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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걱정된다
2012.05.18
19대 국회 개원일이 불과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달 총선에서 당선된 분들 대부분이 오는 30일의 개원식을 앞두고 이미 의원 등록을 마쳤고, 바로 어제는 국회 사무처 주재로 초선의원들의 연찬회도 열렸습니다. 기존의 의원회관 옆에 2,000억원을 들여 증축한 10층짜리 제2 회관도 마무리 단장을 끝내고 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여야 정당도 각각 새로운 진용을 갖추고 개원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4년 동안 펼쳐질 의정활동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큰 것은 왜일까요. 과거에는 그나마 국민들이 일말의 기대를 걸고 국회 개원을 맞아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것 같습니다. 아예 시작 단계부터 짙은 먹구름이 의사당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됐어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가장 큰 걱정은 역시 통합진보당의 움직임입니다. 이미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하여 적나라하게 벌어졌던 폭력사태의 현장을 국민들은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청년당원들이 우르르 단상에 뛰어올라 공동대표들의 멱살을 휘어잡는 모습은 다시 떠올리기에도 섬찟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가 그들의 정당 내부에서부터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통합진보당 당선자들 상당수가 북한의 주장에 기울어져 우리 실정법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처신을 해 왔다는 점에서 국회 논의과정에서 또 어떤 돌출행동들이 튀어나올까 지레 걱정됩니다. 정당 행사에서 애국가와 태극기를 치워 버렸으며, 6·25의 남침·북침 여부를 놓고도 답변을 유보하는 입장이라 합니다. 국민보다 당원이 더 앞선다는 인식도 두렵기는 마찬가집니다.통합진보당의 문제를 떠나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개원 협상과정에서 벌써 밥그릇 타령이 나오는 것도 꼴불견입니다. 현행 18개인 상임위원회를 5~6개나 더 늘리자는 것인데, 위원장 자리를 나눠 먹자는 것이 주안점이라 여겨집니다. 상임위 하나를 추가로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3억원이라니, 또 국민 부담만 늘어날 판입니다. 전셋값과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에 시달리는 국민들로서는 복장 터지는 노릇입니다.그동안 상임위가 부족해서 국회가 겉돌았다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의원들의 평생연금을 올렸고 의석까지 300석으로 늘린 데 이어 또다시 실속 차리기에 나선 것일까요. 지난해 ‘안철수 신드롬’으로 인해 정치가 국민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적 인식이 나돌면서 스스로 특권을 포기하겠다던 분들이 선거가 끝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하게 안면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국회에서도 시급하게 처리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갓 논의가 시작된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비롯해 갈수록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KBS와 MBC 등 언론사 파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KTX민영화 문제 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서도 국회가 처리할 부분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통일에 대비한 입법 과제도 자꾸만 미룰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각 당이 이념에 편향되거나 제 밥그릇을 먼저 챙기려는 태도라면 의정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는지 도통 믿음이 가지를 않습니다. 더욱이 오는 12월 대선을 치르게 된다는 점에서 여야의 기선잡기 신경전이 치열해지겠지요. 몸싸움을 방지하자는 국회선진화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초선의원들을 행동대로 앞세운 대치상황이나 최루탄 사태가 재연될지 염려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눈치가 빠른 분들은 이권청탁과 관련하여 은밀히 돈봉투를 받아 챙길 소지도 다분합니다.특히 여야 정당이 내세우고 있는 포퓰리즘의 퍼주기 복지정책이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염려가 됩니다. 서로 경쟁하듯이 선심을 쓰다가는 필경 조만간 나라 살림이 거덜나고 말 것입니다. 표를 얻겠다며 엉뚱한 데 쏟아붓고는 결국 세금폭탄으로 서민들을 닦달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공기업 부채를 감안하면 벌써 우리의 재정상태가 위기상황에 직면했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습니다.왜 국회의원들을 뽑아놓고 개원 전부터 이렇게 걱정해야 하는 걸까요. 기분 같아서는 선거를 물리고 다시 하자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합니다. 물론 유권자들로서도 깊은 생각없이 당시의 즉흥적인 느낌으로 선거에 임했던 책임을 벗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나섰다는 의원들로 인해 국민들이 걱정해야 하는 사태는 분명히 정상이 아닙니다.의원 당선자들은 정식으로 금배지를 달기에 앞서 개원식에서 ‘국회의원 선서’를 낭독하게 됩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더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발 선서 만큼이나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초리가 애처롭지 않습니까.
필자소개
허영섭
경향신문 기자를 지내다 2007년 논설위원으로 퇴직했다. 전경련 근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광고분과 특별위원장 역임. 저서 '50년의 신화'(현대그룹 창업기의 주역들), '법이 서야 나라가 선다'(이회창 평전),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