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다가왔습니다. 12월이 오면 가슴이 설렙니다. 성탄절이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인종과 종교를 떠나 성탄절은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는 모든 이의 축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성탄절 때만이라도 세상이 전쟁과 분쟁을 멈추고 아기 예수님이 선사하시는 평화를 함께 음미했으면 합니다.
저는 작년에 서울에서 맞이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나 감격스러웠던지 24일 아침 수도원 옥상에서 눈 맞는 모습을 셀카로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하얀 성탄절은 제가 30년 넘게 산 도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올해도 혹시나” 하고 은근히 기대해 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다시 수도원 옥상에 올라가서 셀카를 찍어보겠습니다. 내리는 눈을 맞이하며 독자 여러분을 위해서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를 멋지게 불러드리겠습니다.
저는 점점 밤이 깊어져 가는 절기에 맞추어 조금은 내성적內省的이 되어 지난 1년을 되돌아 봅니다. 성 이냐시오의 의식성찰의 방법에 따라 우선은 감사할 일들을 회상합니다. 가장 크게 감사할 일은 2년째의 투병을 무사히 그리고 영적인 위로 안에서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가족이나 지인들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기적이다”라고 외칩니다. 저는 은인들의 수많은 기도와 희생으로 그 기적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탈출기는 여호수아가 아멜렉의 군대와 싸울 때 모세의 기도하는 팔이 내려가지 않도록 아론과 후르가 양쪽에서 받쳐주었다고 전합니다(탈출 17,12). 저는 저 자신의 투병이 탈출기에 소개되는 모세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저의 생명을 떠받쳐 주었습니다. 그 기도를 바탕으로 저는 세상의 고통 중에 계신 분들과 일치해서 계속해서 저 자신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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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인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하는데 투병에서 오는 가장 흔한 유혹 중의 하나는 ‘나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라거나 혹은 ‘내가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었다’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저 역시 때때로 이러한 유혹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사도직을 통해 연결되었던 사람들과 점점 연락이 뜸해지고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런 느낌은 더 자주
찾아왔습니다. 수도원 원장이신 송봉모 신부님께 “제가 꼭 빈대가 된 느낌입니다”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제 말을 가만히 들으시더니 우리들의 성소를 지탱하는 ‘행동 양식’의 근저에 ‘존재 양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받아들이며 저는 영적 유혹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 7월 31일 성 이냐시오 축일 때의 일입니다. 한국관구의 예수회원과 예수회 후원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몬 신부님은 ‘현대 예수회의 새롭고 낯선 파견’이란 제목으로 글을 낭독해 주셨습니다. 이 글에서 신부님은 저와 비슷한 시기에 투병을 시작한 요한 신부와 함께 저를 언급하셨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은 투병이 복음적 파견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500년 전 예수회 가족들이 오늘처럼 이렇게 모여 있을 때 가장 좋아하던 시간은 선교지로부터 온 편지 읽기였다고 합니다. 선교지에서 새 편지가 도달하면 예수회 공동체는 그날 식사 시간에 큰 소리로 그 편지를 읽었다고 합니다. 오늘 이 귀한 시간 이냐시오의 가족이 다 같이 모인 이 특별한 자리에서 저도 참으로 낯선 곳으로 파견되어 마음과 삶으로 파견지의 삶을 전해주는 오늘 우리 시대의 선교지 편지를 소개합니다. 이들이 파견된 곳은 병으로 아픈 이들의 곁, 그들처럼 아픈 자기 자신의 병고의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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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모 예수회 일본관구 소속 사제로 일본 조치(上智) 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생활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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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