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엔젤 폭포 국제등반대
잃어버린 클라이머의 시간을 찾아서
글 앤 애런·사진 www.thefreeclimber.com·초역 이선호 클라임익스트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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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애런이 인공등반으로 오른 피치를 벤 히슨이 레드포인트 등반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엔젤 폭포는 전체가 대부분 오버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 |
지난 2005년, 베네수엘라 엔젤 폭포 직등 라인인 '레인보우 잠바이아(Rainbow Jambaia·1000m·Ⅵ/5.13)를 자유등반으로 초등한 존 애런(John Arran)·앤 애런(Anne Arran)·마일즈 깁슨(Miles Gibson)·벤 히슨(Ben Heason·이상 영국)과 알렉스 클레노프(Alex Klenov·러시아), 이반 칼데론(Ivan Calderon)·알프레도 랑겔(Alfredo Rangel·이상 베네수엘라)의 등반기를 입수해 소개한다. 본지를 통해 국내 처음 선보이는 엔젤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오버행 자유등반 루트로, 등반대는 31피치를 등반하는데 19일이 걸렸고, 각 대원은 14일 이상을 벽에서 지냈다.
글을 쓴 앤 애런은 영국등산협회(BMC)와 알파인클럽 회원으로, 17세 때인 1985년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1992~2000년 영국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팀으로 활동했던 그는 현재 국제산악연맹 청소년위원장으로 재직하며 남편 존 애런과 함께 세계 각지를 등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브라질이 맞닿은 곳에 있는 카나이마국립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인 엔젤 폭포(Angel falls)가 있다. 이 지역은 탁자모양으로 생긴,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이라는 지형으로 되어있는데, 비가 내리면 테이블 마운틴의 절벽으로 수많은 폭포가 흐른다. 높이 1000m에 달하는 엔젤 폭포는 20세기 초반 금맥을 찾던 미국인 제미 엔젤이 비행기를 타고가다 발견해 이름 붙었는데, 수량이 여간 많지 않고서는 위의 물이 아래까지 떨어지지 못하고 도중에 안개가 되어버리곤 한다. 우리는 이 폭포를 자유 등반하는데 19일이 소요되었고, 총 31개의 멋진 피치를 올랐다. 그 중 9개는 E7(영국 등반 난이도 체계, 약 5.13)급이었고, 반 이상이 E6(약 5.12)이거나 그 이상이었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우리의 베이스캠프는 이반의 아파트였다. 나와 존과 마일즈와 벤으로 구성된 우리 영국 대표는 감출 수 없는 열의를 갖고 모였다. 마일즈는 우리가 등반에 성공하리라는 것을 너무나 확신하고 있어 성공 이외의 다른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이밖에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에서 만난 친구들이 속속 합류했다.
엔젤 폭포는 지구상에서 가장 덜 알려진 곳에 속하기는 하나, 상당한 위험성과 함께 우리가 피했으면 하는, 거의 홀드가 없어 분명히 등반 불가인 구간이 꽤 있다. 뛰어난 7인의 클라이머로 구성된 이번 등반은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는 시도였다. 우리는 이미 2002년과 2003년 엔젤 폭포 자유등반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각각의 경우에 대처할 사람들 그리고 정글 벌레에 물리거나 대원 부상 시에 투입될 소수의 예비 인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300ℓ의 물과 450m의 스태틱(static) 로프로 과연 충분할지? 우리는 17일간의 등반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마쳤다.
물 300ℓ, 고정로프 450m로 자유등반 시도
엔젤 폭포까지 접근을 위해 급류 위로 보트를 밀고 올라가는 동안, 리오 추룬(Rio Churun)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현지 부족 사람들에게 배터리를 주고 물고기와 교환해야 했다. 그때 갑자기 벤이 휙 몸을 돌리며 "악어!"라고 외치고, 허겁지겁 보트로 돌아왔다. 벤의 발치에서 1.5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툴두툴한 가죽껍데기를 가진, 섬뜩하고 거대한 생물이 수면 위로 코만 조금 내놓고, 구슬 같은 눈으로 벤을 보고 있었다. 모두 숨 가쁘게 재빨리 보트 속으로 후퇴했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그 악어는 어떤 일이 벌어지기만 기다리는 듯 했다.
