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에서 이슬람 자료가 가장 충실한 곳은 한림대 도서관이다.
슐레이만 시대를 다룬 자료만도 서가 한 개를 채울 만큼 많다.
M 고교와는 제법 거리가 되지만 수고할 가치는 충분했다.
한림대 도서관을 찾은 지형은 자료의 엄청난 분량에 난감해졌다.
서가를 훑어보니 상당부분이 오스만 시대의 정점이자 이슬람 문화가 전성기를 달리던 슐레이만 시대를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슐레이만의 전기부터 읽어 보기로 결심했다.
슐레이만의 부친 셀림 1세는 오스만 왕조의 창업에 이어졌던
내우외환의 난세를 평정한 걸출한 군주였다.
부친을 이어 1520년에 제위에 올라 무려 47년간에 걸쳐 통치한 슐레이만은
제국을 당대 최고의 강국으로 키웠고 또한 안정시킨 명군이었다.
각축을 벌이던 16세기 유럽의 왕과 황제들 사이에서
슐레이만은 그 위풍당당함으로 단연 두각을 드러냈다.
유럽 왕실들이 그의 이름에 ‘화려한 황제’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것은
단순히 궁정의 화려함이나 예술 문화적 개화에
주요 역할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인격과 고매한 기품, 국가 원수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비범한 자질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다시는 그에 버금 갈만한 인재를 갖지 못했던
오스만 제국으로서는 그의 치세야말로 영광의 절정기 였다.
전기는 그를 공정하고 현명하며 도덕적으로 매우 고매한 인물로 묘사했다.
또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약속을 충실히 지키는
사려 깊은 인물로 묘사했는데
유독 두 사람에게만 지나치게 유약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이란 아리따운 아내 록셀란 , 즉 후렘 왕비와
각별히 총애했던 재상 이브라힘이었다.
노예 신분으로 후궁에 들어와 왕비로 간택된 록셀란은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우아했다.
쾌활한 성격 때문에 명랑한 여인 즉 후렘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슐레이만도 이 애칭을 즐겨 불렀다고 한다.
지형은 문득 긴장했다. 장검 손잡이 문자 중에 후렘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화려하게 아로새긴 그 단어는 튤립, 히아신스, 장미 그리고 모란 - 이슬람을 상징 하는 꽃 -- 로 디자인되어 손잡이에 박힌 큼지막한 루비를 에워싸고 있었다. 따라서 장검과 후렘, 즉 록셀란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의미이리라.
두터운 전기를 하루 만에 독파 하기는 무리였다.
늦은 시간에 도서관을 나서며 기지개를 펴자
온 몸의 뼈마디가 우두둑거리며 항의하는 비명을 지른다.
대출받은 책을 담은 묵직한 배낭을 짊어진 소녀는
3개의 명문, 원래의 것. 물, 그리고 불의 부분으로 이어서 낭송하며
땅거미 깔리는 캠퍼스를 가로 질러 학교 기숙사로 향했다.
남들이 보면 괴상한 행동이지만 여름의 캠퍼스는 한적했다.
그렇게 주말마다 기숙사와 한림대를 오가며 낭송 했다.
낭송은 하루 다섯 번씩인 이슬람 기도시간과 비슷하게 맞추었다.
무슬림들의 기도는 해뜨기 전후인 여명에 하는 이른 아침 예배
(쌀라뚤 -파즈르)로 시작해 정오 예배(주흐르), 오후 예배 (아스르) 해질녘 예배(마그립), 그리고 밤 9시 전 후에 하는 밤 예배(이샤)로 마무리된다.
그러니 매일 일곱 번 이상씩 암송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번쩍, 문리가 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명문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록셀란과 이브라힘의 자료에는 장검에 대한 단서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슐레이만의 시동으로 궁정에 들어온 그리스 출신의 이브라힘은
당당한 풍채와 뛰어난 지성, 빠른 두뇌 회전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황제의 그림자 같은 동반자가 되고 1523년에는 재상이 된다.
그리고 이듬해 황제의 누이동생 하디스와 결혼해 제국의 강자로 부상했다.
이례적으로 빠른 신분상승에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그는 이집트 반란을 진압하고 엉망으로 어질러졌던 이집트 내정을
단 1년 만에 안정시켜 역량을 과시했다.
이후 황제와 함께 나선 항가리 원정에서 대승을 거두며
전 유럽에 제국의 위엄을 떨침으로써
벼락출세에 대한 수군거림을 잠 재우며 제국의 버팀목으로 우뚝 섰다.
