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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창의 목을 베어낸 병사의 검에서 핏물이 방울져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핏물방울과 함께 대다수의 병사들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서..아니 마치 홍수를 내려고 작정을 한듯 쉴새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들 알고 있었다. 손유창의 충직함을. 그리고...저 간악한 주술사로 인해 주후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함을... 눈물바다를 뒤로한 채 주후는 자신의 방으로 첩, 시녀들을 대동한 채 사라졌고 웃음을 흘리며 손유창의 목을 바라보던 임평후 역시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어짜피 맹인인 임평후 이지만 그의 방은 주후의 방보다 더 많은 촛불이 켜져있었다. 그리고 방의 북쪽에는 제단이 하나 있었다. 제단은 작은 상 이었는데 벽쪽에는 아수라의 모습을 나타낸 한폭짜리 병풍이 있었고 그 벽쪽을 제외한 나머지 제단의 세부분의 모서리에는 아수라를 받드는 천룡팔부의 세 신(가루라, 긴나라, 마호라가)의 모습을 간략하게 나타낸 부적이 붙어있었다. 아수라의 양 옆으로도 초가 두개 켜져있었고 정 중앙에는 오래 전에 잡아 이미 살이 썩어문드러진 짐승의 두개골이 올라 있었다. 썩은내가 풀풀 나야정상이지만 그런 냄새는 커녕 썩은 고기에 꾀이는 파리조차 방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음...부동명왕(시바)의 출가를 그 여인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그런 대사(大事)는 당일에 별의 움직임과 60갑자, 팔괘...그 모든것을 고려해서 날짜를 확인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식(일식이라 생각해 주세요)일 수도 있거늘...어찌하여 부동명왕의 출가일임을 그토록 정확하게도 알았단 말인가...풍마가 그녀를 직접 도와준다는건 어렴풋이 예상했지만...풍마가 부동명왕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알고있다는 것인가...풍마와 부동명왕 사이에 내가 알 지 못했던 비밀이라도 있다는 뜻인가?" 임평후가 홀로 중얼거리며 의구심을 키워갈 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흐흐흐흐흐...네놈에게서 느껴지는 음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구나...." 방안을 울리는 소리에 임평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비록 맹인이라 하나 자신의 주변의 기척은 모두 느낄 수 있는 그였지만 지금은...단지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누구냐..감히...내 비록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거늘..." "흐흐흐...." "정체를 밝혀라." "오래전...네놈의 두 눈을 받아간 적이 있었지...그리고 네놈은 그 대가로써 나를 모실 권리를 얻게 되지 않았던가.." 그의 눈을 앗아간 자.... 그렇다...아수라... 오래 전 임평후는 법력을 탐하여 마신(魔神) 아수라의 신전에서 자신의 두 눈을 뽑아 제단에 올린적이 있었다. 각오를 다지기 위해 눈을 뽑아냈던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눈이 없는 그에게 예지력과 법력이 생겼고 이만큼 성장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정말 그의 눈은 아수라에게 바쳐졌던 것일까... 임평후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맴돌 무렵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흐흐흐흐흐흐...네놈의 그 사악한 음기라면 '그릇'이 되기에 충분하겠구나.." "커...컥..." 무거워진 공기가 임평후의 목을타고 넘어가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옴을 느끼며 살기위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거운 공기가 자신의 온 몸으로 퍼지며 전신에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 다른 '힘'이 솟기 시작함을 알 수 있었다. "크악..." 