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 신선이 되어 - 북설악 신선봉
운해 위로 솟은 울산바위
천후산(天吼山)은 설악산 동쪽 기슭의 다른 산인데 수성(䢘城, 간성의 옛 이름) 남쪽 경계에
있다. 돌산이 신기하고 빼어나게 아름다운데 아홉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너른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산이 크게 울면 큰 바람이 불기 때문에 산 이름을 천후라고 하였는데,
산에 풍혈이 있다. 남쪽에는 석달마(石達麻)가 있고 북쪽에는 선인대가 바라보인다. 선인대
위에는 선인정(仙人井)이 있다.
――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 ~ 1682), 「기행(記行)」
주) 천후산은 울산바위의 옛 이름이다.
▶ 산행일시 : 2019년 9월 28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4명(모닥불, 중산, 악수, 대간거사, 일보 한계령, 산정무한, 상고대, 사계,
신가이버, 해피, 승연, 무불, 무념,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거리 10.0km
▶ 산행시간 : 7시간 32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를 따랐음)
06 : 33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08 - 화양강휴게소
09 : 30 - 도원리 향도원 힐링 마을, 산행시작
09 : 50 - 새이령(대간령) 갈림길
11 : 36 ~ 12 : 05 - 751.0m봉, 점심
12 : 48 - 야트막한 안부
13 : 20 - 너덜지대 진입
14 : 10 - 신선봉(神仙峰, 1,212.2m)
15 : 06 - 화암재, ┫자 갈림길 안부
16 : 38 ~ 16 : 48 - 임도, 휴식
17 : 02 - 화암사 입구 주차장, 산행종료
17 : 30 ~ 19 : 35 - 속초(목욕), 외옹치(저녁)
20 : 38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21 : 53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2. 산행 고도표
설악산 산행은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IC를 빠져나와 화양강휴게소를 들르면서부터 시작
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달짝지근한 자판기 밀크커피 뽑아 마시며 졸음을 쫓고 휴게소 난간
에 다가가 유장한 화양강 건너편 산군을 두루 살피며 오늘 일기를 가늠한다. 화창할 날씨다.
그런 다음 차창에 눈을 고정하고 계절이 바뀌어 적상으로 갈아입는 뭇 산들을 구경한다.
인제, 원통을 벗어나면 점차 준험한 설악산의 모습이 드러나고, 미시령터널 3.5km를 지나면
언제나 그렇듯 곧바로 오른쪽에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울산바위의 위용이다. 처음에는 그
머리 부분만 보이다가 마지못해 전 모습이 드러난다. 볼 때마다 기경이다. 거대한 바윗덩이
인 울산바위는 울타리처럼 생겨서 울산(蔚山)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옛 이름은 천후산
(天吼山)이다. 천둥이 치면 하늘이 울린다고 한다.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이 울산바위를 시로 읊고 화폭에 옮겼다. 동주 이민구(東洲 李敏
求, 1589~1670)는 “옥을 깎아 만든 당황이며 안치를 배열한 듯(玉削堂皇排雁齒)”이라 했
다. 그럴듯하다. 당황(堂皇)은 사방 벽이 뚫린 관리의 사무실을 의미하고, 안치(雁齒)는 다
리 난간에 나무나 돌을 깎아서 나란히 세운 것이 마치 기러기의 행렬이나 이(齒)의 모양 같
다고 해서 한 말이다.
현곡 조위한(玄谷 趙緯韓, 1567~1649)은 1623년 양양부사로 임소에 나갔을 때 양양 지역
을 관람하고, 다음과 같은 「천후산(天吼山)」이란 시를 남겼다.
하늘높이 솟은 절벽 푸른 병풍 둘러친 듯 橫空蒼壁列長屛
좁다란 오솔길이 그 속에 끼어있네 內外纔分尺一經
초목조차 자취를 남기지 않았으니 草木也無留影迹
새와 벌레도 오지 않아 깃털하나 볼 수 없네 禽蟲那得着毛翎
험한 바위 하늘을 받들듯이 치솟아서 獰姿屭贔撑高掌
웅장하고 엄한 모습 노하신 신령 같네 壯勢森嚴怒巨靈
비바람을 불러오는 신선이 계시는 듯 產雨興風神怪驗
때로는 우레 소리 바위 문을 두드리네 有時雷吼震巖扄
울산바위를 뒤로 하고 고성군 토성면 깊숙이 들어간다. 도원리(桃院里) 도원저수지 돌아 향
도원 힐링마을 주차장에 다다른다. 너른 주차장에는 우리 버스뿐이다. 5년 전 이맘때 우리는
신선봉 암릉인 동릉을 이 주차장에서 문암천(門岩川) 건너 접근했었다. 오늘은 신선봉 북릉
을 오르기로 한다. 잘 난 임도 따라간다. 임도 왼쪽에 문암천이 옥계반석으로 흐른다. 무릉도
원이다. 도원이 ‘桃園’이 아니라 ‘桃院’이다는 게 의아하다.