이후 1536년에 암살당할 때까지 그가 재상으로 있던 14년간은 슐레이만의 기나긴 치세 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황금기로 꼽혔다.
그는 슐레이만 황제와 나란히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록되고 있었다.
암살은 총애가 식은 슐레이만의 방조 하에 그를 시기해온 고관들과
록셀란의 합작이었다고만 간단히 기록되어 있을 뿐 더 이상 설명이 없었다.
후렘의 장검은 여전히 미스터리 였다.
어느 날, 지형은 점심을 자주 거르는데도 배고프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다이어트를 위해 거른 적은 전에도 있었지만
한창 나이에 배고픔을 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별다른 부담 없이 그냥 거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공부는 더 잘 된다.
주말 숙제로 주는 영시 암송을 빨리 마쳤기에
이브라힘과 록셀란의 자료를 뒤지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다.
원래 암기는 좀 되는 편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꾸란을 열심히 외운다고 알라께서 내려주신 은총인지도 모를 일이다.
11월의 마지막 날,
열람실의 소녀는 갑자기 복통을 느꼈다.
급했지만 화장실은 멀다.
종종 걸음으로 열람실을 벗어난 소녀는 복도를 뛰어가려 했다.
하지만 아차하면 몸 밖으로 나와 버릴 것 같은 위기감에
필사적으로 괄약근을 조이며 비틀비틀 걸어갔다.
잠시 후 한 고비를 넘긴다.
하지만 곧 다음 고비가 올 것을 알기에 화장실로 종종걸음 쳤다.
드디어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아까보다 더 큰 복통이 몰려온다.
“으윽”
창백해져 혼신의 힘으로 조이며 변기에 앉는 순간
건물이 통 째 날아가는 듯한 폭음과 함께 고약한 냄새가 화장실을 채운다.
잠시 후 행복한 표정이 된 소녀는 창백해진 얼굴을 적시며 중얼거렸다.
“먹은 것도 없는데 웬일이지?
타르처럼 찐득한 검은 액체와 함께 자갈 모양의 딱딱한 덩어리를 몇 개나 배출했다. 이후 며칠마다 한 번씩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색깔은 매번 달라 푸르죽죽하거나 초록색일 때도 있었다.
색깔이 어떻든 간에 배변 후의 날아갈 듯 상쾌감은 마찬가지였다.
봄 방학이다.
겨우 1주일이라 기숙사에서 밀린 공부를 한다고 집에 연락했다.
빈 기숙사에서 혼자지내며 명문의 비밀을 추적해볼 요량이었다.
그날 밤 또 한 번의 극심한 복통으로 화장실을 순례했다.
탈진해 침대로 들어간 소녀는 모처럼의 호젓함을 만끽하며 곯아 떨어졌다
이미 해가 중천에 솟은 한낮.
찌부둥한 느낌에 몸을 뒤척이자 여기저기서 뚜둑 소리가 난다.
모처럼 푹 잔 탓이려니 하는데 어쩐지 눈앞이 뿌옇다.
마치 막이 쒸워진 것 같다.
만져보니 놀랍게도 엷은 막이 눈꺼풀과 얼굴 전체를 덮고 있다.
질겁한 소녀는 후다닥 일어나 눈꺼풀의 막부터 뜯어냈다.
뜯어내고 보니 얼굴뿐 아니라 손까지 미끌거리는 막으로 온통 뒤덮였다.
“....... ?!
무섭고 당황스럽다.
부리나케 세면도구를 챙겨 바람같이 화장실로 달렸다.
거울에 비친 얼굴에는 별 이상이 없다. 조금 창백하지만
피부는 오히려 더 깨끗해진 것 같다.
화장실과 이어진 욕실에서 옷을 벗으니 온 몸이 반투명의 희부연 막으로 뒤덮였다. 마치 허물 벗은 파충류 꼬락서니였다.
누가 볼까 무서워 얼른 씻고 나오다 복도에서 기숙사 관리인과 마주쳤다.
아저씨가 알은 체 한다.
“아, 지형이구나, 언제 돌아왔나?
집에 다녀온 줄 아는 모양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얼버무렸다.
“네에, 어제는 늦은 시간이라 인사 못드렸어요.
“음, 또 보세.
아저씨는 용원들에게 구석구석의 청소를 지시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 웬 청소? 개학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왜?
대 걸레를 밀고 있는 아줌마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손님이라도 오나요?
“무울론, 아--아주 귀한 손님들이 잔뜩 오시지.
