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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 본 문 : 로마서 1장 16절 - 17절 (신약성경 240쪽)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 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부흥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도 크게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몸 된 우리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요.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의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우리 교회의 일꾼으로 친히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의 뜻이기도 한 교회의 부흥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교회의 부흥이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삶 가운데 구체적인 사건으로 나타남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권자 -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던 사도 바울이,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아멘! (롬 1:16) 복음은 곧 능력입니다. 우리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복음의 능력이 반드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태양이 1초 동안에 발하는 에너지만으로도, 이 땅의 70억 인구가 100만 년을 쓰고도,
남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복음의 능력을 단 한 번이라도 체험할 수,
있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놀라운 부흥과 폭발적인 힘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하나님께서 1초만 도와주시면 넉넉히 해결됩니다.
그래서 저는 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연구하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이신 예수님의 열매로 기뻐하고, 복음이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목사가 되겠다!' 는 결단을 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일꾼이 되길 원하시면, 누구나 이 결단과 기도로 기뻐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신구약 성경 가운데 단 한 장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누가복음 15장을 선택하겠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5장만 있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히 설명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통해 복음이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은 무지해서 길을 잃어 버렸고, 잃은 돈은 환경 때문에,
잃어버림을 당했습니다. 잃은 아들은 자기 판단과 결단에 의하여 스스로 집을 나갔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잃어버림을 당했든지, 그들을 동일하게 '잃어버린 자' 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 사람들을 짝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온통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면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이미 용서해 놓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의 속을 썩일 때가 있는데, 그것이 자주 반복되면 부모들은,
‘내가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고 큰소리로 선포하듯 말하지만, 사실은 이미 용서해 놓고,
자식을 기다리는 큰사랑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이미 우리를 용서해 놓고 기다리시는,
큰 사랑을 가지신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저하고 친한 참 멋진 분이십니다.
물론 여러분하고도 친한 참 멋진 분, 그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참 바보 같이, 잃은 양 한 마리 찾아다 놓고, 멀쩡한 양,
몇 마리 죽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동전 하나 찾아놓고, 벗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습니다.
허랑방탕한 자식이 돌아왔다고, 소를 잡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세상에 찾은 것보다,
잔치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면, 그것은 분명 손해요, 아주 미련한 짓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깊은 뜻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복음 사역에 헌신하는 일은 주판알 굴려서 손익 계산을 따질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사용하지는 전도비를 아끼는 교회가 가장 어리석은 교회요,
전도비를 아끼는 목회가 가장 어리석은 목회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사랑하시는지,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우리와 맞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님의 피로 산 값비싼 하늘나라의 보물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보물들을 맡아 관리하는 목회자입니다. 목회의 두려움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 영혼을 건지는 일을,
가장 우선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복음 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참 일꾼이요.
이것이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헌신하는 일꾼들입니다. 그리고 한 영혼을 살리는,
큰 기쁨이, 내 생애 최고의 행복이 되고, 내 삶의 최고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복음을 내가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감사하고,
이 복음 때문에 내 가족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이 복음 하나로 내 민족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감격할 줄 아는,
사람이 복음 정신으로 일하는 일꾼이요, 그게 바로 부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로 알려진 비유의 주인공은 대개 둘째 아들로,
생각하지만, 아버지와 맏아들이 진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그리고 만화책을 보면, 칼만 옆으로 쓱 지나가도 엑스트라들은,
수십 명씩 죽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칼을 맞거나, 총을 몇 방씩 맞아도 언덕으로,
굴러 떨어져 누군가에 의해 구조됩니다. 정성스런 치료 덕분에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어서 마침내 복수에 성공할 때까지, 끝까지 살아남아 활약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가복음 15장 24절로 둘째 아들의 얘기는 깨끗이 막을 내리는데,
맏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는, 그 이후에도 끝까지 이어져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누가복음 15장의 세 번째 비유는, 아버지와 맏아들이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탕자는 잃었다가 찾았지만, 맏아들은 아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맏아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맏아들이 잃어버린 것은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왜 밥을 먹고, 맛난 반찬을 드시면서도 눈물을 흘려야 하시는지,
왜 이불을 덮지 않고 주무시면서 추워하시는지, 왜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고통을 외면하고 살았던 못난 자식이 맏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잃어버린 동생이 돌아왔을 때, 잔치를 벌이고 너무나도,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기쁨을 짓밟아 버렸고, 아버지가 배설한 잔칫집의 분위기를,
망가뜨리면서까지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꺾어버린 자식이 맏아들이었습니다.