임평후가 괴성을 지르자 그의 심복들이 방안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몇몇 주술사들은 방안에서 일어나는 괴기스런 상황을 접하자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주술사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한들 공중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는 없다. 아니 지금의 임평후는 마치 무언가에게 붙잡혀서 들려있는 모습이었다. 그나마 좀 한가닥 한다는 자들은 간신히 정신은 차리고 있었지만 지독한 사기(邪氣)로 인해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구토를 참고 있는 자들도 있긴하였으나 방안에 집결된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몸을 가눌수 조차 없었다. 순간 임평후의 감겨있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약간은 푸르스름한 백색의 안광은 텅 비어있던 임평후의 안구의 위치를 채워갔고 그 광경마저도 계속 지켜보고 있던 주술사들의 몸에 전율을 흐르게 했다. "간에 기별조차 가지 않을 것 같지만...그래도 먹이축에는 드는 놈들이구나...흐흐흐" 임평후의 입이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집중된 '힘'에 의해 촛불들은 어느 덧 빛을 잃어버렸지만 임평후의 눈에서...심지어는 온 몸에서 발현되는 그 공포스러운 빛은 이미 어두워져야 할 방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직까지 버티고 있던 주술사들은 어쩌면 미리 기절해 버린채로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터였다. 그들의 바람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몸을 강하게 타격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에 의해 버티던 자들의 몸이 쓰러져갔다. 뭐...어짜피 맨 처음 쓰러진 자와 마지막에 쓰러진 자의 시간차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단지..조금 더 오래 버텼을 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자들...구토물에 얼굴을 묻은자들...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결국 빛을 본 채 정신을 잃은자들... 그들이 모두 정신을 놓긴했지만 필시 '살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마치 정신을 잃으며 생명력마저도 빼앗긴 듯 쓰러진 자들의 몸이 급속도로 식어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일어난 괴기스러운 일에 병사들이 달려올 법했지만 애초에 질렀던 임평후의 비명소리와 주술사들이 쓰러질 때의 아비규환(阿鼻叫喚)에서나 들릴법한 비명소리들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들리지도 않았다. 약간이나마 신통력이 있는 자들만이 임평후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 했고 주술사들의 죽음역시 완벽한 방음벽안에서 이루어진 듯 햇다. 공중에 붕 떠있던 임평후의 눈에서, 몸에서 세어나오던 빛이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그의 몸역시 점차 땅을 향하기 시작했다. [왈칵] 선홍색의 피와 함께 반짝거리는 붉은 돌조각이 임평후의 토악질과 함께 바닥에 흩어졌다. "지금까지 네놈이 부렸던 내 권위의 상징을 밖으로 내보내 버렸다. 어짜피...시덥잖은 잡기(雜氣)에 지나지 않으니..." 방안을 울리던 소리는 이제 임평후의 귀에만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네놈은 내 힘을 좀 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네놈은 이제...내 숙원을 이루는 그날까지 나의 충실한 '그릇'이 되거라...흐흐흐흐..." 임평후의 귓가에서 맴돌던 소리마저도 웃음소리와 함께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자...그럼...내 숙원을 위한 한걸음을 떼어 볼까?...마침...좋은 녀석을 발견했군...그래..시바놈(왠지 욕같네요;;)이 겨우 마족따위인 풍마놈과 손을 잡았다는 건가...우습구나...삼정신(三頂神) 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놈이...