3. 울산바위, 예전에는 천후산(天吼山)이라고 했다
4. 울산바위
5. 울산바위
6. 울산바위 전경
7. 첫 휴식
8. 노루궁뎅이버섯, 오늘 본 유일한 식용버섯이다
9. 신선봉이 눈에 잡혔다
10. 신선봉 저 너덜을 오르려한다
11. 마산봉, 멀리 왼쪽은 매봉산
12. 신선봉 동릉의 암릉 암봉
주차장에서 20분 걸려 ┫자 갈림길인 신선봉 들머리다. 이정표에 직진은 새이령(대간령)
2.2km이고, 왼쪽의 신선봉 입구는 1.5km이다. 무지개 목교 건너서도 임도가 이어지고 우리
는 이정표에 아랑곳하지 않고 임도 벗어나 아무 인적 없는 생사면 풀숲을 누빈다. 주변은 소
나무와 참나무의 분위기 썩 좋은 혼효림이라 혹시 송이가 보일까 걸음걸음 지배(地背)를 철
(徹)하게 살피지만 내내 빈 눈이다.
수직사면 한 피치 올라 능선을 붙든다. 무척 더운 날이다. 오뉴월 비지땀 쏟는다. 하늘 가린
숲속 길이 후덥지근하다. 더구나 흐릿한 인적 가리는 잡목은 억세기도 하다. 울창한 잡목 헤
치느라 걸음이 더디고 선두와 후미의 분별이 없어진다. 길 뚫는 앞사람의 덕을 보려고 바짝
뒤따르다가는 튕기는 나뭇가지 매운 회초리 맛을 보기 일쑤이니 안전거리 유지한다.
751.0m봉 정상이 잠깐 풀밭이라 그 틈에 이른 점심밥 먹는다. 잡목 숲 발밑은 너덜이라 손과
발이 여간 바쁘지 않다. 안개 속에 든다. 나뭇가지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던 골 건너편 죽변산
도 자욱한 안개에 가렸다. 공제선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오르막에 사나운 잡목 숲은 쉽사리
그칠 것 같지 않고 날은 무덥고 사방 경치는 칙칙하고 목에 맨 카메라는 더욱 무겁다.
한 가닥 군 통신선이 처음에는 발에 걸리고 배낭에 걸리고 되게 성가시더니만 잡목 숲에 갇
혀 몇 번 허우적거리고 나니 등로를 안내하는 그나마 인적이라 꼭 붙잡고 쫓아간다. 야트막
한 안부께에 키 작은 잡목 숲 위로 머리 내민다. 비로소 앞의 갈 길이 보이고 뒤돌아보면 온
길은 운해에 잠겼다. 안개인 듯 운해는 발밑에 깔렸다. 우리는 운해를 뚫고 올라온 것이다.
마산봉, 그 너머 향로봉, 칠절봉, 매봉산과 상견한다.
너덜지대는 아직 멀었다. 다시 군 통신선 붙잡고 온몸을 비틀어가며 잡목 숲을 뚫는다. 이럴
진대 마가목주는 일립백행(一粒百行) 버금가게 피와 땀을 증류하여 얻는다. 너덜지대. 광활
하다. 암릉 같은 굵직굵직한 너덜을 산개하여 오른다. 무지 지겹던 잡목 숲을 벗어나니 살맛
난다. 짜릿한 손맛 느끼며 이 바위 저 바위 더듬는다.
고도를 높일수록 만경창파는 마산봉을 삼킬 듯 밀려온다. 너덜지대 저 너머에는 또 어떤 경
치가 펼쳐질까 가쁜 숨 할딱이며 기어오른다. 이윽고 너덜지대 끝나고 잡목 숲 약간 오르면
암봉인 신선봉 북봉이다. 잠시 숨 돌리고 70m 떨어진 신선봉 정상을 향한다. 정상에는 당분
간 우리뿐이다. 우리는 그간 몇 번이나 신선봉을 올랐지만 전에 보지 못한 경치를 연출한다.
