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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탑(護國塔)
충주시가
호국역사 인식과 시민들의 나라사랑 정신 함양을 위해
탄금대 공원 내에 시비 3억원을 들여 건립한 호국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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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피어오르다
호국의 중심고을 충주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수없이 많은 외침을 당하고 위기를 겪었는데
그때마다 우리 조상들은 호국의 중심에 섰습니다.
고려시대 몽고가 침입했을때
승려였던 김윤후장군이 이끈 충주성전투는
대몽항쟁사에서 최대의 승전이였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때는 신립장군이 서울로 북상하는 왜군에 맞서
8천여명의 장병들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여 의병의 봉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6.25전쟁때 김재옥 여교사의 도움으로
최초의 승전보를 알렸던 동락전투는
사기가 떨어진 국군에게 용기와 승전의지를 복돋아 주었고
유엔군이 파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 고장 충주는 나라가 어려울때마다
나라의 중심에서
구국의 의지로 항쟁에 앞장선
호국의 중심고을입니다.
(호국탑 하단부에 새겨진 글)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지정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라는 안내판이 있는곳에서 바라본
탄금대와 남한강 그리고 용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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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남한강, 용섬,탄금대가 어우러진
경관을 조망하며 담아봤습니다.
특히 석양사진이 아름답다합니다.
↓左측 山은 탄금대... 右측 섬이 용섬이며
앞쪽 가운데로 신탄금대교..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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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역사 유래
하천구간 시점: 동양면 명오리 / 종점: 앙성면 단암리
하천의 유래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여
인천시에서 서해안으로 흐르는 남한강은
충주댐이 설치되어
총 저수량 2.750백만㎥ 홍수조정기능 616백만㎥
유효저수량 1.789백만㎥을 저수 할수 있으며
조정지 댐은
총저수량 30백만㎥ 유효저수량 1.7백만㎥의 저수량을 갇고 있는
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충주시의 남한강변의 개소마다 전해저 내려오는 전설이 많다.
금가면 유송리에 있는 제방을 김생제방이라고 불리우는데
도승이며 신필로 유명한 김생이
쌓았다고 하나
육중한 돌을 어디서 가저다 어떻게 쌓았는지에
1000년이 넘어 오는날까지
형체를 가지고있는 것은 불가사의 한 일이다.
탄금대 부근을 금휴포라고 하는대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교습시키다 피로을 불기위해
쉬었다는데서 지어진 명칭이다.
옛날 내륙의 삼대하항을 양평,여주 그리고 목계을 말하며
그중 대형선박의 종착항이 목계 나루이며
가장 중심을 이루는 지역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목계별신제가 열리고 있다.
(사진으로 찍어 본 안내판글이 너무 작아
읽기 불편하실것 같아 일일이 옮겨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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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변을 따라 자전거길이 있습니다.
자전거길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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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8경
제1경→계명산(鷄鳴山,774m)
충주 시가지 너머 동쪽에 큰산 두개를 보게 되는데
왼편이 계명산, 오른편이 금봉산(남산-제8경)이다.
계명산의 좋은 점은 풍광도 아름답지만
충주호와 월악산 조망은 장관이다.
2경 탄금대와
3경 중앙탑은
이미 올려 놓았기에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제4경→두무소(杜舞沼)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 두사충(杜師忠)이
명당자리를 발견하고 춤을 추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강물에 비치는 달빛이 아름다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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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경→장미산성(長尾山城)
삼국시대
장미와 보련 남매가
성(城)쌓기 내기를 해서 남동생인 장미가 쌓은 성이 이곳이었기에
장미산성이라 부르게 되였다는 전설..
조망이 뛰어난게 장점.
제6경→목계나루(牧溪津)
예전 내륙운송의 중심지이자 종착항 목계나루..
목계별신제가 열리고 있음
제7경→삼등산(三燈山)
충주 삼등산은
天登山,人登山,地登山,을 일컫는말로
지명에 天人地사상을 반영했다.
제8경→금봉산(錦鳳山)
남산이라 불리는 충주의 주산.
봉황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충주산성이 있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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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행 기차를 타러 충주역에 도착..
역 대합실엔 사람이 한명도 보이지 않고
기차시간도 많이 남아
이것 저것 찍다보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충주역 역사(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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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대표 맛-꿩 요리, 산채 정식, 사과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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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과 가야금의 본 고장..충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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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곳 - 충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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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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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역 대합실에 걸려 있는 액자
유거양성진(幽居養性眞)
속세를 떠나 그윽하고 외딴 곳에 살며
품성을 참되게 기른다
-임신(壬申) 맹추지절(孟秋之節) 월정(月亭) 서(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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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살았던곳이기도 합니다.
해동서성(海東書聖)으로 불렸던 천하명필 김생(金生)은
예서·행서·초서 모두 입신의 경지였으며
충주 김생사(金生寺)에서 두타행(頭陀行)하며 말년을 보냈는데
80이 되어서도 붓을 놓지 않으셨다니 대단한분이지요..
그 시절 80까지 사셨다는것도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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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는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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