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 책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소위 전후 좌익 세력에게 있어서 '바이블' 같은 존재였으며 이들의 역사인식과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근현대사를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부분 등의 북한 주장을 세세하게 정리한 책입니다. 당시 젊은 층은 이 책을 읽고 교과서 속 반공 투사들이 황군이었고, 교과서 속 문인들이 친일파였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엔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떵떵거리며 산다고 믿었고 이 절망감은 국가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으며 민족 정통성은 친일파를 청산한 북한에 있고 남한은 미국을 새로운 상전으로 모신 친일파의 나라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정치적 표현이 1980년~1990년대를 지배한 NLPDR 운동입니다. 1980년~1990년대 학생운동에서 흔히 들리던 '미 제국주의 타도', '조국해방' 같은 구호들이 바로 이러한 사상적 기반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모두 거짓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거짓으로 밝혀졌고, 이 책에서 주장한 내용들 중 현재는 완전히 폐기된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6.25 전쟁의 발발에 관해서 남침유도설 은 수정주의적 관점이 대거 수록되어 있었으나, 공산권 붕괴 이후에 소련 측 기밀 문서가 공개되면서 현재 남침유도설은 학계에서 사장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해석하는 관점은 여전히 폐기된 관점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에는 주의를 요하고 있습니다. 2017년 이후 다시 정권을 잡은 n86세대 운동권들 또는 그와 궤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일반 대중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과 행보[6]를 보이는 이유도 그들의 역사 인식과 관점이 40년 전에 나온 이 책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었지만, 다행히도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동아일보사에서 발간한 책인 『실록 제1공화국』 다섯 권짜리 책을 여러 번 읽어서, 그 책의 내용이 대부분이 제가 아는 사실과 달라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단정해서 이 책의 저자들에 대해 오히려 편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광복절은 슬픈 날이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줬다. 광복절 행사를 둘로 쪼갠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거나, 1948년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단체는 뉴라이트라며 친일 딱지를 붙였다.
프로야구에선 두산 소속 일본인 투수 시라카와 게이쇼 등판이 취소되는 일이 일어났다. 두산 베어스는 잠실구장 외야에 걸려있던 일본 국기도 내려야 했다. 전체주의적 파시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한민국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극단적 갈등의 뿌리에는 국가의 이념적 정체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은 광복 후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한 자랑스러운 국가인가, 아니면 친일주의자들이 주도한 태어나선 안될 나라인가.
5공화국 때 안전기획부 기조실장, 민주정의당 원내총무를 거치고 김대중 정부때 국정원장까지 지낸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분자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고 했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건국 시점을 1919년으로 보든, 1948년으로 보든 이승만이 건국 대통령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이승만은 1952년 1월 '이승만 라인'으로 불리는 '평화선'(Peace Line)을 일방적으로 선언할 정도로 뼛속부터 반일주의자였다. '평화선' 선포가 없었다면 독도의 실효적 지배는 불가능했다.
좌파와 일부 정치인들은 '헬조선'에 이은 '친일 프레임' 씌우기로 재미를 보려 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건국 대통령마저 친일로 몰아세우며, '좌표 찍기'도 서슴지 않는다. 심판자처럼 역사를 재단한다. 반일을 외치는 더불어민주당이 계승자라고 내세우는 김대중이나 노무현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민주당은 심지어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거나 친일 반민족행위를 찬양·고무한 사람은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법제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재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올 광복절 논란은 또 다른 역사전쟁이다. 좌파의 대한민국 역사 부정은 끈질기고 치밀하다. 제주 4.3 사건, 대구·여순 반란사건 등 광복 후 빨치산이나 군대내 암약하던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벌어졌던 사건들도 민간인 희생을 앞세워 건국을 부정하는 데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
중국 대륙을 공산화한 마오쩌둥(毛澤東)은 거대한 공산주의 실험이었던 대약진 운동(1958-1962) 기간 5000만 명 가까운 인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마오쩌둥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공식 평가는 '공칠과삼'(功七過三, 공적 70% 과실 30%)이다. 개혁개방으로 중국 발전의 기초를 닦은 덩샤오핑(鄧小平)은 1981년 당대회에서 '마오의 공과 과는 7대 3'이라고 공식 선언, 논란을 종식시키며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했다.
지금 우리에게도 공은,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는 실용적인 정신이 필요하다. 독재라는 비판을 받았던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때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헌법을 만들었으며, 농지개혁과 한미 동맹으로 대한민국의 주춧돌을 놓았다. 박정희는 먹을 것조차 부족했던 나라에 중화학 수출 공업을 진흥시켜 경제발전의 기초를 만들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이 남긴 폐해가 너무 크다. 해전사는 북한은 혁명적인 공산주의자와 민중이 연합한 정권으로, 미제와 반민족·반혁명 세력의 지배하에 있는 남한을 해방시킬 민주기지라고 규정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했으며, 프랑스 철학자 푸코 역시 역사란 한 계급이나 세력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도구라고 했다. 반국가 세력은 역사도 투쟁의 도구라며 마음대로 왜곡하려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까지 도약한 자랑스러운 역사다.
반정부와 반국가는 다르다. 민주주의 제도를 악용해 대한민국의 건국이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반국가 세력엔 단호히 맞서야 한다..디지털타임스. 강현철 논설실장
출처 : 디지털타임스. 오피니언 [강현철 칼럼], 우울했던 광복절,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제가 요즘 정리하고 있는 책이 『해방 전후기의 정치인물』입니다. 책을 낼 돈이 없어서 책으로 내지 못하겠지만 곧 정리되는 대로 여기에 올릴 생각입니다.
18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분부터 1980년대까지 사신 80명의 개화기 인사에 대해 정리하고 있습니다. 국사책에서 이름만 나온 분들을 4쪽 정도씩의 분량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책으로 내면, 좌파들이 그렇게 받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했는지 제대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 님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긴 기간을 재임하지 않았지만 상해 임시 정부를 얘기할 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빼고는 얘기가 되지 않을 겁니다.
좌파들이 왜 이승만을 친일파로 모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반민특위를 해산시켰다고 이승만을 친일파의 거두로 보지만 정작 일본에서 이승만은 강경한 반일 인사로 통한다.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을 했고, 이승만 라인으로 독도를 지켰으며 한국전쟁 중 일본군의 참전에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이승만이 세운 초대 내각에 친일파의 이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의 초기 정권에는 친일파들이 수두룩하다. 북한의 역사서인 '조선전사'에서조차 "김일성 동지께서는 지난날 공부나 좀 하고 일제 기관에 복무하였다고 하여 오랜 인텔리들을 의심하거나 멀리하는 그릇된 경향을 비판 폭로하시면서 그들을 새 조국 건설의 보람찬 길에 세워 주시었다."라고 적혀있을 정도다.
북에서도 친일파들은 노동당에 충성하며 출세를 했다. 반면 독립운동가들은 김일성 유일 체제에 반대하는 한 거기서도 숙청의 대상이었다. 연안파와 소련파, 남로당 계열이 그렇게 사라졌다. 진중권 또한 민주당이야말로 친일지주들의 당이었고 이승만의 토지개혁에도 앞장서서 반대한 게 민주당이라고 지적했다“나무위키에서
‘공(功)7, 과(過)3,’이건 모택동에 대한 등소평의 평가이고, 우리나라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功)8, 과(過)2’로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저는 두 분에 대해서는 ‘공9, 과1’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