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지 초대전
현대적 산수
하나에 작은 주제를 놓고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작품을 통해 결국 개인 하나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 하나가 되어야지 비로소 진정한 하나의 세상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글 : 이루다(갤러리 다선 관장)
[2012. 7. 18 - 7. 24 갤러리다선]
[갤러리다선]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489-6 1층 T.02-502-6535
우리나라에서 감상용 산수화는 대략 15세기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 의해 작품화 되고있다. 과거 전통의 산수는 영적인 공간으로 여겨졌으며 작가의 이상향을 표출하는 장이되었다면 현대작가들의 전통산수화는 조선후기의 진경산수화 양식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서양의 풍경화들이 사실묘사에 취중했다면 한국의 진경산수화에서는 작가의 주관적 감정과 표현방법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표현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회화에서 추구하는 개념미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양식 표현 방법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현대미술에서 동양 고유의 표현 방식의 틀을 이어오고 있는 산수는 폄화되는 경향도 있다. 물론 국수주의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가지고 내려오던 고유의 우수한 영역과 현대적 요소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차민지 작가노트-
사람들은 행복의 가치를 어떤 기준에 두고 결정할까라는 많은 생각을 했다. 큰일에 의해서만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말 소소한 일상에서 작고 작은 일에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의해 흔들리고 갈망하며 그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위치가 낮아질 수도, 높아질 수도 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 행복의 기준을 또 다른 시선으로 보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그 안에서 무한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작품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절제와 조화가 있는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으며 개인의 욕심만이 가득 찬 개인주의사회보다는 공동체의 따뜻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더욱 깊어진 생각은 행복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라는 의문점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가치 있는 ‘사람의 존재’ 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란 현실에 실제로 있는 대상을 말하며 과연 사람들은 이 존재에 대해서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고 있을까라는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자신에게 존재할 때보다 존재하지 않을 때 소중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존재가 없어질 때 후회하며 행복했음을 알고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 조차도 행복의 가치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판단하며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따뜻함과 차가움, 비판과 이상에 대한 큰 주제를 바탕으로 작품 하나하나에 작은 주제를 놓고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작품을 통해 결국 개인 하나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 하나가 되어야지 비로소 진정한 하나의 세상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