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싸움의 궁극적인 목표는 싸움을 일으키는 갈등을 넘어서는 것, 즉 관계의 성장과 자기 이해이다. 싸움을 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화살을 들이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대가 스스로를 바라보도록 거울을 내미는 것이다. 이 거울은 들키기 싫고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아주 불편하고 거친 방식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수만 가지 이유로 싸우지만, 싸움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안전하고 싶은,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욕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싸움은 자기 내면에 있는 미해결 과제와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게 하기 때문에, 서로의 가장 여린 부분을 보듬을 기회를 주기도 한다. 모든 싸움은 사랑 이야기이다.
---「들어가며: 모든 싸움은 사랑 이야기다」중에서
완벽한 관계를 찾기보다 싸울 수도 있는 관계를 권한다. 괴롭겠지만, 불편하겠지만, 어쩌면 바라던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겠지만, 갈등을 포함하는 관계를 통해서 고립에서 나와 현실을 직시하고, 내 삶에 있는 불만족을 통과해서 살아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마찰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며, 사랑한다는 것은 실망을 무릅쓴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고,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한다. 인간은 결코 희망을 놓지 못하는 존재라서 그렇다.
---「1. 싸우기도 하는 관계」중에서
관계를 포기하는 것을 각오하고라도 자기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관계를 깨야 할 때도 생긴다. 그러나 그 순간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도 싸움은 필요하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반복적인 싸움으로 인한 지겨움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정성을 들여서 싸워보기를 제안한다.
---「1. 싸우기도 하는 관계」중에서
그래서 우리를 진짜 상처 줄 수 있는 사람은 친구나 애인, 부부, 가족처럼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펀치를 날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서로의 약점을 보고 안아주거나 약을 발라줄 수도 있는 관계이다.
---「1. 싸우기도 하는 관계」중에서
별일 아닌 일로 싸운다 싶은데 마치 온 영혼이 흔들리는 것 같고 내 존재의 바탕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상태가 된다거나, 상대의 말에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갈 만큼 큰 반응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무의식적인 원인에서 비롯한 싸움일 가능성이 크다.…… 그중에서도 ‘투사投射’는 싸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우리는 왜 싸울까?」중에서
치약을 아래서부터 짜느냐 위에서부터 짜느냐 하는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하고는 한다. 그런데 그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가 치약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 것이다. 그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는 내가 내 삶을 통제하는 방식이 상대방이 그의 삶을 통제하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각자의 오래된 습관이 건드려지기 때문이며, 그 싸움이 점점 커져서 급기야 서로의 인격에 대한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왜 싸울까?」중에서
우리도 싸우기로 작정을 한다면, 싸우다 질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그런 순간 상처 없이 안전하게 넘어지고 바로 일어서는 방법을 미리 연마해 놓자. 관계 안에서 싸울 때 우리에게 필요한 낙법은 뭘까? 넘어져도 괜찮다는 믿음,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겠다는 결심,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우겠다는 태도일 것이다.
---「3. 싸움의 기술: 준비」중에서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과 화의 에너지를 표출하는 것(예컨대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거나)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화의 날것 에너지를 표출하지 않고도 화를 표현하고 화를 경험할 수 있다.…… 화를 경험하는 것, 즉 화가 몸 안에서 생리적 반응으로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밖으로 화를 낼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다. 또 화의 표현이 폭력적일 필요가 없으며, 춤이나 그림 등 예술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운동으로 에너지를 소진시킬 수도 있다
---「3. 싸움의 기술: 준비」중에서
의도치 않게 급소를 찔렀다면 상대방의 몸에서 뭔가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얼굴을 찌푸린다든지, 목과 어깨가 긴장해서 힘이 들어간다든지, 호흡에 변화가 보인다든지…… 이럴 때면 바로 멈추어야 한다. 급소는 상대방이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자칫 저항감의 폭격을 맞을 수 있다. 이때는 하던 말을 멈추고 얼른 말을 바꾸거나 상황을 바꿔보기를 추천한다.
---「4. 싸움의 기술: 초급」중에서
도장 깨기를 하러 가는 무사는 자신의 적수를 찾아가는 것이므로, 적수가 아닌 사람과는 싸우지 않고 상대에게 존중을 표하는 걸 잊지 않는다. 그것은 그 상대와 싸우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싸울 때는 설령 물고 뜯고를 할지라도 비웃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싸우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깔보거나 비웃는 경멸의 행동이나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러한 행동이나 말은 싸움을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막장 싸움으로 치닫게 만들 수 있다.
