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詩 읽기]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고통과 희망
픽사베이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 (1948~1991), 시인
밑둥이 잘려도 새순은 돋고, 뿌리가 없어도 물이 고이면 꽃은 핀다. 고통이 존재하듯, 희망 역시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고통을 이겨낼 힘이 있으니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굳은 다짐을 하는 것이 어떨까.
1975년에 「연가」, 「부활 그 이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고정희는 타계하는 해인 1991년까지 모두 열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다.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이후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지리산의 봄』(1987), 등을 통해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여정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시를 통해 어떤 가혹한 억압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형상화하였다.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