소녀를 잘 아는 아줌마는 농담조였다.
“누가요--?
“인석아 기숙사에서 귀한 손님이면 당연히 학생들이지 누구겠어?
내일이 개학이니 대청소를 하는 거지.
“ ..... !!
머리가 핑 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방으로 돌아온 지형은 아까 뜯어낸 허물을 집었다.
지저분한데다 고약한 냄새마저 풍긴다.
냄새나는 꿈 따위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건 절대로 꿈일 수 없다!.
분명 어제가 2월 21일이었다. 그런데 내일이 개학날이면 오늘은 28일!
일주일이 하룻밤 만에 지나가버렸다는 말인가?
‘뱀처럼 동면하면서 허물을 벗었나?
일주일이나 굶었다면 배가 고파야할 텐데 시장기는 느낄 수 없다.
기숙사를 빠져나온 지형이는 수프로 이름난 학교 앞 토스트 집으로 갔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단식 뒤끝이다.
많이 먹으면 위험하다는 상식을 아는 소녀는
토마토 쥬스와 양송이 수프를 주문했다.
쥬스를 입으로 흘려 넣자 찌르는 듯 톡 쏘는 자극이 온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신맛과 단 맛이 혀를 쪼아댄다.
귀 밑의 침샘이 열리며 지르르 흘러나온 침이 금세 가득 괸다.
침이 넘쳐나려 하자 당황해 얼른 냅킨으로 틀어막았다.
잠시 진정하고 다시 한 모금 마시자 이번에는 그럭저럭 마실 만하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수프를 조금 떠서 조심스레 혀를 대 본다.
토마토 쥬스로 첫 관문을 넘겨서인지 거부하지 않는다.
우유를 먹는 강아지처럼
수프 스푼을 조금씩 핥는 소녀를 점원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다 먹고 앉아 있으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식당 화장실은 부실한데다 남녀 공용이다.
또 화장실을 다급하게 찾는 사태가 닥칠까 더럭 겁이 났다.
샌드위치를 싸들고 서둘러 돌아온 지형은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이인분이 사라진다.
공복감이 사라지자 소녀는 명상에 잠겼다.
뱃속에서 꼬물대는 간지러운 감촉. 위를 보는 듯한 느낌.
위 모양이 비틀린다. 아니니 다를까 잠시 후 복통이 찾아온다.
바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검은 돌덩이만 몇 개 나오더니 끝이다.
도서관에 가서 단식 자료를 찾아보았다.
숙변이나 단식 후 섭생 자료들은 많지만 일주일 이상 잔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단전호흡 도장 횡성 지부.
자주는 못 갔지만 한 달에 두어번 씩 지도받아왔기에 사범과 안면이 있다.
횡성 지부는 체육관도 겸하고 있었다. 골절과 응급조치의 대가인 사범은
풍부한 의학 상식으로 사춘기 청춘들의 은밀한 건강 상담까지 해주는
횡성의 명물이다.
체육관은 시내를 벗어난 외곽 지역에 있다.
지형은 체육관까지 뛰어 가기로 했다.
강을 따라 외곽으로 빠지는 숲길은 연인들의 산책로지만
방학 마지막 날인 오늘은 아무도 없으리라.
경보로 시작해 차츰 속도를 올리던 지형은 내달리면서 쓰러질 뻔하다
겨우 균형을 잡았다. 앞서 나가는 다리를 몸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
이윽고 적응해 점점 속도를 올린다. 이상할 만큼 숨차지 않다.
재미를 붙인 소녀는 최고 속도에 도전하며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단발머리가 휘날리며 바람소리가 쌩쌩 들렸고 부딪치는 맞바람에
눈 뜨기가 어렵다.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달려오던 두 청년이
달리는 소녀를 보더니 문득 멈춘다.
순식간에 휙 지나치자 시선을 맞춘 두 청년은
자전거를 돌려 추격을 시작했다.
체육관에 도착해 숨을 고르는 동안 자전거 청년들도 도착한다.
“굉장히 빠르신데요
“뭘요, 그냥 혼자 하는 운동인데
“우린 한림대 육상부원들이죠.
하도 잘 달리시길래 호기심에서 따라왔습니다. 학생이신가요?
“네, M 고등학교 2학년인데요. 여기 사범님 뵈러 왔어요.
두 청년은 눈을 마주치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달리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천마가 달리는 것 같았어요.
볼 일 끝나면 우리 육상부에 한번 들리세요. 도서관 옆이니까 찾기 쉬워요 .
