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미술관에서
김은정
조선에 핀 목화솜이
닥종이가 되어
조선의 예술혼을
조선의 선한 사람들을
금빛 틈새로
보여주는 미술관
그림 신선과
어린아이와
호랑이와 사슴이
즐겁게 춤을 추는 곳
단원을 따라
금강산을 걷는 아랍인
강희언을 따라
비파를 뜯는 사슴을
오래 지켜보면
목화송이, 송이 내려오듯이
안산을 덮는
닥종이의 눈부신 빛
솜이불 같은
닥종이의
자애의 빛
---김은정 시화집 {내가 안산을 엄청 사랑해} (근간)에서
목화는 아욱목 아욱과에 속하는 비식용 농작물이지만, 비교적 값싼 면제품의 원료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농작물 중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다.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며, 닥나무의 껍질은 아주 소중한 종이의 원료라고 할 수가 있다. 목화와 닥나무는 우리 인간들의 일상생활에서 아주 소중한 자원이지만, 그러나 상호 연관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조선에 핀 목화솜이/ 닥종이가 되어/ 조선의 예술혼을/ 조선의 선한 사람들을/ 금빛 틈새로/ 보여주는 미술관”이라는 김은정 시인은 그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왜냐하면 닥나무에서 목화꽃이 피고, 목화솜이 종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선에 핀 목화솜이/ 닥종이가 되”었다는 것은 닥나무 껍질을 종이로 만드는 과정에서의 ‘백피白皮’를 뜻하는 것이고, 따라서 “목화송이, 송이”는 “닥종이의 눈부신 빛”, 즉, “솜이불 같은/ 닥종이의/ 자애의 빛”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시의 힘은 상상이고, 상상의 세계에서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닥나무에서 목화솜이 피고, 이 목화송이는 우리 인간들의 지혜의 텃밭인 종이가 된다. 김홍도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이며, 그의 [단원도]는 “그림 신선과/어린아이와/ 호랑이와 사슴이/ 즐겁게 춤을 추는 곳”이라고 할 수가 있다. 단원을 따라 금강산을 걷는 아랍인들도 있고, 강희언을 따라 비파를 뜯는 사슴도 있다. 조선에 핀 목화솜이 닥종이가 되고, 조선의 선한 사람들을 통해서 조선의 예술혼을 보여주는 ‘김홍도미술관’도 김은정 시인의 상상의 세계이고, “목화송이, 송이 내려오듯이/ 안산을 덮는/ 닥종이의 눈부신 빛/ 솜이불 같은/ 닥종이의/ 자애의 빛”도 김은정 시인의 상상의 세계이다.
시와 그림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이상 세계는 예술의 세계이며, 우리 인간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은 예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시와 그림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세계는 그 어디에도 없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그 이상 세계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불나방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시와 그림과 음악은 아주 중독성이 강하고, 이 중독성의 황홀함에 취한 자는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다 바쳐 예술품 자체가 된 삶을 산다. “목화송이, 송이 내려오듯이/ 안산을 덮는/ 닥종이의 눈부신 빛”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고, 또한, “솜이불 같은/ 닥종이의/ 자애의 빛”이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김은정 시인의 [김홍도미술관에서]는 우리 인간들의 최고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모든 삶의 최종적인 목표이고,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행복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모든 아름다움의 창조주이며, 예술가 중의 최고의 예술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