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유대 지역에서 갈릴리(Galilee) 지역으로 가셨는데, 갈릴리 지역으로 가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셨으며, 갈릴리 지역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사방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14절). 예수님은 회당(會堂, Synagogue)을 찾아다니시며 가르치셨고, 그러한 가르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셨습니다(15절).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자라나셨던 나사렛(Nazareth)에 가셔서도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셨습니다(16절). 회당은 유대인들이 모임을 갖는 장소를 일컫는 명칭으로 성전에 갈 수 없었던 바벨론 포로 시절부터 시작되어 그 이후로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서 세워진 모임 장소였습니다. 유대 지역과 이스라엘 전역에도 회당이 생겨서 유대인들이 모여 에배를 드리고, 구약성경을 읽고, 그 성경을 해석하면서 모임을 가졌는데, 모일 때마다 정해진 사람에게 두루마리로 된 성경을 읽도록 하였고, 성경을 읽은 후에는 성경을 잘 아는 자가 그 성경에 대한 해석을 들려주었습니다.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서도 예수님께 성경낭독이 맡겨졌고, 이사야서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주었기에 펼쳐서 읽는데, 마침 이사야 61:1, 2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17절~19절). 이 구절은 메시아가 오면 일어날 일들에 대한 내용을 예언하는 말씀이기도 하였습니다. 19절에 나오는 ”주의 은혜의 해“는 ”희년“[禧年, Year of Jubilee, 히브리어로 “요벨”(יוֹבֵל)]을 의미하는 것인데, 희년에 대한 율법의 기록은 레위기 25:8~55에 나와 있습니다. 희년이 되면 포로 된 자와 종이 되었던 자에게도 자유가 주어지고, 빚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던 농지를 비롯한 토지도 다시 돌려받게 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맘껏 누리는 해가 되었습니다. 나팔을 불어 희년이 되었음을 선포하였기에 뿔나팔을 의미하는 단어인 “요벨”(יוֹבֵל)이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에 의하여 6년이 지나고 7년째 안식년을 맞이하여 지키게 되는데, 그러한 안식년이 7번 지내면 49년이 되는데, 그 다음 해인 50년째에는 희년으로 지켜 행했습니다. 이러한 희년은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죄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주실 것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었기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의 이 말씀을 읽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회당에서 모일 때 누군가 주어진 성경을 낭독하면 성경을 잘 아는 자가 그 성경의 말씀을 해석하여 설명하는데, 그날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성경을 읽은 예수님을 주목하면서 예수님께서 그 성경구절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기다렸습니다(20절). 예수님은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1절).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는 바로 지금 이 예언의 말씀은 성취되었음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라면서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수군거렸습니다(22절). 어린 시절부터 나사렛에서 자라왔던 예수라는 사람이 성경 말씀에 뛰어난 지식과 가르침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치 의사에게 “네 자신을 먼저 고쳐 봐라”라고 말한다는 속담처럼 예수님에게 가버나움에서 행했던 놀라운 이적들을 여기서도 한번 보여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23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24절). 나사렛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메시아(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들기보다는 오히려 폄하(貶下)하고 불신의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과부들이 아닌 팔레스타인 북부의 이방 지역인 시돈 땅의 사렙다[Σαρεπτά, Sarepta, Zarephath, 열왕기상 17장에서는 사르밧(צֱרְפַת, Zarephath)이라고 부름]에 있는 과부를 돌보셨고(왕상 17장, 18장),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수많은 나병환자들이 있었어도 오히려 이방 나라인 수리아(Syria, 아람)의 나아만(Naaman) 장군의 나병이 고침을 받은 것처럼(왕하 5:1~14)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25절~27절).
이러한 예수님의 책망과 지적으로 인해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자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나사렛 성의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쳐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29절). 낭떠러지에서 사람을 떨어뜨려 죽이는 것은 반역자를 처벌하는 행위 중 하나였기에(대하 25:12) 예수님을 그렇게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기가 어려웠기에 오히려 그들을 책망한 예수님을 향해 분노하여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30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낭떠러지에 밀쳐서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유유히 떠나셨다는 표현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권능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위기에서도 쉽게 벗어나실 수 있는 능력을 행하셨음을 시사(示唆)해 주고 있습니다.
뛰어난 가르침, 놀라운 능력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잘 알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 가르침과 능력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오히려 더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선입견으로 인해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에게 있어서 메시아(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같은 동네에서 자라나셨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고 더 귀중히 여기며 예수님을 따랐다면 큰 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뛰어난 가르치심을 들으면서도, 예수님께서 놀라운 능력을 행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외면하며 예수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은혜를 저버리고 만 것입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은혜가 내게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신앙으로 인해, 혹은 가볍게 여기고 무시함으로 인해 그 은혜를 놓치는 일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나보다 후배인 자들을 통해서도 내게 새로운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役事)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한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고, 겸허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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