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핀'이라는, 1900년대, 프랑스에 실재했던 화가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았다. 세라핀은 가족도 없이 남의 집 청소나
빨래를 해주며 그 품삯으로 사는데, 힘들고 멸시받는 하루 노동이 끝나면 그녀는 들판 언덕배기로 올라간다. 언덕을 걸으며 풀꽃들과
말을 나누고 커다란 나무 위에 맨발로 올라가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일하던 집의 주인이 자기 방에서 혼자 우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뒷날, 평소에 말이 없던 그녀가 그 사람을 돕기 위하여 어눌하게 말을 붙인다. "슬플 때는 풀밭을 걸어요. 나무를
안고 말해요. 그렇게 나무 옆에서 풀과 나무, 바람, 벌레와 이야기하면 슬픔이 가셔요."
쌍 맞춘 잎
낮동안 펼쳐졌다 밤엔 오므려 겹쳐 사이좋은 부부처럼 잠을 자 합환수라 부르기도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사람의 친구가 되어 나무가 들어준 낱낱의 슬픔은 얼마나 많을까? 나무에 달린 잎들은 그래서 셀 수 없도록 많이
돋아나는 걸까? 사람 몸이 숨 쉬는 공기를 위해서도 나무는 소중하지만, 금이 가고 상한 우리 마음을 말없이 보듬어 주기에 나무는
고마운, 오래된 친구다.
몇 년 전 부산 복천동 고분군을 처음 가보았을 때는 나무의 잎이 진 초겨울쯤이었나 보다.
마른 가지에서 콩꼬투리가 바람에 서걱거리고 있어 자귀나무인 줄 알아보았다. 고분군 아래 만들어진 산책길을 따라 유난히 자귀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꽃이 필 때 환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은 그때뿐, 도회지 삶이란 습관처럼 늘 지나는 길만 오가며
하루를 여닫기 바빠서 그 후로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해야 생각이 나 자귀꽃 피는 유월을 기다려 찾아가본다.
자귀나
무는 분홍빛 술이 공작새 꼬리처럼 화려하게 펴지는 꽃이 아름다워서 요즘 공원이나 정원 잔디밭 속에 많이 심어져 있는 걸 보게
된다.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에게는 어릴 적 낮은 산자락 양지뜸에서 쉽게 보던 나무였다. 소 먹이러 산으로 가다보면 소가 길 옆
자귀나무잎을 맛있게 뜯어먹어 '소쌀밥꽃'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보리밥이나 겨우 먹던 시절에 소쌀밥이라 했으니 소가 얼마나 반기며
달게 먹었는지 알 수 있다.
복천동 고분군을 따라 걸으니 군데군데 자귀나무가 모여 둘러서 있는데 30그루도 넘어
보인다. 자귀나무는 키도 과히 크지 않고 가지가 옆으로 벌어져 긴 치맛자락처럼 아래로 펼쳐진다. 소가 뜯어먹기 좋게 생겼다.
자귀나무 꽃은 부채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고운 손끝에서 펴지는 꽃술부채처럼 화사하지만, 옆으로 바라진 가지가 품이 넓은 나무
생김새를 보면 소박한 느낌이다. 더운 여름날 일하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점심과 막걸리를 머리 위 광주리에 가득 이고 환하게
걸어오는 촌 아낙네를 연상시킨다. 나무줄기도 발을 딛고 올라가기 좋게 아래에서부터 옆으로 벌어졌다. 풀밭에 신발을 벗어놓고 나도
아이들처럼 올라가 나무 위에 앉아본다. 바람도, 나뭇잎도 살을 가까이 대며 닿는다.
자잘한 잎이 서로 마주보고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도 보기 좋아 꽃이 피지 않을 때도 자귀나무는 아름답다. 쌍을 맞춘 잎은 낮동안 옆으로 펼쳐졌다가 밤이
되면 오므려 겹쳐져 사이좋은 부부처럼 잠을 잔다. 그래서 합환수(合歡樹)라 부르기도 하고 부부금슬을 위해 집안 마당에 심기도
한다. 요즘은 모두들 아파트에 사니 자귀꽃이 피는 이즈음 부부가 손잡고 자귀꽃이 피어있는 이 복천동 고분군을 천천히 걸어도 좋을
거다.
복천동 고분군은 4세기에서 5세기 삼국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부산 지역에서 꽃피웠던
가야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철로 된 무기와 갑옷 등 유물이 많이 나와 그때의 역동적인 정치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일찍부터 신라화 됐음을 반영하는 신라토기 등의 유물도 나온 곳이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고분군이 도굴과 훼손이 많이 되었는데 비해
이곳 복천동은 판자촌이 밀집해 있어 다행히 도굴이 안돼 유물과 무덤형태의 보존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유월 땡볕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고분의 넓은 잔디 위로 까치들이 날아와 한가롭게 논다. 까치가 노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보니 고분군을 빙 둘러
언덕배기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낮은 집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땀 흘리는 하루는 또 그렇게 촘촘히, 알뜰히
고개를 넘고 있다. 어떤 아름다움도 절박한 생의 고통을 거치지 않고 꽃피는 일은 없으리. 뜨거운 여름날에 환하게 피는 자귀나무꽃을
그래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글=이선형·시인 andlsh@hanmail.net
'세라핀'이라는, 1900년대, 프랑스에 실재했던 화가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았다. 세라핀은 가족도 없이 남의 집 청소나
빨래를 해주며 그 품삯으로 사는데, 힘들고 멸시받는 하루 노동이 끝나면 그녀는 들판 언덕배기로 올라간다. 언덕을 걸으며 풀꽃들과
말을 나누고 커다란 나무 위에 맨발로 올라가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일하던 집의 주인이 자기 방에서 혼자 우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뒷날, 평소에 말이 없던 그녀가 그 사람을 돕기 위하여 어눌하게 말을 붙인다. "슬플 때는 풀밭을 걸어요. 나무를
안고 말해요. 그렇게 나무 옆에서 풀과 나무, 바람, 벌레와 이야기하면 슬픔이 가셔요."