날마다 엔젤 폭포 거벽에 대한 우리의 의욕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일행은 그 벽의 바위가 정말로 부실하고 안 좋아 보이면, 가스 검사를 하려고 수직 갱도 아래로 새를 먼저 보내듯이 가장 가벼운 나를 먼저 올려 보내어 그 바위를 테스트하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좋다! 만일 우리 모두가 그것을 할 수 없으면 '야수'라는 별명의 러시아 클라이머 알렉스를 보내면 되리라. 그는 러시아 군대에 있을 때 KGB(구 소련 비밀경찰)에게 산악등반을 가르친 적이 있어 우리들보다는 더 강하리라고 우리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일즈와 벤이 첫 세 피치에서 소나기를 맞았다. 첫 피치는 테라스를 따라 우측으로 기어 오른 다음, E6(약 5.12)급 피치 하나와 그 위의 E3/4(약 5.7)급 피치를 따라간 후 바위턱에 이르게 된다. 마일즈에게는 좀 안된 일지만, 그 E6 구간이 여러 갈래로 콸콸 쏟아지는 물로 잔뜩 젖어 있어 온사이트를 못하고, 등반 중에 20피트를 추락하고 말았다. 우리가 그 위를 등반하는 동안 마일즈는 그곳을 다시 등반해야만 했다. 존과 나, 이반, 알렉스, 유피가 베이스캠프에서 짐을 나르고 물을 모으는 일을 하는 동안 6시간이 지났다. 진에다 핑크 레모네이드를 타서 저녁 늦게까지 마시는 동안 모기떼는 계속 윙윙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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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아래 2피치 지점을 주마링 중인 앤 애런. 폭포 물줄기의 수량이 적을 때는 바닥에 닿기 전에 안개가 되어버린다. | |
난이도가 E6나 그 이상으로 보이는 등반 구간에서는 존, 마일즈, 벤, 알렉스로 구성된 주력부대가 번갈아가며 선등하기로 했다. 나와 이반과 유피로 구성된, 상대적으로 약한 교체팀은 비교적 쉬운 곳에서 선등의 기회를 갖기로 했다. 앞서 나가는 그룹에 속할 때 이 벽을 오르며 더 재미를 느끼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별로 쉬운 곳이 없다. 유피와 나는 등반을 더 많이 하려고 주마링 보다 션트를 쓰며 톱로핑을 했다.
매일 오전 10~11시 사이에 안개가 걷히면서 멋진 경치가 드러난다. 우리의 발아래 아름답고 진한 쌍무지개가 그 모습을 보이면서, 따사로움과 평화와 고요를 이 벽에 가져 온다. 벤이 주마링으로 등반하며, 두 번째 주마를 건 부분에 로프 보호대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로프가 헤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에게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지만, 큰 팀의 한 일원으로서 중요한 등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라는 경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다음 알렉스와 유피가 선등으로 올라가고 나와 이반과 존이 후등으로 갔다. 350m지점에 있는 크랙 침니의 꼭대기가 전에 우리가 후퇴한 지점이다. 거기에 과일이 가득 든 녹슨 통조림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그 과일이 맛이 좋아서, 그것을 다 먹고 빈 깡통을 위로 갖고 올라 갔다. 나는 알렉스에게서 러시아 등반 용어 몇 개를 배웠고, 알렉스도 선등 파트너인 벤과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안전하다"를 러시아어로는 "카목트팍솝카(CAMOCTPAXOBKA)"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우리가 가르쳐준 가장 좋은 말은 "기다려"라는 말이다. 마침 무전기가 없는 사람이 알렉스 뿐이어서, 긴 거리를 두고 그 말을 외쳐도 이제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 1~2피치씩 번갈아가며 선등
연달아 며칠 간, 각자의 성공한 정도는 달랐으나 존, 벤, 마일즈 또는 알렉스가 위로 올라갔고, 각기 맡은 피치를 온사이트 하거나 레드포인트 한 후 점점 더 지친 모습으로 내려왔다. 나중에 벤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열 번째 피치의 온사이팅이 인상적이다. 2002년도에 존과 앤이 이르렀던 마지막 지점 위에서 내가 처음으로 하는 등반이어서, 어디로 가야 제일 좋은 라인이 될지, 또 과연 갈 수는 있는 곳인지를 알 수 없었다. 결국 표면이 잘 벗겨지는 그 바위 위에서 영국 난이도로 5c/6a(약 5.11a) 동작이 계속 이어지는 곳을 등반하게 되었는데, 떨어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위치이고, 또 그 다음에 영국 난이도 6a(5.11b) 부분에 이르게 될지 또는 심지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될지 여부를 모르는 가운데 올라가야 했다. 내가 이제까지 등반해오면서 가장 공포를 느꼈던 순간이 바로 그때다. 이번 등반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때는 열 번째 피치 끝에 있는 빌레이 앵커에 이르면서 안도감을 느꼈을 때다."
