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은 인터엠디(InterMD)와 함께 매월 정기적으로 주제를 선정해 ‘의사들의 생각’을 알아보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인터엠디는 4만 3000여 명의 의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의사만을 위한 지식·정보 공유 플랫폼(Web, App)'입니다. (편집자주)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은 늘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국인들은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임종에 대한 자기결정권 없이 연명의료를 받는 비율이 높아서인데요. 결국 죽음을 수용할 기회는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임종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때 주어진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좋은 죽음”
좋음 죽음의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미국 노년 정신의학회지는 ▲원하는 곳에서 ▲잠들 듯 ▲고통 없이 ▲두려움 없이 평온하게 ▲가족들에게 둘러 싸여 ▲존경과 존중을 받으며 ▲아쉬움 없이 작별 인사하며 ▲종교적, 영적 평안 상태로 ▲사전의향서(연명의료, 안락사)를 작성한 뒤에 ▲평소대로 살다가 등을 꼽습니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좋은 죽음의 요소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없는 것,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주지 않는 것,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 순으로 꼽습니다.(2020년 노인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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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연구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항 몇 가지를 꼽아 의사 1000명에게 좋은 죽음의 요소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결과, 1위는 ‘가족이나 의미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려 439명(43.9%)이 선택했는데요. 2위는 지금까지의 삶이 의미 있게 생각되는 것(335명, 33.5%). 3위는 통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139명, 13.9%)이었습니다. 마지막이 영적인 안녕 상태 보장되는 것(83명, 8.3%)이었습니다.
의사도 일반인도 자택 임종 원하지만, 국민 75%는 병원 임종
피하고 싶은 사망 원인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암으로 가장 많이 죽습니다. 3명 중 한 명 꼴이라고 보면 됩니다. 두 번째 사망 원인은 심장질환이고 세 번째는 폐렴입니다. (2022 보건복지통계연보) 그런데 의사들이 피하고 싶은 질환 1위는 알츠하이머병이었습니다. 378명(37.8%)이 꼽았는데요. 기억을 잃는다는 것과 투병 기간이 길다는 질환의 특수성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암은 2위였습니다. 302명(30.2%)이 꼽았습니다. 3위부터는 크게 차이나지 않았는데 순위별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뇌혈관질환(86명), 상관없다(61명), 심장질환(51명), 당뇨병(49명), 폐렴(45명), 패혈증(13명), 간질환(10명), 고혈압성 질환(5명).
만약 임종이 6개월 남았다고 가정했을 때 무엇을 할 거냐고도 물었습니다. 561(56.1%)명의 의사가 여행 등 평소 못 해봤던 것들을 시도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2위는 평소처럼 살겠다(162명), 3위는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겠다(159명), 4위는 의료시설 대신 고향이나 시골을 찾겠다(112명)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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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임종 장소로 자택을 원합니다. 1982년, 한국인의 84.25%가 자택에서 임종했습니다. 2002년까지만 해도 자택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이 많았지만 2004년부터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이 흐름은 지속되다가 2020년에는 무려 75.6%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게 됩니다.(통계청)
의사들도 임종 장소로 자택을 원했습니다. 무려 631명(63.1%)이 선호하는 임종 장소로 자택을 선택했고, 250명이 호스피스 병동, 89명이 일반병원, 21명이 요양시설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에서 조용히 혼자’,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에서’, ‘아내의 품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는 주관식 답변도 있었습니다.
낮은 웰다잉 지수, 연명의료 때문?
우리나라는 웰다잉 지수가 낮습니다. 웰다잉 지수는 의료 시스템이 임종을 앞둔 환자의 통증과 보호자의 심리적 고통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평가한 지표입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개발했습니다.
2015년 기준 1위 국가는 100점 만점에 93.9점을 받은 영국이었습니다. 한국은 73.7점으로 18위에 머물렀습니다. 이마저도 건강보험이 완화의료 제도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기대 때문에 높게 나온 것입니다.
한국의 웰다잉 지수가 낮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의 미비, 환자의 결정권을 반영할 수단의 부재,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 등이 꼽힙니다. 연명의료 역시 빠질 수 없습니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적용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등의 조치를 뜻합니다. 환자의 의지와는 별개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까지의 기간만 연장하다보니 비참한 죽음의 원인으로 꼽히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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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도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연명의료를 받을 계획이 있냐고 묻자 565명(56.5%)이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151명은 가족과 담당 의료진의 뜻에 맡기겠다고 답했고, 125명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159명(15.9%)은 연명의료를 받을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죽음의 의미와 수용법 등… “죽음교육 있어야”
우리나라에서 좋은 죽음이 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사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처럼 환자의 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386명(38.6%)이 꼽았습니다. 366명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의 확충 및 지원, 229명은 죽음에 대해 교육하는 문화, 15명은 종교 인구의 증가를 꼽았습니다. ‘안락사 도입’, ‘의사조력 자살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관식 답변도 있었습니다.
죽음 교육이란 죽음을 바르게 배움으로써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하도록 이끄는 과목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말입니다. 삶만을 바라보면서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자신의 죽음을 마주치게 되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됩니다. 평소 죽음을 배우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삶을 영위한다면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그 충격이 조금 덜하지 않을까요? 죽음 준비 교육이 학교 수업 과목으로 채택된 미국, 독일처럼 말입니다.
의사들에게 죽음 교육에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죽음의 의미와 수용 방법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았습니다(453명, 45.3%). 그 다음으로는 살아온 인생 정리(283명),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이해(190명), 사별 후 상실감에 대처하는 자세(73명) 순이었습니다. 죽음 교육 시기에 대해서는 성인기(30~64세)가 47.6%로 가장 많았고 청년기(19~29세, 20.2%) 노년기(65세~, 18.8%) 아동·청소년기(6~18세, 13.1%) 순이었습니다.
헬스조선
오상훈 기자 osh@chosun.com
첫댓글 병원에서 임종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장례식장문화도 기인하는 것 같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