“초대 고맙습니다. 나중 찾아뵙죠.
쾌활하게 고개를 숙여보이는 소녀.
달리던 때와는 또 다른 면을 본 청년이 말을 더듬었다.
“저, 저기, 부원들한테 미리 얘기해 둘 테니까 우리 없다고
그냥 가지 마시고, 꼭 오세요.
소년단 생활을 몇해 경험한 지형은 낮선 사람과의 대화에 익숙했다.
밝게 자란 사람들은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편하게 대한다.
그것은 좋은 인상을 주기 마련이고 지금 지형의 태도가 그랬다.
“사범님
체육관을 들어서는 소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걸걸한 목소리.
“이야, 우리 공주님 아니신가? 그래 어떻게 지냈나?
50줄이지만 늘 학생들과 어울려서인지 말투는 물론 얼굴까지
아직 30대 같다. 물론 공주는 칭찬이 아니라 놀리는 소리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큰 눈, 그리고 도톰한 입술로 보아
폴리네시아 왕족 혈통이 분명하다는 학설을 발표한 후부터 공주로 부른다.
“개학하면 바빠지시겠죠?
“아아-- 물론 그래야지. 어디 미수 가루나 한잔 할까.
장검 필사본이나 허물벗은 얘기따위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지형은
어제(?) 잠들기 전후의 경험과 화장실 사건 그리고 며칠씩(일 주일이란 말은 차마 못했다.) 계속 잤다는 얘기만 했다.
어쩐지 체력이 좋아진 것같다는 얘기까지 듣고 난 사범은
손목과 경동맥에 손을 대더니 맥을 측정한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프레스 벤치로 데려갔다.
“안 해보던 운동을 잘못하면 허리 다치니까
허리는 굽힌 채 들 수 있는지만 보자구.
100파운드부터 시작해 무게를 올려가다 250파운드도
가쁜하게 올리는 모습을 보더니 끄덕였다.
“단전호흡이 대주천을 이루면 나타나는 현상이야.
근육단련이나 운동으로 쌓은 체력과는 전혀 다른 힘이지.
축하하네.
하지만 아직 단전호흡 초보인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는 모르겠다.
사범은 부러운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명문을 낭송한지 얼마 지나서부터 아랫배 언저리에서
시작된 짜릿한 느낌이 있었다.
그 짜릿함이 요즘은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감각을 느껴온 소녀였기에
사범의 설명은 쉽사리 납득힐 수 있었다.
하지만 설사 대주천이라 해도 효과가 너무 빠르다.
기숙사로 걸어가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은 필사본 밖에 없었다.
이것이야 말로 초기 이슬람 세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밀인지도 몰랐다.
일정 순서로 배열한 꾸란 구절과 문장을 낭독하는 것만으로
이 같은 능력이 생긴다면 단시일에
무적의 군대를 양성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화약 이전 시대에는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비밀일 수도 있다.
이슬람이 시작된 7세기 초의 아랍 인구는 수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 세대 만에 당대의 지배자,
사산 왕조와 비잔틴 제국을 제압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예언자는 이 비밀을 후대에 전승한 것일까?
어딘가에서 생긴 틈새 때문에 이 경전의 전승은 끊겼으리라.
유수프 왕자는 물론 이슬람권의 누구도 이 경전을 모른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었다면 이교도 소녀에게 필사를 맡겼겠는가?
베링 자치주
“통산성은 소위 베링 프로젝트라는 걸 어떻게 보십니까?
불편한 심기를 역력히 드러낸 사까모도 국장이 물었다.
외무성의 APEC 담당관인 자기도 모르는 일이
코 밑에서 진행되고 있다는데 대한 불쾌감 이었다.
“아직 구체적인 정보를 들은 게 없어서...
통산성에서 나온 운수국장은 선배인 외무성 국장의 예봉을 노회하게 피해갔다.
사까모도는 입맛이 썼다.
외무성 주무국장인 자기도 겨우 며칠 전에 입수한 정보라면
운수 국장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사까모도를 수행하던 서기관이 운수국장에게 다가가
대외비의 붉은 도장이 찍힌 자료를 한 부 내밀었다.
“제 불찰입니다. 미처 전달되지 않은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는 운수국장이 그 자료를 이미 읽었다는 것을 안다.
그의 행동은 사까모도의 체면을 살리면서 자칫 거북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제스처일 뿐이었다.
