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 창작 동화 황제가 없는 나라(2021.10.1.)
금왕출판사(1991)
지은이 김영순
아동문학가
34년 충남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에서 남
58년 서울 문리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81년 제3회 현대 아동문학상 받음
지은책: 늦동이 공주와 숯장수 배달의 영웅들 황제가 없는 나라 등 많은 작품이 있음
현재 의정부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중
책머리에
어느 도시 중심 학교의 분실물 보관소에, 나를 찾아가 주세요라고 붙어 있고 그 곳엔 값비싼 새 옷, 운동화, 책가방, 모자, 시계, 지갑, 리듬 악기들이 백화점 진열장처럼 전시되어 있다.
돈 있는 부모만 곁에 있으면 무엇이든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자기 물건을 잃고도 찾아가지 않는단다.
아이들은 쉽게 얻었으니 그 귀중함도 모르고, 또 간수할 줄도 모른단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정말 소중한 것까지도 함부로 내팽개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요즘애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버릇이 없으며, 자신의 행동 결과에 무책임합니다. 그뿐 아니라 씀씀이가 헤푸며 자기 물건 간수에 소홀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이대로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건전한 경제 생활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50대의 선생님들은 걱정을 많이 한다.
일본에서도 1930년대(50대)에 태어난 사람들을 굶주린 세대라 부른다.
그때는 물건이 참 귀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책 한 장도 아끼고 아껴 썼다. 일단 내 물건이 되면 정말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굶주리고 해진 옷을 입고 자랐지만 성장해서 많은 일을 했다. 새마을 운동에 앞장 선 것도, 외화를 벌기 위해 해외 진출의 첫발을 디딘 것도 역시 그때의 굶주린 세대들이었다.
요즘 일본에선 일본의 젊은이들을 숫제 새로 태어난 인류라고 빈정댄단다.
참을성과 버릇이 없고, 귀한 것과 은혜를 모르는 젊은이들을 보는 일본의 굶주린 세대들은 걱정을 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별난 인류가 생겨날까 두렵고 걱정되어 지은이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6편의 동화를 창작했다.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
끝으로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예쁜 책으로 꾸며 주신 기획출판 금왕의 김원길 사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1991. 지은이 씀
굶주린 아이들
실지로 여자가 소학교를 졸업하여 일본말을 조금 할 줄 알게 되면 정신대로 뽑혀 전쟁터로 끌려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학교에 보내 봐야 공부는 별로 시키지 않고 힘든 노동만 시켰습니다.
아니래.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이렇게 지랄병을 할 때는 그대로 놔 두는 것이 약이래.
저 병은 못 먹으면 더욱 자주 일어난다고 했어. 그런데 저 언니네 집은 요즈음 양식이 떨어져서 굶는대
못 먹으면 자주 발병하는 간질병, 요즘 양식이 없어 생판 굶는다는 앙겡꼬, 앙겡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옥자의 그 말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감았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학교가 있는 한산까지는 6km나 됩니다. 나는 학교에 갈 때면 와라지라고 하는 볏짚으로 만든 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와라지를 신으면 발가락이 모두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나의 발가락은 자갈돌에 채여 언제나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한 학급에 운동화 배급이 한 달에 한두 켤레씩 나오는데 그렇게 귀한 운동화 배급표를 받는 요행을 바라기란 하늘에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만약 학교에서 조선말을 하다가 급우에게 발각되면 1전씩 벌금을 물었습니다. 그때 1전을 주면 왕방울만한 눈깔 사탕 두 개를 살 수 있었습니다.
어제부터 학교에서는 조선어 공부를 못하게 되어 있어서 조선어 독본을 걷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말 공부를 단 한 시간 하고는 조선어 독본 권지를 반납했습니다. 학교의 수업 일과표에서도 조선어 시간이 지워졌습니다.
1학년 때 조선어 독복을 빼앗긴 뒤로도 나는 한글과 한자 공부를 꾸준히 했습니다. 이웃에 사는 친척 할아버지께서 서당을 차려 놓고 동네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밤마다 그 서당에 가서 천자문과 명심보감, 소학들을 차례로 배웠습니다.
나의 작은 아버지는 보국대(징용으로 동원된 노무대)로 뽑혀 갔습니다. 사람들은 보국대로 뽑혀 가는 것을 충성하러 나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10대의 처녀들이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도 충성하러 간다고 가르쳤습니다.
정신대란, 세계 제2차 대전 때 전쟁터에 나가 일본 군인들의 위안부(놀이개)노릇을 하던 여자들임.
할아버지는 언제나 머리에 테가 넓은 까만 통영갓을 썼고, 발 고운 한산 세모시로 지은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신은 산과 노를 섞어 삼은 미투리를 신으셨습니다.
창씨 개명(일본식으로 우리의 성명을 바꿈)문제로 한산 주재소(파출소)에 불려 간 할아버지에게 일본 순사가 먹물총을 쏘았던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창씨 개명을 못하겠다고 버티고 나서자, 일본 순사는 할아버지의 하얀 모시 두루마기에 까만 먹물총을 쏘았습니다.
처녀가 죽으면 항아리 무덤을 쓴다고 합니다. 항아리에 시체를 넣고 항아리 뚜껑 안쪽에 체를 씌웁니다. 처녀귀신이 항아리 밖으로 나오는 방법은 체의 구멍을 모두 세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수만 개도 넘는 체의 구멍을 정확하게 모두 세기 전에는 처녀귀신이 절대로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탄식을 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80섬을 공출(물자를 의무적으로 정부에 바침)이란 명목으로 빼앗겼습니다. 남은 20섬으로 우리 집 식구 양식도 못 됩니다.
가마니 3백 장의 공출 통지서를 받은 우리는, 가마니 짜기에 온 집안 식구가 총동원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마니를 짜고, 할아버지께서는 세끼를 꼬고, 작은아버지는 볏짚을 찧어 다듬고, 또 가마니를 꾸몄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밥짓는 일과 허드렛일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 온 집안 식구가 총동원되어야만 하루에 대여섯 장의 가마니를 짤 수 있습니다.
피리 부는 잔나비
도깨비와 순사
굶주린 땅
황제가 없는 나라
윤사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