뭐...그놈이 가끔 설쳐준 덕에 인드라의 봉인마저도 금이가기 시작했으니....이정도 까지라도 움직일 수 있게된건 시바의 덕일지도 모르지 흐흐흐..."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소리는 어느 덧 임평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영겁의 세월 전...신국(神國)에 불어닥쳤던 거대한 폭풍.. 아수라의 재등장... 이제 곧 하계에 불어닥칠 피비린내... 그리고...붉은 달... ---------------------------------------------------- ... 적월편이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쓰다보니까 예정보다 빨리 아수라의 부활이 나타나 버렸네요.... 분명 머릿속에선 다르게 돌아가고 있던 줄거리가 손으로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이렇게 되어버리는군요...신기하네요.. 이번도 변함없이 한자단어에 역주를 답니다. 역주 (譯註) 번역한 사람이 붙인 주석...뜻풀이...같은거겠죠? 사기(邪氣) - 사악한 기운 아비규환(阿鼻叫喚) - 아비지옥과 규환지옥 이라는 불가의 두 지옥 의 모습을 합한것과 같이 비참한 지경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아는 지옥은 이 둘(아비, 규환)과 불지옥인 무간지옥(영어로는 인페르노 inferno 라고 합니다.) 이렇게 셋뿐입니다... 짧은 지식인지라-ㅁ-;; 불가에는 총 9개인가? 지옥이 있다고 하는 데요. 무간지옥은 가장 무서운 곳이라 합니다. 잡기(雜氣) - 잡스러운 기운 삼정신(三頂神) - 최고로 높은 위치에 있는 세명의 신. 시바, 브라흐마, 비슈누 가운데의 정(頂)자는 '정수리 정' 자인거 같은데...맞는가는 모르겠네요;; 천룡팔부 거상을 하시는 분들은 천룡팔부가 친숙할지도 모르겠군요... 바로 염주의 이름입니다. 조이온이 천룡팔부를 감안해서 지은 것 같아요. 천룡팔부란? 제석천 인드라를 필두로 하는 천신을 포함한 천계를 다스린다고 하는 8신입니다. 천신 - 용 - 야차 - 건달파 - 아수라 - 가루라 - 긴나라 - 마호라가... 이순서를 뒤집으면 거상 염주의 순서가 되죠? 저도 이 소설 쓰려고 이것저것 뒤져보다가 알게되고 깜짝 놀랐어요...이런 사소한 것에도 조이온의 정성(?)이 묻어있을줄은... 천신- 그냥...천계의 우두머리 입니다. 용신- 아시죠? 용 야차(귀신)-악마를 벌하는 신이라고 합니다. 하기사...귀신하면 다들 무섭다고 생각하잖아요. 건달파-향기, 음악의 신이라하네요..대략...뮤즈(Muse)랑 비슷??? 음악을 관장한다 하나 뭔가...힘이 있으니 8신에 들어가겠죠? 아수라-사실...아수라를 마신이라 하기는 좀...그렇기도 하죠...여러 세기를 거치며 인도 신화에서 인드라를 두각시키기 위해 아수라를 악으로 정한 감이 없지않아 있죠. 아수라와 인드라가 싸운 이유가... 수라족에는 여인은 많으나 음식이 없고 인드라쪽에는 음식이 많으나 여인이 없어서라고 하네요...불씨가 커져서 나중에는 결국 인드라에게 대패 해서 사라져 버리는 비운의 신 이기도 합니다... 제 소설에선 그 점을 인용하여 인드라에게 원한을 품고 성격이 삐뚤어져가는(?) 모습으로 그려질 것입니다...<넘 많이 알려주면 잼없는데-ㅁ-;;> 가루라(가루다)-용을 먹고 산다는 전설의 새 입니다... 독수리나 매, 솔개등을 맹금류 라고 하니까...가루라는 금신? 이라 해야하나요? ㅋ 긴나라-사람의 몸에 짐승의 머리를 하고 있다는 신입니다. 마호라가-뱀과 관련된 신으로써 인도 신화에서는 나가(Naga)의 모태가... 다른 신화에서는 히드라(hydra)나 샐러맨더(salamander) 등의 모태가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도 인도신화가 다른 신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쓰다보니 뒤에있는 신들은 아주 장황하네요;; 천룡팔부의 관계가 어떤지는 그다지 모릅니다... 그냥...반 뚝~ 잘라서 반은 인드라 편으로 반은 아수라 편으로 정해버렸습니다(역시나 무책임..) |
아...글에 번호를 붙여서 적월이 전체 제목인것인양 되어버렸군요...
2편에서인가? 말씀드린대로...만월이 춤을 출 때는 적월에 붙는 수식어(?) 정도 입니다. 전체 제목은 신국입니다.
적월(赤月)이 신국(神國)의 프롤로그 임은 1편 제목 옆에 붙여두긴했는데...
아....이거야 원...
프롤로그만 6편이 되니;;;
이러다가 용두사미의 대표주자가 되지 않을런지...
첫댓글 ^^ 잘봤어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정말 재밋게 봤습니다.다음에 쓰실글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