“자료의 골자는 한국의 민간단체인 극동 연구소에서
알라스카와 시베리아를 잇는 고속철도를 부설한다는 얘깁니다.
자, 이젠 의견을 말씀해 보시죠.
운수국장은 속으로 한숨울 푹 쉬었다.
운수국 입장에서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은 명료했다.
SLB(시베리아 랜드 브릿지) 화물이 끊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평양 지역의 물류 중개지 일본의 기능도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그것은 연간 백억불 이상의 운임수지 감소를 의미했고
연관 산업들에 대한 파급효과까지 감안하면 그 열배도 넘을지도 몰랐다. 그것을 모를 사까모도가 아닌데 새삼스레 무엇을 묻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으니 갑갑한 노릇이었다.
“국제수지 부문에 상당한 차질이 있겠지요. 규모는 일단 따져 봐야겠습니다만.
“그 외에는?“....?
“국제수지 이전에 일본을 겨냥한 음모 냄새가 난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음, 이것이었군.
운수 국장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대륙 국가끼리의 동아리를 만들어 일본을 왕따 시키자는 것외에는 달리 생각하기 어려운 움직임입니다.
손바닥으로 천천히 이마를 문지르며 사까모도가 말했다.
그가 생각에 잠길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런데 미국과 이미 알라스카 철도부지의 조차협정까지 맺은
극동 연구소라는 단체에 대해 도대체 정보가 없단 말입니다.
위장간판을 단 한국의 정부기관인지
어쩌면 미국의 입장을 대리하는 기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운수국장은 감을 잡았다. 결국은 한국에 진출한 일본업체들을 동원해
알아내라는 얘기 아닌가? 외무성 인간들이란 늘 이렇다.
남에게 숙제만 던져주고 자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알았습니다. 선배님. 제가 한번 알아보지요.”
“으흠, 그래준다면 고맙겠어. 이왕이면 좀 빨리 부탁하네.”
사까모도의 ‘빨리’는 일주일이라는 의미다.
이거 별것도 아닌 걸로 상사 녀석들한테 또 빚을 지게 생겼군.
회의실을 나서는 운수 국장의 얼굴이 떨떠름하다.
종합 상사의 실력은 과연 무서웠다.
불과 닷새 만에 보내온 보고서에는 극동 연구소 창설이래의 대외활동 리스트와 1988년의 팔로알토 회의자료, 그리고 베링 프로젝트 검토를 위한 한국정부의 특별위원회 보고서 사본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문에서 스크랩한 알라스카 탐험일지까지 있었는데
이만한 자료를 도저히 며칠 사이에 조사해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운수국장은 자료를 들고 온 닛쇼 이와이 상사의 부장에게 물었다.
“상사에서는 왜 극동 연구소에 관심을 갖지요?
“경쟁력 때문입니다.
해운이나 항공이 철도운송을 당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음.... 역시 상사의 후각이란 날카롭군.’
운수 국장은 이쇼 이외이의 부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끄덕여 계속하라는 몸짓을 보여주자 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뭔가 보아왔던 사업과는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한국 주재원들 녀석들은 지금 베링 프로젝트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상세한 자료를 단시일에 준비할 수 있었다더군요.
취미생활이 섞인 정보활동이었던 셈입니다.
그 친구들 얘기로는 이 프로젝트에는 기백이랄까
스케일이 있다는 겁니다.
90년대의 맥 빠진 일본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거지요.
세계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인다고 할지---
심지어는 점점 희미 해져가는 인류의 비전과 꿈을
되살릴 사업으로까지 높이 평가하더군요.
운수국장은 그제서야 사까모도 국장의 우려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발밑 저만치 있어야 했던 한국이 언제부터인가
일본을 압박하는 합종연횡책을 주도하는 위치로 자라나 있었다.
어느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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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홍콩 이래 최대의 영토협정이군요.
“그때야 포함 외교시대라 살벌했지요.
지금은 경제력과 첨단기술이 전면에 나섰으니
100년만에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APEC 분과위원회가 진행되는 벨지움, 브뤼셀의 라마다 호텔 로비.
회의실 바깥으로 나온 기자들이 띄엄띄엄 앉아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베링 철도의 부설 예정지에 대한 조차협정 MOU(이해각서) 싸인은 미국, 쏘련과 극동 연구소 간에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베링 프로젝트 추진은 이제 기정사실이었다.
극동 연구소 측은 베링 철도가 APEC의 결속력 강화에 중요하다 주장했고 참가국들은 베링 철도가 일본을 소외시킬 방법이라는데 매력을 느꼈다.