쌍 맞춘 잎
낮동안 펼쳐졌다 밤엔 오므려 겹쳐 사이좋은 부부처럼 잠을 자 합환수라 부르기도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사람의 친구가 되어 나무가 들어준 낱낱의 슬픔은 얼마나 많을까? 나무에 달린 잎들은 그래서 셀 수 없도록 많이
돋아나는 걸까? 사람 몸이 숨 쉬는 공기를 위해서도 나무는 소중하지만, 금이 가고 상한 우리 마음을 말없이 보듬어 주기에 나무는
고마운, 오래된 친구다.
몇 년 전 부산 복천동 고분군을 처음 가보았을 때는 나무의 잎이 진 초겨울쯤이었나 보다.
마른 가지에서 콩꼬투리가 바람에 서걱거리고 있어 자귀나무인 줄 알아보았다. 고분군 아래 만들어진 산책길을 따라 유난히 자귀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꽃이 필 때 환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은 그때뿐, 도회지 삶이란 습관처럼 늘 지나는 길만 오가며
하루를 여닫기 바빠서 그 후로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해야 생각이 나 자귀꽃 피는 유월을 기다려 찾아가본다.
자귀나
무는 분홍빛 술이 공작새 꼬리처럼 화려하게 펴지는 꽃이 아름다워서 요즘 공원이나 정원 잔디밭 속에 많이 심어져 있는 걸 보게
된다.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에게는 어릴 적 낮은 산자락 양지뜸에서 쉽게 보던 나무였다. 소 먹이러 산으로 가다보면 소가 길 옆
자귀나무잎을 맛있게 뜯어먹어 '소쌀밥꽃'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보리밥이나 겨우 먹던 시절에 소쌀밥이라 했으니 소가 얼마나 반기며
달게 먹었는지 알 수 있다.
복천동 고분군을 따라 걸으니 군데군데 자귀나무가 모여 둘러서 있는데 30그루도 넘어
보인다. 자귀나무는 키도 과히 크지 않고 가지가 옆으로 벌어져 긴 치맛자락처럼 아래로 펼쳐진다. 소가 뜯어먹기 좋게 생겼다.
자귀나무 꽃은 부채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고운 손끝에서 펴지는 꽃술부채처럼 화사하지만, 옆으로 바라진 가지가 품이 넓은 나무
생김새를 보면 소박한 느낌이다. 더운 여름날 일하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점심과 막걸리를 머리 위 광주리에 가득 이고 환하게
걸어오는 촌 아낙네를 연상시킨다. 나무줄기도 발을 딛고 올라가기 좋게 아래에서부터 옆으로 벌어졌다. 풀밭에 신발을 벗어놓고 나도
아이들처럼 올라가 나무 위에 앉아본다. 바람도, 나뭇잎도 살을 가까이 대며 닿는다.
자잘한 잎이 서로 마주보고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도 보기 좋아 꽃이 피지 않을 때도 자귀나무는 아름답다. 쌍을 맞춘 잎은 낮동안 옆으로 펼쳐졌다가 밤이
되면 오므려 겹쳐져 사이좋은 부부처럼 잠을 잔다. 그래서 합환수(合歡樹)라 부르기도 하고 부부금슬을 위해 집안 마당에 심기도
한다. 요즘은 모두들 아파트에 사니 자귀꽃이 피는 이즈음 부부가 손잡고 자귀꽃이 피어있는 이 복천동 고분군을 천천히 걸어도 좋을
거다.
복천동 고분군은 4세기에서 5세기 삼국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부산 지역에서 꽃피웠던
가야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철로 된 무기와 갑옷 등 유물이 많이 나와 그때의 역동적인 정치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일찍부터 신라화 됐음을 반영하는 신라토기 등의 유물도 나온 곳이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고분군이 도굴과 훼손이 많이 되었는데 비해
이곳 복천동은 판자촌이 밀집해 있어 다행히 도굴이 안돼 유물과 무덤형태의 보존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유월 땡볕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고분의 넓은 잔디 위로 까치들이 날아와 한가롭게 논다. 까치가 노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보니 고분군을 빙 둘러
언덕배기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낮은 집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땀 흘리는 하루는 또 그렇게 촘촘히, 알뜰히
고개를 넘고 있다. 어떤 아름다움도 절박한 생의 고통을 거치지 않고 꽃피는 일은 없으리. 뜨거운 여름날에 환하게 피는 자귀나무꽃을
그래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