13. 신선봉 동릉의 암봉
14. 신선봉 북사면 너덜지대
15. 신선봉 오르면서 뒤돌아봄, 멀리 왼쪽은 향로봉
16. 앞은 신선봉에서 새이령 가는 능선
17. 멀리 가운데는 대청봉, 중간 오른쪽은 상봉
18. 울산바위
19. 상봉
20. 울산바위
21. 마산봉 주변
상봉 미시령 넘어 황철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경계로 동해 쪽은 운해가 넘실대고 오른
쪽 내륙은 엷은 연무가 끼여 흐릿하다. 그중 눈길을 끄는 건 고도인 울산바위다. 그 뒤쪽 화
채봉과 대청봉은 울산바위의 배경이다. 수색 허적(水色 許𥛚, 1563~1640)의 행로를 어쩌
면 우리가 밟은 것은 아닌가 싶게 흡사하다. 그의 「천후산으로 들어가며(入天吼山)」라는
시다.
산길이 하도 험해 걷기조차 어려운데 崎嶇逕路騎纔通
붉은 잎 영롱하고 푸른 가지 숲 이뤘네 赤葉玲瓏碧篠叢
깎아지른 봉우리들 구름밖에 솟아있고 削立峯巒雲霧外
골짜기 바위 새로는 시내물이 흘러가네 環流溪澗石岩中
화암사에서 상봉을 넘어 왔다는 일단의 등산객들에게 신선봉 자리를 비켜주고 그 아래 헬기
장에서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하산은 당초에 새이령을 지나 향도원으로 갈 것을 생각을 했
으나 너무 멀어 가장 짧은 거리인 화암재 지나 화암사로 내리기로 한다. 그래도 1시간 30분
이상이 걸릴 견적이라 빠듯하다. 줄달음한다. 화암재로 내리는 길은 가파른 잔 너덜길이다.
화암재 ┫자 갈림길에서 대간거사 총대장님이 교통정리 한다. 우리로서는 화암재에서 화암
사로 가는 길이 처음이다. 중산 선배님과 걸음하며 후미도우미를 자청한 해피 님이 혹시 상
봉으로 가는 길로 잘못 들까해서이다. 지난날 알바의 전과가 적지 않은 해피 님도 여기에서
는 보무도 당당했다. 화암사 가는 길은 노선버스만 다니지 않을 뿐 신작로 수준이다.
여러 산굽이 돌고 돌며 쭉쭉 내린다. 길섶 줄줄이 구절초와 투구꽃이 나와 환송한다. 운해에
잠기고 한갓진 산길을 간다. 신선봉 동릉에서 또 다른 너덜지대를 지나오는 길과 만나면 가
파른 내리막은 완전히 수그러든다. 천진천 지계곡 건너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 따라 15분쯤
가면 화암사 일주문 앞 주차장이다.
오늘 산행기 제목을 어떻게 달까? 속초 외옹치 횟집에서 일행들에게 물었다.
헛물 켠 산행, 신선봉이 예전과 다르더라 등등 우리들의 농원을 아끼는 마음이 한결 같았다.
22. 신선봉 정상에서, 사계 님
23. 신선봉 정상에서
24. 가운데가 울산바위
25. 상봉
26. 투구꽃
27. 화암사 가는 길
28. 화암사 가는 길
29. 화암사 가는 길
30. 구절초, 바위 위에 피었다
첫댓글 잡목을 헤치고,너덜을 움켜잡고 신선봉에 올라서니 펼쳐지는 운해...역시 설악이었습니다^^
신선봉 운해가 보기 드문 장관이었네요. 구름이 울산바위를 치마저럼 두른 모습이 아주 이채로웠습니다.
신선봉에 신선 14명이 오르셨네요. 설악은 왜 저 안갈 때만 이렇게 좋은 곳으로 가시는 것같은지 속상합니당 ㅎㅎ
운해가 멋지네요~ 하산길은 저희랑 같았네요~ 그쪽이 능이가 있다카든데..전 오름길 표고를 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라졌다는...대신 ㅁㄱㅁ열매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