이해가 일치한 참가국들은 미국과 러시아가 철도 부지를 제공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베링 프로젝트를 지원했고 그 결과가 MOU 싸인 이었다.
진행 중인 협상은 MOU로 이미 원칙적 합의가 된 계약의
세부 사항에 관한 실무적인 것이라 긴장감이 풀려 있었다.
1988년 팔로알토 회의 이래 3년간은 한국이 민주화의 진통을 겪는
정치적 격동기였다. 큰 뉴스에 가려져 베링 프로젝트는 세인들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었지만 UN을 통한 관련국 간의 협의는 착실하게 진행되어 왔다.
여기에는 UN 사무국의 베링 사업 담당관으로 선임된
토마스의 역할이 컸다.
미국의 주요인사로 토마스와 학연이나 집안과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그의 인맥은 광범했다.
이것은 그의 조상인 벤자민 프랭클린을 포함한 건국영웅들이 아직도
미국인들로부터 사랑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덕분에 극동 연구소 역시 미국 정가에 착실하게 인맥을 쌓아 나가
이제는 한국 대사관 측이 극동 연구소에 아쉬운 소리를
꺼낼 정도가 되어있었다.
이제 베링 소년단으로 이름이 바뀐 알라스카 소년단 출신들을 묶어
각국 정부에 대한 문화사절로 활용하자는 Idea도 그의 발상이었는데 소
년단은 비엔나 합창단 못지않게 인기를 얻어 베링사업 홍보에 도움이 컸다.
로비의 한가로움과는 대조적으로 회의실 안에서는 팽팽한 전의를 불태우는
미국 대표들을 맞은 극동연구소 팀은 진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에 비교적 익숙한 진 현구와 이 소장도 논리성과
무지막지한 힘을 번갈아 과시하며 밀어붙이는 이들을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극동 연구소의 협상 멤버는 김 청자까지 3명이었고 하 동수와 다른 연구원
두 명이 회의록 작성이나 연락, 의전 등을 지원하는 실무팀으로 배석했다.
“MOU에서 기본사항은 언급되었으니 협상의 기본 틀을
어떻게 정하는냐 는 점을 의제 도입에 앞서 정해야 합니다.
저희는 파나마 운하나 홍콩의 전례에 따랐으면 합니다만....
이 소장의 발언에 알라스카 주 정부 대표가 대답했다.
“말씀하신 사례들은 이미 1세기 이전의 낡은 것들입니다.
베링 프로젝트라는 첨단적 아이디어하고는 걸맞지 않군요.
미국측은 처음부터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해묵은 사례를 들추기보다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협의해갈 것을 제안합니다.
과거의 조차계약들은 대부분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불평등 계약이었고
내용은 당연히 조차지 제공자 측에 불리했다.
조차지 제공자의 권리는 대충 넘어간 반면에 사용자의 권리는
상세히 열거하는 식이었다.
유리한 협상고지를 차지하려는 쌍방은 처음부터 의견이 맞서고 있었다.
어차피 단 시일 내에 마무리될 성격의 협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 팀은 짚을 것을 다 짚고 넘어가겠다는 느긋한 자세였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 소장은 걸핏하면 커피 브레이크를 걸거나
점심을 일찍 시작해 늦게 끝내곤 해서 진 현구와 김 청자만 애를 태웠다.
7명의 미국팀 중 대표는 3명이고 나머지는 Lawer들 이었다.
그들은 한 마디 할 때마다 자기들끼리 의논을 거치는 식으로
마냥 시간을 끌어 회의 진도는 첫 날부터 지지부진 했다.
진 현구 책임연구원은 3색 메모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궁금해진 동수가 물어보니 유리한 것, 불리한 것, 그리고 이도저도 아닌 것들로 나누는 중이라 했다.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어차피 서로 하나씩 양보하면서 절충한다.
이 경우 바둑의 패싸움과 마찬가지로 팻감, 즉 건수가 많은 측이 이기거나
최소한 유리해진다고 했다. 지극히 실무적인 협상기법이었다.
그날 저녁은 첫날이라 극동 연구소가 호스트가 된 만찬을 가졌다.
미 연방정부 대표인 브라이언의 건배사는
For a Good Negotiation (멋진 협상을 위하여) 이었다.
그 표정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 김 청자가 짓궂게 물었다.
“무엇이 Good Nego 인가?
풍성한 결과를 거두는 것 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철도부지 조차의 대가를 많이 챙기겠다는 얘기였다.
