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 '미래에셋'이 2010년 5월 발표한 '의료시장에 2012가 온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그해 4월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의료법 개정안이 향후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의료시장에 어떤 변화가 올지
설명하고 있다. '세기의 개혁'이라는 표현에서 의료민영화에 대한 자본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다. 정부 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된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잠을 자다 18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2012년 5월 자동 폐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법안의 핵심 내용은 세 가지였다. 우선,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의료기관의 구매, 재무, 직원교육, 임금체계·후생관리 및 경영진단·평가를 수행하는 사업을 의료법인이 부대사업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전문 경영기법을 활용해 의료기관의 경영 효율성 및 수익성을 제고한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인 합병절차 마련이 법안의 나머지 핵심 내용이었다.
이 내용들은 의료산업을 실질적으로 민영화하는 조치들로
받아들여지면서 국회 입법이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세기의 개혁'이라고까지 표현하며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을까. 그것까지 알수는
없지만 '규제 완화'라는 기치를 높이 든 박근혜 정권에서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정부가 지난 12월 투자활성화를 위한 의료산업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와는 출발선도 다르다. 이명박 정부는 의료법 개정에 실패해 규제완화 조치를 실현하지 못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행정부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시행규칙 개정으로 규제완화 조치를 실행하려고 하고 있다. 보건의료계에서는 의료법 개정이 아닌 시행규칙
개정으로 의료계의 틀을 바꿔놓을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에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일 태세다. 의료의
영리화·상업화 즉, 의료민영화는 반환점을 돌아 결승선을 향해 가고 있다.
피부과, 치과 등 비급여 진료과목 위주의 병원들이 프랜차이즈 형태의 네트워크로 운영하면서 구매, 전산시스템 운영 등을
경영지원회사(MSO)에 아웃소싱해 운영하고 있다. 비용절감을 통한 경영 효율화를 꾀하는 방식이다.(왼쪽) 2010년에는 정부가 자본조달까지
가능한 경영지원회사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다. 이는 그동안 금지됐던 의료에 대한 자본 투자와 배당을 가능하게 하는 조치였다. 그러나
개정안은 의료민영화 논란속에 18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며 폐기됐다. (오른쪽). 박근혜 정부는 자본조달형 MSO와 유사한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허용을 국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부의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하려고 추진하고 있다.ⓒ미래에셋 '의료시장에 2012가
온다'. 2010.5.18
2000년 초반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방향타
제시 노무현 정부, "의료서비스 시장매커니즘 강화" 호응 이명박 정부, 의료법 개정안 제출했으나 실패
보건의료계가
'전면적 의료민영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는 투자활성화대책은 18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된 의료법 개정안과 거의 똑같다. 원격의료 허용은
별도로 추진되고 있고, 투자활성화대책은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 의료법인 인수합병·법인약국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법 개정안의
병원경영지원회사가 투자활성화대책에서는 자회사로 이름을 바꿨을 뿐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영리행위가 금지돼 있는 의료법인에 출자를
허용해 영리추구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맥 상통한다. 현재 의료법인은 영리활동을 할 수 없고, 의료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은
고유목적사업인 의료분야에 고스란히 재투자해야 한다. 영리활동을 하는 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면 의료법인이 외부자본의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수익을
주주들에게 배당할 수 있게 된다.
보건의료분야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돈벌이가 되는 전망 좋은 사업이다. 소득 증가 등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고, 앞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의료비 증가속도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몇 년 간 보건의료분야가 다른 업종에
비해 평균 9.1%라는 매우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자본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삼성경제연구소 등 각종 경제·경영 씽크탱크에서 '의료서비스산업 제도개선 과제' 등을 발표하면서 방향타를 제시해왔었다.
2006년에는 정부가 의료법인에 병영경영지원회사에 출자해 수익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호응하기도 했다. 이 대책은 그 목적을 '시장매커니즘 강화를 통한 의료서비스 효율화·다양화'라고 분명히 밝혔었다.
의료기관
경영 효율화 환자 입장에선 의료질 하락, 의료비 상승
의료기관의 경영 효율화라는 것은 결국 비용을 줄이거나 수익을
늘리는 것이다. 의료기관이 비용을 줄이는 것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의미할 수 있다. 또 의료기관이 수익을 늘리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는 진료비가 많이 나간다는 얘기와 통한다.
이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원, 병원,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은 개인의 경우 자격을 갖고 있는 의사가 세울 수 있다. 또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의료법인 등 비영리법인과 국가, 지자체 등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다.
의료법인 등의 비영리법인은 영리활동이
금지돼 있지만, 개인병원의 경우 자유롭게 영리활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피부과, 안과, 한의원, 치과 등 비급여 진료과목 위주의 개인
의원·병원들이 효율적인 영리추구를 위해 프랜차이즈 형태의 병원 네트워크를 설립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기관이 합법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면서
그 이익을 배당금으로 챙길 수 있게 되면, 의료기관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김철신 대한치과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영리병원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은 다른 게 아니다. 많이 치료하거나 치료해주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예를들면, 치과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임플란트를 한다고 광고를 해서 사람을 많이 유치하고, 임플란트 2개를 하면 될 사람을 9개를 하게 하는 것이다. 과잉진료가 이뤄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는 이어 "의료 비용은 인건비 비중이 크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는 것은 결국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예컨대 의사가 할 일을 간호사를 시키고, 간호사가 할 일을 간호조무사를 시키고 간호조무사가 할 일을 무자격자가 하게 하는 식으로
인건비를 줄인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하지 않은 의약품을 사용하다 적발된 경우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재벌 이익
위해" 의료민영화 더욱 손쉽게 더욱 폭넓게 추진하려는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는 시행규칙
개정으로 각종 보건의료분야 규제를 완화하려는 것은 의료민영화로 가는 정책을 더욱 손쉽게 더욱 폭넓게 추진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과연
국민들을 위한 것일까?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6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10문 10답으로 보는 박근혜 정부식 의료민영화, 그 진실의
내막'에서 "기업들에게 새롭고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주려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라며 "부자들과 재벌들만의 경제성장을 위해 환자들을 쥐어짜는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 의료민영화의 실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