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주께 둔 자의 삶
시편 39편 6~7)
설 교 : 2012년 10월 14일 주일 낮 설교
찬 송 : 44장(지난 이레 동안에). 418장(기쁠 때나 슬플 때나).
488장(이 몸으 소망 무언가). 335장(크고 놀라운 평화가)
오늘처럼 인생이 바쁘고 피곤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서울의 저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에 틈도 없이 붐비며 그토록 바쁜 걸음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 짧은 인생살이에서 매일 같이 바쁜 일이 무엇 때문입니까? 살려고 바쁩니까? 죽을 려고 바쁩니까?
톨스토이는 인생독본에 욕심쟁이 “땅차지”라는 예화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침 해 뜰 때부터 말을 타고 한 바퀴 돌아 온 테두리안의 땅을 전부 그 사람에게 준다는 선포가 있자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말을 타고 달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먹지도 쉬지도 않고 오직 엄청나게 넓은 땅을 얻고자 다렸습니다. 하루 종일 얼마나 달렸는지 그만 사람도 말도 지쳐 스러져 죽었습니다. 인간의 엄청난 욕심이 죽음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측은한 마음으로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무덤을 만들어 주고서 손에 묻은 흙을 털며 산을 내려오던 사람들은 한결 같이 입을 모아 ‘한 평만 가지면 넉넉하고도 남을 걸 그 애를 썼구나.’ 하였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무상하고 허무한 존재입니다. 세월이 가노라면 인생은 모두가 무덤을 남긴 채 사라집니다. 그 어떤 사람도 흐르는 세월 속에서 인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인생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이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 39:4-6).
다윗은 인생이 허무한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날 때와 죽을 때를 보면 묘한 교훈을 얻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손을 꼭 쥐고 태어납니다. 의욕과 야욕의 표시입니다. 세상사는 동안 열심히 일하고 힘써서 돈을 벌고 자녀를 얻고 명예를 누리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런데 세상 떠날 때는 꼭 잡았던 손을 쭉 폅니다. 세상 것에 대한 모든 것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붙잡아도 내 놓을 날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할 나그네 인생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사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인생(人生)이란 소(牛)가 외나무다리(一)를 걷는 것처럼 불안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위기의 연속에서 한발 한발 불안하게 걷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 7절에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모든 소망을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다윗은 인생을 바로 알았습니다. 연약한 자임을 알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허사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왜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실 수 있을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께 소망을 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스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사람이 해아래서 수고하는 수고가 유익한 것이 없지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고하는 그 수고는 말할 수 없이 유익하며 헛되지 않고 우리에게 상급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2.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19절에 “내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세에 뜻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과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았던 사람의 종말에 대하여 성경은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고 롯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 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음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으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땅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롯은 소돔성이 불탈 때 재산도 물질도 가족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헛된 일에 분주하면서 재물을 쌓았으나 누가 취할 것인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3. 자기 생활을 깨끗하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부터 자기의 생활을 성결케 합니다. 요한일서 3장 3절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세상적인 허탄한 것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소망이 분명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달려갑니다. 믿음을 지킵니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습니다.
4. 낙심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어떤 경우에서든지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1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보이지 않는 미래의 소망을 안고 사는 우리는 잠간 동안 땅에서 당하는 환난을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합니다. 주께 소망을 둔 사람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리 마음만은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꺼꾸러뜨림을 당하고 넘어지되 아주 망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가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5. 하늘나라와 땅을 위해 최대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국의 크리스천 문필가인 C.S 루이스는 기독교인의 행위론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역사를 읽어보면 “현세를 위해 가장 많이 일한 이들은 내세를 가장 많이 생각한 이들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만이 사랑하는 사람은 땅에 있는 사람을 가장 많이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큰 운동을 일으킨 사도들을 비롯하여 종교개혁시대를 건설한 위대한 인물 등 노예제도를 영국 안에서 폐지시켰던 영국의 여러 복음주의자들이 이 땅에 큰 업적을 남긴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가득 찼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 약하기 때문에 세상일에도 무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목적을 두라 땅은 자연히 얻을 것이다. 땅에만 목적을 두어 보아라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사실 하늘에 소망을 분명히 가진 이가 현세에서도 봉사를 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 소망을 둔 사람은 무덤 넘어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선한 일에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항상 주께 소망을 두고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