“주기 싫은 것들을 주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게임이지요.
결국 뺏길 것을 각오하라는 선전 포고였다.
진 현구 책임 연구원이 나섰다.
“파이의 크기가 정해져있다면 그도 맞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하기에 따라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 경우에는
파이를 키우는 협상이야말로 Good Nego가 아닐까요?
공존공영이나 Win Win이란 말도 있으니까요.
서양식 사고와 동양적 사고방식,
수렵 문화와 농경문화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후식이 나오기 시작하자 미모의 장신 웨이트리스가 시가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이 소장과 몇몇 미국 대표들이 피우겠다고 한 덕분에
일행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쇼를 보게 되었다.
가는 빌로드 끈으로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를 아슬아슬하게 걸친
그 웨이트리스는 라이터로 불을 당긴 시가를 양손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우더니 디스코 리듬으로 미끈한 양팔 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시가에 당긴 불씨를 피우는 동작인 동시에 멋진 무용을 선보이는 엔터테인먼트였다.
뜻밖에 등장한 멋진 무용에 젊은 축들은 나지막한 기성을 냈고
나이든 사람들도 벌겋게 핀 씨가를 하나씩 나눠 받으며 싱글 벙글 한다.
하지만 동수는 이들 모두를 대표해서 김청자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뭘 넋을 놓고 쳐다봐? 장가까지 간 주제에.
그저 사내들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 정부 측과의 협상 중에도 통신과 석유 그리고 전기분야의 내방객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베링철도와 자기들의 시설물 - 해저 케이블이나 송유관 또는 송전선 등 - 들과의 연계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었다.
이 소장은 이들 모두에게 희망적 언질을 주었다.
다만 수의계약이 아닌 입찰방식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이 중 연구원들을 감탄시킨 회사는 유리섬유를 들고 온 통신 회사였다.
아직 연구도 끝나지 않은 광케이블 부설을 들고왔기 때문이다.
개발은 기정사실로 확신하고 판매를 앞당겨 준비하는 그들에게서 자기부상열차를 연상한 사람들은 은근히 주눅이 들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막바지 단계로 접어든 협상은 주요 쟁점 몇 개만 제외하고는 틀이 거의 정해졌다.
가장 큰 쟁점은 조차기간의 기산점이었다.
극동 연구소는 베링 철도의 정상 가동년도를 주장한 반면에
미국은 협약 성립년도로 주장했다.
철도장비가 조금이라도 덜 낡았을 때 인수하려는 미국의 주방은 본국의 훈령이 없는 한 양보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극동 연구소는 민간부문의 기술도입 계약사례를 제시하면서 정상가동 시점부터의 기산이 합리적이라 주장했지만 상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은 결국 APEC 총회의 조정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관측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UN측 참관자로 온 토마스가 개입해 조정을 시도했다. 그는 자기 이익만 내세워 대립 중인 쌍방 모두를 꼬집었다.
“세계 경제질서 개편과 환태평양 지역 발전을 도모하자는 비전이
일반 상거래와 진배없는 모습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명예가 걸릴 수도 있다.“
토마스는 러시아로부터 알라스카를 사들인 미국 국무장관 스워드가
얼마나 조롱거리가 되었는지 설명했다. 당시 신문은 알라스카를
‘스워드의 720만 달라 짜리 얼음 상자’
라고 부르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땅이라고 비아냥 댔다.
그러나 불과 100여년만에 알라스카는 미국의 보물단지가 되어 있다.
부디 역사를 바라보며 협상해 달라.
토마스는 UN 사무국 내에서도 총장의 신임이 두터워 발언권이 큰 위치였다.
또 그의 주장이 타당했기에 반씩 양보해 타협하기로 했다.
즉 공사완공과 조약발효 시점의 중간인 2015년을 기산시점으로 잡아
조차기간은 2113년까지 99년이 되었다.
알라스카 철도부지의 조차는 미국 대통령의 재가와 상하원의 인준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번에 합의된 초안에 대한 내부 조정을 거치고 실무적인 마무리가 되려면
다음 대통령 임기인 1990년이 되어야 할 전망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첫발은 내디딘 셈이라 협상팀은 만족했고
브뤼셀의 한국대사관 측은 한국 정부의 축전을 보여주면서
협상 쌍방을 위한 리셉 션까지 열어주었다. 이제 소련만 남아 있었다.