맏아들의 속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복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열 처녀가 모두 다 준비한 것은 불을 밝히는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처녀는,
불을 밝힐 기름을 준비하였고, 다른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형식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직분도 있습니다. 헌신도 합니다. 헌금도 드립니다. 인격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겉껍데기는 그리스도인이요, 형식도 갖추었는데, 그 가운데 복음이신 예수님을,
준비하지 못한 그리스도인, 그래서 예수님을 닮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즉,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에 적어도 50%는,
구원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가능성을, 열 처녀 비유가 시사하고 있습니다.
한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집안을 청소했습니다.
쫓겨난 귀신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있을 곳도 없고 옛날 집이 그리워,
찾아왔더니, 깨끗이 청소가 되었고, 정리가 되었는데 주인이 없자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와 살았더니, 이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 형편보다 더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반듯하게 인격을 갖춘 것 같지만, 그 영혼 속에, 그 삶 속에, 그 언어 속에,
그 사상 속에, 그 인생의 목표 속에, 그의 우선 순위 속에 복음이신 예수님이,
없을 때, 언젠가는 그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앞을 봐도 예수님, 뒤를 봐도 예수님, 옆을 봐도 예수님,
위에서 내려다봐도 예수님입니다. 속을 뒤집어 봐도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간단합니다.
무슨 시험 쳐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그러면, 그 모든 답은 예수님입니다.
‘너 어떻게 여기 오게 됐냐? 예수님이요. / 너 어떻게 살았냐? 예수님이요.
너 왜 살았냐? 예수님이요. 너 천국에 어떻게 갔냐? 예수님이요.‘
뭐든지 예수님 하나로 다 통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곧 복음입니다.
중세의 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위대한 복음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무서운 질병으로 커다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을 찾아가 조용히 침묵하고,
그 사람 곁에 그냥 앉아 있다 떠납니다. 그런데 병든 사람의 병이 낫습니다.
한 가정에 커다란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그 가정에 가서 하루를,
지내면서 아무 말 않고 그냥 앉아 있다가 왔는데 그 집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한 마을에 문제가 있다면, 언덕 위에 올라가 그 마을을 바라보고 조용히 침묵하고,
몇 날 며칠을 있다가 그냥 떠납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사람으로부터 영성을 배우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아무런 가르침이 없습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 함께 가서 노동합니다. 밭을 일굽니다. 산을 가꿉니다.
그리고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가 되면, 그늘 밑에 가서 침묵하기를 즐겨합니다.
기다리다 못해 제자들이 묻습니다. 그런데 모든 질문의 대답은 한마디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 '진리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선생님의 인생관이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 이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방황하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묻든지 ‘예수 그리스도’ 라는 한마디 대답 이외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답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은 무엇을 믿느냐? 무엇 때문에 사느냐?
그리스도인 너희들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 너희들은 왜 그렇게 즐겁고 행복하냐?
이에 우린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라고,
우리의 삶과 행동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라고 분명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복음으로 다시 한 번 무장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도 예수님을 외쳐 봅시다.
제가 무엇이라고 묻든지 간에, 여러분들은 크게 ‘예수 그리스도’ 라고만 외치십시오.
이것이 진정 내 고백이라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외쳐 보십시오.
저도 제 목회에서 이제부터 예수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로 주먹 꽉 쥐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나라를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저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사리사욕에 빠진 정치인들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침체된 신앙생활이 어떻게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병들어 신음하는 내 가족들은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내 힘으로 안 되는 잘못된 습관적인 죄는 어떻게 해결됩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한국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해남중앙교회가 어떻게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
헝클어진 인간관계의 화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어떻게 웃을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울어야 됩니까? / 예수 그리스도!
모든 것이 망가졌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어떻게 죽을 때까지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교육이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
문화는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
인생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
역사는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
종말은 무엇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
방황하는 내 가족들은 어디서부터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생업이 어떻게 번영할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낙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절망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이 민족이 어떻게 세계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민족이 될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우리교회가 어떻게 이 지역을 이끌어가는 교회로 부흥할 수 있습니까? /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힘껏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외치며 삽시다.
기도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 전도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 땀이 나도록 외쳐 봅시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부흥」, 「파송의 노래」 「세상 모든 민족이」라는,
찬양이 있는데, 이 모든 찬양을 만든 찬양가수가 고형원이라는 분입니다.
캐나다에서 음악공부를 하였고, 예수 전도단에서 선교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간증하기를 대학생으로서 대학부 음악부장을 하고 있을 때, 교회에서 찬양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교회를 섬기는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교회에서 밤을,
세우기를 잘하고, 그러다가 하루 이틀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었답니다.
어느 날 그 아버지가 아들을 붙들고 나무랐습니다. ‘야 이놈아, 예수가 밥 먹여 주냐.’
그랬더니 그가 빙그레 웃으며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아버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예수님이 우리 밥이에요. 아버지는 그걸 아직 모르실 텐데. 조금 있으면 아버지도,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믿으시면 아실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 밥이에요.‘
참 멋있는 대답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밥입니다.
