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64]뉘 집, 뉘 집의 상량上樑 이야기
은행을 다니는 큰아들이 바레인지점으로 발령이 났는데, 불똥이 나에게도 떨어졌다. 솔가率家를 해가는 통에 지금은 하나 밖에 없는 여덟 살 손주를 최소 1년이상 못보게 생겼으니, 오호嗚呼, 통재痛哉. 게다가 아들네 살림살이 중 일부를 시골집에서 관리해달라 해, 지난 주말 아내와 비좁은 컨테이너창고를 비우느라 요란법석搖亂法席을 떨었다. 벽과 벽 사이에 끼인 고향집 리모델링 전의 긴 상량上樑을 발견했다. 초가를 기와집으로 바꾸면서 올린 상량에 단기檀紀 4302년으로 쓰여 있으니, 서기西紀 1969년. 모양새는 빈약하지만 상량문 격식만큼은 제대로 갖추었다. 더듬더듬 읽어보며 모르는 것을 검색해 봤다.
“龜 檀紀 四三O二年 歲在乙酉 二月八日 午時 立柱上樑/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繼繼承承/子子孫孫/地得吉人/人得吉地/辛坐乙向 龍”, 반대편 상량에는 “鳳 心誠伏願 立春花發文章樹 建陽日出壯元峰 災殃秋葉霜前落 富貴春花雨後紅 麟”라고 쓰여 있었다. 위 아래로 ‘龜’‘龍’‘鳳’‘麟’자를 크고 굵게 쓰고, 그 사이에 쓰인 문구는 ‘해와 달, 별 등 우주의 기운이 깃들고(應天上之三光), 인간사의 오복(수, 복, 강녕, 유호덕, 고종명)를 갖추어(備人間之五福), 대를 이어 자손의 번창을 마음을 다해 엎드려 비나니 땅은 길인을 얻고(地得吉人), 사람은 길지(人得吉地)를 얻게 되어, 입춘에 문장나무에서 꽃이 피어나고(立春花發文章樹), 건양의 해가 장원봉에 솟으며(建陽日出壯元峰), 재앙과 가을잎은 서리 앞에 떨어지고(災殃秋葉霜前落) 부귀와 봄꽃이 비온 뒤에 붉게 핀다(富貴春花雨後紅)'는 뜻이란다.
참 어렵지만, 좋은 뜻임은 분명하다. 옛날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한문漢文으로 유식한 티를 냈을까? 나는 상량문의 글자를 대폭 줄인 채 그 뜻만을 옮겨, 서예가 친구에게 써달라 부탁해 상량을 새로 올렸었다<위 사진>. 지금도 약소한 '폐백幣帛'을 줬던 게 부끄럽다. 상량을 올리는 게 어찌 나만 잘되라고 하는 것인가? ’적선지가積善之家 필유여경必有餘慶‘이란 말처럼, 내가 덕을 쌓으면 우리 아들, 손자들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착한 일들을 하는 게 아닐까.
아무튼, 상량에 대한 글을 쓰려니, 맨먼저 떠오르는 게 장성 축령산(전북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1번지)에 사는 도반道伴 형님이 생각난다. 내가 ‘변신령님’이라 부르는 ‘방외지사 方外之士’(명리학자 조용헌 지칭) 변동해 거사가 그분인데, 몇 십 수년 전일 것이다. <축령산 휴림>이라는 전통펜션을 지으며 사무실 천장에 내건 상량문 문구를 보라. “달과 별을 노래하는 이곳은 자연을 닮은 순수한 사람의 안식처”<바로 위 사진>. 보라! 전국 어디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상량문구를 본 적이 있는가? 그곳은 문구에 쓰여진 말 그대로이다. 세속에 찌든 보통사람들에게 ‘아니온 듯 다녀가시라’며 잠시잠깐이나마 별과 달을 노래하며 마음껏 쉬었다 가라는 의미의 쉼터를 제공한 것이다. 착한 일이고 좋은 일이다. 올해 칠십인 그가, 그의 마음이 정말로 자연을 닮은 ‘순수 그 자체’임을, 나는 도반과 쌓은 20여년 세월 속에서 충분히 알고 있다.
그는 365일 내내 늘 천하태평, 유유자적, 안분지족, 청심청안이다. 어찌 보면 '막가파' 비슷하다. 세속적으로는 은행빚이 어마무시해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불안해 하는 데도, 그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밥은 하늘이 먹여 준다’는 속설을 철두철미 믿고 있는 듯하다. 그를 떠올리면 유치환의 짧은 시구절이 떠오른다. <심심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바위에 앉아/나같이 이나 잡고/홀로 살더라>. 하여, 내가 도반을 ‘변신령卞神靈’이라 부르는 까닭이다. 그가 최근에 ‘발양루醱養樓(일명 천연 발효타워. 소생의 작명)’라는 전대미문의 희한한 통나무건물을 짓고도 모자랐던지, 정읍 북일면에 예전에 사놓은 기와집을 전면 리모델링하는 ‘무모한’ 일을 또 저질렀다.
이 졸문을 쓰면서, 두 건물의 상량문구를 어떻게 썼는지 궁금해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 했다. 자랑치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는지 득달같이 사진을 보내왔다. “역쉬-” 청담(도반의 호)답다. 두 상량의 문구를 보자. “만물이 공존 공생하며 휴식과 꿈을 가꾸는 하늘이 내린 안식처” “더불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상생(上生)의 공간”
어떠하신가? 이런 류의 한글 상량문구를 보신 적이 있는가?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그는 ‘자연의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이 더운 날, 그곳에 가고 싶다.
첨부: 2019년 9월초, 편액 오픈식을 한 후 쓴 졸문에도 상량이야기가 나와 첨부함.
https://cafe.daum.net/jrsix/h8dk/379