EU본부가 있는 브뤼셀의 대사관 직원들은 아무래도 타 지역보다는
국제자기들끼리 기구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국제기구 직원들은 각국 외교관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 고급 정보를 주고 받는
자기들끼리의 이너서클 영입 대상으로 UN의 토마스를 주목했다.
베링 소년단을 동원한 문화 외교에 관여하던 토마스는
어느 새 한국의 민속예술에 깊이 빠져 있었다.
살 풀이 춤과 타악기에 심취한 그와 피어슨 여사는 UN의 행사 때마다 공연을 요청했고 극동 연구소는 최상의 팀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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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낮에는 섭씨 30도가 넘는 자카르타도 아침나절은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가루다 호텔 로비의 소파에 몸을 묻은 운동복 차림의 사카모도는
로비에 차려진 서비스 테이블에서 따라온 커피 잔을 든 채
인도네시아 자야를 펼치고 있었다. 아침 조깅 후의 첫 커피 맛은 각별하다.
동정란에 게재된 자신의 입국기사 옆에 호주 외무부 국장 윌로비의 입국기사가 있다.
커피를 다 마셔갈 때쯤 그 기사의 주인공이 츄레닝 바람으로 호텔 입구를 들어섰다.
30대의 건강이 넘치는 장년의 거구, 윌로비는 사카모도의 호주 외무성 카운터 파트다.
“굳모닝, 사카모도. 오랜만입니다.
“굳모닝, 윌로비 조깅은 좋았습니까?
호주의 깨끗한 조깅 코스가 먼지투성이 자카르타와 비교될 리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사까모도는 짓궂게 물어본다.
“낫 소 배드
외교관다운 노련한 응대였다.
“같이 아침 식사, 어때요?
“와이 낫, 언제?
“30분 후, 이층 식당에서.
“오우케이, 씨 유 레이터
잘된 일이었다.
인도네시아 외무성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조율 해둘 필요가 있으니까.
아침식사를 하며 사카모도는 윌로비가 베링 프로젝트를
대충 파악하고 있음을 알았다.
남은 것은 호주측 반응인데 포커페이스의 직업 외교관 윌로비는
어떤 낌새도 비치지 않는다. 어차피 터놓고 얘기할 상대라는 기분으로
사카모도는 자기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냉전 이후의 구도를 대륙국가와 도서국가라는 이분법으로 끌고 가려는
누군가의 장난으로 의심하는 게 내 입장이네.
그렇게 되면 환태평양 국가끼리 라는 APEC의 구호도 빛이 바래겠지.
“흐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읠로비는 빵에 버터를 바르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릴 수 있는 애매한 반응이다.
“그 프로젝트라는 게 현실성이 있는지 짚어보는 게 순서 같은데...
그렇게 방대한 사업을 추진할 능력이 과연 한국에 있을까?
사카모도는 대답을 알고 있다.
그러나 윌로비의 의문에 동조하는 정도로 끝내고 말았다.
읠로비와 같이 인도네시아 외무부 관리들을 마주한 사까모도는 베링 프로젝트에 대한 그들의 지식을 점검해 보았다. 그들에게 기본정보가 충분히 입력되어 있음을 확인한 그는 일단 안도감을 느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의 장기판에는 호주 등 섬나라들과 대륙국가들이 맞서 있었다.
그런데 섬나라들은 아무래도 쪽수가 좀 모자란다. 하지만 그 모자란 쪽수나마 긁어모아 결집시켜야 한다.
만면에 미소를 띠운 사까모도가 발언하기 시작했다.
“환태평양의 발전하는 내일을 위해... |
첫댓글 드디어 섬나라 일본도 등장...흥미 진진해 갑니다.^^ 그런데,돌아가신 문선명 총재가 제안한 배링해협 프로젝트..이제는 일화 재단과는 관계없는것인가요??
통일교가 추진하려고 했던 게 베링이 아니라, 현해탄 해저터널 아니었던가요?
@나도 백사 베링해협에 대해 잘 아는 바는 없으나,인터넷 검색하니,2009년 6월에 주간조선에서 다루었습니다.
여하튼 더운데,해저터널 이야기 하니 더위가 좀 가라앉는듯..오늘 열대야 좀 있을터인데,,잘 지내시기를^^
베링철도 읽느라 제가 요즈음 시력이 많이 나빠지는 중입니다.
Lawer -> Lawyer (lawer는 구식 표기법)
그외 우리말 단어 오자는 통과.
장검의 숨은 명문을 찾아내어 암송하다보니 단전호흡 절정고수의 경지에 간다는 얘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야그입니다. 박수!!!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