우리 팀은 등반을 잘 하고 있었고 대개 하루에 한 두 피치를 해냈다. 벽 등반을 안 하는 동안에는, 홀링, 주마링, 스태틱 로프 고정, 취사, 포탈레지 청소나 정리, 캠프 이동, 그리고 별로 할 일이 없을 때는 주사위 놀이를 했다.
이제, 우리는 스페인어로 표기된 개념도 상에 '데리보스 아리아스(derribos arias)'라고 표시 된 곳을 가로 지르고, 지면으로 이르는 우리의 생명줄을 잘랐다. 이 루트가 우리 손 안에 있음을 알게 되니, 이제는 정말로 신이 났다.
22번째 피치는 내가 선등하기로 한 곳이다. 알렉스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대뜸 그는 "정말 여기를 하고 싶나요? 내 생각에 내일까지는 우리가 정상에 도착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알렉스는 친절하기는 하나, 자신이 여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편이다. 또는 적어도 그런 듯이 느껴진다. 나는 재빨리, 그리고 약간 날카롭게 "예스"라고 말하고, 그의 안전벨트에 있는 장비를 넘겨받기 시작했다.
다시 등반하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별로 믿을 만한 확보 장비가 없는 가운데, 크럭스 홀드를 과감하게 돌파하기 전에, 손끝만 겨우 걸리는 5c(5.10d) 동작을 하느라고 아등바등 대다가, 그 홀드 옆을 잡고 레이백으로 넘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다. 여하튼 몇 번 시도한 후 거의 마음만 안정시키는 용도 밖에 안 되는 러프 1개를 그 뒤에 간신히 박고, 그 확보물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얼른 등반을 시작했다. 곧 좋은 확보지점이 나타나서 빌레이를 보았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끝까지 그 피치를 해내어 정말 기뻤다.
우리는 800m 지점의 5캠프 바위턱에 도착한 후 안개와 어둠 속에서 4캠프까지 하강했다. 확보 지점이 잘 보이지 않아, 앵커에 도착하여 다음 하강 포인트를 찾는 일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로프 바꿔 끼는 작업이 좀 무서웠다. 포탈레지에서 헤드램프 빛과 진한 안개 사이를 차단한 우리의 손으로 안개 속에 크게 확대된 그림자를 만드는 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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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칼데론이 인공등반으로 루트를 개척하고 있다. 어려운 구간은 인공등반으로 먼저 확보물 설치 후 자유등반으로 올랐다. | |
정상에서 발견한 원시의 세계
다들 지쳐가고 있었고, 존은 자신이 선등해야 하는 날을 남에게 넘기기까지 했고, 벤은 자기 팔의 상태가 오늘은 겨우 E4(약 5.8급)까지 할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주장해 하루 쉴 수 있어 다행이라고도 했다. 알렉스와 밀스가 제일 먼저 올라갔고, 우리는 다음날 벽에서 8m 넘게 떨어져 매달리는 굉장히 아찔한 주마링을 하면서 모두 정상으로 올라갔다. 새로운 사람이 올라올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존은 "절벽 끝에서 도로 걸어오기 전까지는 정말로 실감하진 못했으나, 그 다음 순간, 지난 4년간 추구했던 희망과 꿈을 드디어 이루게 되어, 정말 미칠 듯이 기뻤다"고 말했다.
