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기 실로암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달 전 주일 아침에 ㄱ회에 올라가니 몇 명이 모여서 서로 묻는다, 누구 짓이냐고...
강대상 위에 꽃다발 두 개가 놓여있다.
누군가가 와서 꽃을 두고 갔는데 아무도 누군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니면 한 녀석이 그걸 숨기고 있던지...
아침 7시 반에 온 친구도, 조금 후에 온 친구도 누가 꽃다발을 갖다 놓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실로암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 사무실에서 교사들과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니 집 안에 큰 상자가 있다.
아내 왈, 그 녀석이 저녁에 다시 오겠다면 물건만 두고 갔다고 한다.
중형 냉장고 만한 크기인데 보니 쿨러다.
이 기계는 선풍기와 물통이 붙어있다.
한 몸체에 내장된 물통이 있어 팬이 거기서 나오는 물을 흩날리면서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주변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원리다.
물론 선풍기보다 더 시원하지만 전기를 많이 먹는 A/C 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실로암 ㄱ회는 천장이 기와라서 냉기나 온기를 품을 수 없는 구조다.
또 바람만 아니라 가끔 다람쥐들도 기와 사이에 돌아다닌다.
공간이 넓고 천장이 높아 여간한 어떤 A/C도 효과가 없는 구조라 천장에 달린 선풍기 외에는 어떤 장치도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 기계를 가져왔다.
저녁에 아무도 안 오는 시간에 와서는 둘이서 ㄱ회에 옮기고는 언박싱을 했는데 가격표를 보니 18,000/, 거의 30만원이다.
무슨 돈으로 이걸 구했냐고 물으니 자기 월급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일반 초등학교 선생님이 10년을 근무해도 받지 못하는 월급인데 이렇게 큰 것을 헌물하다니...
그 기계는 내부 물탱크에 물이 65L가 들어가고 그걸로 65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덩치는 크지만 선풍기보다 약간 더 시원하고 주변의 몇 명만 시원할 기계라 어디 둘지 몰라 받아도 고민이다.
이걸 어디에 놓냐고 물었더니 강대상 위에 놓자고 한다.
작은 것도 아니고 강대상 위에 약 150L 크기 기계가 올라가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그걸 염두에 두고 구입했다니 거기에 안 둘 수도 없다.
한 마디 덧붙인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강대상 위에 올라가는 이들이 조금 더 시원해야 한다‘고 하면서...
혹시 이 녀석이 내가 강대상 위에서 가끔 열을 낸 것을 봤나?
스물여섯 나이고 4학년 부터인가 실로암에 합류한 아이인데 곧 결혼할 아이다.
여자애는 유아 때부터 실로암에서 자란 아이인데 이 동네에서, 아니 한 군(郡) 정도에서 가장 예쁜 여자아이다.
이 녀석이 6-7학년 때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자건거로 물을 배달하면서 용돈을 벌던 얘다.
주일마다 몇 년간 ㄱ회에 물통 하나씩 가져오던 아이고...
많은 어른들이 있지만 그들은 받기에 익숙하고 수동적이라 그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대학을 다니며 중고 택시를 사서 몇 년간 영업도 하던 녀석이다.
여기서 택시는 넘버 값이 없기에 소형 중고를 3,4 백만원이면 가능하기에 돈을 빌려서 차를 구입하더라도 2-3년이면 해결이 되니 돈의 문제보다 의지의 문제로 보인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몰다가 결혼을 앞두고 새 차도 마련했다.
부지런하고 이리저리 살피고 자기 몸으로 ㄱ회 일을 도운다고 나서는 아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내게 부탁한다.
이걸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학교에서 바느질 배웠다고 수료증을 받고 동물에 대한 한 시간 강의 들었다고 수료증을 받고 청접장에도 대학 졸업자라고 표시하는 이 사회이고 하다못해 동내 개들조차 자기 영역을 더 많이 표시하는 이 나라다.
자기의 한 일과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자기 이름을 넣고 드러내는 사회인데 비밀로 해 달고...
혹시 이 녀석이 지난번에 꽃다발을 사 들고 그 녀석인가?
숨은 봉사를 시작하는 건가? 벌써 그 나이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6:3)...를 내가 지금 보고 있는건가?
기특하고 고맙기는 하지만 이 녀석 때문에 나도 오늘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