우리의 희망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미래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성공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세상에서 출세했다고 할지라도 출세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재물을 얻으면, 그 재물 때문에 망하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성공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승리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높은 지위를 얻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높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없이 높이 올라가려고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아무리 바빠도 예수 그리스도 보다 앞장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없이 아무 곳이나 달려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맏아들이 잃어버린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있다면 사랑의 복음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맏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와 보니, 집안에 잔칫집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돌아온 걸 알면, 형은 너무너무 기뻐서 "동생아. 고생했다.' 하며,
달려가면 동생이 대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형님! 용서해 주세요.” 하며 끌어안고,
울어야 하는데, 형은 집에 달려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 너머에서 종을 부릅니다.
그리고 묻기를 "이 무슨 일인가?" 했더니, 종이 ‘동생이 돌아왔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맏아들은 한 번도 자기 동생을 향하여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깨우칩니다. /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느냐?’
그러나 끝까지 맏아들은 동생이란 말을 하지 않고,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자기 동생을 비하하면서 "창기와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날린 이 아들" 이라고,
혹평했습니다. 이것은 비난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공했다고 해도 가족 간의 사랑을 잃어버린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실패입니다. 아무리 멋진 출세를 했다고 해도 친구 간에 사랑을 잃어 버렸다고 하면,
진정한 출세가 아닙니다. 아무리 높아지고 아무리 많이 가졌다해도 하나님 사랑하는,
기회를 잃어 버렸다면, 나는 철저히 망가진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아십시오. 이 세상에 실패자가 있다고 한다면, 사랑의 실패자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맏아들은 사랑도 잃어버렸고, 나아가 자기 자신도 잃어버렸습니다.
천하를 얻고도 나를 잃어버리면 남는 게 없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
내가 살아나는 게 복음입니다. 나를 잃어 버렸습니다. 사명을 잃어 버렸습니다.
29절에 보면 아버지에게 덤비면서 하는 말이 "나는 아버지의 명을 어김이 없거늘“
과연 이렇게 말하는 맏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명령은, 첫째가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가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잃어버린 동생을 찾지도 않았고, 돌아온 동생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겼고, 가까운 이웃을 찾아 나서는 가족 사랑의 계명을,
어기고 살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다고 자신 만만하게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내게는 염소 새끼 하나라도 준 일이 없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습니다.
이 사람이 봉사한 유일한 이유는 염소 새끼를 바라는 유치한 보상 심리 때문이었습니다.
이걸 아십시오. 찬양과 감사를 잃은 신앙은, 이렇게 초라한 불평분자를 만들어 냅니다.
복음을 잃었을 때, 이 맏아들은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주위를 배회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고 있는 지금,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해서 예배합니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해서 헌금하십니까?
주님을 진짜 사랑해서 찬양대에 서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예배드리지만 세상의 알량한 행복과 기쁨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예수님 때문에 신명이 나고,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고, 예수님 때문에 신앙생활해야 복음신앙, 복음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다짐하십니까?
이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때문에 행복하기로 작정하십니까?
이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살다가 그 분과 함께 죽기로 각오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새 비전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이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 기쁨이 되고,
복음이신 예수님의 삶이 내 삶이 되고, 복음이신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복음이신 예수님의 인격이 내 인격이 되고, 복음이신 예수님의 은혜가 내 은혜가,
되는 신앙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라는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네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아멘! 아멘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성이 무엇입니까? 복음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벤처 정신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능력을 나의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 복음의 다이너마이트! 이것이 산도 헐고 바위도 부수어 길을 만듭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흘리신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2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천국 가는 길을 시원하게 닦아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다이너마이트입니다. 수류탄은 안전핀만 뽑으면 장군이 던지든,
사병이 던지든, 터지게 되어 있듯이, 복음도 누구나 던지면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무력한 삶을 살아가십니까? 왜 좌절감에 빠져 살아가십니까?
왜 용기를 잃어버렸습니까? 왜 절망하십니까? 복음이 저와 여러분의 손에 쥐어 있습니다.
이제는 이 복음을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죽어져 가는 영혼들 앞에 내 던집시다.
이 복음을 우리 가정에 던집시다.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으로 승리하는 행복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으로 부흥의 불길이 폭발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절망했던 사람들이 찾아와 희망을 얻는 교회, 좌절했던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교회,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찾아 나올 때마다 구원의 비전을 얻고, 복음의 능력을,
얻는 복된 교회, 참 아름다운 교회, 참 좋은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복음이신 예수님의 일꾼으로서의 충성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 우리교회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기도의 불길, 성령의 불길, 복음의 불길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충성과 헌신을 다짐하는 일꾼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역을 살리고, 나아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부흥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