나는 물을 찾으러 갔다가 연못이 있는 작은 지하 동굴을 찾았는데, 그 곳은 정말 잃어버린 세계를 탐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쥐들과 (아마 주머니쥐 종류) 더불어 밤을 보낸 후, 100m 로프 두 동을 포함한 모든 로프 가닥과 코드를 다 묶어, 장비 대부분을 바닥까지 한번에 1000m를 내린 다음, 정상 밑의 어깨 부분 지형 위로 하강함으로써, 단 하루 만에 우리 모두가 내려올 수 있었다. 마일즈가 내놓은 이 아이디어는 60m 이상 오버행을 하강하기 위한 좋은 생각이었다.
벽 아래 도착하자 현지 인디언들이 베네수엘라 클라이머 한 명이 죽었다고 말해주었다. 장비와 젖은 로프를 모은 후 보트의 엔진이 멈추기 전에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침 그곳과 가장 가까운 비행장에서 200m 떨어진 곳까지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우리는 맥주를 몇 병 마신 후 카라카스로 돌아가는 '세계 최고의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우리의 냄새가 너무나 지독했던 탓에 그 버스의 한 칸을 전용으로 쓸 수 있어 더욱 더 좋았다. 버스 안에서 이반은 "인디언 문화에서는 엔젤 폭포가 대단히 중요하고, 또 폭포 덕에 그들이 일할 수 있어, 그들이 이번 등반에 기꺼이 참여해준 것 같다. 그들에게 정말 좋은 인상을 받았다. 늘 인디언과 더불어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INFORMATION
엔젤 폭포 등반 길잡이
엔젤 폭포 또는 이곳 원주민인 페몬족들이 말하는 '케레파쿠파이 메루(Kerepakupai Meru)'는 지난 1994년 스페인팀이 그 오버행 벽 전체를 인공등반하기까지는 시도된 적이 없었다. 이번 등반을 통해서 9개의 E7(약 5.13급) 피치 모두가 마일즈, 벤, 또는 존에 의해 온사이트 되거나, 레드포인트로 자유등반 되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테푸이(tepui·정상이 테이블처럼 생긴 암벽) 등반 최적기는 몬순을 피할 수 있는 2월에서 4월까지이지만, 10월에도 갈 수 있다.
우리는 카르카스에서 시우다드 데 볼리바르(Ciudad de Bolivar)까지 마차로 간 다음 카마라타(Kamarata)행 경비행기를 임대했다. 거기서부터 현지의 페몬(Pemon)족 인디언들과 함께 아카난, 카라오, 추룬 강을 따라 통나무를 깎아 만든 배로 그 폭포 밑까지 갔다. 이렇게 접근하면 수면의 높이에 따라 하루 반 내지 3일이 걸리는데, 특별히 만들어진 강가의 캠프에서 야영하는 시간이 포함된다. 보트 경비는 조금 비싸다. 우리 일행 7명과 짐을 위해 1230파운드(약 230만원)을 지불했다. 비행기 경비는 편도 1인당 45파운드(약 84,000원)이다. 그 지역을 안내하는 등반 가이드북은 없으나, 여러 개의 등반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략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이밖에 베네수엘라에는 여러 등반대상지가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려면 메리다(Merida) 근처의 라 아줄리타(La Azulita), 모나가스(Monagas)주의 라 푸에르타(La Puerta), 카라카스 중앙의 라 구아이리타(La Guairita) 등이 가볼 만하다. 세계적인 수준의 바위는 아니나 거벽 등반 대신 암벽 등반을 해보려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좋은 곳이다. 메리다 지역에는 4~5000m급 봉우리가 많다. 루트 개념도 및 기타 정보는 앤 애런의 홈페이지(www.thefreeclimber.com)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