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어둔 밤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세례를 받았습니다.
독서를 좋아했던 저였지만
그 이전에는 어떤 책이건 간에
신(神)이란 용어가 들어 있으면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신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믿으면 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비참하고 암울했던 군생활은
인간 존재가 얼마나 악하고 비열하며
나약하고 음습한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군생활했던 곳은
폭력과 부정부패가 일상인
몬도가네(야만의 세상) 같은 곳이었습니다.
군대라는 엄격한 상명하복의 시스템 속에서
개죽음 당할 것 같아 저항하지도 못하고
스스로의 비굴함과 무기력함을 견디지 못해
몇 번이나 삶을 포기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내무반에서 집합과 구타를 일삼는 고참 중에는
저와 같은 대학생들도 있어서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지성과 인성은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읽은,
엘리 위젤이 쓴 "밤"(Night)이란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엘리 위젤은 자신이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참혹한 경험과
어두운 인간 본성을
이 소설에 옮겨 놓았습니다.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실려 있습니다.
기차에 실려 끌려가던 유태인들에게
독일병사가 우리 속의 동물에게 먹이를 주듯이
기차 안에 빵 한 덩어리를 던집니다.
굶주림에 시달린 유태인들이 미친듯이
빵을 줍기 위해 달려듭니다.
한 유태인 청년이 빵을 잡습니다.
그런데 그 빵을 뺏기 위해
그 손을 누군가가 밟습니다
그 아버지였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를 경험한 엘리 위젤은
이처럼 잔혹하고 어두운 인간의 본성을 보고서
"하느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하고 작중 인물을 통해 절규합니다.
저는 이 자전적인 소설이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인 줄 알았는데
입대하고 보니 그와 같은 일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기차 안에 빵을 던진 병사,
아들의 빵을 뺏기 위해 발을 밟은 아버지,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데 조력한
그 수많은 독일 군인과
같은 민족인 유태인을 감시한 카포(Kapo)들.
이들이 바로 내 학교 동료이고,
친구고, 또 바로 나였습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가치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저의 사고 방식은,
나치당에 표를 던진 수많은 독일 국민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대공황으로 타격받은 독일 경제의 부흥을 위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와 민족의 자긍심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군대에서 끔찍한 경험을 거친 후에야
저는 소설 "밤"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자신을 믿으면 되지 신이 왜 필요하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제가, 군생활을 통해
저 자신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자신이, 전혀 믿을 수 없는,
오락가락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또는 제가 믿는 가치관을 위해
얼마든지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쌓아놓은
완고한 틀에 금이 갔습니다.
그 틈 사이로 비로소 제게
겸손이라는 빛이 스며 들어왔습니다.
제 자신을 바로 보게 된 것입니다.
제 자신을 자세히 알면
제 자신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갈팡질팡하며 모순투성이인 인간을
믿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이런 결론에 이르자
저는 제가 만들지 않은,
절대 변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옳은
가치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그제서야 신(神)을 찾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 저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신에 관한 책을 읽고 배우고,
동아리에 참여하고, 교리 공부를 하면서
신을 찾기 시작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일년 전 포스팅한 글에
"엄마가 있다구? 말도 안돼."라고
얘기하는, 쌍둥이 아기 중의 한 아기가
바로 입대 전의 저였습니다.
첫댓글 절대 변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옳은 가치기준..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