---「4. 싸움의 기술: 초급」중에서
싸울 때 전체가 아닌 디테일에 반응하는 것은 우리가 화가 나면 전체보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몸이 변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화가 나면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소화 작용처럼 당장 필요하지 않은 기관의 작용이 멈추는 동시에 미간이 좁아지고 동공이 작아지는데, 이로 인해 우리 눈에 포커스가 생기고 세세한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렇다 보니 기분이 좋을 때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해도 그냥 넘어가지만, 화가 난 상태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 하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눈에서 힘을 빼자. 눈에서 힘을 뺌과 동시에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4. 싸움의 기술: 초급」중에서
상대방이 나를 공격한다고 느낄 때 내 안에서 방패와 칼을 찾아 드는 과정은 순간적으로 매우 빠르게 일어나는데, 그 순간이 아무리 빠르게 일어나더라도 몸의 감각에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의식을 하고 있다면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면 감각이 바깥으로 향한다거나 손끝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상대방의 말과 움직임에 예민해진다.…… 이럴 때 몸의 가장자리에 집중되어 있는 의식을 중심으로 가져오고, 밖으로 향한 에너지를 내 안으로 돌려서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자.
---「5. 싸움의 기술: 중급」중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반복적인 행동 습관 때문에 싸우게 될 때, 그의 행동을 동물적 특성으로 바라봄으로써(즉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다거나, 뭔가 의도가 있어서 그런다고 보지 않음으로써) 더 큰 싸움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함께 사는 가족이나 룸메이트가 신경 거슬리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할 때, 큰 싸움이나 관계의 단절로 옮겨가기 전에 그것을 그 사람의 고유한 동물적 특성으로 보는 연습을 해보자.
---「5. 싸움의 기술: 중급」중에서
싸움의 기술에서 최고의 정수 역시 축지법이다. 싸움에서 축지법은 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을 접어서 전혀 다른 곳에 가는 방법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바꾸거나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문제가 일어나는 환경이나 문맥 또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전혀 다른 지형으로 가는 것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문제와 싸우느라 점점 더 문제의 실타래 속으로 얽히고설켜 들어가는 흐름에서 단숨에 빠져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5. 싸움의 기술: 중급」중에서
축지법의 묘미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땅이 접혀서 절벽 위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곳에 착지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도 착지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내가 붙들고 있던 프레임을 탁 하고 놔버려야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프레임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5. 싸움의 기술: 중급」중에서
관계를 잃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관계에서 오는 따뜻함과 안락함을 포기하고서라도 나의 자유와 존재를 지켜야 할 순간인 것이다.…… 어렸을 때 ‘왕따’ 경험을 한 사람이 청소년이 되거나 성인이 되어서 많이 하는 말은 “그때 왜 싸워서 이기지 못했을까?”가 아니다. 그때 “왜 말 한마디 못했을까?”이다.
---「6. 싸움의 기술: 최고가 아닌 최후의 방법」중에서
이 책을 시작하면서 모든 싸움은 사랑 이야기라고 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나는 그 싸움들 중에서도 자기를 지키는 싸움이야말로 가장 궁극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상담사로 일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세요”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그때는 참 뭐라고 대답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서 싸워보세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그 싸움에서 스스로를 지켜낸다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 거예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6. 싸움의 기술: 최고가 아닌 최후의 방법」중에서
우리는 싸움을 통해서 자신의 어떤 급소가 건드려지는지, 자신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알게 된다. 이것을 통해서 자신이 스스로를 설명해 오던 이야기의 허점을 보게 되고,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주입시켜 온 관계의 프레임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더 나아가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발동시켰던 방어 기제를 멈추고 상대방에게 씌운 투사를 거두어들인다면, 싸움을 일으킨 갈등을 넘어서서 관계가 더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어진다. 이때 싸움은 한마디로 관계의 성장과 자기의 이해라는 더 큰 목적에 기여하게 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끝까지 싸울 수 있다면 말이다.
---「마무리 말」중에서
찌를 수도 있지만 껴안을 수도 있는 관계,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치유를 할 수도 있는 관계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싸움을 하는 동안에는 못난 말들이 튀어나오고 찡그린 표정이 나오지만, 그 속에는 서로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연약한 마음이 들어 있다. 그러니 그 못남과 찡그림에도 불구하고 그 여린 사랑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 사람의 뾰쪽함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기를, 나도 여러분도 그럴 수 있는 싸움을 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마무리 말」중에서
이 책을 쓰는 내내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싸운 모든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하나하나 다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싸우지 않는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많이 싸워왔는지 깨달았다. 대놓고 싸웠던 적은 별로 없지만, “나는 싸우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이 화를 내더라”라는 식의 시나리오를 많이 써왔음을 알았다. “나는 착하고 쟤는 이상해”라고 생각했던 기억들도 떠올랐는데, 이런 기억은 내가 비겁하게 싸웠다는 증거였다. 그것을 깨달으니 과거의 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사죄하고 싶어졌다.
---「마무리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