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필드,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서 오는가
美 ‘뉴욕타임스’ 기자의 실제 체험
‘디스 프란의 생과 사…’ 각색
1970년대 캄보디아 내전 배경
폴 포트 공산정권의 잔인함 고발
기사사진과 설명

공산정권 크메르루주군에 체포된
주인공. 출처=워너브라더스 |
전쟁이나 이념투쟁은 종종 청소년을 인간병기로 만든다. 최근 이슬람 급진 무장단체들은 미국 등 서방세계를 상대로 한 폭탄 테러에 주저
없이 청소년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도 중학생∼대학생으로 조직된 군사조직이었다. 그들은 모택동의 정적 또는 ‘구시대적이거나
부르주아’로 간주한 것에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킬링 필드(1984년)
감독: 롤랑 조페
/출연: 샘 워터스톤, 행 응고르
공산당의 민간인 집단 학살
영상화
1970년대 캄보디아 내전 시 좌파 폴 포트의 혁명군 대부분도 청소년이었다. 그중에는 어린이도 섞여 있었다.
검은색 제복을 입고 붉은색과 흰색 체크무늬 스카프를 두른 그들은 프놈펜에 입성해 당의 명령에 따라 총을 휘두르며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심지어 친부모도 죽였다.
영화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내전 당시 폴 포트가 이끄는 좌파 공산당 크메르루주 정권이 벌인
민간인 집단 학살을 사실적으로 영상화한 작품이다. 제목 킬링 필드(Killing Fields)는 대학살로 인해 생긴 집단 무덤을 말한다. 미국
‘뉴욕 타임스’지 시드니 섄버그(Sydney Schanberg) 기자가 캄보디아 내전 취재 중 실제 겪은 일들을 쓴 글 ‘디스 프란의 생과 사:
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198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론놀의 정권이 군사 쿠데타로 전복되고 1975년 정권을
장악한 좌파 크메르루주가 4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저지른 극도의 비인간적 살상이 기둥 줄거리다. 여기에 캄보디아 내란을 취재하던 미국인 기자와
현지 캄보디아 기자의 우정을 보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사사진과 설명

공산당을 피해 탈주한 또 다른
주인공이 양민 학살의 현장인 킬링필드에 빠져 있다.
출처=워너브라더스 |
캄보디아 주재 미국 기자 눈에 비친 전쟁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미국 뉴욕 타임스지 특파원 시드니
섄버그(샘 워터스톤)는 캄보디아가 공산당 크메르루주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인 1973년 8월 현지 취재차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도착한다.
1972년 캄보디아 사태 때 크메르루주를 섬멸하려던 미 공군의 오폭으로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그는 미국 당국의
비협조에 불구하고 현지 채용 기자인 디스 프란(행 S. 응고르)과 함께 어렵게 현지에 가서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상황이 캄보디아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결국 수도 프놈펜이 크메르루주 군에게 함락된다. 궁지에 몰린 섄버그와 프란 일행은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나 대사관은 프란이 캄보디아인이라는 이유로 대사관 밖으로 추방한다. 이후 프란은 크메르루주 군에게 붙잡혀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무자비한 살육 현장을 보게 된다. 마침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프란은 킬링필드를 지나 타이의 난민촌으로 스며든다.
한편 미국으로 돌아간 시드니는 프란을 구해보려 노력하던 중 캄보디아 내전 기사로 특종상을 받는다. 하지만 동료 기자로부터 그 상을
받으려고 프란을 사지로 몰았느냐는 비판을 받고 괴로워한다. 1979년 10월 9일 시드니와 프란은 극적으로 만난다. 그들 위로 ‘평화로운 세상을
상상해보라’는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명곡 ‘이매진(imagine)’이 흐른다.
실제 캄보디아 난민
배우를 주인공으로
영화 초반부는 전쟁터의 혼란한 상황을 사실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중후반부는 크메르루주 공산당
소년 혁명군의 잔인성과 전쟁의 참혹함을 그리고 있는데 강기슭에 널려있는 수많은 시체 더미는 충격적이다.
프란 역의 행 응고르는
전문 연기자가 아니었지만 1985년 아카데미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사실상 주연 배우였음에도 조연상을 받아 인종차별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실제 캄보디아 난민인 행 응고르는 1996년 2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미 경찰은 크메르루주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폴 포트 공산정권 기간 사망자 200만 명
영화는
전쟁의 광기가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총과 칼을 쥐여주어 어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게 한 당시
좌파 공산정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엔 추산에 따르면 폴 포트 공산정권이 지배한 기간에 굶주림과 구타, 학살로 사망한
사람은 200만 명에 이른다. 미국 예일대의 ‘캄보디아 제노사이드(집단살해) 프로그램은 캄보디아 전역에서 200개 이상의 킬링필드가 발굴됐다고
밝혔다.
당시 폴 포트 공산당이 빈민층 소년들을 동원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리기 때문에 공산당의 이념과 투쟁방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쉽게 목숨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빈민층 출신인 까닭에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쉽게 적대감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좌파 공산당의 수법이다.
우리도 공산당과 싸워 수많은 사람이 죽고
국토가 피폐해진 비극의 역사를 갖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자유와 더 나은 경제적인 삶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김병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