맥을 읽고 빨치산에 대해 알았지만
사상과 이념으로 대립하면서 인간적인 면을보인
이현상과 토벌대장 일화에 뭉클 합니다.
반갑습니다
수많은 비극의 현장이지만 연분홍 철쭉과
푸른잎새는 아름답기만 합니다
이현상과 차일혁총경 이념은 달랐지만 둘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들이었습니다. 차일혁총경은 적장이지만
이현상의 영혼을 위해 제를 올렸고 자신도 몇년후
금강에서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행복한 가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
이제는 구시대의 실패한 이데올로기로 판명이
났지만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살었던 해방후에는 공산주의가 대세였던 적도 있는데요.
역사의 현장 빗점골 산행 넘나 멋있어요.^^
나무랑님 반갑습니다
이현상은 보성전문 출신의 엘리트로 양민들에겐 피해를 안주려했고
북한정권과는 거리를 두었다 합니다. 아마 살아돌아갔다면 박헌영같은
최후를 맞이했을겁니다. 끝까지 투항을 거부한 최후의 빨치산으로
우리군에겐 적이었는데 차일혁총경은 그의 시신을 거두어 적장으로서
예를 표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